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523화 (523/729)

# 523

제523화 숲의 산업단지

클라크가 손짓을 하자 하프엘프 제사장이 상자를 열었다. 큼직큼직한 마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석 5만 개요. 하프엘프 부족 안에서 놀고 있는 돈이지. 하프엘프 부족의 명의로 기적은행에 1년간 맡기고 싶소.”

그 말을 들은 공화련과 델로리스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다.

하프엘프들이 맡긴 이 거액의 예금은 기적은행에 대한 지원이나 다름이 없었다.

클라크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들이 이런 결정을 한 것은 하프엘프와 기적성이 한 배를 탔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적성이 발전하면 그들도 자연히 발전할 것이다.

또한, 기적은행의 안정적인 수익 창출 모델을 보면서 기적상회에 믿음을 갖게 된 것도 있었다.

기적은행은 기적성뿐만 아니라 모든 지역의 발전을 촉진하는 촉진제가 될 것이다.

공화련과 클라크는 특별 약관을 작성했다.

하프엘프들이 가져온 마석 5만 개는 1년 만기 예금으로 넣되, 중간에 예금을 해약하거나 일부를 인출하지 않기로 협의하고 그 대신 40%의 이자를 제공하기로 했다. 하프엘프들에 대한 감사와 격려의 표시로 이자를 2배 올려준 셈이다.

하프엘프들은 그 조건에 매우 만족했다. 그들에게 1년이라는 시간은 아무 것도 아니었으니까.

기적은행에 돈을 맡기기만 했을 뿐인데 1년이 지나면 자금이 1.5배 가까이 불어난다니, 예전 같았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프엘프들이 기적은행에 거액의 돈을 맡겼다는 소식은 기적상회의 각종 루트를 통해 성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고,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많은 세력과 개인들이 뒤질 새라 은행에 찾아와 예금을 맡기기 시작한 것이다. 사장되기 직전이었던 예금업무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고, 이제 기적은행은 충분한 자금을 밑천으로 대출과 투자 업무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기적은행이 날로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남하국에서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그건 남하국 중주연구실에서 온 보고로, 마력컴퓨터 연구가 획기적인 진전을 거뒀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천제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뻐했다. 지난 1년간, 기적상회가 부단히 발전하는 과정에 분수령과도 같은 전환점이 몇 개 있었는데 그것은 마력무기, 공간창고, 정신세계 등 첨단기술을 손에 넣었을 때였다. 그러나 최근 기적상회의 기술 개발은 이렇다 할 큰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천제현이 갖고 있는 지식은 현 시대의 매우 조악한 방식으로는 극히 일부만을 구현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러고 나면 오랜 답보 상태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마력컴퓨터 연구에서 초보적인 성과를 거뒀다는 건 단순히 마력컴퓨터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뿐만 아니라 지금의 한계를 깨고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와 함께 기적상회의 잠재력도 대폭 성장할 것이다. 그러므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력 행렬은 안정적이지 않아서 당장은 가동할 수 없을 것 같아. 어떻게 할 생각이야?”

공화련은 마력컴퓨터 연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마력컴퓨터가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 당장은 알 길이 없었지만, 마력컴퓨터 개발은 여태까지 기적상회가 가장 오랜 시간을 쏟아 부은 프로젝트이자, 천제현이 가장 먼저 준비한 프로젝트였다.

이렇게 복잡하고 번거로우며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천제현이 애당초 시작했을 리가 없다.

“큰아가씨가 하프엘프 실험실에 한 번 다녀오세요. 남은 공간수정석 전부를 빌려왔으면 좋겠네요.”

결정을 내린 천제현이 입을 열었다.

“남궁 아가씨는 운천학, 고천추 어르신께 연락하세요. 공간창고로 전송탑 설계도면과 재료를 보내 드릴 테니 중주성에서 준비하고 있으라고요. 비비안 공주님은 되도록 빨리 중주성으로 가서 전송탑을 세워 주세요. 제가 움직이기 쉽게요.”

“알았어!”

전송탑은 매우 편리한 물건으로, 그것만 있으면 멀리 떨어진 두 지역에서도 눈앞에 있는 듯 상호 전송이 가능하다.

그러나 전송탑 제작 과정에는 진귀하기 이를 데 없는 성안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대량의 공간재료들이 필요했다. 기적상회에는 그 희귀한 재료들이 없었고, 하프엘프가 몇 백 년 동안 모아놓은 재료창고에도 비축량이 많지 않았다.

천제현은 기적성에 전송탑을 세우는 과정에서 이미 하프엘프들의 공간 속성 재료를 반 가까이 가져다 쓴 바 있었다. 시급히 두 번째 전송탑을 만들어야 하는 관계로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하프엘프들의 남은 공간수정석 반을 가져다 써야 했다. 사실 하프엘프들로서도 그 재료들을 갖고 있어봤자 기껏해야 저장장비나 몇 개 만들 뿐, 제대로 이용하지도 못할 테니 천제현에게 줘 버리는 게 나았다. 그리고 나중에 공간창고로 되돌려 받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모두가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크…… 큰일 났어!”

공서련이 허둥지둥 뛰어들어오며 말했다.

“성 안에서 숲 부족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어. 주동자는 아르놀트라는 자인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어! 빨리 가봐!”

‘뭐라고? 그놈들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성곽 아래에서 몇 명의 족장들이 부족민들을 이끌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고, 성주부에 고용된 지 얼마 안 된 호위병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시위대에 자신들의 부족민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창을 겨눌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르놀트! 네가 감히 배신을?!”

노기등등한 천제현을 본 아르놀트는 자신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천제현이 직접 나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크게 소리쳤다.

“배신이 아닙니다. 합법적인 권익을 찾고자 하는 거예요. 우리는 기적은행의 은행장과 얘기하고 싶습니다!”

기적은행이 설립된 이후 공화련이 은행장을, 델로리스가 부행장 직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아르놀트 일행이 만나고 싶어 하는 자는 공화련이 아니라 델로리스였다.

“은행장은 무슨 일로 보겠다는 것이냐!”

“델로리스 그 불여우의 일처리가 너무 불공평하기 때문이오!”

큰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열을 내는 모습이 꽤나 화가 난 것 같았다.

“외부인들에게는 화통하게 마석을 잘도 내주면서 어째서 우리에게는 한 푼도 빌려주지 않는 거죠? 지난 감정이 남아서 사적인 보복을 하는 것 아닙니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옳소!”

“외부인들에게도 빌려주는 돈을 어째서 우리에게는 빌려줄 수 없다는 거냐!”

“우리 부족에서는 기적성의 정규군으로 정예병을 500명이나 보냈는데!”

잔뜩 화가 나서 너도 나도 불만을 토로하는 모습에 천제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다 같이 가난한 건 참아도 남만 잘되는 건 못 참는다더니, 기적은행이 생기기 전에는 아무 불만이 없던 자들이 기적은행 설립 이후 자기들만 혜택을 못 누리는가 싶어서 잔뜩 성이 난 것이다.

그 동안 마석 수만 개에 달하는 대출이 이뤄지면서 먼 곳에 있는 부족과 마을들에게까지 돈이 들어갔고, 뒤늦게 찾아온 현지인들은 대출 거절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러자 그리 똑똑하다고 볼 수 없는 토착민들은 델로리스의 태도를 보며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되었고, 지난날 여우족이 인근의 미노타우로스, 호랑이족 등의 부족과 자주 충돌을 일으켰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쳐 사적인 보복을 하고 있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성주가 아닌 자들이 어찌 성주의 노고를 알겠는가.

사실 성 안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건 토착민들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들어 기적성 주민들 사이에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병사 모집이었다. 천제현은 혼돈의 숲에서 정규군을 모집하면서 그들에게 좋은 대우와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했다. 그러나 정작 성 주민들은 동등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많은 하프엘프들이 성주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이 델로리스와 천제현의 잘못인가?

기적성 주변 부족들은 성을 둘러싸고 생성되어 원래부터 하나의 세력 범위 안에 있었다. 그런데 델로리스가 대량의 자금을 대출해주는 이유는 은행을 키우는 한편, 광범위한 상업망을 만들어 기적쇼핑몰의 영향력을 높이고자 하는 데 있었다.

마찬가지로 병사 모집도 주변 부족과 토착민들을 안정시키고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토착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 그들의 생활을 안정시킴으로써 지역 정세 안정과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성 주민들의 불만을 직면한 천제현은 어쩔 수 없이 향후 다시 모병을 할 때는 성 주민들에게 일정 비율을 할당해주겠다는 약속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천제현이 물었다.

“대출은 받아서 어디다가 쓰려고 그러는 거요?”

“쓰긴 어디에 쓰겠습니까?”

아르놀트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새로운 판이 열렸으니 돈을 모아 악령을 치려는 거지요! 최근 광고를 보니 악룡의 실력도 대충 짐작이 가더이다. 아무리 봐도 쉬운 상대 같지는 않으니 마석을 좀 구해서 준비를 하겠다는데 그게 잘못됐습니까?”

‘원하는 게 고작 그거라고?’

천제현은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웃음이 터질 뻔했다.

‘마석을 갖다가 어디에 쓰려나 했더니만!’

천제현이 물었다.

“대출에는 담보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게다가 기적은행에서 마석을 빌리면 이자를 내야 합니다. 제때 상황하지 못하면 담보물을 몰수하고요.”

“담보 따위야!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습니다!”

비교적 부유한 부족들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우리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마석만 얻을 수 있다면!”

대출을 받기 전까진 물러나지 않을 태세였다.

“여러분, 제 말을 좀 들어보세요…….”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에게 기막힌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기적은행을 설립한 건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숲의 질서 있는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이자를 받아 은행을 키우는 한편, 대출해 준 마석으로 숲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해 상생을 이루자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마석을 빌려줄 때 그것이 고객에게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고객들의 피를 빨아먹는 짓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요.”

토착민들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의미입니까?”

“그러니까, 기적은행에서 대출을 신청하고 싶다면 실질적인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죠. 현 단계에서는 창업형 대출 위주로 서비스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개인 대출이나 소비, 향락 목적의 대출은 진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르놀트는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미노타우로스는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천제현이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창업이라고 해서 꼭 장사를 의미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