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8
제558장 거대한 위기
전기성의 총지휘관은 공을 세우는 건 고사하고 돌격대원 전부를 전멸시켰다. 가시꽃마을에서는 기적성의 비열한 수법과 미지의 무기 탓에 당했다 치더라도 이번 일은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습격을 감행한 건 다름 아닌 전기성 아닌가.
이제 기적성은 강력한 공격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물샐 틈 없이 완벽한 방어력까지 지니고 있음이 입증된 것이다.
이번 일은 곧 혼돈의 숲 전체로 퍼져 나갈 것이다.
오크들은 이렇다 할 생산력이나 경제력이 없었고, 주로 보호비를 받거나 강탈, 약탈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연속 두 번의 패배가 그 무엇보다도 뼈아팠다. 두 명의 화령 고수를 잃었을 뿐 아니라 체면까지 땅에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다른 마을에 보호비를 상납하라 요구한단 말인가.
전기성의 성주, 칼은 이 소식을 들은 후 말도 없이 사라져 며칠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상황을 안정시키려는 노력은 둘째 치고, 추후 대응책조차 제시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로 인해 지난 사흘간, 전기성에서는 각종 소문이 난무했고 민심은 갈수록 흉흉해졌다. 며칠 만에 모습을 드러낸 칼은 전체회의를 열어 현재의 난국을 해결할 방안을 찾고자 했다.
“의논할 가치도 없는 일입니다!”
“당장 놈들과 자웅을 겨뤄야 합니다!”
“전 병력을 집결시켜 기적성을 쓸어버립시다!”
전기성의 장군들은 오랫동안 억눌려 왔던 분노를 일시에 표출하며 외쳤다.
이 모욕과 수치는 피로 씻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혼돈의 숲에서 전기성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분기탱천한 장수들을 보는 칼의 얼굴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그는 자신의 왼쪽에 지팡이를 짚고 앉아 있는 트롤 노인에게 가볍게 눈짓했다.
“저도 이번 일에 큰 분노를 느낍니다. 허나 지금은 비상시기이니만큼 냉정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는 트롤족 객경인 지누라는 자로, 현재 칼의 수석참모직을 맡고 있었다. 부성주와 총사령관이 연달아 죽음을 당한 후 지누의 지위는 수직 상승해 전기성의 2인자로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우리가 패배한 이유는 기적성을 너무 얕잡아 봤기 때문입니다. 기적성에 또 어떤 패가 있을지 우리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섣불리 행동할 때가 아닙니다.”
“이보시오, 지누. 설마 기적성 놈들한테 겁을 먹은 거요?”
“전기성의 용사들은 수십만에 달하오. 우리가 기적성을 겁내야 하겠소?”
전기성의 2인자라고는 하나 외부인인 그가 오크들 사이에 쉽게 융화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와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면 배척당할 게 뻔했다.
“싸우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
칼은 잔뜩 성이 난 장수들의 원성에는 아랑곳 않고 말했다.
“지누의 말을 계속 들어 보거라.”
“네, 성주님. 현재 기적성은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상태입니다. 민심과 병사들의 사기도 한껏 고무되었고요. 주변 부족들의 충성심도 매우 높으니 그들의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우리의 병력이 강하다고는 하나 예상치 못한 변수들의 발생을 차치한다 하더라도 기적성을 공격해서는 안 될 세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어째서 기적성을 공격하면 안 된다는 거냐!”
“네가 그러고도 전기성 사람이냐!”
그러나 지누는 그 무식한 놈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첫째, 지난 두 번의 전투가 기적성의 병력이 결코 약하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건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무작정 공격했다간 필시 큰 피해를 입을 것이고, 심할 경우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습니다. 둘째, 지금으로서는 기적성이 스스로 항복해오기를 바랄 수도 없습니다. 그 먹음직스러운 성을 노리는 세력들이 많기도 하고요. 그들은 숨을 죽인 채 우리가 기적성을 공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적당한 때가 되면 어부지리를 취하겠죠. 우리가 바라는 게 그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셋째, 기적성의 성주는 엘프왕이 직접 임명했으며, 기적성의 부성주는 엘프족 공주라 합니다. 우리가 기적성을 공격하면 혼돈의 숲 최강자의 심기를 건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봤을 때, 전 병력을 투입해 기적성과 전쟁을 벌이는 건 올바른 선택이 아닙니다. 전략을 바꿔야 합니다!”
그의 말을 들은 오크 장수들은 분을 참지 못해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지누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칼이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그래서 네 전략은?”
지누가 공손히 손을 앞으로 모으며 말했다.
“우리는 처음에 무력을 쓰지 않고 기적성에 압박을 가해 투항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더 이상은 효과가 없을 겁니다. 이제 전쟁을 벌이지 않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됐습니다. 어찌 됐든 싸우긴 싸워야겠죠. 단,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싸우겠다고?’
‘그럼 어떻게 싸우겠다는 거지?’
“소인의 생각엔 전기성 혼자 기적성을 손에 넣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른 이들과 함께 싸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누는 차근차근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기적성을 노리는 세력들은 혼돈의 숲에 아주 많습니다. 기적성과 싸우면서 둘 다 타격을 입어 다른 세력에게 어부지리를 취하게 두느니, 아예 처음부터 다른 세력과 힘을 합해 함께 기적성을 토벌하고 이익을 나누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피해는 줄이고 승산은 높일 수 있습니다. 뒷일도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죠.”
칼이 눈을 감으며 물었다.
“구체적인 방법은?”
성과 성, 세력과 세력의 연합은 혼돈의 숲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문제는 모두가 꿍꿍이속이 있다는 거였다. 다들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얻기 위해 혈안이 돼서 나설 텐데, 그런 상황에서 공평하게 이득을 나누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는 성, 보물, 자원, 마석 전부 필요 없으니 그들에게 나눠가지라 하십시오.”
지누가 천천히 설명했다.
“우리는 복수를 명분 삼아 포로를 잡아오는 겁니다. 특히 기적성주인 천제현과 생산자, 연구개발자들을 끌고 오는 거죠. 숲의 다른 도시들은 눈앞의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아직 기적성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재물과 땅은 모두 줘 버리십시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민감한 문제를 피해갈 수 있으므로 분쟁과 충돌도 적어질 겁니다. 실리를 취하면서 남들에게는 대인배 같은 면모를 보여줄 수도 있고요. 전기성이 기적성의 기술들을 전부 손에 쥐고 사용하게 되면 그들은 그때 가서 한발 늦은 걸 깨닫겠지만, 방법이 없겠죠.”
그의 말을 들은 오크들은 멍하니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성을 함락해 놓고 아무 것도 약탈하지 않는다고? 사람만 몇 명 잡아오겠다고? 그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좋다!”
번쩍 뜬 칼의 두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이번 일은 네게 맡기마. 되도록 빨리 결과를 보고 싶구나.”
“성주님의 기대를 저 버리지 않겠나이다!”
지누는 곧 전기성을 떠나 사자의 신분으로 인근 몇 개의 성을 방문했다.
***
얼마 안 가 혼돈의 숲에 모두가 귀를 의심할 만한 소문이 돌았다.
클라우드성에서 날개족 전사 십만 명이 출동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태양을 덮은 먹구름처럼 새까맣게 온 하늘을 가리며 전기성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이와 함께 제이드성에서도 십만 명의 초록거인이 산을 넘고 나무들을 부러뜨리며 불도저처럼 전기성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곤충령들의 지하성에서도 십만 거미족 대군이 전기성으로 출동했다고 한다.
한 시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소문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혼돈의 숲에 대규모 전쟁이 발발할 것임을!
클라우드성의 배후에는 용의 고개가, 제이드성의 배후에는 타이탄산맥이 있었으며, 지하종족들은 신비한 거미여왕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다시 말해, 저 멀리 서쪽 바다에 사는 해양종족과 영원의 숲의 엘프족을 제외한 모든 최강 세력들이 전부 연합한 것이다.
그들의 창끝이 겨누는 곳이 기적성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는 일이었다.
동맹을 맺은 사대 성 중 지하세계의 신비한 곤충령들 외에 나머지 세 성은 모두 혼돈의 숲에서 상당히 큰 영향력을 보유한 대형 도시였다. 그들 중 하나와 일대일로 싸워도 승산이 크지 않은데, 이 네 성이 연합함에야 어떻겠는가.
며칠 후, 전기성 외곽.
수십만 대군이 십 리나 되는 진용을 이루며 빽빽하게 정렬해 있었다.
날개족은 인간과 비슷한 외형을 지녔지만, 등에 새처럼 거대한 날개가 나 있었다. 그들은 놀라운 비행능력을 갖춘 지혜로운 종족으로, 전 종족이 하늘을 날 수 있었다. 이십 만 병사는 기적성의 공군을 충분히 압도할 것이다. 그리고 공중에서 기적성의 각종 설비와 방어시스템을 파괴하리라.
녹색거인족은 거인 종족 중 하나로, 근육이 놀랍도록 발달해 있으며, 1장이 넘는 키에 온몸이 짙은 녹색이었다. 그들의 거대한 체형은 식인마족이나 미노타우로스족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피부와 근육은 칼날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으며, 광전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엄청난 힘을 자랑했다. 그런 녹색거인 10만 명이 동시에 공격을 퍼붓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하지 않은가.
거미족 전사들의 전투력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들은 독과 함정 제작에 능했으며, 강력한 정찰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땅굴 파기에도 일가견이 있어 땅굴 속에서 적을 공격하거나 지진 공격을 시전할 수 있었다. 하나 같이 적에게 방어할 여지를 주지 않는 교활한 공격들이었다.
마지막 동맹군은 전기성의 오크 부대였다. 용맹스럽고 거친 오크들은 전장에서 정면 공격을 맡을 것이다.
즉, 연합군의 병력은 지상, 지하, 상공을 아우르는 것으로, 압도적인 전투력을 자랑했다. 기적성은 그들 앞에서 저항조차 못하고 무너질 게 뻔했다.
날개족 대장이 불쑥 말을 꺼냈다.
“우리는 기적성의 마석과 재료들을 원하오.”
녹색거인족 대장도 질세라 말했다.
“기적성의 영토는 우리 제이드성이 가져가리다!”
거미족 대장도 한 마디 했다.
“거미족들은 기적성의 광산과 지하연구소에 흥미가 있소.”
“알겠소. 모두들 먼 곳에서 어려운 걸음 해주신 만큼 섭섭지 않게 챙겨 드리리다!”
칼이 술잔을 높이 들어 올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함께 이 술을 마시고 일격에 기적성을 쓸어버립시다! 혼돈의 숲 지도에서 기적성을 영원히 지우는 겁니다!”
“좋소! 기적성을 섬멸합시다!”
“그 망할 인간들을 숲에서 쫓아냅시다!”
세 종족의 대장들은 전기성이 전리품에 탐을 내지 않는 걸 보며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기적성에 연속 두 번이나 당해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현재 전기성에 가장 중요한 건 하루라도 빨리 기적성을 쳐부숴 땅에 떨어진 체면을 챙기는 것일 테니까.
그렇게 4개 성의 연합군이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