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1
제551장 위협
그가 아는 공화련은 아주 긴박한 상황이 발생했거나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가 아니고선 회의 중인 천제현을 방해할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그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잠깐만 실례할게요.”
천제현은 휴대전화를 받았다.
“큰아가씨, 무슨 일이에요?”
전화기로 들리는 공화련의 목소리는 매우 심각해 보였다.
“우리 숲의 산업단지가 정체불명의 세력에게 습격을 받았어.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잠깐 와줄 수 있겠어?”
“습격을 받았다고요?!”
천제현의 눈썹이 활처럼 위로 치솟아 올랐다.
‘젠장 맞을, 대체 누구 짓이야!’
그동안 기적성의 병사 모집, 공장 건설, 토착민 창업 지원, 민생 개선 등의 사업으로 인해 주변 부족들은 모두 수혜자가 되었으며, 기적성에 크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이런 짓을 했을 리 없다. 분명 외부세력의 짓일 것이다.
기적성의 세력이 아직 그렇게 강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혼돈의 숲의 어엿한 성이었다.
그것도 영원의 숲의 이름 아래 있는 성. 그런 기적성을 건드리는 세력이라면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닐 것이다.
천제현은 오래전부터 기적성의 발전과정에서 반드시 외부 세력의 도전에 직면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지나치게 일찍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적성 자체의 발전에만 몰두할 뿐, 다른 이의 이익에 저촉되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개척 대상도 견융초원과 대주국으로 한정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렸단 말인가?
‘어쩔 수 없지. 최근에 기적성이 벌인 일들이 눈에 띄기는 했으니까!’
천제현은 전화를 끊고 회의실로 돌아왔다.
“성에 돌발사건이 터진 것 같아요. 저는 이번에 대주국에 함께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정예병을 소집해 돕게 할 테니까요.”
그 말을 들은 린지아가 즉시 미간을 찌푸렸다.
“뭐라고? 네가 안 가면 유적은 어떻게 찾으라고?”
“걱정 마. 내가 방금 말했잖아? 그 일에 적임자가 있다니까.”
그 아무리 천제현이라 할지라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뜸을 들일 생각은 없었다. 그는 즉시 한 사람을 추천했다.
“바로 드루이드의 선지자, 요더야. 지금은 내 객경으로 계시지. 기적성의 참모장이자 화령 고수이기도 하고! 그러니 마음 놓고 어서 대주국으로 가!”
드루이드의 선지자는 세상만물과 소통하여 예언을 할 수 있다.
요더의 능력이라면 유적을 찾는 것쯤 일도 아니리라.
게다가 요더는 화령급 고수 아닌가. 그의 실력이라면 대주국에서도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와 함께 기적성의 고수들을 몇 명 더 파견하면 대주국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린지아와 심빙우는 먼저 현음종으로 돌아갔다.
현음종에서 한발 앞서 내보낸 소식으로 인해 현재 대주국은 발칵 뒤집어진 상태였다. 두 사람은 한시 바삐 대응책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도 요더는 천제현의 부탁에 흔쾌히 응해 줬고 두 명의 대제사장, 열 명의 제사장과 동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한 천제현은 급히 사건 발생 현장으로 달려갔다.
공화련이 직접 현장에서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습격에 상대가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번 습격이 강도들의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계획적인 행동이었다는 점이었다.
천제현이 물었다.
“사상자 상황은 어때요?”
“사상자 수는 대략 200명쯤 돼. 개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광산이 하나 파괴됐고.”
“의심스러운 상대는 있고요?”
“응.”
공화련이 답했다.
“아무래도 전기성이 제일 의심스러워. 이쪽으로 800리 정도만 가면 나오는 성인데 우리 성에서 그 성까지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들과 부족들이 전부 우리에게 귀순했거든. 세력과 힘이 있는 전기성 정도가 되지 않고서야 우리에게 반기를 들 리가 없지.”
“흥, 간도 큰 녀석들이네요. 한동안 귀찮게 구는 놈들이 없다 했더니!”
“경솔하게 굴지 마. 전기성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게다가 전기성은 황야고원에 있다고.”
“믿는 구석이 있는 성이었군요!”
기적성은 영원의 숲에 속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명목상일 뿐, 영원의 숲이 기적성을 위해 병사를 내준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기적성 또한 영원의 숲에 공물을 바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전기성은 달랐다. 전기성은 황야고원의 세력이 점령하고 있는 도시로, 혼돈의 숲 중부 지역에서 상당히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할 거야.”
공화련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이번 사건의 범인이 정말 전기성이라면 이쯤에서 끝낼 리 없어. 기적성은 이제 막 발전궤도에 올랐는데 이런 상황에서 전란이 발생한다면 그동안 우리가 힘겹게 일궈놓은 성과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겠지. 엄청난 손실이 발생할 테고.”
기적은행의 자본은 기본적으로 전부 상회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자본과 하프엘프들의 마석까지 전부 토착민들의 창업 지원에 쓰지 않았는가.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전쟁이 발생한다면 승패와 상관없이 그들의 투자는 전부 수포로 돌아간다.
그렇게 되면 기적성만 타격을 받는 게 아니라 기적상회조차 크게 짓밟히고 말 것이다.
공화련의 예상대로 산업단지 내 광산 습격은 시작에 불과했다. 기적상회가 경계를 강화했는데도 불구하고 신출귀몰한 상대의 공격에 이틀 연속으로 서로 다른 지역이 속수무책으로 습격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8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직접적인 손실은 크지 않은 편이었지만, 그로 인한 부정적 영향은 심각했다.
승승장구하고 있던 기적상회의 앞길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는 게 가장 컸다. 손쓸 새도 없이 당한 몇 번의 공격으로 인해 기적성 안팎의 민심은 흉흉해졌고, 그로 인해 기적성의 빠른 발전도 타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각.
천제현, 공화련, 공서련, 비비안, 남궁혜 등 기적상회의 고위층 인사들이 성주 집무동에 모였다.
“이건 성의 감시카메라가 이번 습격을 포착한 화면이야.”
공화련이 말했다.
“제로, 화면을 켜줘.”
“알겠습니다.”
제로의 대답에 이어 커다란 전영경이 아래로 펼쳐지고, 소리 없는 영상이 재생되었다. 습격 당시의 장면이었다.
습격의 주동자는 민첩해 보이는 십여 명의 전사들이었는데, 몇 분 안에 공격을 끝냈으며 그 짧은 시간 동안 성에 큰 피해를 가져다주었다. 어찌나 속도가 빠르고 민첩한지 전영경이 제대로 포착하지 못해 녹색 그림자만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비비안이 말했다.
“녹색 피부에 큰 머리, 그리고 공격 스타일을 보면 아무래도 오크들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맞아요. 오크예요.”
공화련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을 보니 정말 그들일 가능성이 큰 것 같군요. 전기성은 오크들이 통치하는 도시죠. 아무래도 이번 사건은 전기성의 짓인 것 같아요!”
“고작 열 몇 명이서 저 정도의 피해를 줬다고?”
남궁혜가 말했다.
“솜씨를 보아하니 실력이 뛰어난 고수들 같아요. 열 몇 명 모두 경험이 풍부한 진령급 고수겠죠. 이 정도의 돌격대를 구성했다는 것만 봐도 최소 성 정도의 세력인 게 분명해요.”
“난 이해가 안 돼. 기적성은 전기성에 어떤 피해도 준 적이 없잖아? 우린 그냥 우리 땅에서 발전하고 있을 뿐인데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짓을 하는 거지?”
공서련의 사랑스러운 얼굴에 분노가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이해가 안 된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공격을 하려면 당당하게 얼굴 내놓고 하든가, 비겁한 놈들! 우리, 그놈들한테 본때를 보여주러 가자.”
그러나 공화련은 고개를 저었다. 공서련이 천제현을 따라다니더니 이제 사고방식마저 천제현처럼 변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야. 전기성의 병력이 우리보다 강한 건 둘째 치고, 기적성은 아직 전쟁을 벌일 능력이 없단 말이야.”
“어째서죠?!”
남궁혜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우리 부대가 생긴 지 얼마 안 됐다고는 하지만, 우리한테는 마력무기가 있잖아요. 그게 수적 열세를 충분히 상쇄해 줄 텐데요? 게다가 주변 토착민들도 모두 기적성을 따르고 있는걸요. 우리가 전기성과 싸운다면 그들이 우리를 도와줄 거예요. 대장, 어떻게 생각해?”
남궁혜가 천제현을 바라봤다.
천제현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한 후 말했다.
“큰아가씨의 생각을 들어보죠.”
“이런 생각은 안 해봤나요? 기적성은 아직 방어시설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예요. 보호결계조차 없는 상황이죠. 기적성 주변은 산맥들이 에워싸고 있어서 보통의 강도나 도둑떼쯤은 충분히 막을 수 있지만, 전기성처럼 거대한 세력이 온다면 얘기가 달라져요. 그들 앞에서 지리적 이점은 아무런 의미가 없죠. 우리가 전투를 택한다면 기적성은 전란의 화염에 휩싸이고 말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제 막 모습을 갖춘 공장, 영전, 사육장들은 전부 파괴되겠죠. 여태까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기적은행은 파산할 거예요. 그럼 기적성의 경제는 무너질 거고, 도시는 폐허가 되겠죠.”
그녀의 말을 듣던 남궁혜는 점점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공화련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돌격대 하나도 이렇게 골치가 아픈데 전면전이라도 치렀다간 이런 돌격대가 끊임없이 찾아오지 않겠는가? 그럼 기적성의 발전과 생산은 전부 중단되고 말 것이다.
기적은행이 투자한 돈을 회수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그렇게 되면 기적상회는 파산의 위험에 내몰리게 된다.
“어쨌든 전쟁만은 피해야 해요. 전쟁이 일어나면 모두가 막대한 피해를 입을 테니까요. 게다가 전기성은 황야고원 한가운데 있는 세력이에요. 우리가 전기성을 공격하면 황야고원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무엇보다도 걱정스러운 건 이번 습격의 배후에 황야고원이 있을지도 모른 다는 거예요. 우리 뒤에 있는 영원의 숲도 황야고원보다 약한 건 아니지만, 엘프들은 우리를 위해 병력을 지원해 주진 않을 거니까요.”
비비안이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게 다 엘프의회의 그 꼰대들 때문이야! 정말 싫다!”
“정말 아무 방법도 없는 건가?”
공화련이 계속 말했다.
“이번 습격으로 우리 기적성은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지만, 종합적으로 봤을 때, 이 정도 피해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들의 목적 또한 전면전이 아니라 우리에게 압박을 가하는 거겠죠. 이미 기적성이 전기성과 전면전을 벌일 거라는 소문이 돌아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으니까요. 전기성으로서는 어느 정도 목적을 이룬 셈이죠.”
공서련이 물었다.
“그놈들의 다음 작전은 뭘까?”
“전기성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어. 기적성이 선전포고를 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겠지. 물론 전기성도 기적성에 대대적인 공격을 퍼부을 생각은 없을 거야. 그랬다면 이런 식으로 사전에 상대의 경각심을 끌어올리는 짓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여기까지 말한 공화련은 잠깐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얼마 안 가 협상을 하자고 하겠죠. 그리고 조건을 걸 거예요.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안 돼요. 그들이 어떤 조건을 내놓든 잘 달래가면서 시간을 벌어야 해요. 천제현, 네 생각은 어때?”
바로 이때, 호위병 한 명이 허둥지둥 뛰어들어왔다.
“성주님, 서신이 하나 왔습니다. 아무래도 전기성에서 온 서신 같습니다.”
“이리 주게.”
봉투에서 서신을 꺼내 훑어본 천제현은 그 자리에서 서신을 반으로 찢으며 말했다.
“역시 큰아가씨의 말대로네요. 전기성주, 칼이 우리를 초대했어요. 사흘 후 여기에서 400리쯤 떨어진 가시꽃마을에서 만나자네요.”
“매복이 있을 거야!”
공서련은 벌떡 일어나서 천제현을 보며 말했다.
“그 못생긴 초록 괴물들! 비열하고 음험한 놈들! 천제현, 놈들의 함정에 빠지면 안 돼!”
“걱정 마세요. 별일 없을 테니까요. 이 초대는 받아들여야만 해요. 이참에 대체 무슨 속셈인지도 알아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