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7
제497장 지하 세계(2)
델로리스와 하프엘프는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만 바라봤다.
그들이 이 광석의 가치를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성진석이란 별빛 수정, 스타 크리스탈 등으로 불리는 광석으로, 일찍이 천제현이 중주 시련의 탑에서 손에 넣은 것과 같은 물건이다. 그때 그는 그 작은 성진석 하나로 기적상회 사람 모두의 성광불멸체를 업그레이드 시킨 바 있다.
그런데 그 광물이 눈앞에 가득한 것이다. 산더미처럼 쌓여 그 수를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성진석 광산이었다.
일반적으로 별의 기운을 지닌 금속은 최고의 제조 재료이며, 성진석 정도면 보물 중의 보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성진석 광산이 있으면 수천 명, 아니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불멸체를 익히게 할 수 있다. 그것도 최소한 금강체 경지까지.
성광불멸체는 속성이 없는 무공이다. 성광 마력은 매우 희귀한 중립 마력이므로 델로리스와 같은 성직자들도 수련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 광산은 더 큰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이 정도의 성진석이면 몇 명의 고수를 길러낼 수 있을까?’
중주의 유성초 분지 역시 운석 충돌로 생겨난 곳이지만, 충돌 당시 운석에 있던 성진석의 함량이 극히 적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성분은 증발하고 극소량의 마력만 남아 유성초를 길러냈다. 하지만 이 동굴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운석이 땅에 부딪혀 부서지면서 대량의 성진석들이 땅에 묻혀 광산을 이룬 것이다.
“성진석이 이렇게 많다니, 어쩌면 그 물건도 있을지 모르겠군!”
천제현의 표정이 바뀌면서 흥분의 빛이 떠올랐다.
“어서 찾아보세요. 어쩌면 최상품 보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발견되면 우리는 물론이고 그린캐슬 전체가 2, 3년 안에 눈부신 발전을 이룰 수 있어요. 혼돈의 숲에서 가장 힘 있는 도시가 되겠죠.”
“세상에 그런 물건이 있다고요?”
델로리스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설마 신기라도 묻혀 있다는 건가요?”
“신기가 다 뭡니까. 그리고 우리한테 신기가 들어온다고 한들 제대로 쓸 수나 있겠어요?”
천제현은 그답지 않게 침착성을 잃고 있었다. 그는 초조한 듯 외쳤다.
“그 물건은 지금 우리에게 열 개의 신기보다도 값질 겁니다. 자, 자,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빨리 그걸 찾아봅시다!”
‘세상에 그렇게 귀한 물건이 있단 말인가? 신기 열 개보다도 값지다고?’
클라크는 가볍게 헛기침을 한 후 말했다.
“그렇다 치더라도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얘기를 해줘야 찾을 것 아니오.”
천제현이 막 입을 열어 설명하려고 할 때였다. 앞쪽 지표면에서 뭔가가 폭발하며 굉음이 울려 퍼졌고, 암석들은 돌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거대한 위압감을 지닌 힘이 아주 빠르게 뭉치며 형체를 갖추고 있었다.
경악한 델로리스가 외쳤다.
“저게 대체 무슨 괴물이죠!”
부서진 바위에서 생겨난 괴물은 파지직거리는 번개로 뒤덮인 2미터 크기의 거구였다. 그것의 헐벗은 몸은 아주 단단해 보였으나, 오관을 갖추지 않은 걸로 봐서 실재하는 생명체가 아닌 마력 형태의 원소 생명체 같았다.
“성광원소!”
천제현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상대하기 몹시 까다로운 놈입니다. 모두 조심하세요.”
델로리스는 즉시 병을 하나 던져 요괴신 제사장의 소환술을 시전했다. 곧이어 거대한 울부짖음과 함께 팔이 여섯 개 달린 원숭이가 희미한 마력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원숭이는 델로리스가 조종하는 대로 성광원소를 향해 화살처럼 날아갔다.
원숭이의 주먹 여섯 개가 수많은 잔영을 만들며 미친 듯이 성광원소를 공격했다. 그런데 모두가 숨을 들이마실 만한 장면이 벌어졌다. 성광원소의 몸에 부딪힌 원숭이 주먹이 부서지기 시작한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원숭이는 팔 여섯 개가 전부 부서져 내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겨난 반탄력이 공포스러운 기류로 바뀌며 순식간에 동굴 전체를 뒤덮었다.
성광원소는 아무 말 없이 앞으로 나아가 아무렇게나 팔을 휘둘렀다. 거기에 맞은 원숭이는 몇 초 버티지도 못하고 몸 전체가 수증기처럼 증발되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델로리스의 안색이 납빛이 되었다.
“큰일이에요. 저놈의 공격력이 최소 진령 4성, 아니 그 이상은 되는 것 같아요. 한 대라도 맞으면 끝장이에요!”
이번엔 클라크를 위시로 한 몇 명의 그린제사장들이 동시에 손을 썼다. 그러자 수많은 나무덩굴이 거미줄처럼 빽빽하게 성광원소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공격은 아무 효과가 없었다. 성광원소가 몸을 몇 번 털자 공룡도 포박할 수 있을 것 같던 덩굴이 조각조각 끊어져 땅에 떨어진 것이다.
클라크는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저 괴물은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때, 성광원소가 팔을 들자 태풍처럼 거대한 마력이 놈의 손바닥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클라크는 급히 수인을 맺어 결계를 쳤다. 수많은 나무덩굴이 결계를 뒤덮었다.
“도망가시오!”
도망가는 게 의미가 있을까?
성광원소의 팔이 공기를 가르자 수십 미터 길이의 거대한 칼날이 일격에 클라크의 방어막을 깨뜨렸다. 그 공포스러운 힘에 일행은 바람에 흩날리는 종이쪼가리처럼 날아갔고, 모두가 부상을 입고 말았다.
이윽고 성광원소의 형체가 일렁거리는 빛줄기로 변했다. 그러고는 빛의 속도로 클라크를 향해 날아왔다. 지능은 없지만 본능이 있는 놈이었다. 일행 중에 클라크가 가장 강하다는 걸 알아채고 선제공격 대상으로 정한 것이다.
“젠장!”
클라크의 마력이 낮은 건 아니었지만, 이 괴물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성광원소의 강력한 마력이 놈의 몸 표면에 보호막을 한 층 형성했는데, 전력을 다해 공격해도 흠집조차 내지 못할 것 같았다. 거기에 무시무시한 파괴력까지 갖고 있으니 절대 우습게 봐선 안 되는 상대였다.
퍼버벅!
성광원소의 일장이 날아왔다. 클라크는 두 손으로 지팡이를 움켜쥐고 버텼다. 해일 같은 힘이 충격파가 되어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지진이라도 난 듯 주변 공간에 균열이 생기면서 거대한 암석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쿠구궁!
클라크는 손에 든 지팡이가 갈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는 얼마 버티지 못 할 것 같았다. 그런데도 성광원소의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대장로님!”
그린제사장 몇 명이 황급히 무공을 시전하자 지면에서 굵은 거목 몇 그루가 솟아났다. 나무의 기둥에는 주문이 가득 새겨져 있었고, 나무들은 빠르게 성광원소의 몸을 옭아맸다. 강력한 봉인의 힘이 성광원소를 제압하고 있었다. 직접적인 공격을 튕겨낸다면 봉인으로 힘을 약화시키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방법도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봉인의 힘을 지닌 거목들이 화염에 휩싸인 듯 검은 재로 변하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그린제사장들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방법이 없군. 계속 가만히 있는다면 모두 죽고 말 테니…….’
천제현의 체내에서 강력한 기운이 솟구쳤다. 이와 동시에 허공에 구안마신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천제현이 오른손의 보검을 높이 치켜들자 구안마신은 칠흑처럼 검은 신마검을 들어 올렸다.
“저건…….”
델로리스는 그 공포스러운 힘에 온몸을 덜덜 떨었다. 그리고 이제야 깨달았다. 천제현이 줄곧 진짜 실력을 숨기고 있었음을.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혼성 경지에 불과한 천제현이지만, 전력을 다한다면 낮은 단계의 진령 술사쯤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여라!”
천제현이 성광원소를 가리켰다.
클라크와 싸우면서 그린제사장들의 봉인에 묶여 있던 성광원소의 몸에 전력을 다한 천제현의 일검이 박혔다. 원래대로였다면 그 정도 공격은 성광원소에게 별 영향을 주지 못했을 테지만, 천제현은 정령의 힘을 사용한 상태였다. 천제현의 손에서 날아간 신마검은 성광원소의 몸을 꿰뚫었다.
입이 없는 성광원소는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지만, 일행은 처참한 비명과 울부짖음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대뇌에서 뇌관이라도 터진 것처럼 엄청난 충격이었다.
성광원소의 형체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빠르게 쪼그라들고 있었다. 성광원소를 구성하고 있던 성광의 빛은 전부 신마검에 흡수되어 천제현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순식간에 전신의 경맥과 근골을 휘감았다. 거대한 마력에 금방이라도 온몸이 폭발할 것 같았다.
클라크도, 델로리스도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앞에서 천제현이 거대한 블랙홀로 변해 성광원소를 삼켜 버린 것이다.
‘당한 건가?’
아니다. 그 괴상한 능력은 천제현의 여러 가지 능력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들은 여전히 천제현이 있던 곳에서 영혼과 정신, 공간, 시간 등 다양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진령 경지의 그들조차 못 한 것을 천제현이 해내다니.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성광원소를 삼킨 천제현은 즉시 그 힘에서 분리되어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온몸의 모공에서 성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간신히 검을 잡고 버티고 있었으나 코와 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정령의 힘이 가져온 부작용인 것 같았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먼 곳에서 연달아 몇 번의 굉음이 들려왔다.
클라크는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성광원소가 더 있는 것 같소!”
델로리스도 뭔가 발견했다. 방금 전의 그놈은 수많은 성광원소 중 하나였던 듯했다. 그리고 나머지 놈들 중에는 방금 그놈보다 훨씬 크고 기운도 몇 배 이상 강해 보이는 놈도 있었다.
“빨리 도망쳐요!”
클라크는 지체 없이 덩굴 하나로 천제현의 몸을 묶어 들고 재빨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천제현이 죽은 성광원소가 있던 장소를 가리켰다. 희미하게 옅어진 빛 속에 이상하게 생긴 보석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
“별의 눈, 성안입니다. 저걸 가지고 가야 돼요!”
그 말을 들은 델로리스는 미끄러지듯 달려가 보석을 낚아챘다. 일행은 황급히 동굴을 빠져나갔다.
다행히도 성광원소는 쫓아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빛으로 이뤄진 놈들이니만큼 빛의 속도로 그들을 쫓아왔더라면 하늘이 두 쪽 나도 살아남지 못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