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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534화 (534/729)

# 534

제534장 샤먼신의 기적

공서련은 두서없이 말하기 시작했고, 말할수록 얼굴은 더 벌게졌다. 결국 고개를 푹 숙인 채 중얼거렸다.

“어쨌든 좋은 날을 잡아야지. 이렇게 갑자기 폭탄 발언을 하는 건 실례잖아. 결혼을 하자고 하면 바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너도 고약하다니까!”

천제현이 히죽대며 그녀를 더 놀렸다.

“이런 얘기는 너희 둘만 있을 때 해줄래?”

심빙우가 더는 못 봐주겠다는 듯 말했다.

“루츠 쪽에서 뭔가 일이 생긴 것 같아. 꼭 좀 와서 도와 달라는데?”

공서련이 이제 겨우 난감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말꼬리를 이었다.

“무슨 일 있어요? 루츠는 초원에서 샤먼교 설립을 준비하고 있었잖아요? 어려울 일이 뭐가 있죠?”

심빙우가 대답했다.

“초원의 서쪽지역에서 몇몇 대규모 유목부족이 몰락했어. 남하국과의 전쟁으로 비축해둔 물자를 탈탈 털어 쓴 데다 전염병까지 도는 바람에 가축들까지 전부 죽어버렸잖아. 아마도 이것 때문에 부족 전체가 무너지면서 난민이 쏟아져 나온 것 같아. 루츠는 그들을 흡수할 생각인 듯해. 그래야 세력을 키울 수 있으니까.”

‘어찌 된 영문인지 알겠네.’

견융초원은 가뜩이나 물자가 부족한데, 지난 반 년 동안 남하국과의 지리멸렬한 전투로 대다수 부족은 끼니를 때우지 못할 만큼 생활이 궁핍해졌다. 어떻게 보면 견융부족의 처지가 어려웠기 때문에 천제현이 이 지역을 점령할 기회를 얻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몇 개 부족이 몰락하자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다. 이것이야말로 종교 세력이 포교하는 데 아주 좋은 기회이지 않겠는가.

루츠는 천제현이 기적상회의 공간창고를 열어 충분한 식량을 공급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분장하고 바로 가보죠.”

천제현의 명성은 오랑캐와 같은 견융족에게 빛을 발하지 못할 수 있다. 어쨌든 천제현과 공서련은 인간이지 않은가. 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견융족은 인간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왔으므로 인간의 신분으로 끼어들었다간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반나절이 흐른 뒤 세 사람은 루츠를 찾았다.

세 사람은 그리 거창하게 위장하지는 않았다. 크고 무거워 보이는 도포를 입고 가면과 장갑을 꼈다. 신체 중 어느 부분도 노출하지 않았으며, 약으로 인간의 냄새를 지웠다.

루츠가 천제현에게 예를 다해 인사했다.

“성주님!”

천제현은 주변 상황을 물었다.

장내에는 루츠를 주축으로 한 샤먼 제사장 외에도 숲의 족장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대략 5만 명의 난민이 모여 있었는데 이는 견융초원에서 꽤 큰 규모의 부족을 형성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지금처럼 가다간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난민들은 하나같이 병들고 굶주려 있었고, 뼈와 가죽만 남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흉악하기로 악명 높은 약탈자는 온데간데없이, 그저 돌아갈 곳 없는 떠돌이 개의 모습이었다.

“샤먼신은 길 잃은 마수령을 인도할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고통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천제현은 음성변조술을 사용했기에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고 간간이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는 샤먼 특유의 행동을 따라 하면서 간절함이 느껴지는 견융 난민들 앞에서 숙련된 마수령 언어로 그들을 위로했고, 곧바로 그들의 건강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배고픔에 허덕이는 것은 물론이고 병세가 완연한 환자들도 많았다. 이들이 감염된 병은 악성 기생충병으로 일단 숙주의 체내에 기생한 후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기 시작한다. 이 기생충은 먼저 창자에 터를 잡고 오장육부까지 침투하여 혈액을 타고 들어간다. 기생충이 혈액을 통해 마력과 마력을 흡수하기 때문에 숙주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다. 접촉만으로도 쉽게 감염되는 바람에 한 사람이 감염되면, 그와 접촉한 사람도 화를 면치 못한다. 게다가 지금 견융초원에는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전무한 상태다.

패전, 기근, 전염병까지, 대체 이 얼마나 불행의 연속이란 말인가.

천제현은 신들린 척 샤먼신을 향해 기도 비슷한 걸 하고는 바로 자리를 떴다.

“어쩌지? 많이 아픈 것 같은데!”

공서련이 두포를 젖혔다.

“중주 창고에 통조림이 보관되어 있어. 바로 연락해서 공수해 올게.”

“아니요. 이번에는 통조림이 필요 없어요.”

천제현이 처방전과 명세서 몇 장을 써 내려갔다.

“이걸 중주 실험실에 보내주세요. 이 처방대로 물약을 만들어 달라고 말해주시고요.”

공서련은 제약에 관해서 잘 몰랐지만, 1년 동안 꽤 많은 지식이 쌓인 터라 여기에 적힌 약재가 굉장히 저렴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천제현이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로 봐서는 일이 제법 쉽게 해결될 것 같았다. 그녀는 바로 통신기를 가져와 중주에 연락하여 빠른 일 처리를 부탁했다.

사흘이 지나자, 기근에 허덕이는 숫자는 배로 늘어나, 곧 버티지 못할 듯 보였다.

천제현은 커다란 화물 상자가 가득 들어 있는 마수차 열 대와 함께 나타났다. 이를 본 샤먼 제사장들은 한시름 놓고는 샤먼신 만세라 외쳤고, 이내 굶주린 견융 난민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루츠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째서 열 대만 왔지? 이곳에 굶주린 백성은 10만 명도 넘을 텐데!’

샤먼교의 난민 구제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 상태라면 더 많은 난민이 몰려들게 뻔했다. 그런데 마수차 열 대에 실려 온 음식으로 이들을 다 먹일 수 있겠는가? 여기 있는 이 사람들이 먹기에도 모자랄 것이다.

“열어라!”

사실 그 상자 안에 있는 것은 기대한 식량이 아니었다. 이는 작은 캔에 든 물약이었다.

“이것은 샤먼신이 하사하신 신수입니다!”

천제현이 큰소리로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 신수는 그대들의 병을 치료하고, 먹을 것을 만들어 여러분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입니다!”

이때 루츠를 비롯하여 좌중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물약이 병을 치료해 줄뿐만 아니라 배까지 부르게 한다고?’

천제현이 주문이 가득 새겨진 구리솥을 꺼냈다. 그 솥은 교단이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제기로 약간의 신비한 빛깔이 더해졌다.

“샤먼신께서 말씀하시길, 이 세상에 모든 것은 구제받을 수 있다 하셨습니다.”

천제현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모두 목초를 뜯어와 이 구리솥에 넣으십시오. 샤먼신의 신비한 능력이 이 신선한 목초를 식량으로 바꿔줄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멀뚱히 서 있었다.

‘그게 가능해?’

루츠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으나 뭐라도 들통 날까 두려워 묻지도 못한 채 천제현의 말에 호응했다.

“다들 이분 말씀대로 하십시오. 샤먼신은 신도를 기만하지 않습니다!”

‘다른 건 그렇다고 쳐도 풀이라고? 초원에 널리고 널린 게 풀인데!’

10분도 채 안 돼서 커다란 솥에는 파릇파릇하고 기름진 풀들로 가득 찼다.

천제현이 솥에 새겨진 마력진을 가동하자, 솥 안에서 힘이 용솟음쳤다. 마치 여물 가는 기계처럼 모든 초목을 빨아들이더니 섞이고 농축되어 죽과 같은 형태로 된 것이 만들어졌다.

천제현은 또다시 신들린 척 연기를 하더니 물약을 그 안에 부었다.

그러자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죽처럼 된 풀에서 반응이 일어나더니 금세 건조식품으로 바뀌었고, 곡물을 볶은 것처럼 입맛을 자극하는 냄새가 퍼져 나갔다.

텅!

천제현이 구리솥을 한 대 치자 건조된 식품이 전부 튕겨 나와, 마치 선녀가 하늘에서 꽃을 흩뿌리듯 난민들 앞에 떨어졌다.

난민들은 이미 배곯이를 한 지 오래된 터라 맛있는 냄새를 맡자마자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들은 너무나 굶주린 상태라 생명만 부지할 수 있다면, 이게 분변이라도 능히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믿을 수 없게도 이 목초로 만든 음식은 배도 채울 수 있는 데다 맛까지 상당히 괜찮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뱃속에 들어가자 고통도 금세 사그라진 것이다.

“기적이야!”

“정말 기적이야!”

견융의 마수령은 감격에 복받쳐 모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연신 절을 하였다.

이게 기적이 아니고 뭐겠는가. 견융은 수차례 남하국을 침입했는데 아직도 살아 있다니, 이것만 봐도 기적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여기서 흔하디흔한 잡초로 이런 식량을 만들다니, 이는 앞으로 견융의 마수령뿐만 아니라 견융초원의 삶까지 뒤흔들 수 있는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보셨습니까!”

천제현이 큰 소리로 외쳤다.

“샤먼신께서 풀을 식량으로 바꾸셨습니다! 이제는 견융과 대초원 어디서든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식량은 기근을 해결해 주고, 여러분의 아픔을 치료해 줄 것입니다. 이는 위대한 샤먼신의 은덕이니, 여러분은 더 이상 기근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루츠는 천제현에게 큰절을 했다.

수백 톤의 통조림을 가져온다면,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쌀 뿐만 아니라 이런 극적인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다. 그리하여 천제현은 잡초를 먹을 것으로 바꾸는 기가 막힌 방법을 쓴 것이다. 지금 이 구리솥 하나만으로 샤먼교가 얼마나 많은 신도를 끌어 모을 수 있는지 능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대단히 절묘한 방법인 것이다.

루츠가 격앙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성주님의 도움으로 요 며칠간 수십만 명이 몰려들었습니다. 대부분을 샤먼교 신도로 전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샤먼 주술사 양성에 힘써주신 성주님을 힘껏 돕겠습니다. 샤먼교는 본래 마수령으로부터 시작한 교단이라 이 지역에서 상당히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기적상회가 지원하고 혼돈의 숲의 고수들까지 돕고 있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천제현이 그를 힐끗 보며 말을 이었다.

“이제 이 일로 날 찾아오지 마세요.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세요!”

루츠가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꼭 성공하겠습니다!”

견융초원의 문제는 이제 일단락되었으니 전송탑 일도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이때 대하왕 동방건이 천제현에게 기별했다. 열국의 지도와 자료는 이미 준비되었고, 그에게 물을 것도 있으니 대하국 북도(北都)로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대하국 중앙에 위치한 중주성이 대하국의 왕성이 된 후 옛 왕성은 북도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제 수도는 아니지만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인 만큼 여전히 북부지방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대하왕국으로 국호를 변경한 후 온갖 골칫거리가 물밑 듯이 쏟아졌다. 대국은 그저 이름에 불과했다. 일단 대국이 되면 외교등급이 자동으로 소국보다 높아지고, 일대 소국은 국가의 안전 보장을 위해 대국에 조공을 바치기도 한다.

이 시대만 해도 국가 간 왕래가 잦지 않았다. 따라서 복속국의 관계를 제외하고는 지정학적 요인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지역에 엇비슷한 세력들이 나타나면 기득권자의 이익과 영향력에 저촉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대융국은 장응국의 복속국이라 아예 방법이 없다지만, 대하국은 독립된 왕국이라 사정이 달랐다. 하지만 대국이 되는 게 그리 쉽겠는가? 주변국 모두 대하국을 향해 여러 잡음을 넣었지만, 다들 소국이라 능력의 한계가 있었기에 소국들을 굳이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강국을 상대하는 것이다.

이는 천제현이 하려는 일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희귀한 공간수정석을 찾으려면 어쨌든 소국에서만 찾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대국에 가야 하니, 가는 김에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지도와 관련 자료를 받은 후 대하국 국사의 신분으로 외국 방문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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