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513화 (513/729)

# 513

제513장 가상 경기장

숲이 발칵 뒤집어졌다.

어디 가서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이런 대기근에.

군대에서 몇 년 수련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수련에 필요한 자원과 단약, 물약들을 지원해 주니 말이다. 마을에서 수련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게다가 기적성에서 아름다운 청사진을 그리고 있으니 병사가 되면 출세할 수도 있다.

삽시간에 숲에 입대 바람이 불었다. 힘쓰는 데 자신 있는 토착부족 전사들은 모두 손에 익은 무기를 꺼내 들고 자신의 무예를 뽐내기 위해 앞다투어 기적성으로 몰려들었다.

이번에 모집하는 인원은 3만 명이다. 그러나 앞으로 매해 혹은 분기마다 병사를 모집할 예정이다. 성 주변뿐만 아니라 훨씬 먼 지역에서도 병사를 모집할 것이다. 전투뿐만 아니라 주물 제조나 채집, 광산 채굴에 재능이 있어도 참가할 수 있다.

이 정책은 기적상회에 충분한 병력을 제공해 줄 것이다. 게다가 수만 개의 일자리까지 생기는 셈이다. 일자리는 앞으로 수십만 개로 늘어날 것이다.

일자리가 늘어나면 여러 부족의 삶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 게다가 부족의 단합을 촉진하고 기적성의 인구까지 늘릴 수 있다.

물론 이 방법에는 단점도 있다. 군대를 양성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기적상회는 병사들의 의식주와 수련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해야 한다. 정예병 한 명에 매달 평균 하품 마석 하나가 필요하다. 3만 명의 병사를 모집하니 하품 마석 3만 개가 들어간다는 이야기이다.

이 비용은 하프엘프족 연구기지 경비와 맞먹는다.

숲에 있는 대부분의 성은 이런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숲에는 정규군이 거의 없었다. 성을 지배하는 부족의 힘으로 방어를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평소에는 평범하게 지내다가 문제가 생기면 병사로 차출되었다.

기적성은 병사를 산업화, 정규화, 직업화시킨 첫 번째 성이었다.

기적성의 병사 모집은 성황리에 전개되었다. 미노타우로스족과 식인마, 땅의 엘프, 고블린이 모두 무공을 뽐내러 기적성으로 몰려왔다. 기적성의 대우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신청기간일 뿐인데도 3~4만 명이 넘게 찾아왔다. 선발시험을 사흘 뒤에 시작된다. 너무 많은 인원이 몰려 사고가 나지 않을까 염려되는 상황이었다.

기적상회에서는 일찌감치 경기장을 배치했다.

성주의 조수이자 기적성의 수석재무관인 델로리스는 성의 재무 상태를 전부 파악했다. 기적상회가 돈이 많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쓰다가는 몇 개월 안에 일이 터진다. 그렇게 되면 기적상회는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되고 성주의 공신력 또한 크게 훼손되지 않겠는가.

‘이게 어딜 봐서 징병이야! 이건 다 죽자는 소리잖아!’

델로리스가 천제현을 만나러 황급히 성주의 집무실을 찾았다. 그러나 천제현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공화련 혼자 서류들을 보고 있었다.

“성주님을 만나러 오셨나요?”

공화련이 고개를 들어 델로리스를 바라봤다.

“이를 어쩌죠? 성주님은 공서련과 남궁혜 아가씨, 비비안과 함께 경기장을 건설 현장으로 갔어요. 징병 선발시험을 준비하려고요. 며칠 동안은 못 돌아올 거예요.”

델로리스가 답답한 얼굴로 말했다.

“그쪽으로 가봐야겠네요.”

“그렇게 서두를 것 없어요. 일단 앉아서 차 한 잔 들어요. 성주님을 찾아가도 별 소용없을 거예요. 성의 일반적인 업무는 제가 관리하거든요.”

공화련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천제현같이 손이 큰 상관을 둔 델로리스의 난감한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뭘 걱정하는지 잘 알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별문제 없을 테니까요.”

천제현이 또 아름다운 은발의 여우족 소녀의 마음을 훔쳤다.

공화련은 델로리스를 보자 마음이 좀 답답했다. 그렇지만 델로리스는 공서련처럼 마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이성적인 공화련은 델로리스가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델로리스는 남궁혜나 공서련보다 훨씬 착실했다. 이런 조수가 있으니 공화련의 업무도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새로 왔으니 아직 우리에 대해 잘 모르겠죠. 걱정하는 게 당연해요.”

공화련이 일어나서 델로리스에게 차를 끓여주었다.

“사실 처음에 나도 그랬어요. 그러나 곧 알게 될 거예요. 지금 하는 걱정이 기우라는 걸 말이에요. 기적상회는 그쪽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요. 천제현 그 녀석이 좀 가벼워 보이고 경솔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 같지만 사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고맙습니다.”

델로리스가 요염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엘프녹차를 받아들었다.

“징병에 너무 많은 돈을 쓰는 것 같아요. 투자 대비 돌아오는 게 적어요. 그런 과도한 혜택은 기적성에 큰 부담을 줄 거예요.”

“천제현을 너무 과소평가하는군요.”

공화련이 봄바람처럼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눈앞의 인간족 미녀는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해수면 같았다. 그러나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공화련은 절대 무모한 사람이 아니다. 그녀의 자신감과 여유는 주변을 전염시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게 군대뿐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모집하는 수만 명의 병사는 우리의 인력 자원이기도 해요. 기적상회의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잖아요. 공간창고와 전송탑만 있으면 우리는 어떤 성이나 국가, 종족과도 교역을 진행할 수 있어요. 세상 모든 지역의 자원을 채굴하고 그곳과 무역을 할 수도 있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 정도 병력 모집이 무슨 대수겠어요?

델로리스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기적상회는 외부에서 온 세력이라 기반이 없어요. 하프엘프가 믿을만한 종족이긴 해도 동족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다른 성과 다른 방법으로 통치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기반이 약하고 하프엘프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없으니 위험과 돌발 상황에 대처할 힘이 충분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정규군이 필요하죠. 장기적으로 보나 단기적으로 보나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기적성의 진정한 주인이 되려면 그럴만한 힘이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나요?”

델로리스는 공화련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재무는…….”

“안 그래도 맡길 일이 있었어요. 천제현이 그쪽을 성의 수석재무관으로 임명했다는 걸 알아요. 저는 상무부를 만들려고 해요. 앞으로 상무부의 총책임자를 겸임해 주세요.”

공화련은 일찌감치 구상을 다 마친 듯했다.

“능력 있는 여우족이 상무부에 대거 참여하여 큰 상단을 조직하면 좋겠어요. 여우족은 타고난 상인이잖아요.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델로리스가 흥분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건 여우족에게 엄청난 기회였다. 여우족은 선천적으로 똑똑하고 돈 냄새를 기막히게 잘 맡았다. 기적상회는 똑똑한 여우족에게 상단 관리를 맡기고자 했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격이다. 여우족은 능력을 발휘하여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좋아요!”

델로리스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

“바로 가서 처리할게요!”

“여기에서 만 리 떨어진 곳까지 천망호의 신호를 잡을 수 있어요. 첫 번째 임무를 줄게요. 통신기와 방송, 영화관을 여러 성과 부족에 보급해 주세요. 상업적인 가치도 높지만 기적상회의 영향력을 높이고 앞으로의 전략을 위해 필요한 일이에요.”

이 기술들은 엄청난 개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델로리스가 어찌 모르겠는가?

기적상회는 기적성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공간창고로 통신기와 자음기, 상영기를 기적성으로 보냈다. 이미 수십만 대의 물량이 준비된 상태였다. 상단의 첫 번째 임무는 이 물건들의 판로를 개척하는 것이다.

이것들을 굳이 홍보할 필요가 있을까? 선보이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릴 텐데!

***

며칠 후 준비가 끝나고 정식으로 병사를 모집했다.

이 순간을 기다려온 숲의 용사들이 대형 경기장 앞으로 모였다. 이 경기장은 기적상회가 이번 병사 선발을 위해 보루를 임시로 개조하여 만든 것이다.

기적성의 병사 선발은 몇 단계로 나뉜다. 첫 단계는 가장 간단하게 무공만 겨룬다. 참가자들끼리 겨뤄서 이긴 자가 다음 단계로 올라간다.

숲의 용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대련은 사상자가 나올 정도로 격렬할 텐데 임시 경기장이 너무 작았다. 이렇게 많은 참가자가 대련한다면 반나절도 못 돼서 경기장이 망가질 것이다.

경기장에는 거대한 화면이 걸려 있었다.

빨간 머리의 여인이 화면에 나타났다.

“숲의 용사 여러분, 기적상회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적상회 징병 시합이 이제 곧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정말 운이 좋아요. 처음으로 가상경기장을 체험해 보게 되었으니까요!”

‘가상경기장이라니!’

‘그게 뭐야?’

화끈한 빨간 머리의 여인이 설명을 시작했다.

“가상경기장은 기적상회가 정신기술로 만든 공간이에요. 여러분은 정신으로 만든 가상공간에서 실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대련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상경기장에서는 다치거나 죽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갈고 닦아온 무공을 마음껏 펼치세요!”

용사들의 안색이 급변했다.

‘정신으로 만든 경기장이라니?’

그런 환경에서는 다치거나 피를 흘리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여러분께 내부 소식을 하나 알려드릴게요.”

남궁혜가 신나는 소식을 전했다.

“기적상회는 혼돈의 숲에 가상경기장을 많이 지을 예정이에요. 앞으로 상금이 두둑한 격투 경기를 자주 열 것입니다. 가상경기장은 기적성뿐만 아니라 혼돈의 숲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락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될 거예요. 정신통신망이 구축되면 세상 곳곳에 있는 여러 종족이 모두 기적상회에서 개최하는 경기에 참가할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백만이 넘는 프로 선수가 생길 것입니다. 기대해주세요!”

사기가 한껏 오른 용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거 너무 근사하잖아!”

이 시대에는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었다. 가상경기장이 대량으로 보급되어 그곳에 가상관람석을 만들거나 전영경을 연결하여 생중계로 내보낸다면 대중적인 오락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이것은 무예를 숭상하는 이 시대에 아주 전망 있는 사업이다. 다양한 실력을 지닌 프로 선수를 대거 양성할 수 있고 도박산업 같은 관련 업종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모두 질서 있게 줄을 서서 들어가세요. 진행 요원의 안내에 따라주세요.

숲의 용사들은 신이 나서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가상경기장은 일반 경기장과 똑같았다. 경기장은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구역마다 중앙에 경기장이 있었다. 계단식으로 된 관람석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포착되었다.

경기장 중앙에 거대한 수정석이 박혀 있었다.

정신 마력을 방출하고 있는 수정석을 중심으로 거대한 마력진이 경기장에 펼쳐져 있었다. 경기장 벽은 거대한 마력기둥에 둘러싸여 있었다. 발밑에서는 마력 파동이 느껴졌다.

“모두 앉으세요.”

“가상경기가 시작됩니다!”

“모두 긴장 푸세요. 안전하니까 겁내지 마시고요.”

용사들이 좌석을 가득 메우자 사방의 마력기둥과 마력진의 부호에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 빛은 경기장 중앙의 거대한 정신속성 수정석과 연결되었다. 순식간에 엄청난 정신력이 방출되면서 대형 마력진을 완전히 뒤덮었다.

숲의 용사들은 의식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놀랍게도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다. 조금 전까지 경기장에 있던 용사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졌다.

광활한 경기장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곳은 좀 전의 경기장보다 열 배 이상 크고 화려했다. 숲에서 나고 자란 용사들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

‘믿을 수 없어!’

‘기적성에 오길 정말 잘 했어!’

‘선발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도 이런 광경을 보게 되다니 헛걸음은 아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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