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6
제536장 옛 친구를 만나다
천제현이 고개를 저었다.
“못 참겠으면 참지 마세요. 참기만 하는 것도 몸에 좋지 않으니까요. 일이 생기면 제가 잘 막아줄게요.”
현음종 외문장로는 순간 천제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공서련이 천제현의 말을 듣고 눈부신 마력을 방출하자 머리 위에 거울이 나타났다. 거울에서는 화염에 휩싸인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떠올라 강렬한 화염 마력을 내뿜기 시작했다. 신비한 위력을 가진 봉황이 맑은 빛을 내뿜으며 하늘 위로 빠르게 비상했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천제현 역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공서련의 거울 정령이 가진 중요한 능력은 바로 복제였다. 그러나 복제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 그녀의 능력으로는 높은 급의 정령과 무공을 복제해낼 수 없었다. 게다가 복제에도 유효기간이 있어서 며칠 지나지 않아 곧 사라지고 만다.
현재 공서련은 신급 정령을 복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이는 공서련의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뜻이리라.
그녀의 정령도 덩달아 강해졌기에 복제물을 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진짜 봉황 정령과 비교하면 그 위력이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워낙 강력한 정령이라 그 파괴력은 대단했다.
쾅!
맹렬하게 타오르는 화염이 거대한 봉황의 날개가 되었고, 파괴적인 기운이 담긴 신불이 거세게 일렁이며 온몸을 휘감았다. 그녀는 화염과 파멸의 힘을 가진 여신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나이도 어린 소녀가 생각지도 못한 마력을 지니다니!’
이 뚱보는 다급하게 큰소리치기 시작했다.
“나는 현음종 외문장로다. 이곳 천음산에서 내 머리털 하나라도 건드렸다가는 무사할 수 있을지 아느냐?”
‘흥! 천제현과 다닌 게 얼만데 그딴 말로 날 협박하려고?’
탁!
공서련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분천권!”
이 초식은 남궁혜의 것을 그대로 따온 것이리라.
거대한 화염 주먹이 뚱보에게 날아들었다. 안쓰러울 정도로 약한 그의 호신마력이 뜨거운 물을 끼얹은 것처럼 순식간에 증발했다.
폭발적인 화염의 힘은 댐을 무너뜨리고 범람하는 물처럼 휘몰아쳐 맞은편에 있는 가옥까지 날려 버렸다.
이 화염의 힘이 지나간 자리에는 불구덩이가 처참히 타오르고 있었다.
공서련도 스스로의 힘에 깜짝 놀랐다.
‘내가 이렇게 강해졌다니! 이번 공격에 고작 2할의 공력 밖에는 사용하지 않았는데! 저 빌어먹을 뚱보가 설마 죽어 버린 건 아니겠지?’
주변 사람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여 비명을 질렀다.
“아! 장로가 두들겨 맞다니!”
“대단한 배짱인데, 천음산에서 현음종의 외문장로를 건드리다니!”
수십 명의 검은 갑옷 경비대가 분노에 휩싸여 주변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공서련은 곧바로 공력 1할만으로 힘차게 타오르는 화염을 만들어 수십 명의 경비대를 공격했다. 그들은 타오르는 나무처럼 우르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다들 비명을 지르며 몸에 붙은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일어날 수 없었다.
천제현이 어리둥절해 하는 공서련 앞으로 가 웃으며 말했다.
“어때요? 혼쭐내주는 느낌이? 끝내주죠?”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힌 사람을 이토록 통쾌하게 혼내준 적이 없었다.
‘기분이야 완전 끝내주지. 그런데 너무 끝내줘서 탈이지!’
“미안해요. 공력을 1, 2할밖에 안 썼는데!”
공서련이 난감해 하는 표정으로 바닥에 뒹구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천제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쟤들이 저렇게 약한 줄 몰랐어!”
이는 그녀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공서련은 전투 경험이 적고 실력은 아주 빨리 늘었기 때문에 힘을 적절하게 제어할 수 없었다.
“괜찮아요. 충분히 살살했어요.”
천제현이 고개를 저었다.
“남궁 아가씨가 직접 나섰다면, 힘을 십분의 일만 써도 저들은 재도 남지 않고 타 버렸을 거예요. 봉황 정령을 복제할 수는 있어도 그 정수까지는 할 수 없으니 더 노력하셔야 해요!”
공서련이 천제현에게 칭찬받자 바로 웃음꽃이 피었다.
“알았어!”
“대주국의 각 종파는 세력 구분이 분명해. 외부인이 그들의 세력 범위 안에서 소란을 일으키면 이는 즉각 도발행위로 간주된다고.”
심빙우의 아름다운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현음종은 세력이 매우 강해. 종파 안에 진령급 강자도 열 명이 넘고. 아무래도 골치 아픈 일에 엮일 것 같다.”
천제현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심빙우를 쳐다봤다.
“누님, 대주국에 대해 잘 알고 계시네요!”
그러나 천제현은 ‘골치 아픈 일에 엮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한 걸음씩 단계를 밟아가는 건 천제현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소란이라도 일으켜 대주국이 자신의 존재를 알게 하는 게 낫다.
‘그럼 일이 더 쉬워지지 않겠어?’
그때 갑자기 바람 소리가 길게 울려 퍼지면서 서쪽에서 관처럼 생긴 상자 2개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하나는 붉은색 관으로 불 속성 주문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고, 다른 하나는 하늘색에 얼음 속성의 주문이 가득했다.
비록 완전히 다른 속성이었지만 같은 종파의 무공인 것 같았다. 둘 모두 죽음의 기운과 독 안개에 뒤덮인 채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내문의 고수다!”
“그 유명한 염빙형제!”
“현음종 내문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천재들이잖아!”
두 개의 관 안에서 각각 인기척이 느껴졌다. 한 명은 붉은 도포를 입고 온몸이 화염으로 휘감겨 있었으며, 다른 한 명은 흰 도포에 얼음 결정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나는 불, 하나는 얼음이었다. 두 상반되는 속성이 서로 얽히더니 뜻밖에도 매우 오묘한 조화를 이루어냈다.
“누가 감히 현음종에서 소란을 피우느냐!”
이 둘은 가면을 썼지만 체형과 신장은 완전히 같았다. 말도 동시에 했기에 정말 쌍둥이 같았다.
“제가 했어요!”
공서련이 대답했다. 상대는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지 않았기에 순간 자신감이 생겼다.
‘대략 혼성 8~9성쯤 될까? 대주국도 별거 아니네!’
“이 현음종 제자가 힘만 믿고 약자를 괴롭힌 데다 성격도 악랄하기 그지없네요. 그래서 제가 어쩔 수 없이 혼을 내준 거예요.”
“감히!”
두 사람은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현음종 관할 지역에서 감히 멋대로 굴다니! 현음종의 무서움을 보여주지!”
공서련이 천제현의 눈을 바라보며 그의 허락을 구한 후 강단 있게 말했다.
“날 위협하지 않는 게 좋을걸. 네놈들 따위는 무섭지 않아!”
“헛소리는 짚어치워라!”
둘은 즉각 공격에 나섰다.
현음종 내문의 두 강자는 비술로 공서련을 연속으로 공격했으나 영문도 모르는 어떤 빛에 의해 모두 튕겨 나갔다.
“너희도 그리 대단하진 않구나!”
그녀는 마치 자신이 전쟁의 신이라도 된 것처럼 자심감이 더욱 높아졌다. 공서련은 천제현 앞에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새로 배운 성광신법을 시전했다. 그녀는 번개가 번쩍이듯 단숨에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그녀는 깔끔하고 시원시원하게 공격해나갔다.
기세로 보아 뚱보를 때릴 때보다 강한 것 같지 않았으나, 사실 4~5할의 공력을 담은 공격이었다. 공서련의 마력이 양어깨의 표면으로 응집되더니 두꺼운 진원층을 형성하였다. 제아무리 단단한 강철이라도 두 동강 낼 수 있을 힘이었다.
“진원의 힘!”
두 형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진령술사다!”
두 사람은 놀라는 통에 피하는 게 늦었다.
공서련은 둘을 주먹으로 내리꽂아 저 멀리 날려 버렸다.
구경꾼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앳된 소녀가 현음종 외문장로를 이길 수 있다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내문의 촉망받는 제자까지 꺾다니.
이 형제들은 자신보다 한 단계 반 이상 높은 상대와 겨룰 수 있을 만큼 실력이 좋았다. 그러나 아예 경지를 넘어선 진령술사를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물며 공서련의 방어도 깨지 못했으니, 그들이 공서련과 같은 경지의 동급 실력을 지녔다고 해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뭐하는 놈들이냐!”
실력이 일취월장한 덕분에 마력이 증가하여 공서련의 외모는 젊음의 생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실제로 천제현이 1년 전에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기에 사람들은 그녀를 여전히 열다섯 정도의 어리숙한 사춘기 소녀로 보았다.
‘고작 열댓 살 먹은 사춘기 소녀가 놀랍게도 진령급 마력을 지녔다니!’
이건 대주국에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잠깐만요!”
천제현이 현음종 내문제자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러고 보니 한 식구였군요. 미리 알았더라면 바로 당신들을 찾아갔을 텐데. 1년 사이에 실력이 많이 늘었네요. 그때 강시요괴 내단 10개와 바꿔 간 게 잘 되었나 보군요?”
염귀와 빙마 형제는 순간 멍해졌다.
“그대는…… 암우개?”
1년 동안 소년의 이미지는 크게 바뀌었지만, 사람의 기질은 쉽게 변하지 않기에, 염귀와 빙마는 그를 보자 거의 한 눈에 알아보았다. 그가 바로 남하국 암시장에서 만난 신비한 소년, 암우개라는 걸.
등 뒤에 비스듬히 걸린 보검과 그의 어깨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새끼 여우도 그 사실을 증명했다.
지금 안 사실이지만, 암우개란 이름도 가명이요, 당시의 모습도 위장한 것이었다.
천제현은 이 두 형제를 만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맞아요! 접니다. 그런데 제 진짜 이름은 천제현이라고 해요.”
염귀와 빙마는 어리둥절해 하며 서로를 쳐다보았고, 둘 다 놀라는 눈치였다.
‘정말 그 녀석이었잖아!’
‘어쩐지!’
염귀와 빙마는 천제현과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그가 기인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현음종 외문장로이자 상단을 이끌던 귀면노자는 염귀 형제를 데리고 만시고묘에 갔었다. 그곳에서 형제는 온갖 고초를 겪었는데, 그때 이 녀석이 없었다면 두 사람도 귀면노자처럼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천제현님? 천제현님이군요!”
염귀는 바로 일어났다.
“저희가 오해했군요.”
빙마도 이어서 말했다.
“천제현님은 현음종의 은인이라 종주님과 장로님들도 천제현님을 보고 싶어 할 겁니다!”
천제현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럼 좀 부탁할게요!”
대주국의 6대 명산 중 하나인 태양산은 고대부터 내려온 유적이다. 현음종 창시자가 이 유적을 발굴하고 고대 문파 태음문의 모든 가르침을 계승하여 이 강력한 문파를 창시했다.
“호산대진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저와 함께 들어가시죠.”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염귀와 빙마 형제는 천제현에게 아주 공손했다.
“천제현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저희가 이 자리에 있겠습니까? 허나 이 말씀은 드려야겠군요. 현음종의 호법 장로는 성격이 괴팍합니다. 말실수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천제현은 흔쾌히 약속했다.
현음종은 마교 무공에 속한다. 이 무공을 익힌 술사는 마공의 영향을 받아 잔인하고 폭력적이라서 어울리기 힘들다.
세 사람은 비밀통로를 통해 산골짜기로 들어갔다.
양측에 도열한 여러 흉측한 조각상과 수위들은 모두 현음종의 제자였다.
거대한 환진이 오감을 마비시켰다. 염귀와 빙마 형제가 호산대진을 열어 통로를 내지 않았다면 한참을 헤매도 태음산 깊은 곳에 있는 현음종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서련이 걸으며 물었다.
“대주국에 친구가 있는지 몰랐네!”
“친구까지는 아니에요.”
천제현이 강시협곡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이야기했다.
염귀와 빙마 형제는 다시 볼 일 없는 스치는 인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재회하다니 아직 인연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때 천제현은 천년강시내단 열 알을 형제에게 주었다. 천제현에게는 사소한 일이었다. 그러나 형제에게는 천제현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길 만큼 대단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