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560화 (560/729)

# 560

제560장 관계 단절

델로리스의 말을 들은 모두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100만 명이라고? 100만 병사?’

‘4개 성이 연합했다고?’

이렇게 되면 기적성은 승산이 없지 않은가.

“집결 상황은 어때요?”

공화련이 급히 물었다.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있죠?”

“시간은 없어요. 제가 돌아올 때 연합군은 이미 집결을 끝낸 상태였고, 숲의 각 부족과 토착 세력들도 그들에게 동조하는 상황이었죠.”

델로리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기적성은 원래 하프엘프들의 그린캐슬이었고, 그래서 방어나 외교 모두 약한 편이에요. 지금으로서는 동맹군을 찾는 게 불가능해요. 그렇다고 연합군을 막아낼 방도도 없고요. 상황이 안 좋아요. 이번에는 진짜 문제에 직면한 거예요!”

공화련은 전기성이 다른 세력을 끌어들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엄청난 부대를 구성할 줄은 미처 몰랐다. 이건 문제에 직면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존망의 위기였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돼?”

모두의 시선이 천제현에게 향했다.

그러나 천제현은 손을 휘휘 저으며 궁시렁거렸다.

“그렇게 보지 말아요. 제가 무슨 신이라도 되는 줄 알아요? 성 4개가 연합을 했으니 제가 그 어떤 재주를 부려도 상황을 뒤집을 순 없을 거라고요.”

“천제현도 방법이 없다고?”

“그럼 기적성은 정말 희망이 없는 건가?”

델로리스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그동안의 모든 고생이 이렇게 수포로 돌아가는구나.’

“그렇다고 너무 초조해 할 것 없어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잖아요?”

천제현은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비비안 공주님, 저와 함께 영원의 숲에 가주시겠어요?”

“영원의 숲? 거긴 인간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야! 거기 가서 뭘 하려고?”

“엘프들과 제대로 얘기를 나눌 때가 된 것 같아서요.”

그건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였다.

그러나 영원의 숲이 정말 그들을 도와줄까? 그 고지식한 엘프들은 원래부터 분쟁에 휘말리는 걸 싫어했다. 게다가 적의 배후에는 숲 최강 세력들이 있지 않은가. 여태까지 영원의 숲과 엘프들이 보여준 안일하고 폐쇄적인 태도를 보면 이 전투에 그들이 끼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천제현은 다시 한 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쨌든 시도는 해봐야 할 거 아니에요? 이렇게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비비안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시도라도 해보자.”

공화련은 여전히 믿음이 안 간다는 태도였다.

“천제현, 너 정말 영원의 숲에 가서 그 노친네들한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야?”

“그럼 농담이겠어요? 영원의 숲 말고 우리를 구해 줄 세력은 아무도 없다고요.”

“그들을 설득할 수 있겠어?”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쨌든 그들은 지원군을 내줄 테니까요.”

대체 어디에서 그런 자신감이 나온 건지. 엘프들이 기적성을 도와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한단 말인가?

“그럼 그동안 기적성을 부탁할게요.”

천제현은 비비안의 어깨를 살짝 치며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지금 바로 출발해요!”

비비안은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공간을 열었고, 두 사람은 눈 깜짝할 새에 이동했다.

기적성과 영원의 숲의 거리가 멀다고는 하지만, 비비안의 공간능력으로 그 정도 거리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비비안이 힘이 부친다고 생각할 때쯤 두 사람은 영원의 골짜기 밖, 형광색 이끼들로 뒤덮인 흰색 자갈길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비안이 긴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바로 영원의 숲으로 통하는 유일한 입구야.”

영원의 숲은 매우 특이한 환경을 지닌 곳으로, 그 구조는 비경과도 비슷했다. 안으로 통하는 길도 오직 하나, 그 흰색 자갈길뿐이었다. 자갈길에서 반 척 정도만 벗어나면 아무리 올바른 방향으로 발길을 옮겨도 영원의 숲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공간 구조가 매우 특이한 데다 고급 결계가 쳐져 있고, 입구 또한 눈에 잘 띄지 않았기 때문에 영원의 숲은 난공불락의 도원경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엘프족들은 자유롭고 풍요로웠으며 세상의 번뇌에 때 묻지 않을 수 있었다.

비비안은 자신 없는 투로 말했다.

“사실 널 여기까지 데려온 것만으로도 엘프족의 규율을 어긴 거야. 영원의 오솔길에는 엘프족 고수들이 지키고 있을 거라고. 운을 시험해 보는 수밖에.”

“상관없어요. 일단 부딪혀 보죠.”

비비안은 시종일관 담담하고 침착한 천제현의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세상에 천제현이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는 것을.

‘천제현이 저렇게 자신 있어 하는데 부딪혀 보지 못할 게 뭐가 있어!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봤자 몇 십 년 갇혀 지내는 것일 테지. 기적성을 위해 그 정도 희생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어!’

“멈춰라!”

“누구냐!”

그들이 오솔길에 들어와 열 걸음이나 걸었을까. 갑자기 주변 공기가 싸늘해지는가 싶더니 십여 명의 엘프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활에 팽팽하게 화살을 매겨 두 사람을 겨누고 있었으며, 가장 앞에 선 둘은 천제현에게 장검을 겨눴다.

‘영원의 숲 수비병!’

비비안이 급히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오해야! 내가 데려온 거야!”

“비비안 공주님?”

제일 앞에 있던 농익은 몸매의 엘프 여인이 깜짝 놀라 입을 열었다.

“어찌하여 영원의 오솔길에 인간을 들이신 겁니까? 그건 엘프족의 규율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행위라는 걸 모르시는 겁니까? 아무리 엘프왕의 따님이라 해도 영원의 숲에서는 엘프의회의 결정에 따라야 합니다!”

비비안은 다시 한 번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이쪽은 기적성주, 천제현이야. 부왕께서 친히 봉하신 성주지. 우리 영원의 숲을 위해 기적성을 관리하고 있으니 우리의 일원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 내가 그런 그를 데려왔는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하지만 그녀의 해명은 그녀 자신조차도 설득하지 못했다. 그러니 수비병들이 넘어갈 리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제현이라는 이름을 들은 엘프 수비병들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앗, 이분이 바로 그 유명한 천제현님이라고요? 무기를 내려라, 무기를 내려! 오해였다!”

비비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지?’

놀라기는 천제현도 마찬가지였다.

‘엘프들은 인간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종족 아니었나? 이 태세 전환은 뭐지? 설마 내가 잘생겨서?’

제일 앞에 있던 엘프 여인이 존경과 숭배의 눈빛으로 천제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영원의 숲에도 기적상회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많이 들어왔답니다. 특히 확성기와 자음기는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있지요. 통신 신호가 안 잡힌다는 게 한이지만요. 그래서 저희는 몰래 신호가 잡히는 곳에 가서 기적상회 채널을 듣곤 한답니다!”

“그렇습니다!”

또 다른 엘프도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언제쯤 엘프의 숲에도 통신 신호가 잡히게 해주실 건가요? 그렇게 되면 불편하게 신호를 찾아다니는 일도 더 이상 없을 텐데.”

“하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천제현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귀찮은 일이 생겨서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누님들, 저 좀 들여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그건…….”

엘프들은 그의 말에 머뭇거렸다.

“지금까지 영원의 숲에 인간족이 들어온 선례가 없어요. 먼저 엘프왕 폐하께 보고해야 할 것 같아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 엘프는 말을 마치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영원의 숲에 너무 오랜만에 돌아온 비비안은 기적상회의 상품들이 엘프들 사이에서까지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 상품들 덕분에 천제현과 기적상회에 대한 엘프들의 인상도 많이 좋아졌으니, 어쩌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보고하러 간다던 그 엘프는 돌아오지 않고, 암금색 갑옷을 몸에 두르고 긴 칼을 손에 쥔 엘프 호위병 백여 명이 나타나 순식간에 천제현과 비비안을 둘러쌌다.

비비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무슨 짓이지? 우리가 누군지 모르는 거야?”

그러나 엘프 호위병들은 가타부타 대답 없이 두 사람을 영원의 숲으로 끌고 갔다. 모양새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천제현은 최초로 영원의 숲에 발을 들여놓은 인간이 된 셈이다.

영원의 숲에는 왕성한 생명력이 가득했다. 태양우물이 내뿜는 따뜻하고 밝은 빛이 숲 전체를 뒤덮고 있었고, 그 안에 백만 명의 엘프들이 살고 있었다. 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 그들에게는 어떤 근심 걱정도 없어 보였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엘프의 노래가 숲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엘프왕의 궁전은 장엄하게 우뚝 솟아 있었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절벽 한가운데 매달린 듯 지어진 그 궁전은 눈처럼 하얗고 정교한 옥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궁전의 모든 부분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뛰어난 예술성과 문화적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천제현은 그 궁전의 아름다움을 채 제대로 감상하기도 전에 엘프의회로 끌려갔다.

의회에는 수십 명의 엘프족 연장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중 가장 젊은 자는 인간들의 나이로 마흔 살 정도 되어 보였는데 옥처럼 부드럽고 상냥한 느낌을 주었다. 그의 육신은 꼭 천지의 정수가 한데 모여 이뤄진 것 같았다.

“아바마마!”

호위병들에게 양팔이 잡힌 비비안은 황급히 소리쳤다.

“이놈들에게 소녀를 놓으라고 말씀해 주세요!”

그러나 엘프왕은 쓴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저었다.

“비비안, 여기는 대체 왜 온 것이냐? 영원의 숲이 어떤 곳인지 잊었단 말이냐?”

그때, 엘프의장 오거스트가 냉랭한 태도로 벌떡 일어나 외쳤다.

“비비안 공주님은 제멋대로 혼돈의 숲에 들어가 일족의 규율을 심각하게 어겼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외부인을 영원의 숲으로 데려오는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네놈이 바로 그 요상한 장난질에 도가 텄다는 인간족, 천제현이렸다? 네놈 때문에 젊은 엘프들이 갈수록 마음을 못 잡고 외부세계의 물건에 영혼을 빼앗기고 있다. 네놈은 엘프족의 만 년 전통을 어지럽힌 대 죄인이야! 네 죄를 묻기도 전에 제 발로 영원의 숲에 들어오다니. 속셈이 무엇이냐?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한다면 마음대로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엘프들이 고지식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 했는걸. 이제 보니 율리시스는 양반이었어.’

그러나 천제현은 그의 분노 따윈 아랑곳 않고 말했다.

“전 죄를 청하러 온 겁니다!”

그의 말에 비비안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엘프왕과 율리시스, 나아가 의장까지 의아한 표정이었다.

“아등바등 여기까지 온 이유가 죄를 청하기 위해서라고?”

천제현이 계속 말을 이었다.

“엘프왕께서 제게 중임을 맡기셨는데 제대로 성을 지키지 못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오거스트는 옆에 있는 엘프왕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 인간이 성이라고 했습니까? 무슨 성을 말하는 것입니까?”

엘프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무력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린캐슬을 말하는 거요.”

“폐하, 그린캐슬을 저 인간족에게 맡기셨단 말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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