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533화 (533/729)

# 533

제533장 우리 결혼하죠

천제현은 지난 몇 달 동안 숲에서 답답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냈기에 재료 구입과 북융국 정권 수립을 핑계로 주변국을 돌아볼 심산이었다. 한마디로 서둘러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남궁혜, 비비안 등도 천제현을 따라가고 싶지만 각자 할 일이 있었다. 그들도 한동안은 자리를 비울 수 없었기에 얌전히 공화련과 함께 성으로 돌아갔다.

1주일 후.

남하왕 동방건이 옛 왕성에서 국호를 대하로 바꾸겠다고 천명했다.

북방은 피해가 막중한 데다 왕국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도읍을 옮길 필요가 있었다. 이에 대하국은 중주성을 새로운 왕성으로 지정하였고, 뒤이어 왕역과 북방에서 수복한 옛 땅은 7개의 주와 군으로 새롭게 구획하였다. 노주와 창주는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대하국은 북쪽으로 계속 확장할 생각이 없었기에 남쪽, 서쪽, 동쪽으로 황폐한 토지를 점령하여 3개 주와 군을 추가했다.

이로써 대하국은 총 18개의 주와 군을 지배하게 되었고, 영토도 2배 이상 확대되었다. 국토 면적만 보자면, 대하국은 이미 명실상부한 대국이었다.

대하왕은 군후를 새롭게 책봉했다. 남방 3군과 북방 3군의 군후는 모두 기적상회의 사람들에 임명했고, 고천추, 운천학, 남궁가문, 상관가문의 고위급 인사들이 주요 요직을 맡았다.

이 6개 구역은 대하국이 특별행정구로 지정한 공동통치구역으로 기적상회와 남하국이 공동으로 개발하고 관리하게 되었다. 기적상회는 공장 설립, 도시 건설, 군사 훈련장 건설 등을 지원할 계획이며, 세금은 거의 면제하기로 했다.

그리고 진국군 천제현은 ‘대하국사’로 추대되었고 운몽군 공화련도 대하국 외무상이 되었다. 동방건은 대하국의 빠른 발전과 번영을 위해서 기적상회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었고, 기적상회 역시 대하국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양측의 이익관계가 일치되는 만큼 상생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감투가 뭐가 좋다고?’

천제현은 일전에 남하의 왕좌조차도 관심 없다고 했는데, 하물며 이런 허울뿐인 칭호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대하국은 대대적인 책봉식과 건국행사를 열었으나 그는 아예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같은 시각 천제현은 두 미녀와 함께 대초원의 깊숙한 곳으로 힘껏 달렸다.

이번에는 공무를 핑계로 한 여행이었기에 천제현도 느긋하게 일을 할 생각이었다. 그는 곧 공서련을 데리고 대초원에서 신나게 놀았다.

공서련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초원의 풍경은 다른 곳과 확연히 달랐다. 그녀는 일주일 넘게 다양한 고대 유적을 둘러보았고, 유목 마을에 들어가 수많은 말들이 질주하는 장관을 보았다. 외부의 압박도 없고, 내부의 위협도 없이 온종일 천제현과 함께 야영도 하고 시끄럽게 떠들기도 하면서 평생 잊지 못할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즈음, 놀다 지친 천제현과 공서련은 언덕에서 어깨를 맞댄 채 일몰을 감상했다.

불타는 저녁놀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대초원도 이에 질세라 새빨간 금빛으로 아름답게 넘실거렸다. 이 끝없이 펼쳐진 아득한 초원은 사람의 마음을 더없이 유쾌하게 만들었다.

공서련이 두 손으로 무릎을 감쌌다. 저녁노을이 백옥처럼 새하얀 공서련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천천히 말을 건넸다.

“이봐, 천제현, 우리 서로 알게 된 지도 1년이 넘었네. 나한테 한 말 아직도 기억해?”

“무슨 말이요?”

“알고 있잖아!”

공서련이 그에게 눈을 흘겼다.

“흥! 경고하는데, 이런 일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나도 곧 성인이 되는데, 네가 손 내밀지 않으면 나도 너 안 기다릴 거야!”

천제현은 짐짓 모른 체하고 말했다.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 어째서 난 하나도 못 알아듣겠죠?”

지난 며칠간 유쾌했던 기분이 이 심술궂은 녀석 때문에 단박에 깨져 버렸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계속 모르는 척하다니!’

화가 단단히 난 공서련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너 후회할 거야! 이제 내가 아는 체 하나 봐라!”

천제현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막 몸을 돌리려던 찰나,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가는 허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너……, 이 나쁜 놈!”

공서련의 얼굴은 순식간에 홍당무가 되어 버렸다. 그녀는 발버둥 치는 시늉을 몇 번 하다가 마지못한 듯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

“나 괴롭히면, 돌아가서 언니한테 이를 거야!”

“아가씨 말이 맞아요. 뭉그적대면 안 되는 일도 있죠.”

천제현은 공서련의 귀여운 협박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향기가 천제현의 코끝에 맴돌았다.

“우리 결혼하죠!”

공서련은 순간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어 버렸다.

‘이 망할 놈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정식으로 사귀기로 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이렇게 모든 단계를 다 건너뛰어도 되는 거야? 정말 일반적인 사고방식이란 게 없는 놈이야!’

공서련은 죽을 때까지 이 망할 놈의 생각을 좇아가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너…… 너……!”

“싫어요?”

천제현이 손을 풀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됐어요!”

“아, 아니……, 내가 언제 싫다고 했어? 오해하지 말라고.”

공서련이 다급히 한마디 했지만, 불안하긴 매한가지였다.

“난 그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그리고…… 언니들은 어떻게 하고?”

지금 이 문제를 언급하는 건 그리 적절치는 않았다.

천제현은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주변에 미녀가 많고 다들 능력도 출중하지만, 공서련과는 가장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도 가장 순수했다.

공화련은 당대 최고의 미인으로 기품과 재능을 두루 갖추고 있기에 정상적인 사내라면 그녀에게 마음이 동하지 않을 리 없다.

천제현이 공화련과 함께 보낸 시간과 감정의 교류는 공서련 못지않게 많았지만, 대부분 동료이자 친구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기에 공서련과 함께 있을 때만큼 자연스럽고 편안하지는 않았다. 천제현 역시 누가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공서련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꼈다.

“흥, 나도 눈이 있다고! 이 문제는 절대 피해갈 수 없어. 언니도 분명 널 좋아해!”

공서련은 약이 올랐다.

“그리고 남궁 언니, 비비안 등도 너한테 그런 감정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널 우러러보고 있는 건 확실해. 네 앞에 있으면 완전히 무장해제 되는 것처럼 말이야. 네놈이 어디가 좋은지 모르겠단 말이야. 단점이 이렇게나 많은 데 수많은 여인이 널 좋아하다니.”

정말 몰랐다. 공서련에게 이런 통찰력이 있을 줄이야.

천제현은 곤혹스럽다는 듯 말했다.

“매력이 너무 넘치는 것도 제 잘못이죠. 사실 감추려고 노력했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하늘에 맹세하건데, 제가 일부러 누굴 유혹한 적은 없어요.”

“흥!”

공서련은 못마땅한 듯 코웃음 쳤다.

대륙은 일부일처제가 당연시되지 않았다. 남녀에 상관없이 능력만 있으면 많은 배우자를 거느릴 수 있었고, 이는 드문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다소 일반적인 일에 가까웠다.

공서련은 자신이 속은 좀 좁아도 몰인정한 사람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녀를 진정으로 힘들게 하는 건 대개 열등감이었다.

그렇다. 바로 열등감.

이런 열등감은 출중한 천제현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출신이 평범한 데다 재능도 그저 그런 사람이라 감히 그를 넘볼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녀의 연적들도 다들 쟁쟁한 사람들이지 않은가.

공화련, 남궁혜, 비비안 등 모두 능력도 있고 똑똑한 데다 신분 또한 높았다. 이 사람들과 사이도 좋고 자신에게도 잘 대해 주니 공서련은 그녀들을 밀어낼 수 없었다. 그러나 공서련은 그녀들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늘 위기의식을 느끼며 살았다.

이런 까닭에 게으르고 놀기 좋아했던 공서련이 1년 만에 환골탈태한 것이다. 그녀는 밤을 세워가며 책을 보고 연구하는 등 열심히 노력했고, 통조림과 공간창고 개발, 가상환경 등을 만드는 것도 도왔다.

공서련은 언니인 공화련과는 다르게 사업적 기질도 없고 어떤 포부도 없었다. 그런 그녀는 언니처럼 되고 싶었다.

“바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이런 골치 아픈 것들을 생각해서 뭐하려고요?”

천제현은 소녀의 복잡하고 모순적인 마음을 느꼈다. 그는 살짝 미소 짓고는 손으로 아름다운 그녀의 뺨을 만졌다.

“제가 좋아하는 건 공서련이에요. 공서련은 이 세상에 하나뿐이죠. 누구도 당신과 비교할 수 없어요.”

말을 마친 그가 고개를 살짝 구부려 고운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아름다운 석양이 내려앉은 초원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꼭 껴안았다.

공서련은 당황스러운 마음에 멈칫했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흐릿해지기 시작하더니 그를 뿌리치기는커녕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눈가가 반짝였고 이내 눈물이 옥구슬처럼 흘러내렸다. 이건 기쁨의 눈물이었다.

생각해 보면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공서련은 천제현을 알기 전까지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천제현이 그녀의 삶 속에 불쑥 튀어나온 후부터 공서련은 그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녀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첫눈에 반했다, 뭐 그런 건가? 이 녀석은 분명 나쁜 놈인데, 자주 날 화나게 하는 녀석인데, 내가 왜?’

공서련도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자신의 삶이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언제든 어느 상황에서든 천제현과 함께라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녀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심지어 숨을 쉴 때조차 그를 생각했고, 어떤 보이지 않는 끈이 그와 자신을 연결하고 있다고 여겼다. 얼마나 먼 곳을 가든 그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낼 수 없었고, 그를 보지 못하는 날에는 마음속이 텅텅 빈 것처럼 공허했다.

공서련도 천제현이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줄곧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녀는 당황했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몰라! 될 대로 되라지!’

“으흠!”

가벼운 기침 소리가 들렸다.

비탈진 곳에서 심빙우가 유령처럼 나타났다. 얼굴을 가리고 있어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이 둘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두 눈에서 뭔가 복잡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러나 바로 아무 일 없다는 듯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방해해서 미안.”

공서련이 놀란 토끼마냥 펄쩍 뛰었다.

“심 선생님, 그게 아니고, 얘가 이상하게…….”

‘이런! 이 중요한 순간을 망쳐 버리다니!’

천제현이 아쉬움의 입맛을 다졌다.

“이거 너무한 거 아니에요? 우리가 무슨 불륜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떳떳하게 연애하자는 건데.”

천제현이 거리낌 없이 공서련을 확 끌어당겼다.

“누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조만간 공서련과 결혼식을 올리려고 합니다. 축하해 주실 거죠?”

심빙우는 여전히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정말 축하해!”

공서련이 손을 허리에 얹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라는 거야? 이 나쁜 놈아! 내가 하겠다고 했어? 어디서 헛소리야!”

“이러는 게 어디 있어요? 거절하는 거예요?”

“내가 언제 거절한다고 했어? 음…… 난 그냥……. 우리 나이도 얼마 안 됐고, 이건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고…… 아니 갑작스럽다기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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