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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529화 (529/729)

# 529

제529장 겸사겸사(2)

몇 시간 후.

중주 전송탑에 연이어 눈부신 섬광이 번쩍였다.

미노타우로스 족장 아르놀트, 샤먼교 제사장 루츠, 식인마 족장 나다니엘, 호랑이족 족장 안드리에…… 혼돈의 숲에서 가장 강력한 용사 수십 명이 속속 도착했다.

남하왕이고 신풍후, 금전후고 표정 관리가 안 되기는 매한가지였다.

체구도 제각각인 온갖 이종족들이 바글바글 한데 뒤섞인 광경은 몹시도 낯설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들이 전부 진령 3성 정점 이상의 고수라는 점, 심지어 개중 몇몇은 이미 진령 4성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진령급 고수가 수십 명이라니!’

이 작은 나라에 등장하기엔 너무나 비상식적인 진용이었다.

한 명 한 명이 남하국에 당해낼 자가 없는 절정고수.

고작 수십 명에 불과한 이들이 전장에서 발휘할 위력은 15만 명 규모의 남하 정예병력을 훌쩍 뛰어넘으리라.

여기서 비위를 거슬렀다가는 자칫 중주가 쑥대밭이 될 수도 있었다. 중주성에는 이들을 막아낼 만한 실력자가 없었다.

“성주님!”

아르놀트가 거친 콧김을 뿜으며 말했다.

“어떻게 눈 깜짝할 사이에 생판 모르는 데 와 있는 겁니까? 여기가 대체 어디냐고요!”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는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식인마의 살기 어린 시선이 장내를 훑자 자리에 있던 인간들 모두가 숨을 죽였다.

“모두 잘 들으십시오.”

천제현은 뒷짐을 진 자세로 그들 앞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흉악한 삼림 토착민 수십 명 앞에서도 여전히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기회를 드리려고 합니다. 이곳은 혼돈의 숲 바깥에 있는 나라로 저 위쪽 북방에는 아주 광활한 평원이 펼쳐져 있죠. 먹을 것이 지천인 드넓은 땅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을 이 자리에 부른 것은 땅과 식량을 손에 넣을 기회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토착민들의 눈이 번뜩 빛났다.

혼돈의 숲 바깥까지 나와서 땅과 식량을 약탈할 수 있다니, 상상조차 못 해본 일이었다.

“지금 그곳을 차지하고 있는 건 애처로울 정도로 힘없는 종족입니다.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예, 성주님!”

토착민 전사들의 두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손짓으로 전사들을 진정시킨 천제현이 말했다.

“이쪽은 남하국 국왕 폐하이십니다!”

겨우 정신을 차린 남하왕이 시종들에게 먹을 것을 준비시켰다.

“경황이 없었던지라, 손님 접대에 다소 소홀함이 있을지도 모르겠소. 여봐라, 용사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내오너라!”

태어나서 한 번도 숲 밖에 나와본 적이 없는 촌뜨기들이 언제 인간족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구경이나 해봤겠는가?

국왕을 비롯한 중신 모두가 극진한 대접을 아끼지 않았으니, 덕분에 숲의 전사들은 팔자에 없던 호강을 누렸다.

그로부터 이틀간.

먹고 자고 이동하는 내내 남의 시중이 이어졌다. 토착민들에게 이곳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혼돈의 숲 일행이 거리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중주 전역에 일대 혼란이 일었지만, 방송국을 비롯한 대중매체가 나서서 이들을 소개한 뒤로는 사람들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 기괴한 자들은 다름이 아니라 남쪽 삼림지대에서 온 지원군이었던 것이다.

남하국을 위해 대융국을 박살 낼 진짜 실력자들!

경계심을 푼 남하국 국민들은 혼돈의 숲에서 온 전사들을 영웅으로 대접했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환대에 아르놀트 일행은 비행선을 타고 하늘 끝까지라도 올라간 기분이었다. 어느새 걸음걸이는 우쭐우쭐, 가만히 있어도 어깨가 절로 으쓱으쓱해졌다.

그런데 바로 이때, 사주호 상공에 정박 중이던 정찰비행선이 화면과 함께 경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적군 포착, 북서쪽에서 대형 비행마수가 접근 중입니다!”

화질은 흐릿했으나 대략적인 윤곽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2만 명 규모의 장응전국 기습부대였다. 지난번 수상전에서의 참패를 교훈 삼아 이번에는 덩치 큰 거붕수를 이용해 병사들을 나르기로 한 모양이었다. 거붕수 한 마리가 실어나를 수 있는 인원은 대략 6~700명, 이런 거붕수 수십 마리 외에도 여타 비행부대 역시 화면상에 확인됐다. 기동성에 중점을 둔 부대 편성이었다. 놈들의 목표는 싸움이 아니라 항구와 공장지대 등 핵심시설에만 피해를 준 뒤 재빨리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대형 운송마수와 비행부대의 조합.

공중전에 취약한 남하국의 약점을 노린 작전이었다.

그래서 그간 기적상회는 올드만 마을을 통해 근방 부족들에게서 비행마수를 매입하는 동시에 기적성에서도 비행마수를 사들여 훈련하고 있었다. 문제는 거리였다. 전송탑의 운송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 공간문을 만들지 않는 한 혼돈의 숲에 있는 마수들을 전부 이곳으로 옮겨올 방도는 없었다.

물론 비행마수를 옮겨오는 게 필수라는 얘기는 아니었다. 놈들쯤이야 지금 여기 있는 전력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니까.

올드만 마을에서 얻은 실버오일은 기적상회에 차세대 마력을 제공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신무기 개발로 이어졌다.

올드만 마을 시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재료를 공급받던 남하국 비밀 무기 공장에서 드디어 신무기 시제품이 완성된 참이었다.

공화련의 연락을 받자마자 공장에서 최신형 무기가 옮겨져 왔다.

얼핏 마력대포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어찌 보면 또 완전히 다른 무기였다.

마력대포는 목표물 타격에 마력파를 이용한다. 위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비행거리가 늘어날수록 응집됐던 마력이 점차 흩어지면서 손실된다는 점이다. 일정 거리를 넘어서면 아예 마력파 자체가 소멸할 수도 있으므로 사거리와 유효 살상 반경에 제한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기존의 마력대포와 달리 실탄을 사용하는 대형 로켓포였다.

기적상회 직원들이 1장이 넘는 로켓탄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날랐다.

어른 허벅지 굵기의 로켓탄은 전체가 남정석으로 제작됐고, 표면에 빽빽하게 자리 잡은 엄청난 양의 마력주문에서는 묵직한 마력 파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로켓탄 하단과 로켓 발사기 내부에 서로 맞물리는 마력진이 있어서 발사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마력이 로켓탄을 밀어 올려. 사거리 50km에 평균속도는 초당 3.5km에 달하고, 장애물에 부딪혀 강한 충격을 받으면 탄두가 폭발하는 원리야.”

“장거리 타격에 제격이겠군요!”

“2세대 마력이 적용된 덕에 파괴력이 대단하지. 진령 중후기 술사라 해도 정면으로는 못 당해내.”

공화련의 설명이 이어졌다.

“원래 용도는 요새처럼 고정된 목표물을 파괴하는 거지만, 이제 알파브레인이 있으니 이동 중인 적군 부대에 적용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해.”

천제현이 말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죠. 제로, 준비됐어?”

“준비완료 상태입니다!”

“좋아, 가자!”

중주항에는 못 보던 형태의 전함이 여러 척 정박해 있었다. 남하국 왕가와 기적상회가 공동으로 연구 개발한 차세대 군함으로, 한 단계 발전한 동력원에 1세대 마력대포까지 적재한 배들이었다. 속도든 전투력이든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건 물론이었다.

로켓 발사기 다섯 대가 대형 군함의 갑판으로 옮겨졌다.

로켓탄 발사는 사람 손을 거치는 대신 제로를 주축으로 한 임시 관제탑에서 맡기로 했다. 관제탑은 로켓 발사기뿐 아니라 정찰비행선과도 연결됐고 적의 위치, 속도, 방향 등 각종 탐측정보가 즉각적으로 마력행렬 컴퓨터에 전해졌다. 열 개의 마력 기둥을 동력원으로 시스템 전체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1세대 알파브레인은 과도한 크기가 단점이었으나, 그래도 초당 5억 회에 달하는 연산속도에 힘입어 대량의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해냈다. 적의 위치, 행동궤적, 비행속도를 무기 데이터에 대입하자 정밀한 타격 궤도가 계산되어 나왔다.

남하국 군대가 전원 집결했다.

중주성 정예군 15만이 전함에 탑승했고, 남주 광전사 3만도 본진으로 접근 중이었다. 대융국의 일거수일투족이 남하국 군대에 빠짐없이 보고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놈들의 기습작전은 절대 성공할 수가 없었다.

다만 망원경으로도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거리에서 비행 중인 적군을 과연 정확히 타격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였다. 가만히 있는 도시라면 모를까, 움직이는 소형 목표물을 이 거리에서 맞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하왕과 신하들도, 아르놀트와 루츠 일행도, 모두가 갑판에 나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표물 사거리 진입, 조준 완료. 발사 대기, 예상명중률 87%!”

제로의 음성은 기계음이나 마찬가지로 무미건조했다.

“발사하시겠습니까?”

텅 빈 하늘을 올려다보던 천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제로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발사!”

미세하게 각도를 튼 로켓 발사기가 연속적인 굉음을 뿜는 동시에 뾰족한 장창처럼 생긴 로켓탄 다섯 개가 창공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처음에는 희미한 청백색 궤적만을 달고 날아가던 로켓이 곧 맹렬한 화염에 휩싸였다. 최고 속력에 도달한 동체가 공기를 가르며 격렬한 마찰을 일으킨 탓이었다.

무시무시한 속도.

발사 직후부터 음속을 돌파하면서 소닉붐을 일으킨 로켓탄은 이에 그치지 않고 계속 속도를 올렸다. 최고속력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몇 초였다. 초당 3~3.5km의 속도, 음속의 열 배에 가까운 빠르기였다.

음속의 열 배라니, 글자만으로도 경악하기에 충분했다.

1km 상공의 대융국 군대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채로 비행 중이었다. 그들이 하늘 저 멀리에서 접근하는 밝은 빛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너무 늦어 버린 뒤였다.

음속을 훌쩍 넘는 속도로 날아오는 로켓탄 앞에서 창공을 찢는 파열음을 감지하는 일 같은 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마찰열로 인해 운석처럼 활활 타오르는 로켓탄이 순식간에 대융국 군대를 덮쳤다. 비명을 지를 겨를조차 없이 다섯 개의 탄두가 정확히 거붕수에게 명중했다.

폭발이 아니라 폭풍이 일어났다.

무한히 팽창하는 마력 폭풍.

폭풍에 휩쓸린 거붕수의 몸뚱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잘게 다져진 고깃덩이로 변했다. 수백에 달하는 대융국 정예군 역시 흔적도 없이 찢겨 사라졌다.

공포.

그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함대에서도 저 멀리 하늘을 휩쓰는 마력 폭풍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탄두 충돌 시에는 운 좋게 목숨을 건졌다 해도 생명체가 저런 폭풍 속에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했다.

“말도 안 돼!”

남궁혜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저런 위력이 가능하다니!”

천제현이 흡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쓸만하군요, 대량생산이 필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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