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563화 (563/729)

# 563

제563장 싹이 트다

천안호가 성 전역을 훑었다.

누구도 탐측 레이더를 피할 수 없었다.

칼의 대군이 아무리 민첩해도 공화련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칼의 부대 배치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전선을 공격하려고 부대를 재정비하는 것 같았다. 다음번에는 더욱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다는 뜻이었다.

기적성의 가장 큰 약점은 성을 방어하는 결계가 없다는 것이고 가장 큰 강점은 마력무기였다. 칼은 주력부대가 더 쉽게 공격할 수 있도록 전선을 길게 늘어뜨려 기적성의 화력을 분산시킬 요량이었다. 꽤 똑똑한 전략이었다.

“제로, 상황을 분석해 줘.”

“알겠습니다. 부성주님.”

제로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실내에 울리다가 몇 초 후 다시 조용해졌다. 초월컴퓨터진법으로 방대한 계산을 실행하는 것 같았다.

“알파브레인 2호가 데이터 분석 결과를 전송합니다. 적은 80~90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적은 남쪽 1구역에 5만, 2구역에 8만, 3구역에…… 배치되었습니다. 현재 움직임으로 보아 절대적으로 많은 생명 신호가 남측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 신호의 강도는 높지 않아서 양동작전일 가능성이 큽니다. 서쪽에서 강력한 신호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수가 남쪽보다 많진 않지만 적의 주력부대로 추정됩니다. 무기를 서쪽으로 재배치하십시오. 남쪽은 지상부대와 일부 마력무기로 충분합니다!”

오늘 가장 맹렬한 공격을 받고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이 바로 남쪽 방어선이다.

칼 부대 본진 역시 남쪽에 있다.

논리대로라면 남쪽이 공격의 주요 목표가 되는 게 맞다. 그러나 칼의 부대 배치는 조금 이상했다. 그들은 비정규군을 남쪽에 배치한 것 같았다. 수가 많아 보이지만 허장성세에 불과하다. 사대 성 연합군 주력부대는 서쪽을 공격하기 위해 수백 리를 우회해야 한다.

‘기습으로 기적성을 무너뜨리려고?’

알파브레인 2호는 경보시스템이다. 적이 바라는 일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는다.

적의 의도를 미리 파악하기는 했지만 공화련은 여전히 상황을 낙관할 수 없었다.

“현재의 무기와 군대 상황에 따라 다음 공격에 대한 방어 성공률을 알려줄 수 있어?”

제로가 몇 초 머뭇거리다 말했다.

“부성주님, 죄송합니다. 전장이 너무 크고 변수가 많아 제 계산 능력으로는 감당이 안 됩니다. 게다가 적에 관한 자료가 부족하여 정확한 데이터를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략 계산해 보면 3할이 안 됩니다.”

‘3할이 안 된다고?’

이 말에 공화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몹시 어두워졌다.

“상황이 이런데 성주님은 도대체 어디 계시는 거야?”

동방호연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과 같은 위기의 순간이야말로 천제현의 능력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성주님한테는 무슨 방법이 있을 텐데!”

공화련은 천제현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었다.

그놈은 비비안을 데리고 영원의 숲에 갔다가 예상대로 빈손으로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비비안까지 억류당했다.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옳다. 그런데 천제현은 돌아와서 무슨 영문인지 계속 화원에만 처박혀 있었다.

“기적성이 함락되게 생겼으니 뭐가 어찌 됐든 천제현이 나서야지요. 제가 전화를 걸 테니 다들 기다리세요!”

공서련이 한바탕 쏘아붙일 작정으로 천제현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런데 입을 열기도 전에 천제현이 선수를 쳤다.

“뭐라고? 어! 잠시 기다려!”

공서련이 휴대전화를 집어넣으며 야릇한 표정으로 모두를 쳐다봤다.

“천제현이 화원으로 오라네요.”

기적성이 바람 앞의 등불 신세인데 화원으로 오라니?

공서련이 설명했다.

“천제현이 기적성의 위기가 곧 해결될 거래요. 해결 방법이 화원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빨리 와서 도와달래요.”

남궁혜가 외쳤다.

“기적성은 어쩌라고? 적이 공격해오면 어떻게 해!”

동방호연이 자진하여 나섰다.

“저와 대하국 제후들이 마력무기를 지니고 있으니 당분간은 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성주님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어서 가보십시오!”

이 방법뿐이었다.

누구도 천제현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모두 천제현이라면 뭔가 깜짝 놀랄 방법을 내놓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지휘권을 동방호연과 대하국 제후들에게 넘기고 기적화원으로 달려갔다.

천제현이 배치한 취영진 결계에는 위장 효과가 있어서 결계 밖에서는 안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러나 결계 안으로 들어서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화원의 영기는 완전히 봉쇄되어 밖으로 새나가지 못했다. 원래도 생기가 충만했던 화원에서 생명 마력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화원은 온통 연두색 빛에 휩싸여 있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순수한 생명 마력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마력장처럼 이곳을 뒤덮고 있는 생명 마력은 강하고 순수했다. 검에 베인다고 해도 생명 마력이 곧바로 상처를 치유해 줄 것 같았다.

천제현은 육망성진 옆에 서 있었다.

이 공간의 고대 기운 채집 장치는 며칠 전부터 운행되고 있었다. 이 장치는 압착기처럼 아공간에서 고대의 공간 기운을 짜낸다. 지금까지 최소 아공간 수백 곳의 기운을 압착했다.

순식간에 마력 기둥 수십 개가 거의 다 소모되었다.

이 마력 기둥은 올드만 마을의 실버오일을 정제하여 만든 것이다. 기적성을 몇 개월 운영하기에 충분한 마력을 저장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며칠도 못 가 소진되었다.

“곧 성공할 거예요! 거의 다 됐어요! 여러분, 조금만 더 힘을 내요!”

루루가 꽃의 엘프 백여 명을 이끌고 며칠을 분전했다. 꽃의 엘프들은 몹시 지쳐 보였으나 이상하게 들뜬 상태였다. 꽃의 엘프들이 에워싸고 있는 화원의 중앙에는 허공에 솟은 물체가 있었다. 구슬만 한 크기의 투명한 물체는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화원을 뒤덮고 있는 강렬한 마력 기운은 모두 이 물체 안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다.

“이…… 이게 대체 뭐야?”

남궁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빛을 뿜는 물체를 노려봤다.

“이렇게 강력한 생명 마력을 방출하는 물건이라면 분명 진귀한 신품일 거야. 기적성에 이런 물건이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공화련이 미간을 찡그리며 정신을 집중하여 살펴보았다. 천서의 기억이 듬성듬성 떠오르기 시작했다.

“생명수 씨앗이야. 이건 완전히 깨어난 상태의 생명수 씨앗이야!”

이것은 엔트족과 꽃의 엘프가 천제현에게 깨워달라고 맡긴 씨앗이었다. 평소에는 꽃의 엘프들이 씨앗을 관리하여 공화련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공화련은 특수한 정령의 힘으로 이 씨앗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공화련의 정령에는 무수한 고대의 기억이 봉인되어 있다. 새로운 물체와 맞닥뜨리면 상응하는 기억이 깨어난다.

공화련은 마침내 천제현이 무엇을 하려는지 깨닫게 되었다.

“큰아가씨, 작은 아가씨, 남궁 아가씨, 뭘 멍하니 보고만 있어요?”

천제현이 다짜고짜 셋을 진 안으로 끌어들였다.

“생명수는 완전히 깨어났어요. 이제 싹을 틔울 절호의 기회예요. 꽃의 엘프들을 위해 마력을 가둬야 해요. 마력이 전부 발산될 수 있게 말이에요. 이 씨앗에 기적성의 미래가 달려 있어요. 성패가 눈앞에 있으니 어서 도와주세요!”

천천히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모두 천제현의 지휘에 따라 마력진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방출된 마력은 마력막이 되어 진을 덮었다. 꽃의 엘프들이 씨앗에 주입하는 마력은 튕겨 나간 후 이 마력막에 다시 반사되어 돌아왔다. 마력은 흘러나가지 않고 다시 씨앗에 주입되었다.

꽃의 엘프 백여 명이 씨앗에 온 힘을 퍼부었다.

생명수 씨앗은 더 많은 마력을 흡수하여 더욱 밝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씨앗에서 방출되는 생명력도 더욱 커졌다. 그러나 폭발하는 생명 마력은 천제현이 배치한 결계를 깨뜨리지 못하고 봉쇄되어 녹색 빛을 발하는 유리막처럼 변했다.

천제현과 공화련, 공서련, 남궁혜의 몸에 고대의 생명 마력이 쏟아졌다. 마력은 무척 강했으나 몸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았다. 오히려 체내에 흡수되면 마력이 올라가는 효과가 있는 마력이었다.

고대 생명수의 씨앗이기 때문에 신품이라고 하기에 충분했다.

천제현은 마력이 커지고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넘쳐나는 마력을 만약 전부 체내로 흡수시킨다면 마력이 급증할 것이다.

하지만 천제현은 단숨에 이런 생각을 접었다. 마력이 몇 단계 급증하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일이나 이 마력은 생명수 씨앗을 발아시키는 열쇠이다. 너무 많이 흡수하면 발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마력은 언제든지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생명수 씨앗을 발아시킬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이렇게 시간이 조금씩 흘러갔다.

이때 기적성 밖에서 하늘을 찌르는 함성이 터졌다.

칼의 대군이 다시 기적성에 폭풍우 같은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기적성의 방어력이 눈에 띠게 감소한 반면, 칼 쪽 주력부대의 전투력은 여전히 강력했다. 숲의 여러 부족이 대규모로 연합하여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기적성은 거센 파도에 위태롭게 떠 있는 조각배 같았다.

“기적성은 이제 얼마 못 버틴다!”

“공격! 공격! 놈들을 모두 쓸어 버려라!”

사대 성 연합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했다. 기적성 수비군은 패전을 거듭했다.

칼의 입가에 냉혹한 웃음이 피어났다. 그는 이번 전쟁의 승리를 확신했다. 기적성의 함락은 기정사실이었다. 기적성은 잿더미로 변할 것이다. 그는 곁에 있던 지누와 고수들에게 손짓을 했다. 곧 기적성에 전면적인 공격을 퍼붓고 기적성의 고위 간부들과 연구원들을 사로잡을 작정이었다.

‘값나가는 자원은 어떻게 처리할까? 저 무식한 놈들 몫으로 주자!’

칼이 흐뭇한 생각에 젖어 있을 때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기적성 중심부에서 강력한 파동이 발생했다. 파동은 땅이 용트림이라도 하듯 눈 깜짝할 사이에 사방 수백 리 너머로 퍼져나갔다. 하늘에 구름이 급격히 응집되더니 갑자기 천둥과 벼락이 치기 시작했다.

쾅.

수십 줄기의 섬광이 엉키더니 갑자기 기적성 중앙에 번개가 꽂혔다.

두 번째 파동이 발생했다.

세 번째 파동이 발생했다.

모두 아홉 차례의 파동이 발생했다.

마침내 기적성 중심부에서 엄청난 힘이 방출되더니 반경 수천 리를 뒤덮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전쟁 중에 불타고 망가진 숲과 초지가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고목은 다시 싹을 틔웠다. 다친 병사들은 순식간에 회복되어 활력을 되찾았다.

파동의 위력과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은 누구라도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신령이 강림했다!

그렇다. 신령의 강림이 아니고서는 이 위력을 설명하기 힘들었다.

용의 고개 깊숙한 곳에 있는 용궁의 무수한 보물 틈에 머리를 박고 자는 흑룡도, 거인궁전 꼭대기에서 번개를 품고 있는 타이탄도, 황야고원의 지배자도, 땅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어둠의 주재자도. 머나먼 서쪽 바다의 위대한 인물도 혼돈의 숲 중심부에서 벌어진 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혼돈의 시대 이후 어째서 이런 힘이 다시 나타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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