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0
제550장 성의 위기
그때 공서련이 뭔가 기억났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제가 좋은 걸 가져왔어요!”
공서련이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저장주머니에서 손바닥 크기의 물건을 두 개 꺼냈다.
“채향 언니랑 운요 언니가 올드만 마을에서 좋은 걸 만들었다더라고요. 아직 보급이 안 돼서 관계자들만 갖고 있대요.”
풍채향과 운요, 운소 역시 기적상회의 고위층 인사였으나 줄곧 올드만 마을을 지키고 있었기에 당장은 기적성에 올 수 없었다.
올드만 마을은 활기 넘치는 곳이 되어 있었다. 그곳의 시장은 기적상회의 시장 중 제일 컸으며, 최근에 연구소도 하나 설립되었다. 공서련이 가져온 물건도 그곳에서 만들어진 발명품이었다.
“이게 뭐야?”
비비안은 그 물건을 들어 찬찬히 훑어봤다.
그녀의 손바닥보다 약간 크고 금속 테두리가 있으며, 무게감이 느껴지는 물건이었다. 정면 3분의 2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거울이 달려 있었다.
비비안은 곧 그것이 일반 거울이 아니라 개조한 전영경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울을 제외한 나머지 3분의 1에는 각종 기능 버튼이 달려 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물건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꽤 독창적인 발명품이에요!”
공서련은 그 작은 물건이 매우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우리 기적상회의 수석 기관 엔지니어인 동소어가 경험이 풍부한 연구원들과 함께 개발한 거예요. 자음기와 상영기, 사진기, 통신기 등을 전부 결합한 후에 축소시킨 거죠. 신기하지 않아요?”
“그게 진짜야?”
비비안의 작은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럼 이 작은 물건으로 방송도 들을 수 있고 사진이나 영상도 볼 수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있고, 심지어 통신까지 가능하다는 거야?”
“그렇다니까요. 기적상회에는 정말 인재가 넘쳐나는 것 같지 않아요? 이리 좀 가까이 와보세요. 제가 한번 보여줄게요.”
네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붙어 앉았다.
공서련이 가장 위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켜지며 기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 아래에는 다양한 기능 버튼이 있었는데 각각의 버튼을 누를 때마다 서로 다른 기능들이 활성화되었다. 버튼 위에는 간단한 그림이 새겨져 있어 직관적으로 무슨 기능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건 자음기 기능이에요.”
공서련이 자음기 그림이 새겨진 버튼을 누르자 작은 단말기에서 기적방송국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방송 수신 상태가 완벽하진 않았지만, 무슨 말인지 정도는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두 개의 버튼을 사용해 채널을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이건 상영기 기능이고요.”
공서련이 이번에는 상영기 그림이 있는 버튼을 누르자 기계의 전영경 화면에 변화가 생기며 영상 채널을 수신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기적쇼핑몰의 쇼핑채널도 있었다. 이 작은 물건만 손 안에 있으면 집 안에 누워서도 얼마든지 물건 구매가 가능할 것이다.
“이건 사진기 버튼.”
공서련이 사진기 버튼을 누르자 기계 뒤쪽에 달린 작은 렌즈가 가동됐고, 그 렌즈가 비추는 화면은 즉시 전면에 있는 전영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가 다시 한 번 사진기 버튼을 누르자 순간적으로 전방의 장면이 포착되었다.
“이건 통신 기능이에요. 통신 기능을 활성화한 다음에, 여기 첫 번째 줄에 있는 10개의 작은 버튼 보이죠? 0부터 9까지의 숫자 말이에요. 이걸로 통신 번호를 누르면 통신기처럼 사용할 수 있어요.”
린지아는 자신도 모르게 경탄했다.
“굉장하군!”
세상에 이런 신기한 물건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정말 좋다. 최고야!”
비비안도 매우 만족한 듯한 모습이었다.
“정말 편리하겠다. 이름은 지었어?”
“네. 이건 손에 쥐고 다닐 만큼 작고 또 아주 편리하잖아요. 자음기와 상영기, 사진기, 통신기의 기능을 한데 모으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당연히 새로운 이름을 붙여줘야 하지 않겠어요?”
애를 태우듯 잠깐 말을 멈춘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다시 말했다.
“이 기계의 수석 설계자인 동소어, 그리고 프로젝트 책임자인 풍채향, 운요 언니는 상의 끝에 이걸 ‘휴대전화’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대요!”
“휴대전화, 휴대전화, 딱이다!”
그녀들은 기적상회의 1세대 휴대전화를 들고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게 놀았다. 린지아도 그 물건이 마음에 들었다. 편리한 발명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이렇게 신기한 물건을.
네 사람은 휴대전화의 기능을 연구하면서 진탕 먹고 마셨다. 날씬하고 작은 소녀들이었지만, 식사량은 무시할 게 못됐다. 그녀들은 한 상 가득 차려진 산해진미들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먹은 건 남궁혜가 아니라 체구가 가장 작은 린지아였다.
이런 진수성찬을 처음 접해 보는 그녀였다. 그녀는 마력 요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 종주 자리도 내려놓고 매일 같이 여기 와서 마음껏 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배불리 먹은 네 사람은 신나서 시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는 길에 억지로 심빙우까지 끌고 갔다.
최근에 막 개방된 기적성 시련장, 마룡시련은 난이도가 꽤 높은 편이었다. 그런데도 영화관에서 관련 영화를 상영하는 바람에 수많은 도전자가 몰려들었고, 한밤중이 됐는데도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마룡의 실력은 고정된 것이 아니었다. 도전자들의 실력에 따라 강해지기도, 약해지기도 했기 때문에 누구나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었다.
다섯 사람은 시련장에서 죽을힘을 다해 싸우며 거의 모든 전술을 다 사용했지만, 그때마다 마룡의 손에 죽고 말았다. 그러나 그 점이 승부욕을 자극했기 때문에 더더욱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해가 떴고, 100번이나 도전했지만 전부 패배한 그녀들은 기진맥진해서 시련장을 나섰다.
더 이상 망설일 게 뭐가 있겠는가?
천제현을 찾아간 린지아는 한 치 망설임도 없이 기적상회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현음종의 모든 힘을 다해 기적상회가 대주국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현음종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향락을 위해서라도 기적성에 오래 머무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기적성은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으니까.
***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소식이 대주국에 전달되었다.
현음종이 18년 전 실종된 대주국의 공주를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현음종주, 린지아는 대주국 왕족의 사유지를 찾아 공주로 하여금 대주왕의 유적을 계승케 하겠다고 선포했다.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대주국을 일으키고, 뿔뿔이 흩어진 대주국의 속세를 다시 하나로 통일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현대화된 통신 기술이 없는 대주국에서 이 소식은 아주 느리게 퍼졌지만, 이 소식을 듣고 놀라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로 인해 이 소식은 며칠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대주국 전체로 퍼져 나갔고, 다른 5대 영산과 각 대 종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린지아가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미친 것은 아니겠지?’
지난날 대주국의 왕족들은 6대 영산의 연합 공격으로 멸족되었다. 대주국 왕족이 다시 한 번 세력을 잡는다면 그들을 가만히 두겠는가? 게다가 대주국의 부와 자원은 이미 크고 작은 종파들에 의해 분할된 지 오래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대주국의 왕족을 부활시키겠다니, 다른 이의 몫을 빼앗겠다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18년 전, 대주국의 왕족을 소탕할 때 6대 문파의 종주와 장문들은 모두 그 계획에 참여했고, 그들 중 다섯이 아직 살아 있었다. 현음종만 기존의 종주가 15년 전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신임 종주인 린지아가 종주 자리에 오른 것이다.
즉, 세대교체가 된 현음종은 대주국의 왕족과 화해할 여지가 남아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나머지 다섯 종파는 어쩌란 말인가?
대주국의 왕족은 지난날 대주국의 7대 세력으로 불리며, 민간의 자유 술사와 일부 소규모 종파들 사이에서 꽤 큰 명망과 영향력을 자랑했다. 오늘날까지도 실력이 뛰어난 은둔 술사들이 그들을 그리워할 정도니까.
이런 상황에서 현음종이 왕족의 부흥을 외친다면 수많은 추종자와 지지자들이 몰려들 것이다.
대주국의 왕족들이 거뒀던 문객과 객경들이 18년 만에 다시 모이면 꽤 껄끄러운 세력이 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현음종이 뒤까지 봐준다면 그 신규 세력은 다른 5대 영산의 지위를 흔들 게 분명하다.
피비린내를 품은 먹구름이 대주국의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천제현은 기적성에서 린지아, 심빙우와 간단한 회의를 열고 어떻게 대주국을 손에 넣을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린지아가 먼저 말했다.
“6대 영산은 모두 만 년의 전통을 갖고 있어. 각 대 종파들도 몇 천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오면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자들이니만큼 굴복시킬 순 있어도 없앨 순 없을 거야. 각각 수십만 정예병을 보유하고 있는 종파들을 소탕하는 게 가능한가 하는 점은 둘째 치고, 정말 그들을 쓸어 버린다 할지라도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거야. 게다가 6대 영산이 타격을 입으면 대주국도 무사하진 못할 거야. 장응전국의 남하를 막아낼 수 없을 테니까.”
“일리가 있네.”
천제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복이 아닌 굴복시키는 걸 목표로 하자. 하지만 기어코 말을 안 듣는 놈들은 솎아내는 수밖에 없어.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어.”
대주국 6대 영산의 세력은 어마어마했다.
천제현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그들이 연합해서 함께 저항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커진다. 6대 영산들의 세력은 비슷비슷했는데, 각각 20여만 명의 제자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전승 무공과 비술에 능한 혼성 술사 20만 명으로 이뤄진 강력한 군대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여섯 종파가 힘을 합치면 병력은 120만으로 늘어난다.
그들이 연합하면 대주국의 모든 종파를 호령할 수 있으리라. 거기에 배수진을 치면 술사들의 수는 200만으로 늘어난다. 여태까지 장응전국이 대주국에 직접 손을 쓰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천제현의 목적은 정복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으므로 전면전을 벌일 필요는 없었다.
현재 현음종은 완전히 기적상회에 넘어온 상태였다. 그러므로 기적상회가 직접 나설 필요 없이 현음종을 움직여 대주국의 왕족을 옹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 모든 일은 대주국의 내정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 내정이라면 각 세력들 모두 자신의 이익을 생각해야 할 테니 동일한 적을 상대로 힘을 합칠 위험도 적어질 것이다.
대주국 왕족을 다시 세우겠다는 주장은 5대 영산을 분노케 하기에 충분했으나, 위기감을 느끼게 하지는 못했다.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서로 손을 잡을 가능성은 적었다. 이렇게 경계심이 풀어진 상태에서 천제현이 은밀하게 손을 써 하나씩 무너뜨린다면 대주국도 곧 그의 손에 들어오지 않겠는가.
천제현이 물었다.
“종주 꼬맹이는 어떻게 생각해?”
린지아가 대답했다.
“대주국에 이런 전설이 있어. 왕족이 멸족한 후, 대주왕이 유적을 하나 남겼다고.”
천제현은 심빙우를 바라봤다.
“그게 사실이에요?”
“그건 왕족들만 아는 기밀이야. 부왕의 혈통은 열 명이 넘었고, 나는 그중에 열한 번째였지. 태자도 아니고 첫째 공주도 아닌데다가 첩의 소생이어서 지위가 별로 높지 않았어. 게다가 나이도 어렸으니까 그런 얘기를 듣기는 했어도 보진 못했지.”
심빙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그 유적은 우리 선조가 남긴 거라고 해. 우리 일족이 빠르게 떠오를 수 있던 이유기도 하고.”
“맞아. 그 유적은 6대 영산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 왕족 혈통을 가진 자만 문을 열 수 있다고 들었지.”
여기까지 말한 린지아는 탄식을 했다.
“안타까운 점은 그 유적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야. 지난 세월 동안 6대 영산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았는데도 수확이 없었지. 그 유적의 문을 열기만 하면 왕족을 부흥시키는 건 물론이고 지난날 대주국 왕족을 따르던 추종자들도 벌떼처럼 몰려들어 새로운 왕을 추대할 거야.”
“그렇군.”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왕의 유적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심빙우조차 일족의 유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대주국처럼 광활한 영토를 지닌 나라에서 정보 없이 유적을 찾는다는 건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천제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있긴 한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천제현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몸에 지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물건이라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휴대전화 화면에 뜬 번호를 보니 공화련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이상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