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7
제507장 격전(3)
천제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음식을 잘못 먹으면 크게 체하는 법이지!”
천제현이 말을 마치자 두 동강이 났던 두 구의 강시 몸체가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며 달라붙었다.
곧 신혈강시가 멀쩡하게 일어섰다. 옷은 이미 다 찢어진 터라 완전히 나체인 상태였다.
이 강시들은 긴 시간 동안 제련되어 외형에 큰 변화가 있었다.
강시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별을 알 수 있는 특징과 모발, 모공이 없었다. 구리로 주조된 것처럼 암금색 피부를 가졌고, 전신에는 주문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눈은 뜨고 있지만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다만 섬뜩한 핏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저건 대체 뭐야!”
망령도 사람도 아닌 강시로 인해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몸체가 완전히 두 동강이 났음에도 눈 깜짝할 사이에 치유되었으니, 경악할 만 했다.
이때, 증오귀의 몸체가 피어오르더니 물 끓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원래도 징그럽고 거대했던 몸체가 불규칙적으로 꿈틀대더니 고온에서 빠르게 녹아 버리는 양초처럼 썩은 살들이 한 덩이씩 떨어졌다. 증오귀의 몸은 갈수록 커져갔다.
“대체 무슨 일이지?”
사령 제사장은 이제 더는 증오귀를 통제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증오귀 체내에 가득 찬 힘은 마치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처럼 온몸 구석구석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통제 불능 상태가 된 증오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붕괴하고 있었다.
쾅!
증오귀가 폭발했다.
단번에 분출된 힘을 못 이겨 빚어진 결과로 흡사 자폭에 가까웠다. 폭발 위력은 그린캐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 주변의 수백 장을 휩쓸었다. 이 반경 안에 있던 모든 구울, 가고일, 좀비를 비롯하여 채 도망가지 못한 사령술사까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신혈강시는 폭발 중심에서 걸어 나왔다. 몸체는 심각하게 변형되어 있었으나 모든 뼈가 딱딱 소리를 내며 맞물리더니 금세 원래의 모습을 회복했다.
신혈강시 세 구는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신혈강시를 감히 삼키겠다고?”
신혈은 모든 저주를 무력화할 수 있다. 이는 죽음의 힘마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니 증오귀는 말할 것도 없고, 해골룡이라도 신혈강시를 삼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때 여러 방향에서 폭발음이 연이어 들려오더니 증오귀들이 모두 쓰러졌다.
천제현은 느긋하고 흡족하게 그 광경을 감상했다.
‘역시 돈 들인 보람이 있군 그래. 이 강시들은 불멸불사의 몸이나 다름없다고! 최소 진령급이 아니면, 이것들을 죽이기 어려울 걸. 이게 바로 신혈의 힘이지!’
고대신의 기억 결정체 안에서 이 꼭두각시들은 신의 사자나 다름이 없다.
신의 사자는 신은 아니지만 신의 힘을 일부분 지니고 있다. 현재 신혈강시 18구는 신의 사자가 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아직은 압도적으로 강한 것은 아니지만, 성장 잠재력이 높은 것만은 확실하다.
새끼 여우가 무서운 기세로 모조리 삼켜 버리자 마력 구름이 점차 걷혔다. 여우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고, 신혈강시들도 천제현 곁으로 돌아왔다.
사령술사의 낯빛이 흉측하게 변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죽음의 유적에서 만들어진 망령군단과 죽음의 유적에서 방출되는 힘은 그린캐슬을 초토화시키고도 남았다. 그런데 사령교가 갈수록 수세에 몰리다니.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사태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증오귀 다섯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이 마력 구름은 제 역할을 하기도 전에 와해되었다.
현재 숲의 정예군이 맹공을 퍼붓고 있는 상황에서 망령괴수는 점점 퇴색이 짙어졌다. 이제 사령술사들은 상대를 섬멸하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저들을 막아 리치가 의식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만약 리치가 준비 중인 경이로운 진법이 일단 발동만 되면, 그린캐슬은 순식간에 붕괴되고 100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 모두 망령이 되고 말 것이다. 그때가 되면 상대가 아무리 발악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버티면 되는 것이다.
거대한 그물처럼 하늘을 뒤덮은 마력진은 갈수록 커졌고, 응집된 힘도 점차 강해졌다. 그러나 이 진법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지금처럼 계속 수세에 몰린다면, 채 발동도 하기 전에 저지당할 것이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순 없어요.”
천제현도 리치가 의식을 서두르는 걸 알고 있었다. 이곳은 분지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이곳에서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소리쳤다.
“제거해야겠어요. 저 리치를 없애 버리죠!”
“좋아요!”
“없애버립시다!”
아군의 피해가 적진 않았지만, 사람들은 싸울수록 사기가 높아졌다. 종족의 운명이 걸린 만큼 이 전투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천제현이 신혈강시들을 거느리고 앞으로 나갔다. 그는 허공둔으로 몸을 보호하여 천군만마를 뚫고 지나가도 다치지 않았고, 신혈강시 열여덟은 그의 뒤를 따랐다. 이 꼭두각시들은 각종 저주와 일부 죽음의 마력, 어둠의 마력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어 거침없이 적진을 뚫고 갈 수 있었다.
물론 새끼 여우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여우는 사방에서 가해지는 공격을 단숨에 삼킬 수 있고, 엄청난 수의 망령괴수가 포위공격을 해와도 빨아들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가고일, 구울 혹은 다른 고급 망령 할 것 없이 체내의 혼불을 뽑아낼 수 있었다.
이처럼 특별한 능력을 지닌 새끼 여우는 그들에게 무서운 천적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 명의 인간과, 한 마리의 새끼 여우, 그리고 열여덟 꼭두각시가 엄청난 규모의 망령 사이를 거침없이 뚫고 지나갔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초주검이 된 망령들로 가득했다. 이토록 많은 사령술사가 그들을 공격했음에도 머리털 하나도 다치게 하지 못한 것이다.
천제현은 혼자의 힘으로 대부분의 망령을 제압했으니, 그린캐슬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령교가 어디 쉽게 당할 무리인가 말이다. 그러니 다들 천제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천제현이 없었다면, 사령교 이전에 이미 샤먼교에게 그린캐슬은 무너졌을 것이다. 그리고 사령교는 더 큰 후환으로 남았을 것이다. 결국 어떤 상황이 왔어도 그린캐슬은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할 게 뻔했다.
천제현은 혼자의 힘으로 샤먼교의 계획을 저지하고, 사령교에 타격을 입혔다.
망령들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전세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던 찰나 분지 방향에서 검은 그림자가 빽빽하게 몰려왔다. 놀랍게도 음혼 무리였다. 하나같이 흉측하고 시커먼 얼굴에 날카로운 이빨을 번뜩였는데, 이들은 음혼 중에서 가장 흉악하기로 악명 높은 원령이었다. 몸 전체가 강렬한 죽음의 힘으로 이루어졌고, 형상은 있으나 육신은 없었으며, 그 규모도 엄청났다.
음혼이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자 전신이 붉게 변하더니 마치 별똥별처럼 숲을 향해 끊임없이 떨어졌다. 죽은 듯 메마르고 시들어 버린 숲에 커다란 웅덩이가 수천 개 생겼다.
이는 무차별적인 폭격이었다.
망령군대든 숲의 군대든 모두 원령의 폭격 범위에 있었다. 그러나 원령의 폭격은 일반적인 화염이나 충격파가 아니었다.
강렬한 죽음의 마력과 정신 마력으로 이루어진 이 공격이 망령군단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적었으나 일반 생명체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무자비한 폭격이 이어지는 가운데 하늘에서 가고일 무리가 다시 나타났다.
가고일의 등에는 검은 갑옷과 마력을 두른 전사가 타고 있었다. 그들을 발견한 천제현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했다.
‘공포기사? 그 리치, 참 능력 있군! 이런 것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니!’
공포기사는 아주 큰 규모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수백에 이르니, 결코 얕볼 수 없는 데다 가공할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천제현의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이 공포기사는 리치가 숲에서 족장들 주검을 모아 만든 것이리라.
이 족장들은 천수를 다 누리고 세상을 떠나거나 예상치 못한 죽음에 이른 종족으로 하나같이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였다. 이들이 공포기사가 되면 생전에 지녔던 힘을 회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연마한 무공조차 일부 사용할 수 있었다.
이 고급 망령은 전신에 검은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는 엄밀히 말해 갑옷이 아니라 어둠의 마력이 응집된 것이었다. 이 망령들은 생김새만 생전 모습 그대로였고, 혼불로 이글대는 눈동자에 음산하고 어두운 망령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가공할 전투력을 지닌 공포기사 400~500구가 전투에 투입되었다.
공포기사는 개인적인 기량 면에서 증오귀에 비견할 수조차 없지만, 네댓 명이 합세하면 증오귀를 능가하는 힘을 발휘한다. 게다가 이제 투입된 수백 구의 공포기사는 증오귀 100마리의 전투력에 상당했다. 이는 그린캐슬에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공포기사가 커다란 검을 들고 엄청난 속도로 진격했다.
유명염화검을 시전하지 않았다면 천제현 역시 그저 속도를 간신히 따라가는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공포기사의 검은 온통 검은 기운에 휩싸여 있었고, 순식간에 스무 개 이상의 검기를 내뿜었다. 검기가 천제현을 향해 곧장 날아들었다.
공포기사는 속도뿐만 아니라 공격력 역시 굉장히 강했다. 천제현의 허공둔조차 무용지물이었다.
천제현은 간신히 공포기사의 공격을 피한 후에 다시 상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공포기사는 검을 가로로 세워 유명의 검기를 막았으며,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을 뿐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공포기사가 그림자처럼 다시금 쫓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새끼 여우가 기회를 주지 않았다.
갑자기 공포기사의 투구 속에서 혼불이 요동치더니 갑옷의 틈 사이로 빠져나와 새끼 여우의 입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천제현은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공포기사가 두려운 게 아니라 이 전투가 지리멸렬한 장기전으로 치달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천제현은 이곳에서 더는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다.
잔인한 폭격 이후 숲의 군대가 전열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공포기사의 연이은 공격이 이어졌다. 이는 그린캐슬과 숲 속의 토착부족을 모두 당황케 했고, 그에 따른 피해도 막중했다.
사령술사는 기대 이상의 성과에 환호성을 질렀다.
공포기사는 리치가 만든 친위대였다. 리치도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감지하여 직속 친위대를 보낸 것이리라. 어쨌든 공포기사가 있다면 위험한 국면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병력이 부족해! 아직 분지에 도착하지도 못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