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2
제532장 뒤처리(2)
남하국 사람들은 분주히 뛰어다니며 난민을 위로했다.
공씨 자매, 남궁혜, 비비안 등은 침통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특히 감정이 풍부하고 동정심 많은 공서련은 마음이 아파 어쩔 줄 몰랐다. 그녀는 고작 반년 만에 왕성이 흉가로 변해 있을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다. 이곳의 백성들은 굶주림에 피골이 상접했고, 의지할 데 없이 떠도는 영혼처럼 폐허 속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이것이 전쟁의 참혹함이란 말이야?’
공서련은 자책감에 몸서리쳤다.
남하국의 북부지방이 위험에 빠져 수천만 명의 백성이 고통에 몸부림칠 동안 그녀는 풍족하게 먹고 마시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거기다 애써 이곳을 잊으려고도 했다. 그녀는 이곳에 천제현이 없었다면, 남하국도 화를 면치 못했을 것이고 자신도 지금 여기 있는 이들과 똑같은 일을 당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신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자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공서련이 천제현의 옷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도시를 복구하는 건 내가 도울게!”
천제현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를 재건하는 건 쉽지만, 지키는 게 어렵죠. 우리가 북방의 일을 잘 해결해야 해요. 그래야 이런 일이 재발하는 걸 영원히 막을 수 있죠.”
공화련은 비비안에게 공간창고를 통해 난민에게 대량의 약품과 보급품을 공급하라고 부탁했다. 이러면 우선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이다. 남부의 물자와 지원부대는 수일이 지나야 도착할 수 있으므로 그전에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몇 사람이 모여 간단한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는 남하국의 피해 복구와 전쟁 포로 처리 문제, 북방초원 청소 등을 주제로 이루어졌다.
대융왕의 전략은 원칙적이고 다소 보수적이었으나 엄밀히 말하면, 썩 괜찮은 전략에 속했다. 대융국은 인간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토지를 개간하고, 요새를 구축하고 선박을 주조하고 장비를 제조했다. 이것으로 그들은 힘을 비축하고 최적의 시기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유일한 실수는 남하국이 이토록 빨리 성장할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대융국은 완전히 끝났다. 남하국은 왕역, 창주, 노주에서 최소 18만 명에 달하는 마수령 부대를 포로로 잡았고, 이 중에는 장응국에서 온 악마랑 기병 10만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신병처리가 지금 가장 골치 아픈 문제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저들 모두 극악무도한 침략자가 아닌가. 그러니 옛 왕성에서 저들을 화형 시켜 백성의 분노를 잠재우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게 마땅할 터였다. 하지만 이성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끊임없이 속삭였다.
포로 중 6~7할이 견융초원의 정예병이었고, 나머지는 장응국이라는 아득히 먼 나라에서 파견한 지원군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장응국을 등진 상태라 이들의 힘을 잘만 이용한다면, 북방에서 장응국의 침략에 대비할 방어막을 만들 수도 있다.
천제현은 자신의 의견을 다시 피력했다.
“견융초원으로 돌려보내, 괴뢰정권을 만들어야 합니다. 북융국을 세우는 거지요. 이 초원을 완벽하게 장악해야 영원히 다리 뻗고 잘 수 있어요.”
“괴뢰정권을 만든다고?”
남하왕은 속으로야 백 번 찬성했지만, 실제로는 가능성이 낮다고 여겼다.
“견융과 남하국은 오랜 숙적인데 괴뢰정권을 만든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쉽겠소?”
“사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이번 일은 기적상회에 맡겨 주세요.”
공화련이 계책을 내놓았다.
“우리 숲에는 고수들이 많습니다. 마수령을 포함해 다른 종족까지 더하면 규모가 상당하죠. 실력이 출중한 마수령을 견융초원에 파견해 식민세력으로 키울 수 있어요. 그리고 샤먼 제사장 루츠도 있고요, 이 대초원에서 샤먼교를 부흥시킬 수 있다고만 하면 그도 구미가 당길 거예요.”
천제현이 눈빛을 반짝였다.
“견융초원은 샤먼교에 더할 나위 없는 토양이자 기반이 되어줄 겁니다. 샤먼 주술사의 실력은 직접 본 적도 있으니 루츠의 능력과 우리 기적상회의 실력이 있다면, 그리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 저들을 장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항복을 받아내든, 독충으로 조종하든 그들을 우리 발아래 꿇릴 수 있어요.”
“맞아요. 장응국이 썼던 방법을 우리가 따라하지 말란 법도 없지요. 식민세력을 이용해 견융초원을 통치하고, 종교를 통해 통치권을 강화하는 겁니다. 저희가 이 대초원을 완전히 장악해야 초원이든 기적상회든 상생을 이룰 수 있어요. 초원부족이 바보가 아니라면, 장응국이 아닌 우리를 선택하게 될 겁니다!”
남하왕은 두 사람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며 탐색하듯 물었다.
“정말 자신 있는가?”
수십만 정예군을 초원으로 되돌려 보낸다? 이는 남하국에 있어 엄청난 도박이나 다름없다.
“폐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북융국을 통치할 적합한 국왕만 추대한다면, 몇 달 안에 북융국 정권을 세울 수 있습니다!”
천제현은 광활한 대초원을 훑어보았다.
“지금 남하국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남하국의 옛 땅을 모두 찾아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호를 대하로 바꾸는 게 어떨까요?”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도통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남하왕조차 북받쳐 오르는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고, 고천추와 운천학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기뻐했다. 옛 영토를 되찾아 대하국을 재건하는 것은 바로 남하국의 오래된 염원이었다.
‘곧 있으면 이 염원이 실현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국력과 인구 면에서 시기상조일 순 있으나 현재 왕국의 잠재력과 발전 속도를 봐서는 국호를 대하국으로 바꿔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견융초원에 북융국 괴뢰정권을 세우려는 계획은 갑작스럽게 내린 결정이 아닌 기적성이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전략이었다. 천제현도, 공화련도 현재 자신들이 처한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외부세력인 기적상회가 혼돈의 숲에서 발전해 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겉만 보면, 혼돈의 숲은 아무것도 없는 황야이지만, 이 황량해 보이는 이면에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다. 이곳에서는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활동하는 세력이 많기 때문이다. 기적성은 명목상 영원의 숲의 부속 세력이지만, 실질적으로 영원의 숲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가 없다. 지금은 시작 단계라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얼마 못 가 사방팔방에서 방해공작이 벌어지거나 야심을 품는 세력들이 잇달아 생겨날 것이다.
앞으로 기적성은 갖가지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영토 개척은 차치하더라도 공장 설립, 병영 운영, 대규모 채굴 등에서부터 다른 세력의 시기와 질투를 받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지금 이 기회에 힘과 물자를 지원하여 외부 세계에 식민 세력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기적상회의 전송과 운송 능력을 이용하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고 더 많은 투자와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북융국은 향후 기적상회가 지배할 독립된 왕국이 될 테니 괴뢰정권이 갖는 의미가 막중할 수밖에 없다.
공화련은 남하국 북방지역의 평원을 연구한 적이 있다. 이 평원은 왕역평원, 창주평원, 견융초원 등을 모두 아우를 만큼 광활한 면적을 자랑한다. 게다가 앞으로 세력을 뻗어 나가면, 초원의 면적은 수천만 킬로미터에 이르게 된다. 4~5개 왕국과 국경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어 기반이 나쁜 편은 아니었으나 다만, 토착부족과 마수령이 너무 멍청할 따름이었다.
견융초원은 대평원에서 60%를 차지한다. 평원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지형은 완만하여 환경적인 위험이 없어 앞으로 중앙의 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견융초원은 절대 불모의 땅이 아니다. 마수령은 수천만에 이르고, 기름진 들판이 십만 리나 펼쳐져 있다. 인구, 토양, 자원 등 모두 충분히 개발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다만 머리 나쁜 마수령이 개발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견융초원에 괴뢰정권을 수립하면 남하국도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다. 북방지역이 안정적으로 번영하고 발전하면 자원을 함께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건립될 대하국 이익과 일치하는 데다 남과 북이 서로 이어지면, 향후 전국급의 초강대국이 될 것이다.
일이 기분 좋게 결정되자 천제현은 바로 그 자리에서 일사불란하게 지시했다.
“동방호연은 견융초원 전선에 주둔하셔서 현 상황을 유지해주세요. 루츠는 샤먼 제사장과 함께 견융초원에서 샤먼교를 포교하고, 아르놀트도 초원에서 세력을 끌어 모을 방법을 궁리하세요. 이 땅은 크고 비옥합니다. 얼마나 많은 영토와 사람을 끌어 모을 수 있는지는 여러분의 재량에 달려 있어요.”
좌중은 모두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특히 오크인 루츠는 기적성 사먼교의 수석 제사장으로, 그 역시 샤먼교를 세우기에 견융초원이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견융의 각 부족은 현재 생활이 궁핍한 데다 전쟁에서도 참패를 겪은 터라 종교가 뿌리내리기가 가장 좋은 시기이다. 기적상회가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기만 하면, 샤먼교는 이 땅에서 흥성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고민이 있어 망설여지긴 했다.
“성주님, 초원이 좋긴 하지만 숲에서 너무 멀어요. 전송탑을 통하면, 중주까지는 바로 갈 수 있는데, 중주에서 견융까지는 며칠이나 걸리니 우리 손이 닿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내가 그것까지 생각 안 했을까봐? 다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역시 놀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중주에서 견융까지 거리가 멀긴 하죠. 효율을 따져본 결과, 최대한 빨리 북융국에 전송탑을 구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북융국의 전송탑과 기적성의 전송탑이 개통되면 언제든 두 지역을 오갈 수 있지요.”
모든 족장이 크게 기뻐했다.
정말이지 엄청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전송탑이 세워진 대초원이라, 기적성의 뒤뜰이 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기적성의 백성들은 언제든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니 관리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제 족장들은 이 지역에서 군사를 모집하고 세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기만 하면 된다.
사람들은 격앙된 표정으로 명령에 따를 것을 약속한 후 자리를 떠났다.
“견융초원에 전송탑이 생기면 일이 더 쉬워지겠네.”
그러나 공화련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허나 지금은 전송탑 재료를 공수할 수 없어.”
이는 천제현도 고민하던 문제였다.
전송탑의 핵심 재료인 성안은 있지만, 공간수정석이 충분하지 않았다.
하프엘프가 저장해둔 재료는 이미 천제현이 다 써 버렸다. 이런 희귀한 재료는 갖고 싶다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어쩔 수 없지. 열심히 찾는 수밖에.’
천제현이 말했다.
“우리 나눠서 찾기로 해요. 큰아가씨와 작은 아가씨는 숲에서 구매하시고 저는 북쪽이나 다른 지역 쪽으로 더 들어가 볼게요. 이 일대 대국의 시장들을 뒤져 보면 분명 뭔가 소득이 있을 거예요. 이왕 간 김에 시장에 진입할 왕국도 물색하고, 그 나라 사정도 좀 살펴보고 올게요.”
북융국 정권은 하루아침에 뚝딱 세워지는 게 아니다.
다행이도 기적상회는 물자와 자원이 넉넉했기에, 모든 것은 시간에 달려 있었다.
공화련이 사람들을 데리고 기적성으로 돌아갔다. 기적성은 여전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아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그녀는 돌아가자마자 수뇌부를 구성하고 도시에 지능형 관리 기관과 체계를 구축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