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508화 (508/729)

# 508

제508장 드루이드 지원군

클라크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대로 가다간 그린캐슬이 참변을 면치 못할 거라는 생각에 휩싸여 있을 때 돌발 상황이 또다시 발생했다.

“보십시오!”

“마수들이 오고 있습니다!”

그린캐슬 방향으로 엄청난 무리의 괴수들이 날아왔다. 용응수, 쌍족비룡, 벽력조 등 다양한 마수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으니, 이 숫자만 해도 3천 마리는 족히 되고도 남았다.

“드루이드다!”

“드루이드가 왔다!”

드루이드가 변신한 마수들이 망령군대를 향해 거세게 진격했다.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이 마수들의 거센 공격에 방금 전까지 전세를 역전시킨 망령군대는 다시금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새끼 여우는 공포기사들 사이를 분주히 뚫고 지나가 잠깐 사이에 공포기사 수십 명을 없애 버렸다.

지금껏 중립을 고수한 드루이드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그린캐슬을 돕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천제현은 이에 대해 놀랍지 않았다. 사령교가 노리는 것은 고작 성이나 종족 하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체 지역을 망령의 땅으로 바꿀 계획이었다. 드루이드는 그린캐슬에서 수년 간 살아왔으니 이런 일이 발생하도록 수수방관하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드루이드족은 그린캐슬을 돕기로 결정한 것이다.

크르릉!

묵직한 용의 울음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4장이 넘는 녹색 비룡이 활활 타오르는 불을 내뿜으며 하늘에서 급강하했고, 비룡이 스쳐 지나간 자리는 금세 불바다로 변해 버렸다. 수백 마리의 망령괴수는 가공할 용의 입김에 줄줄이 잿더미가 되었다.

“요더 선지자다! 요더 선지자까지 합세했다!”

이는 정말이지 전대미문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성주님을 도우러 왔소.”

녹색용이 망령괴수를 단박에 쓸어 버린 후 천제현 곁으로 날아갔다. 그는 거대한 용머리를 구부린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안내하겠소!”

“하하하, 그럼 부탁 좀 하겠습니다!”

천제현이 새끼 여우와 신혈강시들을 거느리고 녹색용의 등에 올라탄 후 손을 크게 휘두르며 말했다.

“그린의 백성들아! 성주를 따르라!”

“성주님, 만세!”

“성주님, 만만세!”

이때 다른 드루이드들도 상당한 규모의 정예병을 이끌고, 아득한 숲을 지나 사악한 마력의 중심으로 맹렬히 날아갔다.

멀리서 분지가 희미하게 보였다.

분지는 매우 거대했다. 그 안에는 어둠과 죽음의 마력이 가득했고, 웅장한 마력 기둥이 구름 사이로 솟아 있었다. 하늘을 휘젓기라도 하듯 천지의 잠재된 힘을 쉼 없이 하늘로 끌어 올려 거대한 진법으로 분산시켰다.

천제현은 막막함을 느꼈다.

‘이 유적 안에 엄청난 마력이 있나보군. 이 안에 대체 무슨 빌어먹을 게 있는 거야?’

하지만 지금 당장 이 괴상한 곳을 무너뜨리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했기에 더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드루이드교, 그린교, 샤먼교, 아르놀트, 델로리스 등 숲의 핵심 세력은 과거에 서로 반목하고 수차례 암투를 벌여왔으나 이때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단결된 모습을 보였다. 그들 모두 하나의 적, 곧 사령교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말이다.

리치는 원뿔 형태의 제단 위를 둥둥 떠다녔다.

그 제단은 마력을 주변의 사령탑으로 끊임없이 내보냈고, 사령탑은 사령진을 만들고 있었다. 마력은 한없이 상공으로 모여들더니 돔형 지붕으로 흘러 들어가 가공할 위력의 대진법을 형성 중이었다.

망령부대는 패배한 후 뿔뿔이 흩어졌다.

천제현은 요더, 클라크, 아르놀트, 델로리스 등을 비롯하여 수천 명의 정예군과 함께 제단을 겹겹이 포위했다.

“멈춰라!”

클라크는 귀신처럼 허공을 유영하는 리치를 보고 말했다.

“넌 이미 졌다!”

“졌다고? 단언하기에 너무 이른 것 같은데?”

리치가 공중에 곧게 선 채 사람들을 굽어보았다. 망토는 바람에 흩날렸고 푸른 화염으로 이글대는 눈동자는 냉혹함과 함께 깊은 심연과도 같은 적막함이 엿보였다. 리치는 눈동자가 없었지만 천제현은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금껏 그대와 같은 인간은 본적이 없다.”

“이런,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네. 나도 당신 같은 리치를 본 적이 없어.”

천제현이 히죽거렸다.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이번에만 기회를 주지. 지금 당장 의식을 중단하고 망령부대를 물려라! 내게 항복하고 신하가 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리치는 감정이 없었다.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해도 그는 분노조차 느끼지 않을 것이기에 천제현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순순히 명령을 따르기만 하면, 다른 생명체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도 아예 불가능하지 않아.”

“다시 태어나?”

리치가 싸늘하게 말했다.

“흥미 없는데.”

일반 리치라면, 이는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다. 리치가 되면 인성이 점차 사라져 결국 살아 있다는 느낌마저 사라지게 된다. 리치가 완전히 무감각해지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자아를 되찾아 생명체로 다시 태어나는 건 분명 가장 좋은 선택이나, 이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영혼 있는 생물이 사령이 되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데, 하물며 그 반대라면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리치는 천제현을 믿지 않았고, 이 세상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혼자 2천 년을 살아오면서 감정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의 마음을 동하게 할 만한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기에, 삶도 죽음도 그에게 무의미했고, 마찬가지로 소멸을 두려워하지도 부활을 갈망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바로 천제현이 리치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리치가 되면 영원히 살 수 있는 불사의 몸이 된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상태까지 이른다면 죽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저것과 대화를 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소?”

클라크는 점차 강해지는 진법의 마력을 보며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저 리치가 시간을 끌어 의식을 마무리하려 한다면, 사태는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을 것이오.”

무려 2천 년이나 산 리치가 아닌가. 걸어 다니는 화석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리치가 된 사람 중에 해박한 지식을 보유하지 않은 이가 없는 만큼, 자신의 곁에 둘 수만 있다면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협상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이 리치는 감정이라곤 없었다. 원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없었기에 흡사 차가운 기계와도 같았다. 그는 영원토록 인성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기 전까지 남아 있던 기억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익을 취하고 해로운 것은 피하는 것이다.

리치는 천제현을 믿지 않았고 새로 태어나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린캐슬을 망령의 땅으로 만드는 게 자신에게 더 유리할 거라고 판단했다.

“인간과 겨뤄본 지도 오래 되었구나.”

리치의 말에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대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 궁금하군.”

말을 마친 리치가 뼈밖에 남지 않은 두 팔을 천천히 들어 올리자 주변에 있는 사령탑이 모두 등대처럼 힘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썩은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이 세상을 어둠에 몰아넣으려는 듯 공간을 끊임없이 침식해 들어갔다.

땅이 요동치더니 해골들이 잇달아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분지 안은 해골전사로 가득했다. 해골은 마치 흑옥으로 조각한 것처럼 새까맸고, 머리뼈 안에는 영화의 화염이 세차게 타오르고 있었다. 리치의 명령이 떨어지자 해골전사는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해골은 그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기에 천제현 일행은 망망대해에 고립된 섬과도 같았다.

해골들의 모습이 평범한 해골처럼 보이지 않았다.

리치는 방대한 죽음의 마력을 이용하여 소환했기에 해골전사들은 단시간 내에 놀라운 힘을 가질 수 있었다. 거기다 그 수가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많아 저들한테 깔리면 압사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새끼 여우가 헤벌쭉 웃었다.

여우는 천제현의 명령을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 곧장 앞으로 튀어나왔다. 새끼 여우가 해골 바다를 스쳐 지나가자 푸른빛을 띤 혼불이 들끓기 시작했고, 해골 안에서 큼직한 혼불이 빠져나와 새끼 여우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천제현이 웃으며 말했다.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면, 어서 빨리 투항하는 게 좋을 텐데.”

이 정도 규모의 해골병사가 전장에 있다면 대적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저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움조차 느끼지 않으며 실력도 탁월해 타고난 전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망령의 천적인 새끼 여우를 만났으니 그 수가 많은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저들은 절대 천제현 곁으로 다가설 수 없는데.

클라크가 큰소리로 명령했다.

“모두 다 쓸어 버려라!”

전군이 사령탑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방으로 진격한 순간, 문제에 봉착했다. 이는 사령탑마다 강력한 마력으로 둘러싸여 있어 하나를 파괴하기도 대단히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때 리치가 낮게 주문을 읊조리자 사령탑에서 검은 번개가 방출되었다. 이것은 미처 손쓸 틈 없이 엄청난 속도로 아군을 뻗어 나와 영혼이 있는 생물을 모조리 공격했다. 번개를 맞은 생명체가 그 자리에서 망령괴수로 변했으니, 일반적인 마력 공격과는 차원이 달랐다.

새끼 여우가 필사적으로 해골의 혼불을 흡수했으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해골을 완전히 죽일 수 없다는 것.

새끼 여우가 쓰러뜨린 해골은 조금 있다가 다시 일어났다. 분지 안에 가득 축적된 죽음의 힘이 끊임없이 해골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에 여우는 더욱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천제현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분지의 힘은 리치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사령탑을 조종하여 무자비한 공격을 가할 수 있고, 아무런 제약 없이 해골을 소환할 수 있어 결코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사령진을 파괴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 결국 전멸당하고 말 것이다.

리치는 공격을 멈출 생각이 없는 듯 또다시 양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이와 동시에 주변에 있는 열댓 개의 사령탑이 리치를 향해 검은 번개를 쏘았다. 수많은 번개가 리치의 손에 응집되더니 순식간에 구체 모양의 번개 덩어리로 변했다.

리치가 번개 덩어리를 양손으로 가볍게 받쳐 들자, 번개 덩어리가 천천히 하늘로 떠올랐다.

번개 덩어리는 사방에서 마력을 끊임없이 끌어 모아 점점 강렬한 색을 띠기 시작하더니 끝내 강철과 같은 검은색으로 변했다. 크기 역시 놀라운 속도로 팽창하여 불과 10초 만에 작은 산 하나 정도의 크기로 커졌다.

좌중의 낯빛이 크게 바뀌었다.

리치가 강한 마력의 소유자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드루이드 선지자 요더만이 겨우 그와 겨룰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리치가 진법의 힘을 빌린 후 마력이 열 배 이상 상승한 이상, 지금 상황에서 그에게 대적할 만한 상대는 없었다.

번개 덩어리가 내리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피해가 생길 것이다.

요더가 지팡이를 짚고서 기침을 하자 그의 몸에서 놀라운 힘이 방출되었고, 녹색의 빛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이제는 그의 손에 맡겨보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선지자님, 잠시만요.”

천제현이 의연하게 걸어 나왔다.

“제가 상대하게 해주세요!”

“그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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