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0
제520장 드루이드 설득
드루이드교가 얌전하게 나온 이상 천제현도 더는 괴롭히지 않고 성수단을 비비안에게 건네 요더 선지자에게 먹이게 했다.
신도들은 모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큰 손해를 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요더 선지자가 낫기만 한다면 이 정도 대가는 치룰 수 있다. 기적성에게 진 빚은 겨우 10만 마석 아닌가?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드루이드 신전의 드루이드 제사장 수백 명이 함께 노력하면 매년 1~2만 개는 상환할 수 있을 테니, 빠르면 4~5년 안에 다 갚을 수 있다.
비비안도 조금은 긴장됐다.
이 신도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천제현이 한바탕 바가지를 씌운 마당에 그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폭동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성주로서의 위신도 땅에 떨어지리라.
3분이 지났다.
성수단을 복용하자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했던 요더의 몸에 점차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희미한 성광이 몸 주변을 맴돌더니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듯 거칠고 주름져 있던 피부가 점차 활력을 되찾았다.
“효력이 있는 것 같아!”
신도들은 놀라움과 기쁨에 휩싸였다.
평범한 모양에 미덥지 않아 보였던 단약이었는데, 사용하자마자 바로 효력이 나타나고 있다. 성주의 말은 다 사실이었다. 진귀한 선단임에 틀림없다. 재료나 정련방법 등 어떤 부분에서도 흠잡을 데 없는 게 분명하다.
“선지자님이 깨어났다.”
“선지자님이 깨어나셨어!”
신도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요더는 점점 의식을 회복하고 있었다.
비비안은 드루이드 신도들이 이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천제현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다 죽어가던 사람이 단약 하나에 살아나다니!’
천제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더 선지자님, 기분이 어떠세요?”
요더는 드루이드 교단의 정신적 지주다. 드루이드교에 대제사장이 여럿 있기는 하지만, 대제사장의 능력만으로는 교단을 안정시킬 수 없다. 일단 요더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드루이드교는 분열되고 말 것이다. 그것은 드루이드교만이 아니라 기적성에도 성가신 문제이리라.
천제현도 기적성의 병사 모집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원치 않았다.
정신을 차린 요더는 잠깐 멍하니 있다가 바로 몸에 일어난 변화를 알아챘다.
“드라코리치와의 전투에서 입은 부상은 물론 오랜 지병도 호전되었구나. 이것은…….”
드루이드는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이는 선지자의 실력이 곧 완전히 회복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게 되면 요더는 진령 최고 단계인 화령의 강자가 될 것이다.
천제현이 예측한 대로였다.
“제가 조제한 단약을 드셨으니 작은 상처며 사소한 질환은 자연스레 완쾌될 겁니다. 너무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요. 드루이드 신전에서 약을 샀으니, 공평한 거래였을 뿐입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게 된 요더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지혜롭기 그지없는 요더다. 기적성이 드루이드교에 무슨 일을 한 건지 어찌 알아채지 못하겠는가? 아무리 너그러운 성품이라 해도 자기 세력이 이렇게 말 안 듣고 제멋대로인 녀석에게 흔들리도록 놔둘 통치자는 없다. 하지만 요더는 천제현이 이런 방법까지 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마석 10만 개면 많은 것도 아니죠.”
천제현은 의견을 냈다.
“기적성에 참모부를 세우려 하는데, 요더 선지자께서 기적성 참모장을 맡아 주시면 1만 마석을 연봉으로 드리겠습니다. 어떠십니까?”
또다시 드루이드를 격노케 하는 발언이었다.
‘우리 드루이드 종족의 위대한 선지자를 수하로 부리겠다고?’
‘드루이드교와 드루이드 신을 모독하는 처사다!’
요더는 망설이며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여러분, 지금 기적성은 과거의 그린캐슬과는 다르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천제현은 위엄보다는 온화한 태도로 말했다.
“지도자가 바뀌면 규정도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나는 드루이드 문화를 존중하며 도시에 별도의 자치구를 마련해 줄 수도 있지요. 하지만 내 관할 지역에 있는 모든 백성은 반드시 기적성 규율을 지켜야 합니다. 예외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정도까지 말했는데 드루이드가 거절할 수 있을까.
천제현으로서도 해줄 만큼 해준 것이다. 드루이드 신도에게는 충분한 자유가 주어지며, 기적성은 드루이드교의 내부 상황을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드루이드교는 반드시 기적성의 규율을 따라야 한다.
“기적성에 당신 같은 성주가 있으니 장차 혼돈의 숲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겠군.”
요더가 감개무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주의 요구를 받아들이겠소. 이 미천한 지혜로 기적성의 번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소이다.”
신도들은 너무 놀라 얼이 빠질 정도였다. 고귀하고 신비로운 선지자가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다니.
“요더 선지자의 약속을 믿습니다. 오늘부터 요더 선지자께서는 기적성의 참모장 겸 선임학자십니다. 오늘 하신 선택을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천제현은 뒤로 한 발 물러서 두 손을 모으고 인사를 올렸다.
“이렇게 된 이상 저도 다른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요더 선지자께서는 완치될 때까지 안정을 취하세요. 저는 성에서 선지자님이 오시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비비안이 손을 내밀자 두 사람은 공간진동 속으로 사라졌다.
“선지자님!”
신도들이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저런 인간의 통치에 굴복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다네!”
“우리가 인간에게 허리를 굽힐 필요까지 있습니까!”
“겨우 인간 하나가 어떻게 자유로운 드루이드교를 관리한단 말입니까?”
“굴복이라니, 무슨 소린가?”
요더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말을 이었다.
“기적성의 미래는 볼 수 없으나 이 도시에 천지가 개벽할 변화가 나타날 것은 단언할 수 있네. 숲에서 늘 유랑하던 우리 드루이드교는 지금껏 진정한 보금자리리가 없었네. 이제는 안정적인 곳에 터를 잡을 때가 되었어. 오늘밤 이후 드루이드교는 기적성의 법규를 따르며 적극적으로 세상에 뛰어들 것이네.”
드루이드 대제사장들은 크게 놀랐다. 드루이드교는 항상 중립을 유지해왔다. 생사가 달려 있지 않은 이상 절대 어떤 분쟁에도 끼어들지 않았다. 그런데 요더 선지자가 이제 모두 적극적으로 세상에 뛰어들자고 말하고 있다. 드루이드교 풍조와 완전히 상반된 행보다.
하지만 드루이드 신도들은 선지자의 결정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요더 선지자가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분명 드루이드교에게 유익한 결정일 것이다.
대제사장들이 선지자의 의견을 의심하지 않으니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조금 당혹스럽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있었지만, 그래도 모두 다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맑은 눈동자를 반짝이던 요더는 잠시 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비비안은 천제현을 데리고 한 초원에 도착했다. 시냇물이 흐르고 꽃이 만개한 장소였다. 나비가 관목 사이를 날고, 산노루와 토끼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사방에 늘어선 산줄기들은 구름을 뚫고 쑥 올라와 있었다. 도시라기보다는 마치 고요한 숲 속 공원 같은 분위기였다.
십여 리 정도만 더 가면 바로 대규모 모병 경기장이 나온다.
작은 나라라고 해도 될 만큼 넓은 장소였다. 인간족의 대형도시 열 개를 세우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천제현, 좀 전에 그 난쟁이 같은 사람, 강해?”
비비안이 생각에 잠겼다.
“이제 막 깨어났는데도 내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실력이 다 회복되면 화령 경지의 마력을 갖추게 될 거예요.”
비비안은 기적성에서 둘째가는 고수다. 적어도 허공둔과 공간의 단검이 가진 공격성을 생각하면 천령 강자 중에서는 그녀와 대적할 자가 없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화령 고수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어쨌든 기적성을 지켜줄 만한 강력한 인물이 필요해요. 지혜롭고 슬기로운 요더 선지자는 도시 관리며 실험실 연구에서 제몫을 톡톡히 할 거예요.”
“공화련 언니가 드루이드 신도들까지 우리 편으로 만든 걸 알면 정말 기뻐할 거야!”
이렇게 기적성 내부에 존재하던 마지막 걸림돌이 해결됐다.
이제 기적성은 진정한 발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때, 천제현의 통신기가 울렸다. 델로리스였다. 이 요염한 여우족 여인을 못 본 지도 벌써 며칠이 되었다. 지금 그녀가 어디쯤 있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공화련의 명을 받아 일처리를 하러 갔다는데, 아무래도 기적성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자, 이제 성으로 돌아가죠.”
비비안은 즉각 공간능력을 발동시켰다.
델로리스는 성 안 화려한 로비에서 통신기를 들고 조작하고 있었다. 원리가 뭔지는 모르지만, 천제현이 만든 이 물건은 아주 쓸모가 있었다. 상대가 어떤 곳에 있든 바로 연락이 가능하니 소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공간이 한바탕 흔들리더니 비비안이 천제현을 데리고 도착했다.
천제현은 고생한 기색이 역력한 델로리스를 살펴보았다.
“못 본 지 꽤 오래 됐네요. 어디 다녀온 거예요?”
“아니, 우리 어엿한 성주님은 부하가 뭘 하고 다니는 지도 모르신단 말인가요!”
델로리스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
“우리 종족 500명을 동원해 여우족 상단을 꾸렸어요. 그들이 각지에서 기적성의 판로를 열어 주었다고요.”
하프엘프가 지배하던 시기에 이곳은 기본적으로 고립된 도시였다.
하프엘프는 학문연구에 능하지만 상업적으로 돈을 버는 능력은 부족했다. 그래서 외부에서 들어온 상단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도시의 수익을 냈다. 하지만 이제 지도자가 달라졌다. 기적상회는 원래부터 장사하는 조직이고, 공화련 같은 상인 출신의 부성주까지 있는 이상 기적성의 지역적 우위를 발휘해 무역에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
천제현의 예상대로 공화련은 여우족을 활용해 관련 업무를 처리했다. 여우족은 타고난 상인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보고하려고 귀환두루마리를 통해 왔죠.”
델로리스가 허리를 두드리자 두루마리 두 개가 힐끗 드러났다.
“그나저나 이거 정말 쓸모 있는 물건이네요!”
“쓸데없는 소리! 지금 두루마리 하나가 얼마나 귀한 줄 알고 하는 얘기예요?”
기적상회를 통틀어도 전송두루마리는 몇 개뿐이었다. 천제현이 성안을 많이 손에 넣기는 했지만, 아직 다 제작하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언제든지 성에 돌아와 상황을 보고할 수 있도록 공화련이 남은 두루마리를 모두 델로리스에게 준 모양이다.
델로리스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실력 있는 부족과 마을들, 그리고 심지어 멀리 있는 도시에도 연락을 했어요. 대부분 우리 상품에 아주 큰 흥미를 보이더군요!”
“잘됐군요!”
“하지만 문제가 생겼어요.”
델로리스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이 문제 때문에 상의하러 온 건데, 하필 부성주님이 폐관에 들어가셔서 말이에요. 어쩔 수 없이 성주님과 논의할 수밖에요.”
‘뭐라고? 젠장, 저 태도는 뭐야? 인심 써서 한번 얘기해주겠다 이건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샤먼교, 사령교와 싸워가면서 신망을 얻고 멋진 이미지를 만들어온 천제현이다. 그런데 이곳에 온 지 며칠도 안 된 공화련이 이렇게 빨리 모두에게 주요 인물로 인정받고 있다. 위풍당당한 진짜 성주가 그저 빛 좋은 개살구 꼴이 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