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555화 (555/729)

# 555

제555장 사령레이더

기적성을 빙 둘러싸고 있는 산악지대는 이제 기적산맥이라고 불렸다.

완벽한 원형에 가까운 기적산맥은 총 둘레가 6,000킬로미터에 달했고, 최고봉은 10,000미터에 육박하는 높이에 한쪽 기슭에서 반대쪽 기슭까지의 직선거리는 100 킬로미터를 훌쩍 넘었다. 기적성과 왕래가 있는 토착세력 대부분은 이 기적산맥 내에 터를 잡고 살았다.

기적성에 의탁할 생각이 있는 외부세력이라면 일단 마을부터 기적산맥 안으로 옮기고 보는 게 일반적이었다. 기적성이 토착세력과 합작해 세운 광산, 공장, 사육장 역시 절대다수가 이 지역에 분포했다. 기적산맥과 기적성은 향후 하나의 작은 왕국 형태로 묶일 운명공동체였다.

기적성이 산맥 바깥을 넘보지만 않는다면 다른 세력과 이해관계가 충돌할 일은 없으리란 게 당초 모두의 예상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기어코 찾아오고야 말았다.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적성은 도시 방어 시스템이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적들에게는 지금이 최적의 침략 타이밍인 셈이다. 지금 기적성 관리자들 앞에 놓인 최우선 과제는 방어력 강화였다.

천제현이 생각해낸 방법은 사령탑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 세계에서 지형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바로 지하 영맥의 분포였다. 기적산맥의 드높은 봉우리들 역시 땅밑 영맥의 밀집으로 생성된 것이었다.

우선 죽음의 유적에 양수기로 우물물을 빨아올리듯 죽음의 마력을 빨아올릴 중앙탑을 세운 천제현은 개량형 사령탑을 저수탱크 겸 정수기로 삼아 마력을 저장하고, 송수관 역할로는 기적성 전역에 거미줄처럼 깔린 영맥 지류를 활용하기로 했다.

기적산맥 주요 봉우리 곳곳에 건설된 사령탑은 영맥을 통로로 삼아 대량의 마력을 다른 탑에 전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죽음의 유적은 막강한 마력을 품은 장소였다. 뭐든 잘못 쓰면 독이 되지만 잘 쓰면 약이 되는 법, 한때 기적성을 파멸로 몰고 갈 뻔했던 힘이 이제는 기적성을 지켜줄 든든한 지원군으로 활약하게 된 것이다.

사령탑의 망령 조종 능력에는 거리 제한이 존재했다. 사령탑을 모조리 죽음의 유적에 몰아넣으면 망령의 활동범위도 유적지만으로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개량형 사령탑은 부식과 오염의 위험성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았다. 산맥을 따라 탑이 들어서면서 기적성은 고리형 외곽 방어선을 얻게 됐다. 게다가 산악지대 광산자원 채굴 작업 역시 망령의 손을 빌릴 수 있을 테니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 아니겠는가?

이 시각 기적산맥 산봉우리에서는 인영 몇몇이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다.

시야 가득 천지가 짙은 녹색의 물결이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폭포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 골짜기와 협곡 사이로는 짙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처럼 험준한 지형은 천혜의 요새 역할도 하지만, 상대의 실력이 막강한 경우 반대로 적들의 엄폐물로 활용될 수도 있었다.

“이 숲 전역이 우리가 토착세력과 손잡고 만든 공업단지야.”

공화련이 인적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딱히 위험한 흉수는 출몰하지 않지만 마수가 꽤 많이 서식하는 관계로 전격적인 개간은 불가능했어. 그래서 공장 대부분이 산기슭이나 산 중턱에 지어졌고, 덕분에 멀리서 봐서는 눈에 잘 띄지 않아.”

광활한 면적에 풍부한 자원, 거기에 강력한 흉수가 없다는 장점까지 갖춘 기적산맥은 천혜의 땅이었으나 단 하나, 전기성 고수들의 위협 앞에서는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공장이 피해를 봤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 봐야 놈들이 이미 협곡 깊숙이 숨어든 뒤라면 기적성으로서는 뾰족한 대응책이 없는 게 현실이었다.

그랬다.

무엇보다 인력이 너무 부족했다.

‘만약 그린수호자의 수가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

못내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린수호자는 진령급에 육박하는 전투력을 자랑했다. 동작이 다소 굼뜬 감은 있었지만 도시 방어용으로는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그린수호자의 수는 그린교 전성기 시절에도 기껏해야 2~3천에 불과했다. 그 정도면 성 내부와 주요 출입통로 몇 군데에 배치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성 내부를 지키기에도 턱없이 모자란 수였다.

빽빽한 삼림과 연결된 기적산맥을 철통같이 감시하려면 그린수호자가 얼마나 더 있어야 한단 말인가?

천제현이 한참 생각에 빠져 있던 그때 저만치에서부터 달려온 공서련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다 됐어, 들어가서 살펴봐!”

뒤편 거대한 동굴 한가운데에 웅장한 탑이 치솟아 있었다. 형태며 풍기는 기운이며 의심할 여지없이 사령탑이었다. 물론 천제현의 손길을 거치면서 외형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고 뿜어내는 기운 역시 더 이상 예전처럼 음산하지 않았다. 사령탑 주변에는 반투명한 유령생명체들이 어지럽게 떠다니고 있었다.

공화련은 희미하게나마 사령탑이 발산하는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망령을 조종하는 마력이었다. 사령탑이 들어선 지역에서는 망령이 장시간 활동할 수 있었다. 물론 현재 기적상회에 남아 있는 망령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 사령탑 주위를 떠도는 유령은 최근에 만들어진 개체들이었다.

사령탑을 보는 남궁혜의 시선은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저걸 왜 여기다 지은 거야?”

“사령탑에는 원래부터 방어 기능이 있어요. 위험이 닥치면 마력을 방출해 적을 공격하죠. 뿐만 아니라 전투 시 망령들에게 마력을 공급해주기도 하고요. 1~2년 안에 기적산맥 전역에 걸쳐 거대한 진법 형태로 사령탑을 수천 개 건설할 거예요. 그러면 성 전체에 방어결계를 친 것 못지않은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방어결계?”

공화련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러니까 결국 방어선 구축의 일환이라는 거잖아?”

혼돈의 숲에서는 지상도시든 지하도시든 성벽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적의 침입에 대응하기에도, 마수의 습격을 막기에도 그다지 효과적인 방책이 못 되는 탓이었다. 어느 정도 기반이 있는 도시라면 성벽 대신 넓은 면적을 안정적으로 커버하는 방어결계를 택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초대형 방어결계를 치는 건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방어결계란 대주국의 사원마다 걸려 있는 방어술법과 비슷한 개념으로, 설치에 들어가는 시간과 공이 엄청난 기술이었다.

전성기 그린캐슬은 그린수호자의 능력으로 반원형 방어결계를 쳐 도시를 보호했다. 그러나 그린교가 점차 쇠퇴함에 따라 이제는 성으로 통하는 몇몇 출입구에만 결계를 설치하는 게 고작이었다. 외곽 산맥을 범위에 넣는 건 고사하고 성 전체를 끌어안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이제 와서 결계를 만들기에는 너무 늦었어.”

공화련이 인상을 찌푸렸다.

“인력도 자원도 부족한 상황이야. 아무리 빨라도 1년 안에는 완성이 힘들 텐데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은 어쩔 거냐고!”

“큰아가씨, 저도 머리가 있다고요. 당연히 결계에만 기대겠다는 건 아니에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인 천제현이 사령탑 옆으로 다가갔다.

“개조 과정에서 더해진 기능이 지금 우리의 최대약점을 보완해 줄 거예요.”

“무슨 기능인데?”

“탐측이요!”

천제현이 말했다.

“사령탑 주변을 맴도는 유령 보이시죠? 의도적으로 풀어놓은 것들이에요.”

일행이 고개를 들어 사령탑을 올려다봤다.

빠른 속도로 탑 주위를 도는 유령 무리 탓에 사령탑은 흡사 보호막 한 겹을 뒤집어쓴 것처럼 보였다.

천제현의 설명이 이어졌다.

“유령생명체는 육체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감각기관도 없어요. 대신 정신파동을 이용해 물체를 감지하죠. 특히 생명체 탐측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해요.”

“지금 그 말은…….”

공화련이 사령탑을 바라보며 물었다.

“유령들을 이용해 주변 지역을 감시하겠단 뜻이야?”

“맞아요, 사령탑이 탐측능력을 엄청나게 끌어 올려 줄 거고요. 수백 리 이내에 침입자가 나타나면 바로 눈치채게 되어 있어요. 특히 마력이 강하거나 여럿이 몰려다니는 적이라면 백발백중 잡아내죠.”

천제현이 손가락으로 사령탑을 가리켰다.

“이 정신레이더 시스템을 알파브레인에 연결하면 시시각각 세밀한 변화까지 판별해서 보고해 줄 거예요.”

생명체의 체내 마력은 사령탑과 완전히 상반된 성질을 띠었다.

전기성에서 보낸 고수가 탐측범위 안에 들어오면 사령탑이 즉각 반응할 것이다. 골짜기에 숨든 동굴에 숨든 결과는 마찬가지. 일반적인 은닉 수단은 애초에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설사 무슨 대단한 재주가 있다고 해도 어차피 언젠가는 모습을 드러낼 순간이 오지 않겠는가.

여기에 알파브레인의 강력한 분석능력을 더하면 적의 위치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잡아낼 수 있었다.

천제현이 말을 이었다.

“새끼 여우가 가진 신의 눈동자도 유용할 거예요. 상대편 은닉술이 아무리 대단한 경지여도 대략적인 위치만 파악하면 신의 눈동자를 사용해서 눈앞에 있는 것처럼 환히 지켜볼 수 있어요. 그 어떤 은닉술도 신의 눈동자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니까요.”

“듣던 중 반가운 얘기야! 급한 불은 끈 것 같네.”

공화련이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하프엘프 연구기지에서 최근에 개발한 생체형 꼭두각시가 있는데, 동시에 투입하면 도움이 되겠어.”

“생체형 꼭두각시라면?”

천제현을 비롯한 일행 모두 금시초문이었다.

이때 공화련이 주머니 안에서 달걀만 한 새를 한 마리 꺼냈다. 언뜻 봐서는 밖에 날아다니는 새들과 다를 게 없었지만 자세히 뜯어보니 어딘지 부자연스러웠다.

오른쪽 눈동자 부위가 뻥 뚫린 상태였다.

“몸에 촬영장치가 내장되어 있고 뇌에는 샤먼교 독충을 심어놔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조종도 가능해. 움직이는 감시장치라고 할 수 있지. 새와 토끼를 합쳐서 수백 마리는 돼. 공장지대 근처 숲에 풀어놓으면 이상 징후가 감지됐을 때 곧장 근거리 정찰에 투입할 수 있을 거야.”

“와아, 대단해요!”

남궁혜가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실로 완벽한 경보 시스템이었다. 이로써 힘들게 적 꽁무니 따라다닐 일은 없어진 것이다.

“멍청한 놈들, 제 발로 자기 무덤에 걸어들어오겠네요!”

천제현이 짝짝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자, 대책은 다 세웠으니 이제 잽싸게 실행에 옮깁시다. 남궁혜 아가씨가 며칠 고생 좀 해야겠어요. 기적성 고수들을 붙여줄 테니 쥐새끼 박멸을 맡아주세요. 기적성이 얼마나 믿음직한지 알려줄 겸 이번에 제대로 능력을 보여주자고요!”

“문제없어! 금세 또 몸 풀 기회가 생기는구나!”

남궁혜 입장에서야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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