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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531화 (531/729)

# 531

제531장 뒤처리

요새 안의 병사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허둥지둥하는 사이 남하국 군단은 여유롭게 항구에 입성했다. 마력대포가 불을 뿜음과 동시에 아직 남아 있던 대융국 전함을 비롯하여 항구 시설 전체가 폐허로 전락했다. 뒤이어 완전무장한 야만족 광전사들의 상륙작전이 시작됐다.

대융국 병력으로 이들을 막아내기란 역부족이었다.

기적상회 광전중형보병단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상륙작전을 마쳤다. 빈틈없이 무장한 야만족 전사들이 항구에서 수십 리 떨어진, 여전히 폭발음이 끊이지 않는 요새를 향해 빠른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온갖 마력 무기를 덜그럭거리며.

그 시각.

요새 상공에 기적 비행선 무리가 나타났다. 그중 천벌호 한 척은 무려 폭탄 투하구를 활짝 연 채였다. 언제든 기적상회의 명령만 떨어지면 막강한 위력의 고성능 폭탄이 요새 안으로 빗발칠 것이다.

끝이었다.

‘이제 다 끝났다!’

요새 전체가 절망에 휩싸였다.

광전사 군단도, 머리 위의 비행선들도, 15만 남하국 정규군도, 혼란에 빠진 요새에는 그중 어느 한쪽도 당해낼 힘이 없었다. 거칠고 사나운 마수령들조차도 좌절할 수밖에 없을 만큼 상황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위기에 몰렸을 때 발휘되는 야수 특유의 투지마저도 이 상황에서는 이미 꺾여 버린 듯했다.

추이를 지켜보던 천제현이 통신기를 들더니 공개통신채널을 켰다.

“모든 부대는 공격을 중지하라, 모든 부대는 공격을 중지하라!”

천제현의 명령에 아군 전체가 움직임을 멈췄다.

물론 요새는 여전히 육해공 삼면에서 포위당한 상태였다. 수없이 많은 무기가 요새를 겨누고 있었다. 대융국이 반격할 구멍 따위는 전무했다.

“비행선 확성기 연결해!”

천제현의 통신기가 기적 비행선에 장착된 대형 확성기와 연결됐다. 이제 요새 안에서도 그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안녕들 하셨습니까, 천제현입니다. 피차 아는 사이에 자기소개는 생략해도 될 것 같군요.”

“이미 그쪽에는 승산이 없는 듯한데, 특별히 기회를 한번 주겠습니다! 장응국에서 보낸 사령관을 처치하고 투항한다면 절대 죽을 일도, 고문당할 일도 없을 겁니다. 명예를 걸고 맹세하죠!”

“저 소리를 믿는 건 아니겠지!”

장응국 출신 사령관 둘이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소리쳤다.

“인간은 비열하고 간교한 놈들이다! 못 믿을 족속이라고!”

“이쪽이 가진 힘은 이미 충분히 확인했겠고, 잘 알겠지만 판세가 뒤집힐 희망은 없습니다. 장응국이 직접 나선다고 해도 기적상회와 남하국은 두려울 게 없다 이겁니다. 무의미한 싸움을 계속하다가 장응국을 위해 개죽음당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요? 딱 5분 기다리겠습니다. 그 후에도 원하는 대답이 안 나오면 이곳을 초토화하고 견융초원 역시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습니다. 거기 사는 당신들 부족도 무사하진 못하겠죠.”

이쯤 되면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대융국 군대에 과연 선택의 여지란 것이 있기는 하단 말인가?

마수령은 본능에 충실한 종족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절대 남하국을 당해낼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야수의 생존 본능이 눈을 떴다. 요새 안이 곧장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소란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사령관 두 명에 장응국 고급장교 십여 명까지 깨끗이 정리된 후, 수십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무기를 버리고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요새에서 걸어 나왔다.

남하국 사람들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였다.

‘아군이 절대 우위에 있는 상황에서 적군 병사들을 살려두겠다니? 저들을 몰살하면 대융국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줄 수도 있건만!’

남하국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챈 건지 천제현이 사람들을 다독였다.

“우리의 진짜 적은 장응전국입니다. 대융국이 장응전국을 배반하도록 유도만 잘하면 견융초원을 남하국과 장응국 사이의 완충지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견융초원 병사들을 죽이다니요, 필요에 따라서는 돌려보내야 할 사람들인걸요. 앞으로 무기나 기타 지원을 제공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천제현이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또 하나, 포로를 살려두는 선례를 남기는 편이 앞으로 잃어버린 땅을 되찾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천제현의 말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포로 수십만 명을 잔인하게 죽이기는커녕 배불리 먹고 마시게 해줬다는 소문 덕에 남하국은 왕역과 노주, 창주 전역을 손쉽게 되찾을 수 있었다.

대융국 군대는 안 그래도 자신감을 잃고 기강이 흐트러진 참이었다. 거기에 주력부대 수십만 명이 포로로 잡히기까지 했으니 억지로 더 버틸 이유가 뭐 있겠는가?

남하국은 반년 만에 빼앗겼던 국토를 고스란히 되찾았다.

남하국은 대융국 남부의 군사 요충지를 큰 힘 들이지 않고 점령할 것이다. 대세는 이미 기운 것이나 다름없어 별다른 이변이 생길 리 없다.

견융초원의 수천만 마수령이 전부 군사인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이 세계에서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건 수적 우위가 아니다.

기적상회의 광전사 부대 3만 명이 수십만에 달하는 적군을 섬멸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웠다. 견융의 정예군단은 오랫동안 심각한 내홍을 겪어왔고, 최근에는 큰 전쟁을 수차례나 치러야 했으니 남아날 힘이 있겠는가.

게다가 전쟁은 군사적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국력이 뒷받침되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대융국은 생활하는 것조차 각박한데 어떻게 방대한 규모의 원정군을 양성할 수 있겠는가.

물론 남부 요새에 수십만 명에 이르는 군대가 지키고 있지만, 대개 남하국에서 자원과 식량을 약탈하는 것으로 근근이 버틸 뿐이었다.

마침내 정예병 수십만 명이 전부 투항한 후 견융초원에는 병사도 식량도 남아 있지 않았고, 이와 대조적으로 천제현 휘하에는 용맹한 장병이 수도 없이 많았다. 아르놀트를 주축으로 한 숲의 토착민들은 눈 깜짝할 새에 초원의 고수들을 쓰러뜨렸다. 그들은 장응전국에서도 일류 고수 아니면 족히 이류 고수는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천제현이 왕성을 공격할 때 아르놀트 등 수십 명도 격투를 벌였고, 그가 돌아왔을 때는 새로운 송곳니 왕이 누군지 조차 몰랐다. 이후 사람들은 수색을 벌인 후에야 신임 대융국 국왕이 이미 이들에게 목숨을 잃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불쌍한 대융국 국왕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아르놀트는 그가 왕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한낱 졸개를 처리하듯 쉽게 처치했다.

남하국은 왕역 전체와 창주, 노주를 수복하는 데 성공했다.

이미 운을 다한 견융초원이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남하국에 무슨 수로 대항하겠는가.

수립한 지 반년도 안 된 대융국의 정권은 이제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이번 전쟁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 견융초원의 각 부족은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돌아온 격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서로를 비난하며 등을 돌렸고, 예전처럼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으니 무슨 반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왕역은 다시 남하왕국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과거 수백 년간 구가하던 번영과 영광을 잃어버린 뒤였다.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왕성의 전투에서 남하 3군 중 두 사람이 전사했고, 병사 십만 명 이상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성안의 수많은 사람은 반란군을 조직하여 저항해 보기도 했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왕성의 전투로 성 전체의 3분의 1이 전화에 휩싸였고, 인구 중 5분의 1이 줄었다. 대융국이 왕성을 통치한 후 그들은 도시의 보물과 자원을 모조리 약탈했고, 인간은 마수령의 노예로 전락했다. 게다가 반란군은 여지없이 목숨을 내놓아야 했기에 인구는 다시 5분의 1이 줄었다.

대융국의 남하국 공격은 실패로 끝이 났고, 군대 전체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선견지명이 있던 전임 송곳니 왕이 최정예 부대인 악마랑 기병을 왕역에 남겨 두었다. 그리하여 송곳니 왕 자신을 비롯하여 모든 군사가 몰살당했지만, 대융국이 후방을 지킬 힘은 유지할 수 있었다.

송곳니 왕이 전사 이후 장응국은 신임 국왕을 급파했다.

장응국은 최소 8개국과 동시에 전쟁을 치르고 있던 터라 주변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갔고, 이로 인해 남하국과 같은 소국을 공격할 여력이 없었다. 따라서 당분간 지원군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대융왕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전임의 실패 경험을 교훈 삼아 장기전을 준비하는 것뿐이었다.

이에 대융왕은 인간 수백만 명을 강제노역에 동원해 대융국의 물자 보급을 위해 황무지를 개간토록 했고, 남부의 요새를 복구하고 무너진 항구를 복원토록 하여 장기간 이어질 대치 상황을 준비했다. 아울러 무기를 생산토록 해 앞으로 있을 결전에 대비했다. 남하국에 숨 돌릴 틈도 주지 않으려고 빈번히 교란부대를 동원해 소동을 피웠다.

이 과정에서 최소 천만 명의 노동력이 강제 동원 당했고, 그들은 폭력, 노동, 굶주림, 도주, 저항 등등의 이유로 죽어갔다. 결국 인구는 다시 반토막이 났고, 전쟁과 노역에 집중적으로 동원된 건장한 사내는 특히나 거의 씨가 마를 정도였다.

그래도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았다. 마수령족은 인간 여자에게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관심 없다고 다른 이들도 관심 없는 건 아니었다. 대융왕은 더 많은 돈과 물자가 필요했기에 젊고 아름다운 인간 여자를 대거 잡아 오라고 명령했고, 그렇게 잡혀 온 여자들은 북쪽의 일부 국가에 팔려나갔다. 그러나 절차가 다소 번거롭고 시간도 오래 걸렸기에 팔린 여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 역시 인구의 손실을 야기한 건 사실이었다.

결국 반년 동안 이어진 전란으로 백성의 삶은 피폐해졌다.

북부지방의 인구는 이제 과거의 4분의 1도 채 되지 않았다.

까맣게 그을린 옛 성문이 열렸을 땐, 과거의 탁 트이고 번화했던 거리는 실로 아수라장을 연상케 할 만큼 무너진 파편과 악취로 가득했다. 건장하고 젊은 사내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보이는 사람이라곤 여자, 아이, 노인들이었다. 다들 남루한 행세로 거적때기 같은 옷을 불안한 듯 꽉 쥐고 있었다. 왕성 사람이라고 자부심을 넘어 오만하기까지 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냥 거렁뱅이나 다름없었다.

“왕께서 오셨다!”

“역시 남하국은 우릴 버리지 않았어!”

“남하국 만세, 남하국 만세, 남하국 만세!”

거지 행색을 한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거리로 우르르 모여들었고, 이는 보는 이의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다. 과거 부유한 왕성의 국민으로 콧대가 하늘을 찔렀지만, 지금은 그저 가족을 잃고 뿔뿔이 흩어진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남하왕은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 모든 일은 북방 수비가 허술하여 왕성과 북방의 2개 주를 포기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남하왕은 과거 남하국의 무안군으로 군대를 총괄하고 전방을 지휘했으니,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대융국은 멸망할 것이오!”

“견융초원이 다시는 날뛰지 못하게 하겠소이다!”

“남하국은 기적상회와 연합하여 적들을 토벌할 테니, 여러분은 힘을 내서 도시 재건에 힘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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