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519화 (519/729)

# 519

제519장 덫을 놓다

비비안은 기적성에 오기 전에 이미 드루이드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자연과 소통할 줄 아는 드루이드교는 마수로 변하는 아주 독특한 변신술을 시전한다고 들었다. 작은 새, 작은 마수부터 시작해서 흉악한 마수에 이르기까지 자유자재로 변신이 가능했다. 게다가 그건 단순히 형태만 변하는 변신술이 아니다.

드루이드교의 강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어떤 마수로 변하든 그 능력마저 완전히 복제한다. 그건 어떤 무공으로도 구현할 수 없는 능력으로, 고대의 술법이라 해도 믿을 만큼 신비한 것이다.

천제현을 따라 드루이드 신전에 들어온 비비안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드루이드교는 아주 친절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양쪽으로 물러서서 누구도 싫은 내색을 하는 자가 없었다. 어쨌든 천제현은 지금 잘나가는 기적성 성주고, 드루이드교는 그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처지 아닌가.

신전 중앙에 놓인 석대 위에 요더 선지자가 누워 있었다. 키가 4척 가량 되는 요더 선지자는 생명력을 유지시키는 마력진 안에 가로누워 있고, 드루이드 대제사장 두 명이 곁에서 지키고 있었다.

‘이게 바로 전설로만 듣던 드루이드의 예언자라고?’

비비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설 속의 지혜롭고 강력한 선지자가 어째서 고블린이나 땅의 엘프처럼 생긴 건지…… 상상과는 너무 달랐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요더 선지자의 몸은 바싹 마른 개구리 같기도 하고 햇빛에 말라비틀어진 나무껍질 같기도 했다. 눈에 띄는 외상은 없지만, 생명력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비비안이 말했다.

“정말 심각한데. 며칠 못 버티겠어.”

이 말을 들은 드루이드 신도들에게서 한탄이 터져 나왔다. 한 드루이드 신도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드라코리치와의 전투에서 입은 부상은 성주님이 보내주신 약물과 방법을 동원해 어느 정도 치료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부상으로 오래된 내상들이 터지면서 선지자님의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고 말았습니다. 재료를 다 모을 때까지 버티시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천제현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뭘 기다리고 있는 건가?”

곰족 드루이드 제사장 하나가 성급하게 소리쳤다.

“성주, 선지자님을 치료할 방법을 찾았다면 어서 움직이게!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 보이지 않나!”

“이봐, 그게 무슨 태도야?”

엘프인 비비안은 흉악한 성격의 마수령들을 원래부터 혐오했다. 드루이드 제사장의 무례한 태도는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천제현 오라버니가 특별히 드루이드교를 생각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너희는 우리가 무슨 빚이라도 진 것처럼 구네.”

불같은 성격의 곰족 드루이드 제사장은 생각 없이 하고픈 말을 다 퍼부었다.

“흥, 사령교와의 싸움에 드루이드교가 도우러 나서지 않았다면 요더 선지자의 묵은 상처가 도졌을 리 있겠는가? 드루이드가 돕지 않았으면 그린캐슬은 애초에 무너졌어. 인간이 성주가 되는 일도, 기적성도 없었을 거라고! 그러니 빚을 진 거나 마찬가지지!”

“너……!”

별 의도 없이 말을 뱉은 비비안은 억지를 부리는 드루이드들을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

“도시가 무너지면 드루이드교는 무사했을 것 같아? 드루이드는 사심이 없었던 것처럼 말하는데, 너희도 스스로를 위해 나선 거잖아! 천제현 오라버니가 리치를 없애지 않았다면 너희 선지자들은 물론 당시 함께 있던 신도들은 하나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거야. 이 빚은 어떻게 갚을 건데?”

곰족 대제사장이 두 눈을 부라렸다.

“감히! 싸우자는 거냐!”

비비안은 남궁혜처럼 성급하게 싸움에 나서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천제현과 공화련 앞에서나 얌전하게 구는 것일 뿐, 누구도 두려워해 본 적 없는 그녀다. 비비안이 소매를 걷어 올리자 눈 같이 하얀 팔목이 드러났다.

“너같이 미련한 곰은 열 마리도 넘게 상대해 보았지!”

“죽고 싶은 게로구나!”

곰족 드루이드 제사장이 분노의 고함을 내지르며 온몸에서 눈부신 빛을 방출했다. 그러자 그의 몸이 순식간에 5~6배나 커지면서 입고 있던 갑옷이 터지고, 갈기가 미친 듯이 자라났다. 금방이라도 거대한 마수로 변할 것 같았다.

비비안이 눈을 가늘게 뜨자 공간마력이 흔들리며 공중에 단검이 떠올랐다. 그 강력한 기운은 삽시간에 마수령을 제압했다. 단검의 끝이 살짝만 움직여도 상대가 조각나리라.

‘공간속성 정령이다!’

드루이드 신도들은 아연실색했다.

열네 살 정도로 보이지만, 비비안의 마력은 결코 낮지 않았다. 진령 4성 정점에 이른데다가 보통 사람은 절대 방어할 수 없는 공간능력까지 갖추고 있지 않은가. 대제사장급의 드루이드 신도 몇 명을 해치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드루이드 신도들이 경계하며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천제현은 팔짱을 끼고 나 몰라라 구경만 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셈을 하고 있었다. 경우 없고 제멋대로인 드루이드 신도들을 제대로 손봐주지 않으면 앞으로 기적성에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멈춰라!”

드루이드 제사장 하나가 벌떡 일어났다.

거대한 날개와 매의 발톱 같은 두 발을 가진 보기 드문 매족 마수령이었다. 불같은 성격의 곰족과 달리 과묵한 그는 얼른 나서서 말렸다.

“성주님이 좋은 마음으로 선지자님을 치료하러 왔는데 감히 공격을 해? 드루이드의 교조는 무시하는 건가? 선지자님이 우리를 어떻게 가르치셨는데!”

“싸우시는 거야 상관없는데 말이죠.”

천제현이 그제야 느긋하게 나서며 말했다.

“소개가 좀 늦은 것 같은데, 이분은 영원의 숲 출신인 비비안 공주님이라고 합니다. 기적성의 부성주이자 영원의 숲 엘프왕의 따님이시죠. 영원의 숲에서 가장 재능 있는 엘프 중의 하나고요.”

신도들은 청천벽력이라도 맞은 것 같았다.

‘엘프왕의 딸?!’

‘이 엘프 소녀가 엘프왕의 딸이라고?’

곰족 대제사장은 묵묵히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드루이드 신도가 사납기로서니 감히 엘프왕의 딸을 공격하겠는가? 이기고 지는 건 둘째 치고, 엘프왕으로 대표되는 영원의 숲은 지방 세력들이 감히 맞설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미안합니다. 이번에 신도들이 충동적으로 나섰습니다.”

매족 드루이드 제사장은 곰족을 한번 노려보고는 바로 천제현과 비비안 앞에 나섰다.

“선지자님만 구해주시면 드루이드교는 어떤 대가라도 치룰 수 있습니다. 성주님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당연히 신경 쓰지 않아요.”

천제현은 전혀 성질을 부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드루이드교 쪽에서 셈하는 걸 그리도 좋아한다면, 한번 해 봅시다. 요더 선지자가 일행을 끌고 와 리치와 맞서는 것을 도운 점은 인정해요. 하지만 드루이드교는 순수하게 도시를 위해서 나선 것 아니지 않나요? 순망치한이라고, 다음 피해자가 될 것이 두려웠겠죠. 게다가 내가 드라코리치로부터 요더 선지자를 구했고, 성으로 돌아온 후 바로 약도 보내주었으니 이 일은 서로 공평한 것 아니겠어요?”

매족 드루이드 제사장은 아주 난감해졌다.

“네, 성주님 말씀대롭니다!”

“그럼, 다른 계산을 해보죠!”

천제현은 성수단을 하나 꺼내들었다.

“이건 요더 선지자를 구하기 위해 본 성주가 직접 지하세계로 들어가 흉악한 마수 18마리를 해치우고 8가지 선약을 모아 예로부터 내려온 방법으로 정련해서 만든 단약이에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냐만 그래도 비싸게 부르지는 않겠어요. 50만 마석만 내세요!”

“50만 마석?”

드루이드교에 어디 그렇게 많은 마석이 있겠는가.

드루이드교는 별다른 수입원도 없다. 50만이 아니라, 5천이라 해도 낼 도리가 없다.

천제현은 단약을 집어넣었다.

“본 성주는 일이 있어 먼저 가야겠어요. 돈이 마련되면 부르도록 하세요.”

말을 마친 천제현은 곧 떠날 차비를 했다.

“성주님!”

드루이드 신도들은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정을 베풀어 주시지요!”

“인정? 나도 인정을 베풀려고 했는데, 굳이 나와 이익을 따지려고 든 건 당신들 아닌가요.”

천제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보기에 여기 신도들은 뒤끝만 있고 입은 은혜는 생각하지 않는 도둑놈 심보를 갖고 있네요. 그런데 무슨 인정? 오늘 내가 요더 선지자를 구해 준다 한들 며칠 후에는 또 나에게 대적하며 나설 줄 누가 알겠어요? 이런 위험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미리 손을 떼는 게 낫지.”

신도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방금 천제현의 말은 드루이드와 척을 지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기적성은 천제현에게 완전히 넘어갔다. 그는 하프엘프에게 인정을 받고 샤먼교 대부분을 손에 넣었으며, 십여 개 이상의 토착부족들이 그를 추대하고 있다. 천제현이 드루이드를 죽이려 든다면 요더 선지자가 중상을 입은 지금이야말로 적시일 것이다!

“비비안 공주님, 가요!”

비비안이 공간마력을 펼쳐 천제현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성주님!”

“잠시만요!”

드루이드 신도들이 곁으로 몰려들었다.

사고를 친 당사자인 곰족 대제사장의 낯빛은 더 어두워졌다. 겉으로 얌전해 보이는 성주가 실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드루이드 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지금부터 기적성에 충성하고 절대 드루이드교에 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천제현은 그제야 마음을 풀었다.

그리고 비비안에게 공간전송을 멈추게 했다.

상황 파악이 된 다른 신도들도 영원히 기적성을 배신하지 않겠다며 맹세에 나섰다. 신도들이 숭배하는 신을 걸고 한 맹세이니만큼 믿을 만했다.

“본 성주도 살육과 전쟁을 좋아하지 않아요.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내며 발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천제현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요더 선지자는 현자죠. 기적성에는 이런 현자가 필요해요. 여러분에게 실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격을 좀 깎아 주겠어요. 10만 마석만 내세요.”

신도들은 울먹거리며 말했다.

“성주님, 드루이드교는 돈이 없습니다. 도저히 낼 방법이 없어요!”

다른 드루이드 제사장이 나섰다.

“마석은 빚을 져서라도 천천히 갚을 수 있다지만, 선지자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맞는 말이오!”

천제현은 이마를 치며 두루마리 몇 개를 꺼내들었다.

“그럼 여기서 바로 정신계약을 맺는 걸로 하죠. 기적성이 드루이드 신전에게 10만 마석을 빌려줄 테니 드루이드교는 3년 동안 기적성을 위해 일하면서 빚을 갚으세요. 모든 대제사장이 이 계약에 서명해야 해요.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바로 선지자를 구하겠어요.”

갑작스럽게 떠올린 생각이 아닐 것이다. 애초에 준비해 둔 계약이 분명했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자라면 자신들이 성주의 꾀에 걸려들었음을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무슨 방도가 있겠는가.

“서명하겠습니다!”

“우리가 서명하지요!”

10만 마석은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니다. 하지만 요더 선지자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신도들은 어떤 대가도 치를 생각이었다. 곰족 드루이드 대제사장이 먼저 나섰고 나머지 대제사장들도 모두 천제현과 계약을 체결했다.

간계에 걸려든 이들을 보면서 천제현의 얼굴에 교활한 미소가 떠올랐다. 일단 걸려든 이상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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