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521화 (521/729)

# 521

제521장 기적은행

짜증이 나는 척 행동했지만, 사실 천제현은 현재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새 동료들이 어엿하게 자기 몫을 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델로리스의 여우족 상단은 무역로 개통 업무에서 일차적인 성과를 낸 상태였다. 인근 마을에서 토착부족들과 교섭하는 건 물론이고 다른 성과도 연을 맺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대형 기적쇼핑몰을 만들 계획이에요.”

델로리스가 자신의 생각을 천제현에게 말했다.

“1단계는 20여 개의 마을을 대상으로 반응을 시험해 보는 거예요. 백여 개 이상의 부족과 협력 관계를 맺고 기적성의 상품을 판매하는 거죠. 그렇게 하면 그들과 함께 숲의 자원을 공유하면서 숲 최대의 쇼핑몰을 만들 수 있어요.”

기적쇼핑몰은 일찍이 공화련이 남하국 천남성에서 시도해 본 적이 있던 판매 플랫폼이다.

쇼핑몰이란 대형 만물상이나 슈퍼마켓 같은 개념으로, 기적상회의 상품들을 위주로 판매하되 정찰제와 공급량 조절을 통해 통제된 판매를 이루고, 전국 각지에서 체인 형태로 운영하는 판매 형태를 말한다. 실력 있는 현지 상회 및 가문들의 상품까지 수용해 쇼핑몰의 판매력과 경쟁력을 대폭 개선한 모델이기도 하다.

공화련의 구상은 매우 통찰력 있는 것이었고 그 영역은 확실히 잠재력이 큰 분야였지만, 단 한 가지 실책은 기적상회의 발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기적상회가 천남성에서 발돋움해 남하국까지 진입하는 데 걸린 시간은 일 년 남짓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통조림, 자음기, 마력무기 등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상품들이 개발됐다. 그러나 기적쇼핑몰의 발전 속도는 기적상회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로 인해 상회 영업수입에서 쇼핑몰이 차지하는 비중은 제자리걸음을 거듭했고, 지금은 계륵처럼 변해 버린 상태였다.

이런 시기에 공화련이 다시 한 번 혼돈의 숲에서 쇼핑몰 구상을 내놓은 이유는 현재의 기적상회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기 때문이며, 그 위상도 엄청나게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기적상회의 공간기술은 몇 달간의 연구를 거쳐 큰 진보를 거뒀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기적쇼핑몰도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숲 최대의 쇼핑몰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혼돈의 숲은 면적이 방대하고 자원도 매우 풍부하다. 그런데 왜 숲의 종족들은 빈곤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가? 어째서 외부 상인들은 숲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인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숲의 환경이 몹시 험준하고 복잡하다는 데 있었다. 또한, 도처에 우락부락한 토착민들이 눈을 부라리고, 산적이며 강도들이 통행세를 받지 않는가.

뿐만 아니다. 숲의 세력들 중 90% 이상이 어둠의 규칙에 따라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꺼린다. 그러므로 숲 바깥쪽의 상인들에게 혼돈의 숲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확률이 극히 낮은 도박에 돈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이 숲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었으나, 공화련에게는 그 문제들조차 커다란 기회로 다가왔다.

기적쇼핑몰은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다.

이제 기적쇼핑몰은 천남성의 대형오프라인 쇼핑몰 수준을 뛰어넘어 더 편리하고 유연성 있으며 시대에 부합하는, 높은 수준의 플랫폼이 될 것이다. 이미 성숙단계에 들어선 기적상회의 통신기술과 음향 전파 기술, 항공 운수 기술, 그리고 걸음마 단계지만 이미 일차적인 성과를 낸 공간기술과 정신첨단 기술을 하나로 결합시킨 고차원적인 플랫폼이!

델로리스는 예를 들어 설명했다.

“20개 마을에 실체가 없는 쇼핑몰을 만들어볼까 해요. 전영경을 이용해서 상품을 보여주는 거죠. 중요 상품들은 정신체험몰을 통해 직접 써보게 하고요. 모든 쇼핑몰은 기적성과 통신 연계가 되어 있을 거예요. 고객들이 멀리서도 얼마든지 상품에 대해 궁금한 걸 물어볼 수 있도록 말이죠. 이렇게 하면 굳이 유통경로를 넓히지 않고도 수십만 개의 상품들을 진열할 수 있어요!”

천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쁘지 않아 보이네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현재 건설 중인 기적방송국을 통해 판매와 홍보를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기적쇼핑몰에서 제일 잘 팔리는 상품이나 행사 상품, 또는 신상품을 바로 방송으로 보여주거나 사진, 영상정보의 형태로 각지로 전송시켜 고객들이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오지 않고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거죠!”

그 말을 듣던 비비안이 이해가 안 되는 듯 아리송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제품을 어떻게 고객에게 전달하지?”

“그건 부성주님이 담당하는 공간기술에 달렸습니다!”

델로리스는 이야기를 하면서 점점 더 흥분하고 있었다.

“현재 기적상회의 기술 수준으로는 모든 고객들에게 개인 저장창고를 만들어줄 수 없겠지만, 각 도시, 각 마을에 주문정보를 모으고 물건을 배송하는 기지를 만들면 돼요. 대규모 구매 건이 생기면 비행선으로 제품을 발송하고요. 그렇게 하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어질 거예요.”

혼돈의 숲을 드나드는 상인들이 감수하는 위험은 대륙 그 어떤 곳의 상인들보다도 컸다.

그리고 그 위험은 주로 외부에서 온다. 그러나 방금 델로리스가 말한 방식으로 물건을 판매한다면 빠르고 편리할 뿐만 아니라 위험성은 거의 없어진다.

기적상회는 자신의 제품을 판매하는 한편, 남하국과 더 많은 지역의 상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각 토착 부족들 또한 기적상회와의 협력을 통해 자신의 특산품들을 기적쇼핑몰에서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이제 그들의 고객은 혼돈의 숲 각 마을과 부족을 넘어 숲 밖의 국가들로 확대되는 것이다.

제약을 벗어난 상품의 가격은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고, 그 과정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이윤이 생길 것이다.

기적상회는 그 플랫폼을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하는 한편, 원하는 자원들을 대량으로 비축하고, 모든 숲의 토착민들과 함께 발전함으로써 숲의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되리라.

옆에서 듣고 있던 비비안은 끓어오르는 피를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공간창고를 구축할 때 비비안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 구상 역시 엘프족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엘프족의 차, 예술품, 각종 보석들처럼 현지에서 헐값에 팔리는 물건들을 인간들의 제국으로 가져가면 100배 이상의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

여태까지는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꺼리는 엘프족의 특성 때문에 실현시킬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제 물건들을 기적성으로 가져와 기적쇼핑몰에 전시하고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쇼핑몰과 이익을 반으로 나눈다 해도 전례 없는 부를 축적할 수 있으리라.

또한 엘프족들도 기적쇼핑몰을 통해 대륙 각지의 상품들을 구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주문서를 넣고 가격만 지불하면 영원의 숲, 엘프들의 은밀한 생활구역까지 배달될 테니까. 그렇게 되면 엘프들의 삶의 질도 크게 개선되지 않겠는가.

“좋은 생각입니다. 훌륭해요.”

천제현이 아래턱을 긁적이며 곤란한 듯 말했다.

“그런데 대체 뭐가 문제죠?”

“현재 기적상회의 규모는 너무 작습니다. 우리는 대륙 각지에서 쇼핑몰을 개점할 자금도, 인력도 부족한 상태예요. 이런 상태에서 쇼핑몰 규모가 커지고 체인점 수가 많아지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할 거예요. 관리 소홀 문제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겠죠.”

델로리스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밖에도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그렇게 점유율을 확대하며 시장을 독식하면 다른 세력들이 곱게 보겠어요?”

비비안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어쩌지?”

“공화련 부성주님은 위탁경영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면 이 문제를 무난하게 처리할 수 있죠.”

여기까지 말한 델로리스는 잠깐 쉬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작은 마을에는 마을 대행사를, 도시에는 도시 대행사를, 국가에는 국가 대행사를 두는 식이죠. 진출하는 곳마다 그곳에서 가장 힘 있는 세력과 손을 잡아 현지인에게 쇼핑몰을 운영하게 하는 거예요. 기적의 성은 기술 지원과 총괄업무를 담당하고 그로부터 얻은 이익은 양측이 분배하는 거죠. 이렇게 하면 지점 관리가 편해질 뿐만 아니라 모두 함께 성장할 수 있어요.”

“역시 큰아가씨는 수완이 좋다니까. 대행사를 두면 손쉽게 지점을 관리할 수 있겠군요. 겉으로는 이익이 줄어드는 것 같지만 사실은 더 안정적인 상생을 이룰 수 있을 테고요.”

천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그렇게 결정을 했다면, 바로 행동합시다!”

“저라고 그러고 싶지 않은 줄 아세요?”

델로리스는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공화련 부성주님의 계획이 치밀하기는 하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들이 있어요. 혼돈의 숲에 있는 대형 부족들과 종족들은 부성주님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가난하거든요. 많은 이들이 흥미를 보이긴 하겠지만, 자금 부족으로 참여도가 떨어질 거예요.”

“돈이 없다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천제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설마 기적상회가 그들의 손에 돈까지 쥐어줘야 한다는 말은 아니겠죠?”

“제가 돌아온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에요.”

델로리스는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바로 제 생각이거든요!”

천제현과 비비안은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델로리스는 바보가 아니다. 지금까지 기적상회가 엄청난 자금을 투자했지만 수익은 한 푼도 나지 않았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

‘있는 돈을 일단 다 쓰고 보자는 건 아니겠지?’

기적성의 수석재무관인 그녀라면 현재 기적성의 재무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저한테 생각이 있어요. 상황을 봐서 또 다른 플랫폼을 만드는 거예요. 그게 성공한다면 향후 혼돈의 숲, 나아가 대륙 전체에서 큰 역할을 할 거예요. 기적쇼핑몰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요.”

델로리스는 잠깐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 나갔다.

“그 플랫폼의 이름까지 생각해 뒀는걸요. 바로 ‘기적은행’이에요!”

“은행?”

은행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는 비비안은 멍한 표정이었다.

“은행이 뭐야?”

“거액을 투자해서 은행을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담보대출 형태로 고객들에게 돈을 빌려줘서 초기 진입이 가능하게 하는 거죠.”

여기까지 말한 델로리스는 보충 설명했다.

“물론 무상으로 돈을 빌려줄 순 없죠. 높은 이자를 붙여서 그걸로 돈을 벌 수도 있을 거예요.”

그 말을 들은 비비안은 즉시 핵심을 짚어냈다.

“그들이 돈을 안 갚으면 그땐 어쩌고?”

“사실 숲속의 종족치고 정말 가난한 종족은 별로 없어요. 대대로 진귀한 보물들을 찾아 쌓아두었을 테니까요. 다만 마석이나 당장 필요한 몇몇 자원이 부족할 뿐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제공하는 대출은 담보대출이 될 거예요. 돈을 빌리고 싶으면 먼저 담보가 될 만한 물건을 가져와야 되는 거죠.”

델로리스는 계속 말했다.

“앞으로 기적성이 더 많은 신용을 쌓게 되면 은행 업무를 확대할 수도 있을 거예요. 부유한 일부 종족은 돈을 부족 안에 보관하는 걸 불안하게 생각하죠. 그런 고객들을 위해서 은행에서 돈을 보관해주는 거예요. 우리는 보관비를 받지 않을 뿐더러 이자까지 제공할 테니까요. 그리고 은행에서는 그 돈으로 다시 대출을 해주는 거죠. 그렇게 되면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어요.”

“훌륭해요!”

천제현은 흥분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대단하군요!”

델로리스는 역시 천제현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런 방법을 생각해내다니. 먼 훗날 이 여자의 이름은 대륙 최초로 금융업을 일으킨 사람으로 역사에 길이 남으리라.

“이건 구체적인 계획서예요.”

델로리스는 두루마리 하나를 천제현에게 건네며 말했다.

“되도록 빨리 은행 업무를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기적성과 기적상회의 발전에 큰 힘이 되어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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