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0
제540장 인질
장로들은 대부분 허둥지둥 도망치는 모습으로 얼음에 갇혀 있었다. 아직 살아 있지만 얼음에 봉인된 이들은 조금도 움직이거나 반격할 수 없었다.
공서련이 한 손으로 심빙우를 부축하고 한 손으로 얼음을 두드렸다. 얼음 표면에 즉시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멈춰!”
“모두 멈춰!”
현음종 사람들이 황급히 부적과 활시위를 내렸다.
‘사악한 놈들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이리된 거지?’
‘장로님들은 모두 진령 경지의 고수인데 어째서 빙산에 갇혀 버렸을까?’
공서련은 현음종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자 조금 걱정이 되었다. 일이 점점 커지는데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이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일단 현음종에 쓴맛을 보여주면 천제현은 대주국에서 유명인사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종문에 가도 무시당하지 않는다.
천제현과 음무극의 전투가 시작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음무극은 현음종 부종주로 현음마공을 거의 신기의 경지까지 연마했다. 현음종의 가장 주된 전승 무공 중 하나인 지음지기를 연마하면 힘을 요괴나 귀신으로 바꿀 수 있다. 이 무공은 몹시 변화무쌍하여 상대하기가 무척 어렵다.
천제현이 신마검과 염마변을 펼친다고 해도 간신히 버틸 정도였다.
음무극의 얼굴은 노기로 가득했다.
이 죽일 놈들이 감히 종문의 장로들을 인질로 잡았다. 이 사실이 퍼진다면 현음종의 체면은 땅에 떨어진다. 지금으로서는 이놈을 단숨에 제압하여 인질로 삼아 저 두 여자와 협상을 벌이는 게 최선이다.
“현음려귀!”
음무극은 천천히 탐색전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상대는 진령 1성에 불과했다. 전투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마력에서 격차가 너무 벌어졌다. 마력 소모를 걱정할 필요 없이 가장 강력한 무공을 펼칠 수 있었다.
험상궂은 얼굴의 귀신 십여 마리가 음무극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귀신은 모두 음무극과 비슷한 차림이었지만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아서 해골 같이 말라비틀어진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귀신들은 양손에 자색 연기가 나는 귀두도를 쥐고 공중에 날아올라 눈 깜짝할 사이에 천제현 주위에 나타났다.
이 귀신들은 평범한 망령이 아니었다. 이들은 현음마공을 10년 이상 연마한 지음망혼이 환화된 귀신들로 모두 진령술사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지녔다. 이들의 지음 정령이 동시에 덤벼든다면 진령 3성인 술사도 애먹을 것이다.
‘대단하다!’
‘이게 바로 부종주님의 실력이구나!’
현음종 제자들의 사기가 크게 올라갔다. 이 현음려귀들의 전투력에 부종주의 전투력까지 더해지면 동급의 술사라고 해도 상대가 안 될 것이다.
부종주이니 서열이 높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자원을 독점하지 않았겠는가. 다른 것은 차치하고 저 현음려귀들을 단련시키는 데만도 상상할 수도 없는 자원이 들어간다. 이처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수련을 마치고 나면 자연히 동급 술사보다 강해지게 마련이다.
천제현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정말 죄송하군요. 마공을 연마하지 않았더라면 제 상대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요.”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죽어라!”
음무극의 귀두도가 길어지더니 눈부신 빛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현음려귀들도 때를 놓치지 않고 사방에서 천제현에게 달려들었다. 현음려귀들의 손에 들린 귀두도도 길어지더니 거의 동시에 날아왔다.
퇴로가 완전히 막혔다. 몸으로 받아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성광체도 이 공격은 막지 못할 것이다.
천제현이 난도질을 당하려는 순간 현음려귀들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하나씩 폭발했다. 이들은 모두 연기처럼 여우에게 빨려 들어갔다. 여우는 입을 크게 벌려 이들을 전부 삼켜 버렸다.
“뭐야?”
음무극은 눈앞에서 10년을 넘게 연마한 현음려귀가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는 모습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내가 잠시 얼어붙은 순간 귀두도에서 뿜어내는 살기가 미약해졌다.
천제현의 두 눈동자가 하얗게 변하면서 공간 능력이 방출되었다. 천제현이 몸을 날려 상대의 공격을 피했다.
‘공간! 공간 능력이다!’
음무극은 다시 한 번 크게 놀랐다. 그가 몸을 돌렸을 때 천제현은 이미 등 뒤에서 신마검의 정령을 소환하여 유명검의 힘을 최대한으로 방출하고 있었다.
음무극이 도를 휘두르며 반격하려고 하자 천제현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여덟 명의 분신으로 음무극 앞에 나타났다.
여덟 모두 실체를 지닌 분신이었다. 분신들이 모두 유명분신참을 펼쳤다.
천제현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가장 강력한 초식을 시전했다. 눈부신 검광 여덟 줄기가 동일한 속도로 음무극을 향해 매섭게 날아들었다. 음무극의 실력으로도 모든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검광 세 줄기가 동시에 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윽!”
호신무공이 깨지면서 음무극이 비명을 질렀다. 비록 호신무공이 완전히 박살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중상을 입고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현음종 제자들은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종문의 장로들은 인질로 잡히고 이제 최고 서열에 가까운 부종주마저 상대의 공격을 받고 중상을 입었다.
‘현음종이 이렇게 무너지고 마는 것인가?’
천제현이 염마변 상태에서 돌아와 중상을 입은 음무기의 목에 검을 들이댔다.
공서련은 매우 기뻐했다.
‘진짜 거물을 포로로 잡았어! 이제 현음종을 제대로 압박할 수 있게 됐어! 현음종은 수천 년 역사를 지닌 종문으로 상당한 재물을 보유하고 있어. 공간수정석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네!’
음무극은 의식을 잃은 게 아니었다. 사실 검으로 입은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다. 그러나 유명화는 너무 지독했다. 마력을 전부 몸 안에 침입한 유명화를 억누르는 데 써야 해서 저항할 힘이 전혀 없었다.
“이렇게 한다고 살아서 태음산을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하하, 그건 그쪽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천제현이 대전의 광장으로 물러나 한 손으로 음무극을 붙잡고 한 손으로 칼을 휘두르며 주위를 물리쳤다.
“너희들의 부종주가 내 수중에 있다. 이제 몸값을 협상하자고!”
“미친놈들!”
“부종주를 인질로 삼아 현음종을 협박하려고?”
“장로와 부종주를 잡았다고 무사할 것 같으냐?”
“태음산의 여러 금제가 가동되면 날개가 달렸어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태음산의 호산대진이 시작되면 네놈들은 뼈도 못 추린다. 대체 뭘 믿고 저렇게 설치는 거야?”
하지만 장로들과 부종주가 저들의 수중에 있다.
대다수 고위 간부들이 인질로 잡혔는데도 현음종에서는 협상에 나설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대하국의 사자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너희는 저 여자의 똘마니에 불과하다! 대주 왕족은 희망이 없어. 완전히 몰살당했지. 공주 하나로 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네놈들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대주국 일에 함부로 끼어들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음무극은 이를 갈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사태의 원인은 심빙우였다. 얼마 전에 세워진 대하국이 대주국의 6대 명산 중 하나인 태음산을 건드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제정신이라면 이런 일을 벌일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천제현의 생각은 정말 남달랐다.
‘대주 왕족의 공주라고?’
천제현은 심빙우의 신분을 전혀 몰랐다.
대주 왕족이 몰살당할 때 심빙우는 유일하게 목숨을 건졌다. 바로 이 때문에 그녀는 외롭게 떠돌아다니다 왕성으로 와서 남궁 가문의 객경으로 10년을 보냈다.
천제현은 숨겨진 내막을 짐작할 수 없었으나 별로 개의치 않았다. 심빙우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곧 밝혀질 것이다.
어쨌든 그는 유리한 입장이었다. 심빙우가 현음종의 고위 간부들을 봉인시켰다. 이 사람들의 명줄을 쥐고 있으니 현음종은 경거망동할 수 없다. 그렇다면 협상을 벌일 여지가 충분하다.
천제현 일행은 애당초 현음종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면 셋은 눈 깜짝할 사이에 중주성이나 기적성으로 돌아가면 됐다. 게다가 인질까지 데리고 갈 수 있다.
현음종에 전송두루마리를 펼칠 틈도 주지 않고 세 사람을 처치할 수 있는 강자가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 천제현이 비장의 무기까지 전부 사용한다면 음무극 같은 놈은 물론이고 화령급 강자라도 세 사람을 처치하기 힘들 것이다.
“현음종의 종주는 어째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것이냐? 종주가 어디 있는지 빨리 말해!”
“종주께서 폐관수련에 들어가지 않으셨다면 네놈들이 이렇게 날뛸 수 있을 것 같으냐?”
“10분 주지!”
천제현이 음무극의 목에 칼을 겨누며 말했다.
“종주를 데려와. 종주가 안 오면 이놈을 베어 버리겠다!”
“네 이놈…….”
“기다릴 필요 없다.”
현음종 사람들이 분노로 들끓고 있을 때 하늘에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이미 왔으니까!”
열 사람이 붉은 수정으로 만든 관을 멘 채 주위에 어슴푸레하게 깔린 혈무를 뚫고 날아왔다. 관에는 살아 있는 것처럼 요괴들이 생동감 넘치게 조각되어 있었다. 음산한 기운이 짙게 깔리면서 주위를 짓눌렀다.
공서련은 살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가장 강한 사람이 온 것 같아!”
천제현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천 년 묵은 강시요괴?”
관을 메고 있던 자들은 사람이 아니라 강시였다. 몸은 선홍색 털로 덮여 있고 사악한 현홍시독 기운이 가득했다. 이것들은 강시요괴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들은 진령급 마력을 지닌 강시요괴로 대부분 진령 2성의 실력이었다.
진령 2성의 강시요괴 열이면 대주국을 호령하고도 남는다. 오싹하게도 이들의 눈빛은 매우 또렷해 보였으나 사실 모두 멀리서 천제현을 쳐다보느라 초점이 희미했다.
“눈속임이군!”
천제현이 심등 신식을 펼쳐 강시요괴의 몸을 훑었다. 놀랍게도 강시요괴의 체내에서 미약하게나마 뇌파가 감지되었다. 강시요괴들에게 사고능력이 있다는 뜻이었다. 천제현이 다시 신식을 집중하여 가운데 있는 관을 투시하려고 했다.
“쾅!”
붉은 관 속에서 강력한 신식이 폭발하면서 순식간의 천제현의 신식을 가로막았다. 두 신식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부딪쳤다. 천제현의 신식은 관 속의 신식이 만든 보호벽을 뚫을 수 없었다.
“신식이 제법이구나!”
붉은 관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이 음성은 진짜 음성이 아니라 심등 신식을 통해 곧바로 뇌로 전달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금 부족하군!”
천제현은 신식에서 누군가에게 뒤져본 적이 없었다.
현음종 종주는 천제현과 마찬가지로 심등 신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 경지의 신식은 정찰을 뛰어넘어 목표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더 대단한 것은 신식의 힘이 천제현보다 훨씬 강하다는 점이었다.
“그래?”
천제현의 눈동자가 갑자기 금색으로 변하더니 관을 맴돌던 신식의 힘이 무형의 신식검이 되어 현음종 종주의 신식 보호벽을 뚫어 버렸다.
현음종 종주의 신식이 천제현보다 강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천제현의 신식이 무형의 검으로 변하자 종주의 신식 보호벽은 크지만 약한 거품처럼 일격에 터져 버렸다.
“윽!”
현음종 종주는 신식이 공격을 받자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관을 메고 있던 강시요괴들은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즉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커다란 관도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런데 천제현은 몹시 놀란 얼굴이었다.
신식이 관을 뚫고 들어간 순간 현음종 종주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현음종 종주는 3척 남짓의 머리를 양쪽으로 땋은 여자아이였다. 나이는 아무리 많이 쳐줘도 열 살 정도 밖에 안 돼 보였다.
“뭔가 잘못된 거 아냐?”
천제현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현음종 종주가 미성년자라니!”
“무례하구나. 너야말로 미성년자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