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8
제548장 기적성의 변화
천제현은 깜짝 놀랐다.
“큰아가씨, 지금 그거, 고백이에요?”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생각해!”
공화련은 그를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그녀의 얼굴에 아련함이 감돌았다.
“너랑 서련이는 모두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이야. 그 둘이 행복하다니 나도 기뻐.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실감도 들어. 한꺼번에 두 사람을 전부 잃은 것 같은 기분이랄까.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
“매우 철학적이고 도전적인 질문이네요.”
천제현은 떠보듯 말했다.
“어쩔 수 없죠 뭐. 제가 좀 고생스럽더라도 공씨 자매 둘을 모두 아내로 맞는 수밖에요.”
“꿈 깨시지! 김칫국은!”
공화련은 이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천제현에게 눈을 한 번 부라리고는 말했다.
“서련이한테 잘해 줘. 우리 얘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기로 하고. 어쨌든 너, 나한테 빚진 거 많잖아?”
그동안 마음속에만 담아뒀던 얘기를 쏟아낸 공화련은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 들어 다시 일을 처리하러 갔다.
‘하여튼, 큰아가씨는 정말 모순적인 사람이라니까!’
***
비비안은 신이 나서 린지아와 함께 놀러 나갔다. 도시 건설 중이라 아직 기초시설들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래도 기적성은 다른 도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놀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했던 비비안은 즉시 계획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일단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한 편 본 다음에 쇼핑몰을 구경하고, 그 다음에는 기적대주점에 가서 배가 터질 만큼 먹는 거야. 그러고는 시련장에 가서 신나게 노는 거지. 어때?”
린지아가 무슨 의견을 낼 수 있겠는가? 그녀가 하자는 대로 따르는 수밖에.
“가자! 영화관에 가서 표부터 사자고!”
두 사람은 스페셜 엘프관에서 VIP석에 앉아 영화를 보기로 했다.
숲의 종족들은 체형과 식습관이 모두 다르다. 따라서 영화관 같은 여가시설에 모두 함께 앉혀 놓는다면 많은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한 영화관 운영측은 식인마관, 오크관, 엘프관, 고블린관 등 총 4개의 서로 다른 영화관을 만들어 다양한 좌석을 배치해 놓았다. 이건 기적성이 여러 종족이 어우러진 다원화된 도시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VIP석에 앉은 두 사람은 전방에 일직선으로 놓인 커다란 화면을 볼 수 있었다. VIP석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좋은 자리였다. 물론 가격은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일반 좌석은 하프엘프나 여우족들에 의해 전부 매진된 상태였다. 엘프관에는 체격이 거대한 식인마나 미노타우로스와 같은 종족은 없었다. 게다가 스페셜관인만큼 가격이 비싸고 입장 기준도 까다로워 리저드족처럼 냄새 나는 종족은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쾌적한 관람 환경을 자랑했다.
“부성주님, 안녕하세요.”
두 명의 하프엘프 직원이 비비안을 알아보고 공손히 인사를 했다.
“무엇을 준비해 드릴까요?”
“좀 볼게.”
비비안은 거드름을 피우며 메뉴를 훑었다.
“고급 엘프녹차로 준비해 줘. 영원의 숲에서 난 녹차여야 해. 미로의 숲에서 난 몽환초 가루도 좀 뿌려주고. 간식거리는 하프엘프의 백 년 묵은 특제 황금송로버섯이랑 비룡절벽에서 채취한 퍼플멜론, 지하에서 가져온 캐비어 잼을 바른 비스킷…….”
비비안이 가장 비싼 메뉴들을 전부 하나씩 시키자 직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녀가 시킨 음식은 영화관에서 가장 비싼 것들로, 영원의 숲에서 난 엘프녹차 한 잔만 해도 기함할 정도의 가격이었던 것이다. 나머지 간식거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앞에 서 있는 게 성주복을 걸친 비비안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은 즉시 경호원을 불러 그녀를 내쫓았으리라.
주문을 마친 비비안은 옆에 있는 린지아를 보며 말했다.
“넌 뭐 마시고 싶어? 기적성엔 뭐든 다 있어. 술이며 차며, 없는 게 없거든. 천 년 묵은 미주만도 수십 종이나 돼. 심지어 다른 지역에서 공간창고로 가져온 음료도 있어. 간식 종류도 엄청 많으니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양하지 말고 뭐든 시켜.”
린지아는 이 상황이 낯설면서도 신선했다.
‘이 성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도 각 종족의 특산품들을 즐길 수 있다고?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같은 걸로 하지!”
“지금 주문하신 제품들은 재고가 없어서 창고에서 가져와야 합니다. 선결제부터 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두 직원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부성주님, 현금으로 하실 건지 아니면…….”
비비안이 직원에게 메뉴판을 돌려주며 말했다.
“나 돈 안 가져왔는데? 오늘은 공적인 일로 온 거니까 성주부로 달아놔. 기적성의 귀빈이 기다리지 않게 빨리 음식이나 가져오고.”
비비안은 명실상부한 부성주로서 행정상의 직급이 매우 높았지만, 상회 내부에서의 직급은 공화련보다 몇 급 아래였다. 지니고 있는 권한도 공화련에게는 비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영화관은 기적상회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아무리 부성주라 해도 돈 안 내고 먹고 마셔서는 안 되며 확인이 필요했다.
‘어떻게 확인하면 좋을까?’
난감해하던 두 직원은 영화관 총책임자를 찾아갔고, 총책임자는 통신기로 도시 관리원과 연락해 권한 부여 상황을 확인했다. 그리고 제로를 통해 관련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오늘 하루 동안 그녀가 지불하는 모든 비용은 도시 재무부에서 지출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실을 확인한 직원들은 안심하고 주문을 받을 수 있었다.
엘프녹차 두 잔과 함께 화려한 간식들이 나왔다. VIP석에서 먹음직스런 냄새가 풍기자 다른 관람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 번씩 그들을 쳐다봤다.
기분이 한껏 좋아진 비비안은 제멋대로 한 턱 쏘기로 했다.
“오늘 기적성에 귀한 손님이 오셔서 기분이 아주 좋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엘프녹차 한 잔씩을 돌리도록 하겠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부성주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린지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성주와 부성주가 전부 이 모양인데 기적성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라고. 그 아름답고 우아한 또 다른 부성주가 참 고생이 많겠다고…….
엘프녹차는 워낙 귀한 물건이다. 하물며 영원의 숲에서 온 것임에야.
차를 살짝 맛본 린지아는 입안에서 강력한 생명력이 맴도는 것을 느꼈다. 그 힘은 흘러가는 강물처럼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녹차 안에 미로의 숲에서 난 몽환초 가루가 들어 있어 기분까지 좋아지고 있었다. 환각제와 비슷한 그 정신약재는 그 아무리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일지라도 구름 위에 올라간 듯, 세상을 다 가진 황제라도 된 듯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그것 외에도 비비안이 주문한 간식들은 모두 숲에서 최고급으로 취급되는 것들이었다. 하프엘프의 특제 황금송로버섯, 비룡절벽에서 난 퍼플멜론, 그리고 기적성 지하의 위험천만한 악마의 입에서 가져온 어둠의 세계 캐비어 잼 비스킷 등, 그 무엇도 최고의 재료로 만들지 않은 게 없었다.
대주국의 현음종주인 린지아조차 이 정도의 사치는 누려본 적이 없었다.
그때, 영화가 상영되었다. 그동안 기적상회의 영화 제작 산업은 점점 더 발전해 음유시인뿐만 아니라 꽃의 엘프, 엘프, 하프엘프들까지 제작 과정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 참신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빠져들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두 사람이 관람하는 영화의 제목은 <데빌 드래곤>으로, 지옥 마룡과 혼돈의 숲 각 종족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였다.
원래 숲의 각 종족들은 서로 반목하고 투쟁했지만, 어느 날 숲에 등장한 마룡이 사방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요행히 살아남은 종족들이 한 영웅의 지휘 아래 갈등과 분쟁을 극복하고 일치단결하여 무시무시한 마룡을 없앤다는 내용의 대서사시였다.
영화의 결말은 영웅의 후손들이 함께 살며 숲의 성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끝났다.
세 시간에 달하는 긴 영화였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의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와 명예, 책임, 사랑, 우정, 희생 등 다양한 가치관, 숲 종족들의 단결과 통일이 필요하다는 교훈까지 담겨 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기적성이 걸어가야 할 길을 슬쩍 보여주면서 최근에 개방된 연옥마룡 시련장을 홍보하기까지 했다.
“정말 대단하군!”
린지아는 심금을 울리는 그 서사시에 푹 빠져 있었다.
“직접 그곳에 가서 모든 걸 경험하고 온 기분이야.”
비비안은 남은 녹차를 모두 마시고 반 조각 남은 비스킷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이런 영화관은 숲에 몇 개나 있어. 물론 대하국에는 더 많지만. 들리는 바에 따르면 이미 본성 하위 도시에까지 진출했다던데? 이제 영화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가활동이 됐지. 우리는 지방 상인들의 요구를 받고 광고를 넣기도 해. 그래서 영화를 한 편 만들 때마다 백배가 넘는 수익을 보고 있지. 대주국의 인구는 대하국보다도 많으니까 영화관 사업만 해도 엄청날걸?”
대주국의 인구는 대하국의 두 배인 3~4억에 달한다.
물론 영화관 사업은 기적상회의 여러 업무 중에서 그다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업은 아니며, 공간전송, 창고물류, 정신, 통신 등의 분야와는 더더욱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매우 큰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사업이므로 지방의 대형 상회 정도는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자, 이제 기적쇼핑몰로 가볼까? 네 마음에 드는 게 있을 거야.”
비비안은 린지아를 데리고 기적쇼핑몰로 갔다. 작은 성을 개조해 만든 장소였는데, 쇼핑몰에 들어간 린지아는 그곳의 면적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생각을 했다. 수많은 판매대에 물건들이 가득했으며, 특별 상품들은 전영경이나 환영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주문 구매로 판매하는 물건들이었다.
기적쇼핑몰의 장점은 일반 상점들이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공간창고만 해도 그랬다. 세계 각지의 물건들을 전부 한곳에서 판매할 수 있으니, 세계에서 가장 크고 편리하며 다양한 물건을 보유한 쇼핑몰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돈만 있으면 이 기적쇼핑몰에서 사지 못할 물건이 없으리라.
“아직 쇼핑몰 시스템이 다 구축된 건 아니지만 벌써 대하국과 올드만 마을, 주변 수십 개 부족과 마을들에 진입한 상태야. 이래봬도 4천 개 이상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그중에 500개 정도는 숲에서 생산된 물건이고.”
이때, 식인마 아이 두 명이 비비안 주변으로 다가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부성주님, 안녕하세요!”
“쇼핑하러 왔니?”
비비안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두 아이를 바라봤다. 어린아이라고는 하지만 비비안보다 두 배는 커 보였다.
식인마 아이들은 무척 수줍어 보였고 말도 좀 더듬었다.
“아, 아뇨. 저희는 장사하러 왔어요.”
“장사?”
린지아는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되물었다.
식인마처럼 육체만 발달하고 지식이라곤 없는 종족이 무슨 장사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