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544화 (544/729)

# 544

제544장 혈맥의 또 다른 효과

기회를 허비하고 싶지 않았던 천제현은 바로 현음종의 장로 전용 폐관 동굴을 찾았다. 태음산은 대주국 6대 영산 중 하나로, 명산의 영기가 가득하여 수련하기에 아주 적합했다. 하지만 천제현은 영맥이나 영기를 활용해 마력을 강화시키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성안 하나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성광불멸체가 가동되었다.

천제현은 순수한 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무공이 끊임없이 몸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자 천제현의 몸 위로 별빛이 하나의 막처럼 떠올랐다. 약하다가 강해지고, 밝았다가 어두워지는 가운데 별빛은 점점 강해졌다.

몸 안팎전체가 빛으로 덮였다. 손 안에 쥐고 있던 성안이 점점 더 작아졌다.

이 정도 크기의 성안은 전송탑을 10년 간 운행할 수 있을 정도의 별의 힘에 맞먹는다. 그 정도의 힘이 지금 천제현의 몸속으로 모조리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몸 속 깊이 파고들어온 힘은 모든 세포에 충격을 주면서 가장 미세한 곳의 세포까지 개조하고 있었다.

눈부시게 하얗던 빛의 상태가 갑자기 변화했다. 공기 중에서 녹은 것처럼 사라졌다가 파동을 일으키며 나타났다.

쾅!

태음산 꼭대기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린지아도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마침 그녀는 큰 통 앞으로 날아가서 신혈을 받아 개조중인 사령시 열 개를 즐겁게 감상하던 중이었다.

‘누가 사원을 공격하기라도 한 건가?’

린지아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와 15장 상공까지 날아올랐다.

저 멀리 수많은 별빛이 터져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순식간에 하늘 끝까지 터져나가 찬란한 빛의 바다를 이루는 장면은 그야말로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이 기이한 광경은 수많은 구경꾼들을 불러 모았다. 현음종의 모든 이가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모르고 호기심과 놀라움에 휩싸였다.

빨간 옷의 인형 같은 린지아는 그 힘의 속성을 눈치챘다.

‘천제현 일행이 수련하던 그 방어무공이 아닌가?’

린지아가 아는 어느 신기 경지의 무공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방어력이었다.

‘설마 그 무공이 더 강력해질 수도 있단 말인가? 대체 얼마나 대단하기에?’

린지아는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무공을 익히면 음령경을 통해 사령시들도 이런 방어력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사령시의 실력은 또 한 단계 발전한다.

***

태음산.

어느 고요한 산비탈.

심빙우가 홀로 멍하니 앉아 있다.

최근 1년 동안 심빙우는 몸속에서 가문의 혈맥이 되살아남을 느끼고 있었다.

며칠 전 전투에서 결국 가문의 혈맥이 깨어났다. 최근에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 할 수 있었다.

혈맥 각성 후, 심빙우의 마력은 놀랍게 발전했다. 무엇보다도 혈맥 속 봉인되었던 비술과 힘도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엄청난 전투력을 갖게 될 것이다.

칠흑처럼 검었던 긴 머리카락이 연한 푸른색으로 변했다. 창백할 정도로 푸른 색깔의 절반은 은빛 실처럼 보였다. 마치 수백만 년 동안 얼어붙었던 오래된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몸 주위를 감쌌다. 덕분에 그녀는 더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졌고, 동시에 세상을 초월한 아름다움이 더해졌다.

이것이 바로 대주국 왕족의 혈맥이 완전히 깨어났을 때 나타나는 표식이다.

대주국 왕족, 대주국 공주. 요 몇 년 동안 이런 자신의 신분조차 잊고 지냈다.

대주국에서 도망쳤을 당시, 그녀의 나이는 겨우 열일곱에 불과했다. 자신의 과거를 아는 이가 없는 곳으로 가서 죽을 때까지 무학 연구에만 매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18년이 지난 지금 보이지 않는 운명의 끈이 그녀를 다시 이곳으로 이끌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누님, 왜 혼자서 석양을 보고 계세요?”

뒤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렸다.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천제현이 아니면 누구겠는가.

심빙우는 뒤돌아 본 순간 평소와는 다른 천제현의 모습을 바로 알아챘다. 그의 몸 전체가 은은한 빛으로 덮여 있었다. 육안으로는 분간하기 힘든 빛이었다. 오직 성광불멸체를 수련한 심빙우만 느낄 수 있었다.

“방금 그 상황의 주인공이 바로 너였군. 무공에 큰 진보가 있는 모양이지?”

심빙우는 천제현을 몇 초 정도 바라보더니 덧붙였다.

“마력도 한 단계 늘었네!”

‘이 여인의 통찰력이 언제 이렇게 강해졌지?’

그렇다. 불멸체는 이미 신기 경지에 도달했고, 마력은 진령 2성이 되었다. 지령 단계에 있는 진령술사는 더 이상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앉아도 될까요?”

심빙우는 쓸데없는 행동을 하는 천제현에게 퉁명스럽게 답했다.

“내가 안 된다고 할 수 있나?”

천제현은 스스럼없이 곁에 앉더니, 앉자마자 쉴 새 없이 종알거렸다.

“누님, 정말 솔직하질 못하세요. 왜 우리에게 신분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이런 원한이 있었으면 진즉에 대주국에 왔었어야죠!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우리의 수단과 능력이면 문제없어요.”

심빙우가 얼굴을 찌푸렸다.

천제현이 물었다.

“왜요, 뭐 불편하세요?”

심빙우의 무관심한 얼굴에서 막막한 기색이 살짝 드러났다.

“넌 잘 몰라. 우리 가문의 혈맥은 아주 특수해서 능력만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도 큰 영향을 미쳐.”

천제현은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반 무공조차도 내면에 영향을 미치는데, 하물며 혈맥이면 말해 무엇하랴.

“그게 뭔데요?”

“감정이 차갑게 변해. 특히 친밀한 감정에 아주 냉담해 지지. 혈육의 정, 우정, 애정……. 우리 가문은 모두 이랬어.”

심빙우는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탄식을 했다.

“대주국에서 막 도망쳤을 때는 증오심으로 가득했었지.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그것도 희미해졌어. 이미 부모형제에 대한 느낌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아. 복수? 그런 집착이 있었지만, 실행에 옮길 원동력은 없었어. 그래서 지금까지 이런 일을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게다가 나도 기적상회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지금처럼 성장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지.”

천제현은 알 것 같았다.

심빙우는 일행 중 가장 냉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무엇에도 별 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고, 다른 사람과의 접촉도 싫어했다. 무공을 연구하는 것 외에 다른 취미는 없었다.

천제현은 심빙우의 천성이 그렇거나 아니면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것이 가족 유전일 줄이야.

“그걸로 고민하실 필요는 없어요.”

천제현이 괴상한 생각을 내놓았다.

“제 곁에 계시니 치유될 가능성이 높잖아요?”

심빙우는 살짝 놀랐다.

“치유?”

천제현이 사악한 미소를 내비쳤다.

“절 보세요. 이렇게 잘 생기고, 재능 있고, 매력적인 저 같은 남자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하게 되면 고쳐지는 거 아니겠어요?”

“꺼져!”

심빙우가 손을 휘두르자 주변 수십 척 거리에 있던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천제현은 허둥지둥 도망치며 말했다.

“젠장, 그냥 농담이에요, 사랑은 못 느낀다면서 화는 왜 이렇게 잘 내요?”

“내가 사랑을 못 느낀다고 누가 그래.”

화가 나서인지 아니면 다른 것 때문인지, 심빙우의 하얀 얼굴에 홍조가 띠었다.

“둔한 거야. 좀 무딘 것뿐이라고. 알겠어?”

천제현은 이리에게 물린 토끼처럼 경계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날 사랑할 수도 있단 말인가요? 경고하는데, 난 여자 친구가 있는 몸이에요!”

이런 치졸하고 못된 모습에 심빙우는 속에서 또 알 수 없는 천불이 일어났다.

“가만 두지 않겠어!”

몇 분 동안 산비탈이 온통 고드름 천지가 됐다. 천제현이 이 흉악한 여인을 피하느라 산 전체를 뛰어다닌 탓이었다. 상황이 꼬여가는 이때, 통신기를 통해 공서련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송탑이 완공된 것이다.

심빙우는 평소 차가운 모습을 회복했다.

“네 여자 친구한테나 가봐!”

천제현은 웃으며 답했다.

“누님, 사실, 화나신 모습도, 기뻐하는 모습도 다 아름다우세요. 그러니까 하루 종일 정색하고 있지 마시고 많이 웃으세요.”

“매일 널 보는 데 어떻게 웃을 수 있겠어!”

이 말에 천제현은 숨이 콱 막혔다. 정말 어쩜 저리 독한 말만 하는지.

“그럼 많이 화내세요. 화내실 때 정말 예쁘거든요.”

천제현은 이 말을 하자마자 또 공격을 받을까 무서워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쳤다.

도망가는 천제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심빙우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우울한 마음을 억누르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따라갔다.

며칠 동안 노력한 끝에 공서련이 전송탑을 다 완성했다.

현음종 종주인 린지아가 빽빽이 모인 장로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그녀는 전송탑을 몇 번 살펴보다니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이 짓는다는 게 이거였어? 용도가 무엇이지?”

천제현이 성안을 끼우자 전송탑 전체가 활성화 되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린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협력을 논할 때 시찰이 빠질 수 없지. 종주가 기적상회 본부로 직접 와 보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직접 대하국으로 가라고?”

“아니!”

공서련이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우리 본부는 대하국이 아니라 기적성에 있어! 기적성은 혼돈의 숲 중앙에 위치한 도시고.”

‘말도 안 돼!’

‘혼돈의 숲?’

현음종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기적상회가 혼돈의 숲에 있다니, 가능한 일인가? 혼돈의 숲 중앙은 여기서 십만 리가 넘는데, 왕복하는 데만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겠는가? 게다가 혼돈의 숲은 너무나 위험해 화령술사도 무사히 다녀오기 쉽지 않다.

천제현은 옆에 있는 전송탑을 두드리며 말했다.

“종주, 걱정 마. 기적성에도 전송탑이 있어. 전송탑 2개가 전송을 시작하면, 백만 리, 아니 천만 리가 떨어져 있어도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지. 마치 제집 화장실 드나들 듯 편리한 거야.”

이 한마디에 모든 사람이 경악할 정도로 놀랐다.

린지아는 더욱 놀란 듯 까만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설마…… 전송탑의 기능이란 게 바로?”

“그뿐만이 아니야!”

천제현은 성안 조각으로 만든 두루마리를 꺼냈다.

“내가 직접 만든 두루마리야. 전송지점 좌표를 설정해서 만들 수 있지. 이 두루마리만 있으면 어디로 가든 순식간에 성으로 돌아올 수 있어. 그래서 이걸 귀환두루마리라고 하지! 종주 꼬맹이, 이제야 전송탑의 가치를 알겠나?”

현음종 사람들 마음속에 가득했던 의심이 사라졌다.

현음종에서 난리법석을 치고도 겁내지 않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세 사람은 순식간에 성으로 돌아갈 수 있는 두루마리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상황이 꼬이면 바로 달아날 수 있다. 그 대단한 태음산 대진과 각종 금제도 무용지물이다. 대륙에 공간능력을 막을 수 있는 금제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어 봤다.

공간두루마리를 활성화시키기도 전에 저들을 없애 버리지 않는 한 말이다.

하지만 세 사람의 실력도 만만치 않으니, 빠져나가는 건 문제도 아니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지금까지 겁을 내지 않았구나!’

“이 전송탑의 가치를 이제 종주 꼬맹이도 잘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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