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6
제526장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그런데 성주님…… 이런 식이라면 인공지능을 만들기가 몹시 어렵지 않겠습니까? 아까 말씀하시다 만 두 번째 방법은 무엇입니까?”
“두 번째 방법은…….”
천제현은 일부러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뜸을 들였다.
“인공지능체를 컴퓨터의 핵심부품으로 삼는 겁니다. 즉, 인공지능체를 초월마력컴퓨터에 삽입하는 거죠. 그렇게 하면 아무리 초급 인공지능이라도 컴퓨터의 뛰어난 계산, 저장, 분석 능력과 결합되어 상상할 수 없는 존재로 변모한답니다!”
하프엘프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성주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어째서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거야?’
그때, 비비안이 통신기로 연락을 해왔다. 이미 남하국 중주성에 도착해 전송탑을 만들고 있으며, 반나절 정도면 가동이 가능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들은 천제현의 눈이 반짝 빛났다.
“제대로 설명하려니 힘들군요. 백 번을 말하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겠죠. 클라크 장로님, 저와 함께 남하국에 한번 다녀오시죠!”
“성주님, 지……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클라크는 혼돈의 숲에 380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숲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다. 아니, 숲 외부로 나갈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혼돈의 숲은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 안에 충분한 자원과 공간이 있었고, 하프엘프들이 살아가고 번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하국에 간다고요? 인간들의 나라에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비비안 부성주가 이미 전송탑을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조금만 있으면 곧 길이 뚫릴 겁니다.”
‘혼돈의 숲을 떠나 인간들의 나라에 간다고?’
비비안에게 전송탑이 완공되었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천제현은 일행을 데리고 기적성의 전송탑으로 갔다. 그리고 상대의 공간좌표를 테스트해 전송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모두 준비하세요. 공간여행이 시작됩니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송진을 발동시켰다.
주변 공간이 미미하게 진동하는 듯하더니 무형의 마력이 빠르게 모이기 시작했다.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할 정도의 공간 역장이 만들어지자 공간 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허공에 가득한 원소들이 넓게 퍼지면서 눈부신 흰색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야!’
천제현이 살던 3만 년 후의 미래에는 어디에나 전송탑과 공간문이 있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화장실 갈 때도 전송문을 통할 정도였달까. 그런데 이 과거의 세계에서 전송은 매우 특별하고 귀한 이동방법이었다.
빛이 사라지자 천제현의 주변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푸른 산과 맑은 물, 기암괴석이며 폭포, 풀과 나무들은 사라지고 인간족 특유의 거대한 궁전이 보였다. 운천학과 고천추를 비롯한 수많은 운문학자들, 그리고 남하왕, 신풍후, 금전후 등 모두가 모여 이 기적과도 같은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성공입니다!”
고천추와 운천학이 함성 수준으로 외쳤다.
뒤이어 모든 학자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고, 남하왕과 신풍후, 금전후 등 나머지 사람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들의 두 눈으로 천제현이 전송되어 나타난 것을 봐놓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렇게 신통방통한 기술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눈앞의 사실이 말해주고 있었다.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아니, 최소한 천제현에게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것을.
“진국군을 뵙습니다!”
“진국군을 뵙습니다!”
“운몽후를 뵙습니다!”
“…….”
천제현의 옆에서 다시 흰색 빛이 몇 번 번쩍이더니 공화련과 공서련, 남궁혜 등 못 본 지 오래된 지인들이 하나둘씩 남하국으로 돌아왔다.
남하국의 전설 같은 존재들이.
특히 천제현은 남하국에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신처럼 숭배되고 있었다. 그의 명성과 지위는 남하왕에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천제현이 시시덕거리며 다가와 인사했다.
“모두 오랜만입니다. 폐하, 별고 없으셨는지요?”
남하왕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때, 다시 한 번 흰 빛이 번쩍이고 클라크가 나타났다.
그를 본 사람들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프엘프들은 인간과의 교류가 극히 적은 종족이다.
‘책에서나 본 종족이 이렇게 갑자기 눈앞에 나타날 줄이야!’
그러나 인간들보다 더욱 놀란 건 클라크였다. 지금 그의 뇌는 너무 놀라서 사고가 정지되어 있었다.
남하국의 궁전과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 그리고 방금 전과 180도 다른 주변환경…… 그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나 의심하고 있었다.
“이쪽은 하프엘프의 대장로, 클라크라고 합니다. 학자 칭호는 없지만 방대한 지식을 자랑하는 분이죠. 국사나 대국사로 봉해도 충분히 그 몫을 할 분입니다.”
천제현은 양측을 보며 간단하게 소개했다.
“클라크 장로님, 여기가 바로 남하국입니다. 혼돈의 숲 북쪽의 인간족 소국이죠.”
둘은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혼돈의 숲의 고수셨구려!”
남하왕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여봐라, 귀빈들을 위해 성대한 연회를 열어라!”
“연회는 사양하겠습니다!”
천제현이 남하국으로 돌아온 목적은 먹고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일단 마력컴퓨터부터 봐야겠어요!”
그 말을 들은 운천학과 고천추는 즉시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좋습니다, 회장님. 저희를 따라오시죠!”
***
남하국은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해 있었다.
천제현이 떠나던 때보다 인구가 3분의 1이나 더 늘어난 중주성은 예전보다 두 배는 번화한 모습이었다.
새 왕성으로 거듭난 것도 이유였지만 이곳이 바로 기적상회의 발원지라는 사실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 기적상회 산하 대형 실험실과 공업단지야말로 중주성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양대 견인차였다.
기적상회가 공간창고를 이용해 혼돈의 숲에서 얻은 자원을 들여오기 시작하면서 남하국에는 고수의 숫자가 급격히 늘었다. 제자리인 마력 탓에 애를 먹던 신풍후와 금전후도 덕분에 진령 1성의 경지에 올랐다.
남하국은 남주 훈련소에서 배출된 야만족 광전사 일부를 고용했다. 거기에 기적상회 무기 공장에서 사들인 마력 무기와 사주호라는 천혜의 요새까지, 대융국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어디에도 없었다. 남하국은 이제 예전의 그 힘없는 나라가 아니었다.
국제적으로도 남하국은 빠르게 위상을 높여가는 중이었다.
기적상회 제품을 수입해가려는 외국 상단이 줄을 이어 남하국으로 몰려들었다.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히 기존 금화가 쓰일지 몰라도 큰 금액이 오가는 거래는 이제 마석으로 하는 경우가 흔했다. 나라가 국제화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남하국이 대하국으로 거듭날 날도 머지않은 것이다.
클라크는 중주성 거리를 걸으며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기적 비행선 수십 척이 날아다니는 하늘 아래로는 아찔한 높이의 고층 건물이 즐비했고, 건물 외벽에 붙은 화면에서는 현란한 광고가, 곳곳에 설치된 확성기에서는 온갖 음악과 방송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중주성 거리에서는 마수차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기적상회는 중주를 혁신의 땅으로 재탄생시켰다. 마력전지로 움직이는 마력부상차가 출시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마수차 대신 이 새롭고도 편리한 교통수단을 택했다. 지금 도로 위를 내달리고 있는 딱정벌레 형태의 기구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한낱 소국이 어느 틈에 이런 발전을 이루었단 말인가?’
인간들의 도시는 클라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풍요로웠다. 이곳이 하찮은 소국의 왕성이라니, 정말이지 믿기가 어려웠다. 지난 수백 년 사이 인간들이 대륙의 새로운 주류세력으로 떠오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몇 천 년 후에는 엘프든 마수령이든 인간들의 발아래 납작 엎드려 살아가고 있을지도 몰랐다.
새 면모를 갖추기는 중주 실험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제현이 중주를 떠나던 당시 일부 업무가 남주로 이전되면서 중주 실험실은 마력컴퓨터 연구 개발만을 위한 중점 기지로 거듭났다. 이후 수차례 확장을 거쳐 규모가 두 배로 확대됐고, 현재는 2천 명 이상의 인력이 마력컴퓨터 개발에 참여 중이었다.
2천여 명의 연구원들은 천제현이 제공한 핵심기술과 구상을 바탕으로 무려 13만 5천 번 이상의 테스트를 수행, 기어코 시대를 앞서가는 발명품을 탄생시켰다.
천제현이 왔다는 소식에 연구원들이 우르르 실험실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개중에는 임선 남매를 비롯해 익숙한 얼굴들도 보였다. 천맹을 창시한 임선 남매는 소원대로 기적상회에 합류해 운문의 정식 연구원이 되어 있었다. 둘은 젊은 나이에 성공했다는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회장님, 부회장님, 오셨습니까!”
연구원들은 깍듯하다 못해 아예 바닥에 꿇어앉을 기세였다.
각지에서 모인 학자들 중에는 천제현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이들도 상당수였다. 영상물과 무용담을 통해서나 보고 듣던 남하국의 전설적 영웅이 진짜 눈앞에 나타났으니 얼마나 가슴이 벅차올랐겠는가.
천제현이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
“인원이 이렇게나 늘었단 말입니까?”
“그럴 수밖에요.”
진령 경지에 오른 고천추는 예전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열정 넘치는 삶이 그에게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는지도 몰랐다.
“여기 있는 이들은 남하국 학자들만이 아닙니다. 저 멀리 타국에서부터 배움을 구하고자 달려와 운문에 합류한 이들도 많습니다. 개중에 대학자 칭호를 받은 사람만도 넷이나 되고요!”
천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흡족합니다, 운문이 잘 커 줬어요.”
운문의 발전이 가장 기쁜 사람은 물론 운천학이었다. 운문은 중주 운씨 가문에서 시작됐다. 소국의 일개 세가에 불과했던 운씨 가문이 나라 밖까지 명성을 떨치게 됐음은 물론이요, 가문 전체가 운문의 획기적인 연구에 참여하고 있으니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혹자는 운문을 그리 대단할 것 없는 단체라 폄하할지 모른다.
천제현과 동맹을 맺은 하프엘프족의 경우 일족 내에 대학자급 인물이 최소 수백 명은 넘는다. 하지만 지리적 단절로 인해 하프엘프 학자와 인간족 학자의 연구 방식에는 큰 차이가 존재하는바, 단순한 지식량의 비교는 의미가 없다.
하물며 운문은 천제현의 손에서 탄생한 기관. 고천추와 운천학 등 운문 소속 학자들이 1년 동안 천제현에게서 배운 기적상회의 핵심기술은 그들과 여타 학자들 사이의 수준 차이를 하늘과 땅만큼이나 벌려 놨다. 그렇기에 더더욱이 그저 아는 것이 많고 적음의 비교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천제현 일행이 중주 실험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기능 일부가 남주로 이전되기는 했어도, 가장 먼저 설립된 연구소인 만큼 중주 운문은 기적상회의 다양한 기술력이 집중된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기적상회에서 개발한 거의 모든 제품과 거기에 적용된 기술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하프엘프 학자들을 모아 일정 기간 중주에서 연수를 받도록 하면 좋겠는데, 클라크 대장로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듣던 중 반가운 말입니다, 물론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