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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557화 (557/729)

# 557

제557장 섬멸

위장 망토를 입은 건장한 오크 25명이 나무 사이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몸의 기운을 지우는 약물을 바른지라, 후각이 예민한 늑대나 개들조차 그들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들은 전부 진령급의 고수로, 전기성에서 한가락 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부족장도 있었고 명망 높은 장수도 있었다. 전기성 총지휘관이 그런 이들을 모아 최정예 돌격대를 구성한 것이다.

전면적인 보복 공격을 통해 기적성 외곽 지역에 혼란과 소요를 야기하고, 성 안으로 침투한 뒤 기회를 봐서 고위층 인사를 생포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포로를 앞장세워 기적성에 압박을 가하고 협상과 항복을 받아낸다는 계획이었다.

“총지휘관님, 목적지에 거의 도착한 것 같습니다.”

“좋다. 빠르게 전진한다!”

오크 지휘관은 다른 오크들보다 훨씬 거대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꿈틀거리는 근육은 바위처럼 단단해 보였고, 온몸이 강력한 기운으로 휩싸여 있는 듯했다. 그의 무기는 거칠고 거대한 낭아봉이었는데 무기에 박힌 가시 하나하나에서 전기가 일어, 보기만 해도 머리칼이 쭈뼛해지는 것 같았다.

고수들로 구성된 돌격대는 1초에 백 미터가 넘는 거리를 이동했다. 발이 땅에 닿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들에게는 그 아무리 험준한 지형도 평지와 다름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도 어떤 소리도, 기척도 나지 않았다.

이렇게 큰 산맥에서 이렇게 비밀스러운 길을 택해 소리 없이 전진하고 있으니 기적성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기적성은 가용 병력의 수도 얼마 없지 않은가. 전 병력이 총출동한다 해도 이 산맥 전체를 봉쇄하진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병력을 분산시킨다면 방어력이 크게 떨어질 테니 전기성의 고수들로서는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게 뻔했다.

이론상으로는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오크 총지휘관은 조금 전부터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주위를 살펴도 살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평범하게 생긴 회색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생명체들을 주시하고 있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없었다.

‘착각인가?’

착각일 것이다. 이 정도의 속도로 이렇게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게다가 그들은 소규모 돌격대 아닌가. 기적성이 제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그들을 발견하진 못할 것이다.

오크 총지휘관은 이렇게 생각하며 부대를 이끌고 협곡으로 돌격했다.

눈앞에 목표지점이 보였다.

협곡 끝에 기적 비행선 공장이 있었다. 그 공장을 파괴하고 공장 안에 있는 모든 비행선을 불태운다면 기적성의 공군은 힘을 잃게 되리라.

그것이 바로 총지휘관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여기까지 온 이유였다.

“적군 목표 확인.”

그가 협곡 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윽고 비행선 공장 외곽의 가죽 가공소를 발견한 그는 낭아봉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돌격한다! 3분 안에 저곳을 폐허로 만들어라!”

“네!”

오크들은 인간보다 지능이 떨어진다더니. 총지휘관이라는 자가 지형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 명령을 내린 것이다.

9명의 오크들이 화살처럼 빠르게 협곡으로 뛰어 들어간 순간, 사방에서 마력진의 파동이 느껴졌다.

“뭐지?”

오크들은 협곡 입구 주변의 암벽에 붙어 있는 수없이 많은 부적들을 발견했다.

부적들이 한꺼번에 활성화되면서 부적 도안이 암벽 틈으로 파고들자 거대한 마력진법이 가동되었다. 그와 함께 암벽 안쪽에서 금제의 힘이 쏟아져 나왔다. 더 이상 정령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깨달은 오크 술사들이 소리쳤다.

“큰일이다. 매복이야!”

총지휘관의 안색이 변했다.

“후퇴하라!”

앞장서서 돌격하던 오크들은 허둥지둥 걸음을 멈췄다. 정령이 봉쇄되었다고는 하나, 뛰어난 고수들인 만큼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오크들이 뒷걸음치며 속박을 깨려고 시도하는 순간.

그들의 발아래에서 거대한 힘의 파동이 일렁였다. 그들 중 몇 명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폭발하는 힘의 기류에 먹혀 버렸다. 엄청난 힘이었다. 그들을 타깃으로 설치된 함정임이 분명했다.

오크 고수 몇 명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다른 이들도 피와 살이 곤죽이 될 정도로 중상을 입었다. 폭발로 생성된 힘의 기류가 수백 미터 떨어진 곳까지 퍼져나가면서 나무며 꽃, 돌들까지 산산조각 났고, 뒤에 있던 자들 역시 손쓸 틈도 없이 타격을 받고 말았다.

오크 총사령관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소리쳤다.

“옆이다! 양 옆을 경계해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의 양쪽 산등성이에 수없이 많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수백 명의 적들이 폭풍소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기관총은 보는 이의 간이 서늘해지는 불꽃을 내뿜었으며,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마력폭탄 등 각종 화기들이 불을 뿜으며 비가 쏟아지듯 공격을 퍼부었다. 오크 돌격대는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채 파악하기도 전에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오크 총지휘관이 분노로 으르렁거리며 마력을 쏟아냈다. 그의 몸에서 솟구쳐 나온 두꺼운 호신 마력이 그를 향해 날아오는 모든 공격을 막으며 불화살처럼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오크 총지휘관은 화령 고수였다.

그와 근접전을 벌여서 살아남을 상대는 없을 것이다.

진작부터 그에 대해 조사를 끝내 놓은 남궁혜는 처음부터 그를 특별히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그가 공격을 시작하자 그녀는 지체 없이 개인용 마력포를 어깨에 메고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어깨에 멘 마력포는 신형이었다. 엄청난 반탄력에 남궁혜의 몸이 종잇조각처럼 뒤로 내팽개쳐졌지만, 그녀가 쏜 폭탄은 오크 총지휘관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거리는 너무 가까웠고 폭탄의 속도는 너무 빨랐다.

오크 총지휘관은 피할 생각조차 못하고 그 자리에서 그 힘을 그대로 받아냈다. 그의 몸이 허공에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고, 땅이 녹으면서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큰 부상도 당하지 않은 듯 피부에 가벼운 찰과상만 몇 개 생겨 있을 뿐이었다.

“이런 망할, 뭔 놈의 피부가 저렇게 질기대? 이 폭탄을 맞고도 살아 있다니!”

남궁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마력포를 바닥에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중형포, 중형포는 어디 있지? 뭘 멍하니 있어? 내가 지시를 안 내리면 놀고 있을 참이야? 빨리 저놈들을 해치우란 말이야!”

오크들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마력무기를 언제 봤겠는가? 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 깜짝할 새에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이 패닉에 빠져 있는 동안 마력중형포 4문이 준비되었다. 곧이어 무시무시한 힘의 폭풍이 협곡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마력중형포는 마력대포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원료는 똑같은 수정의 눈물이었지만 그 위력은 몇 배나 강했다. 그 폭탄을 정면으로 맞으면 일반적인 지령 술사는 몇 초 안에 목숨을 잃고 천령 술사도 중상을 면치 못한다. 그런데 그런 중형포가 네 대나 불을 뿜고 있으니 그 모습이 얼마나 공포스럽겠는가?

오크들은 폭풍소총과 기관총의 화력 앞에서 저항 한 번 못하고 픽픽 쓰러졌다.

거기에 중형포가 연속으로 3~4발 발사되자 협곡의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오크 돌격대는 총지휘관과 몇몇 마력이 강한 고수들을 제외한 모두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꺄하하, 버러지 같은 놈들!”

남궁혜가 절벽 아래로 훌쩍 몸을 날려 뛰어내리며 말했다.

“기적성의 병사들아, 공을 세울 때가 왔다. 어서 저놈들을 죽여라!”

그녀의 말과 함께 양쪽 산등성이에서 기적성의 고수들이 뛰쳐나왔고, 협곡 안팎으로도 수많은 정예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중상을 입은 오크 총지휘관이 그 광기 어린 포위공격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남궁혜는 틈을 놓치지 않고 일격으로 그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높이 들어 올렸다.

“적군 대장이 죽었다!”

“적군 대장이 살해되었다!”

그 모습을 본 기적성 사람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사실 전기성에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이번 전략은 처음부터 기적성에게 간파되었다. 그들이 파견한 정찰부대가 전부 기적성의 눈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그 아무리 정예부대라 하더라도 전멸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있겠는가.

기적상회는 전투를 끝내고 돌아온 병사들을 위해 논공행상을 진행했고, 이번 전투에 참여한 정규군 토착민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진급되거나 상을 받았다.

이런 혜택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병사들의 사기는 일시에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사령신전의 레이더는 정말 대단해. 테스트를 거치자마자 이렇게 눈부신 성과를 내다니. 이제 토착민들은 일말의 의심까지 지울 수 있었다.

“더는 공격당할 걱정 따위, 하지 않아도 된다!”

공화련은 즉시 모든 생산을 재개하겠다고 선포했고, 기적성은 종전의 번화함과 시끌벅적함을 회복했다. 전쟁의 위기감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공서련은 다시 한 번 천제현에게 깊이 감탄했다.

“정말 대단하다. 이제 더 이상 누군가에게 기습당하는 일은 없겠네! 진즉에 이런 걸 만들지 그랬어!”

천제현은 지친 어조로 대꾸했다.

“사령탑을 만드는 데 엄청나게 많은 어둠과 죽음 성질의 재료들이 들어갔잖아요. 그 재료들은 비축량이 많지 않았다고요. 이번에도 그것 때문에 고생해놓고 그래요?”

“알았어. 그래도 경계를 늦추면 안 돼. 두 번의 공격 실패로 인해 전기성은 약이 바짝 올랐을 거야!”

모두가 승리의 기쁨으로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도 공화련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기적성은 여전히 병력이 부족한 상태야. 강력한 마력무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전쟁을 벌일 때가 아니라고.”

천제현은 웃으며 말했다.

“큰아가씨, 너무 걱정이 많은 거 아니에요? 병력이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방어하는 쪽이잖아요. 전기성이 정말 쳐들어온다면 순순히 투항하진 않을 거라고요”

“이 정도로 당했으니 놈들도 경거망동하진 않겠지.”

“그럼 큰아가씨는 그놈들이 어떻게 행동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지원을 요청할 테지.”

공화련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내가 제일 걱정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거야. 기적성은 혼돈의 숲에 동맹이 없다는 거. 영원의 숲은 우리를 위해 지원군을 보내주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전기성은 우리와 상황이 다르지 않겠어? 게다가 그들의 배후에는 황야고원이 있잖아. 황야고원에서 고수들과 병력을 파견해 이 전투에 끼어들지 누가 알겠냐고.”

그녀의 걱정에도 일리는 있었다.

기적성은 연속으로 두 번이나 예상을 초월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다른 세력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엔 충분한 사건이었지만, 그렇다고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벗어난 건 아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기적성은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공화련은 자신의 옆에 있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기적성과 기적상회에는 천제현이라는 기둥이 있지 않은가. 천제현이 이번에도 상상조차 못한 해결법을 제시해 줄 것이다.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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