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
제518장 성수단(星髓丹)
천제현의 눈이 남궁혜가 가리키는 쪽을 향했다. 성광원소 왕이 죽은 곳에 빛나는 액상물질이 흐르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운, 수은처럼 생긴 물질이었다.
“성수(星髓)군요. 아주 드문 회복용 성약이죠.”
“겨우 성약이었어?”
보물이라도 발견한 줄 알았던 남궁혜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적상회 창고에 쌓인 게 성약이다. 심지어 이제는 선약까지 갖추고 있거늘.
“쳇, 난 또, 뭐 대단한 보물인 줄 알았잖아!”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군요. 성약은 약이 아닌가요?”
천제현은 성수를 작은 병에 가득 담으며 말했다.
“성약도 등급이 있어요. 성수는 4급에 해당하는 희귀 성약입니다. 4급 성약이지만 부드러운 성질을 갖추고 있어 낮은 단계 술사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죠.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이번에 가져가면 요긴하게 쓰일 거예요.”
성수는 의외의 수확이었다.
기적성으로 돌아온 천제현은 도움을 준 토착민들에게 후하게 사례한 후 해산시켰다. 토착민들은 사실 포상에 큰 관심이 없었다. 새로운 시련장을 무료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제는 신규 시련장이 하루 빨리 개방되길 바랄 뿐이었다.
이 시각, 성주 업무실.
공화련과 비비안 두 부성주는 업무처리로 분주했다. 공화련은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며 어려운 업무를 척척 해결하고 있었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펜을 휘날리며 순식간에 수많은 일들을 처리했다. 그리고 비비안은 곁에 앉아서 입에 펜을 문 채 계속 머리를 긁고 있었다. 빽빽한 문서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머리가 어지러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비비안의 성격은 공서련과 남궁혜 두 사람을 다 닮았다. 귀여운 외모에, 사리분별을 하면서 모든 일에 열심인 공서련 같기도 했지만, 활달하게 움직이며 장난기가 심한 면도 있었다. 이렇게 닮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세 소녀들은 부족을 뛰어넘어 의자매가 되기로 했다. 남궁혜가 큰언니, 공서련은 둘째 언니, 나이가 가장 많은 비비안은 도리어 막내가 되었다.
비비안은 겉으로 보기엔 인간 나이로 열네 살 정도 되어 보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세 소녀는 종일 함께 다닐 정도로 친해졌다.
하지만 공서련이든 남궁혜든 누구를 닮았든 간에 비비안은 성주를 맡을 재목은 아니었다.
‘아바마마는 정말 너무해! 날 기적성의 부성주로 앉히시다니!’
비비안은 남궁혜와 공서련이 천제현을 따라 놀러갔다는 말을 듣자 마음이 붕 떠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언니, 비비안, 우리 돌아왔어요!”
공서련이 신나서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뭘 갖고 왔는지 생각도 못할 걸요. 분명 엄청 놀랄 거예요!”
공서련의 목소리를 들은 비비안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벌떡 일어났다.
“무슨 물건인데? 어서 나도 보여줘!”
공화련의 짙은 눈썹이 찌푸려졌다.
“이곳은 성주 업무실이야. 그렇게 경박한 모습을 보이다니…….”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서련이 가져온 성진석을 단숨에 쏟았다. 촤르륵 소리와 함께 성진석으로 작은 산이 만들어졌다. 비비안과 공화련은 눈을 뗄 수 없었다. 고순도에 높은 마력을 갖춘 성진석, 참으로 보기 힘든 극상품이었다.
불멸체를 수련 중인 그녀들은 이것이 얼마나 진귀한 물건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건…….”
놀라움에 휩싸인 공화련이 물었다.
“어디서 이 많은 성진석을 가지고 온 거야?”
“놀랍죠?”
남궁혜가 의기양양한 태도로 손짓을 해가며 설명했다.
“대장이 우리를 데리고 모험에 나섰어요. 원래 도시 지하에 초대형 지하세계가 있는데, 악마의 입에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니까 온갖 흉악한 괴물들이 깔려 있더라고요. 빛을 뿜어내는 이블아이 같은 것 말이에요. 그런데 그 안에서는 이블아이도 가장 낮은 급수의 괴물이라더군요! 앞으로 지루할 틈이 없겠어요. 성진석으로 빨리 실력을 향상시켜 모험에 나서요. 그곳에 기이한 괴물들이 얼마나 많을 지 정말 궁금하다니까요!”
비비안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게 정말이란 말인가? 그녀는 성주 직을 맡기에 호기심이 너무 왕성했다. 비비안은 모험이 좋았다.
‘기적성에 그런 곳이 있다니, 앞으로 지루할 일은 없겠어!’
“큰아가씨, 일에만 너무 몰두하지 말고, 수련도 좀 하세요.”
천제현은 공화련을 안심시키듯 말했다.
“기적성 일은 제가 도와드릴게요!”
천제현이 마을을 떠나 있는 동안 모든 이의 마력은 빠르게 성장했다.
혼돈의 숲은 남하국과 비교가 안 되게 자원이 넘쳐흘렀다. 곳곳에 각종 영약과 성약이 있고, 가격도 아주 저렴했다. 모두들 천제현이 떠나기 전 짜준 맞춤형 수련 계획을 따르면서 넘치는 자원을 바탕으로 꽃의 엘프의 도움까지 받아 수련한 덕분에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심빙우와 동방호연은 이미 진령 1성 정점에 달해 있었고 공화련, 공서련, 남궁혜 등도 혼성 9성 정점에 이르렀다.
이번에 마련한 성진석을 잘 활용하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기적상회 고위급 인사들이 모두 진령 마력을 갖춘다면 그들의 기반은 더욱 공고해지지 않겠는가.
공화련은 깜짝 놀라며 기뻐했다.
더 강한 실력을 갖추고 싶어 하지 않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성 안에도 많은 일이 있었어.”
공화련은 뭔가 생각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중요한 사안이었다.
“요더 선지자의 부상이 아주 심각한 모양이야. 샤먼교는 기적상회 쪽으로 돌아섰고 하프엘프도 완전히 우리 쪽에 승복했어. 주변 토착주민들과의 관계도 좋은 지금, 유일한 변수는 바로 드루이드교야. 선지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내부적으로 혼란이 생길까 걱정돼. 절대 작은 세력이 아니거든.”
그린교, 사령교, 샤먼교 그리고 드루이드교는 이 지역의 주요 세력이다. 앞의 세 교파에 비해 드루이드교는 소극적이고 세상에 초탈한 편이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
“드루이드교는 아주 재미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 기적성에 합류한다면 큰 도움이 될 거야.”
공화련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떻게 도울지 생각하고 있던 참인데, 너에게 분명 방법이 있겠지?”
“큰아가씨, 안심하세요.”
천제현은 옆에 있던 비비안에게 말했다.
“비비안 공주님을 데리고 한번 다녀올게요, 이 정도 문제야 식은 죽 먹기죠!”
“그래!”
비비안은 처음부터 집무실에 있고 싶지 않았다.
“언니, 안심하고 폐관에 들어가. 우리들이 있잖아!”
천제현이 끼어들었다.
“큰아가씨는 너무 약해요. 기적성의 부성주씩이나 되어서 혼성경지 마력으로 되겠어요? 말도 안 되죠!”
그러자 공화련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러게, 나 때문에 성주 체면이 구겨졌네.”
“괜찮아요, 괜찮아요.”
천제현이 씨익 웃었다.
“본 성주는 미녀에게는 늘 너그러우니까요!”
공화련의 실력이 진령 경지에 이르면 그녀의 천서 정령이 더욱 강력해져 업무와 학습 효율 역시 대폭 상승할 것이다. 미리 준비를 잘 해두면 앞으로의 일이 더 수월해지지 않겠는가? 아무리 바빠도 우선은 실력 향상이 시급하다.
“좋아. 자, 이건 요 며칠간 만들어 놓은 기획 초안이야.”
공화련은 책상 위에 두툼한 종이들을 올리며 말했다.
“기적성의 제도적인 폐단과 개선이 시급한 부분을 분석했어. 또 이건 도시건설 관련 초기 계획이야. 검토…….”
“큰아가씨, 일처리는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천제현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바로 공포하고 실행하죠.”
공화련은 어이가 없었다.
‘이 녀석은 언제까지 이렇게 생각 없이 지내려는 거지?’
기적성은 앞으로 기적상회의 총본부가 된다. 그런데 천제현은 여전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 아닌가.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공화련은 천제현의 건들거리는 모습이 아주 불만스러웠지만, 자신을 신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에 한편으로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공화련은 공서련과 남궁혜 등을 데리고 폐관수련에 들어갔다. 그리고 천제현은 드루이드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약실에 가서 성수단 몇 개를 만들었다.
천제현의 지금 실력으로는 4급 재료를 다루기 힘들다. 진령 술사는 4급 제약진을 시전할 수 없고, 4급 아래의 제약진으로는 4급 재료를 제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수의 부드러운 성질을 생각하면 특별한 정련 없이도 바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성수와 3급 약재라면 충분히 융합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4급 회복용 성단에 뒤지지 않는 효력을 갖춘 성수단 여러 개가 만들어졌다.
천제현은 먼저 하나 복용해 보았다. 성수단 약효가 체내에 퍼지면서 바로 효과가 나타났다. 리치와의 전투에서 반사 공격으로 입은 부작용이 회복된 것이다. 여러 날이 지나야 회복될 내상이었는데 순식간에 완전히 아물었다.
성수단 효과는 단순히 회복에만 그치지 않는다.
체질 개선에도 유용하다. 오랫동안 앓아온 난치병이라고 해도 깨끗이 치료하고 체질을 크게 개선시켜준다.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좋은 물건인 것이다.
“비비안 공주님, 가요. 드루이드 신전으로.”
“좋아!”
비비안이 공간의 힘을 발휘해 순식간에 천제현을 드루이드 신전으로 데리고 갔다. 공간능력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덕분에 두 사람은 눈 깜짝할 새에 드루이드 신전 문 앞에 도착했다.
“누구냐!”
드루이드 신도들이 다급히 몰려들었다.
“오해하지 마세요, 성주 천제현입니다.”
천제현이 단약을 높이 들어 올리며 말했다.
“본 성주는 요더 선지자의 상처가 완쾌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특별히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세계로 왔소. 흉악한 마수 18마리를 해치우고 8가지 선약을 모은 후, 예로부터 내려온 비술로 선단을 제조했소. 요더 선지자의 병을 완전히 낫게 할 약이니 나를 요더 선지자에게 데려다 주시오.”
드루이드 신도들은 놀라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정말 그렇게 신기한 약이 있다고?’
하지만 드루이드 신도들도 천제현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천제현과 드라코리치와의 대전도 직접 목도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돌아온 요더 선지자가 거의 죽기 직전이었을 때, 방법을 찾아 목숨을 구제해 준 것도 천제현이었다.
그는 요더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가지 약 처방을 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코리치와의 일전 후 요더의 부상은 더욱 심각해졌다. 심지어 그동안 쌓인 내상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이젠 숨만 겨우 쉬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드루이드 신도들은 몹시 걱정스러웠다. 선지자는 드루이드교의 지도자이자 정신적 지주다. 요더 선지자가 죽으면 드루이드교는 전체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이러한 때에 천제현이 다시 극상품 선약이라는 것을 가지고 나타났으니 드루이드 신도들에게는 서광이 비춘 셈이다.
“성주님이셨군요, 실례했습니다.”
“성주님, 들어오시죠!”
드루이드 신도들은 아주 공손한 태도로 천제현을 신전 안으로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