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530화 (530/729)

# 530

제530장 영토수복

실탄 무기와 마력 무기에는 각기 장단점이 있다.

마력대포 같은 마력 무기는 사거리가 짧은 대신 유효살상반경 안에서는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게다가 발사체 자체가 순수한 마력파인 관계로 요격이 불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단, 고밀도로 응축된 마력을 견뎌낼 만큼 강도 높은 포신을 만들어야 하는 게 문제다. 성능 좋은 마력대포의 전제조건은 포신에 쓸 고강도 재료의 확보다.

로켓포와 같은 실탄 무기는 일단 사거리가 긴 게 장점이다. 앞으로 알파브레인을 기반으로 한 정보화, 자동화 시대가 열리면 실탄 무기의 살상력은 무시무시한 수준까지 올라가게 된다. 이러한 형태의 무기는 발사체가 실질적인 탄두이기 때문에 폭발 전까지 비행 중 마력 손실이 없다. 물론 요격이 쉽고 마력대포에 비해 파괴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단점도 있다.

천제현이 물었다.

“남은 로켓은 얼마나 되죠?”

공화련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무기잖아. 실전에 동원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비축량까지는 준비 못 했어. 아직은 성능시험 단계 정도니까.”

“에이, 김빠지게.”

천제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공장 제대로 돌아가는 거 맞아요? 지금처럼 해서는 곤란하다고요. 자, 일단은 숨이 붙어 있는 놈들부터 마저 처리하고 봅시다!”

로켓탄은 더 없지만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거붕수 여러 마리가 죽었고 병사 중에도 사상자가 엄청났다. 중주 근처에 와보기도 전에 충격적이다시피 한 타격을 입었으니 생존자들에게 전의 따위가 남아 있을 리 없었다.

함대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백 척에 달하는 남하국 군함이 물살을 헤치며 질주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함대의 목표는 사주호를 건너 창주 항구에 상륙, 대융국 요새를 치는 것이었다.

로켓포에 당한 패잔병들은 굳이 남하국 군대가 직접 쫓을 필요도 없었다.

상어해적단이 나서 퇴각하던 대융국 군사들을 일망타진했다.

천제현이 떠난 이후 상어해적단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대방주는 이미 진령 경지에 올랐고 해적단 소속 인원은 6개월 만에 거의 두 배로 늘었다. 이제 상어해적단은 명실상부한 남하국 최대 방파였다. 사주호 부근에서만큼은 누구도 감히 상어해적단을 건드리지 못했다.

이때 광전사들을 싣고 남주를 출발한 배가 남하국 군대와 합류했다. 완전체가 된 함대는 한층 더 위풍당당한 기세로 창주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반격의 날인가.

남하국과 견융족은 질긴 악연이었다. 특히 왕성과 북방 영토를 빼앗기고 수많은 사람이 살육과 약탈의 희생양이 되고부터 남하 백성들은 견융족이라면 더더욱 치를 떨었다. 하지만 대융국은 그들에게는 너무 버거운 상대였다.

그랬던 남하인들에게 다시 전의를 불어 넣어준 이가 바로 천제현이었다.

기적상회와 함께하는 이상 패배란 있을 수 없는 일.

천지라도 집어삼킬 듯한 병사들의 사기를 실은 남하국 함대는 단 1초도 멈추지 않고 질주했다. 대융국은 기습 공격을 당하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 하고 있을 것이다. 남하국이 노리는 것도 바로 그 점이었다. 방심한 상대를 단숨에 박살내고 잃어버린 국토를 되찾는 게 바로 함대의 목적이었다.

천제현이 말했다.

“이대로 덤볐다가는 사상자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날 거예요. 우리가 먼저 가서 수를 좀 써두죠.”

“그래!”

비비안이 곧장 천제현을 데리고 공간이동을 시작했다.

비비안의 재능은 실로 훌륭했다. 순간이동 한 번에 족히 수백km는 움직이는 듯했다. 공간 재능이라면 천제현에게도 있었지만 아직 그는 단거리 전송 정도가 한계였다.

“다 왔어!”

두 사람은 함대보다 하루 먼저 창주에 도착했다.

이곳은 왕역과의 인접지대로, 창주 내 항구의 대부분이 위치한 지역이었다. 본래는 해상교역이 활발한 경제중심지였으나 대융국 마수령들에게 점령당한 뒤로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창주 요새에 잠입한 천제현과 비비안은 구석구석에 고성능 시한폭탄을 설치했다. 2세대 마력 기술을 적용해 위력을 획기적으로 키운 폭탄이었다.

모든 준비 작업을 마친 후.

천제현은 쥐도 새도 모르게 요새를 빠져나왔다. 남은 건 느긋하게 볼거리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

허공이 갈라지는가 싶더니 천제현을 붙든 비비안이 공간의 틈에서 폴짝 뛰어나왔다. 비비안은 지금 땅바닥에 대자로 뻗기 직전이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에는 송골송골 식은땀까지 맺혔고, 숨을 몰아쉬느라 말도 제대로 뱉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천제현이 숨통이 트이도록 비비안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며 말했다.

“뭐 얼마나 움직였다고 벌써 지쳐요.”

“말이야 쉽지,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다고.”

조금 전까지 비비안은 평균 30초에 한 번씩 순간이동을 시전해야 했다. 게다가 인간 한 명에 여우 한 마리까지 달고. 체력 소모가 엄청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똑같이 공간 재능 있으면서, 이 정도 거리는 스스로 좀 하란 말이야.”

‘그래서 불만이다 이건가.’

“제가 할 줄 아는 건 많아도 제대로 하는 건 없잖아요. 특히 공간 다루기만큼은 절대 공주님을 못 쫓아가죠!”

능글맞게 어린 엘프의 비위를 맞춰준 천제현이 짐짓 의미심장한 투로 속삭였다.

“적진을 누빌 때는 긴장의 끈을 놓쳐서는 안 돼요. 순간이동 오차 범위는 반드시 50cm 이내로 유지해주세요. 이게 다 공주님 잘되라고 하는 훈련이라고요. 조금만 더 실력이 늘면 이리저리 뛰어다닐 필요도 없이 앉은 자리에서 정밀한 공간의 균열을 이용해 폭탄을 설치할 수도 있을 걸요.”

“정말? 나 더 열심히 할게!”

순진한 비비안은 결국 천제현의 농간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럼 이제부터는 뭐 하면 돼?”

요새 전체의 상황을 살피는 데는 새끼 여우가 가진 신의 눈동자면 충분했다.

마력폭탄을 설치하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조로웠다. 천제현과 비비안은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이제 함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새벽녘을 지나 하늘 한쪽이 서서히 밝아질 때 즈음, 남하국 함대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 출격한 군함은 무려 수백 척에 달했다. 선두에서 이 거대한 함대를 이끄는 건 마력을 동력원으로 쓰는 신형 포함(砲艦)들이었다. 수면에 나란히 늘어선 군함들이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대융국 병사들도 눈이 달렸기는 매한가지, 그들이라고 군함이 안 보이겠는가?

“비상!”

“호수에 대규모 함대가 출현했다!”

“젠장! 남하국 원숭이 놈들이야! 남하국 원숭이들이 쳐들어왔다!”

“함대 출격! 공중부대 출격! 원숭이들을 모조리 수장시켜라!”

남하국 함대가 항구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몇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였다. 요새 전체가 신속히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북방 영토를 점령한 지도 어언 반년, 대융국이라고 그간 손 놓고 빈둥거리기만 했을 리가 없다. 창주 항구에는 이미 백여 척이 넘는 군함이 정박 중이었다. 대융국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끌어 모은 배들이었다.

명령을 받은 군함들이 항구를 빠져나와 전투 진형을 갖추려는 순간, 함대 여기저기에서 연속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상어해적단이 군함 바닥에 붙여둔 마력폭탄이었다. 본격적으로 붙어보기도 전에 대융국 군함 상당수가 호수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대융국은 이제 마음이 급했다.

당장 공중부대가 출격했다. 이제 대융국이 믿을 건 공중전력뿐이었다. 남하국에 있다고 알려진 거대한 기적 비행선은 전투용으로 쓰기에는 기동성이 너무 떨어졌다. 남하국에 공중전력이라 부를만한 건 고공포탄을 투하하는 천벌호 정도가 고작이었다.

천제현의 입꼬리에 냉소가 걸렸다.

“죽고 싶으면 뭘 못할까!”

대융국 공중부대가 함대를 향해 급강하하기 직전, 함대 앞쪽에 도열한 군함들이 마력 탄알을 쏟아냈다. 빗발치는 탄알에 앞도 제대로 안 보일 지경이었다. 곧이어 갈기갈기 찢긴 독응수 기병들의 살점이 수면으로 낙하하자 호수가 금세 붉게 물들었다.

마력총.

분명 마력총이었다.

남하국 군대가 마력총을 사용한다는 건 대융국 마수령들도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새로운 형태의 무기를 상대할 마음의 준비도 이미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단 근접전 국면을 만들기만 하면 마력총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거라는 마수령들의 당초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상대가 퍼붓는 공세는 상상보다 열배 백배는 더 맹렬했다.

남하국 함대에는 남주에서 온 3만 명의 광전사 역시 끼어 있었다.

이들은 기적상회가 거금을 들여 자체적으로 육성한 군단이었다. 육박전에 특화된 3만 명의 야만족 광전사. 기적상회는 이들을 열 명씩 한 조로 묶어 조별로 폭풍소총과 개인용 마력대포를 하나씩 지급하고, 나머지 인원은 기관총으로 무장시켰다.

광전사가 3만 명이라는 건 이들 손에 들린 폭풍소총이 3천 정에 달한다는 의미였다.

폭풍소총 3천 정이면 거대한 죽음의 폭풍을 일으킬 수 있었다.

게다가 기적상회는 회전식 다중총열을 갖춘 중형총기까지 개발해냈다. 여섯 개의 총열에서 발사되는 총알은 분당 5~6천 개, 폭풍소총보다도 훨씬 더 위력적인 무기의 등장이었다. 기적상회 소속 무기개발 전문가는 이 무기에 ‘파멸중기관총’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고정식 총기인 관계로 이동하면서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설치만 하면 주변 지역 전체를 순식간에 초토화할 수 있었다.

재료와 마력원 모두 최상급이어야만 하는 관계로 파멸중기관총은 대량 생산이 어려웠다. 현재 보유량은 군단 전체를 통틀어 단 10정,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살상 효과는 이미 무시무시했다.

힘의 격차가 이토록 현저한데 굳이 싸워봐야만 결과를 알겠는가?

물론 천제현도 상대를 무시하고 싶어서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대융국 공중부대의 규모를 당장 몇 배로 뻥튀기한다 해도 남하국 함대에는 전혀 위협이 안 되는 게 현실이었다.

기적상회가 세계 각지에서 사들인 각종 재료와 금속은 대부분 마력 무기 제조에 쓰였다. 기적상회는 여태껏 대규모 무기 매매에 나선 역사가 없었다. 첨단 무기는 모조리 상회 휘하 부대에 지급했고, 그 아래 등급은 남하국에 판매했다. 말이 같아서 군단이지, 천제현이 이끄는 병력은 세상의 다른 군단들과는 전혀 차원이 달랐다.

사격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대융국 공중부대원들은 다시는 남하국 함대에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요새를 봉쇄하라!”

“요새를 봉쇄하라!”

당황한 늑대족 사령관들이 소리쳤다.

‘설마하니 남하국이 이렇게 강해졌을 줄이야!’

무기의 발전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왕성 전투로부터 채 1년이 지나기도 전에 남하국은 이미 화력을 열 배도 넘게 키운 상황이었다.

대융국 수비병들이 허겁지겁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던 그때.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요새 안에서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천제현과 비비안이 설치한 마력 시한폭탄이 터진 것이었다. 제아무리 신형 모델이라고 해도 마력폭탄 몇십 개로 주둔군 수십만 명 규모의 요새를 파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적군을 몰살시키지 못했다고 폭탄이 쓸모없는 물건이 되는 건 아니었다. 마력폭탄이 설치된 지점은 요새 안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였다.

일련의 폭발은 대융국의 방어 태세에 혼란을 초래했음은 물론 애써 설치한 참호와 보루마저 전부 무력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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