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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496화 (496/729)

# 496

제496장 지하 세계

천제현이 검을 뽑아 들고 안으로 들어가자 델로리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클라크는 천제현을 만류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프엘프 부대를 보내 수비에 각별히 유념하라 지시한 후 늙은 제사장 몇 명과 뒤를 쫓아왔다. 천제현은 이미 어느 정도 걸어 들어간 상태였다.

델로리스는 주변의 암벽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어둠의 기운이 너무 짙어요. 불길한 느낌이 드는 곳이네요.”

악마의 입 안에 자라난 덩굴이며 이끼들은 대부분이 기괴한 보라색이나 남색이었고, 암석은 암홍색을 띠는 등 모든 사물들의 색이 대체로 어두웠다. 동굴의 공간은 사통팔달로 여기저기 연결되어 있었는데, 길이 넓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했으며 산길을 걷는 듯 험준하기도 하고 길이 끊어진 곳도 있었다. 게다가 음산한 파동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와 불길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공기의 파동을 느낀 천제현이 조용히 말했다.

“뭔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방팔방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대한 그림자가 꼬리를 물고 달려오고 있었다. 뭔지는 몰라도 이 복잡한 동굴 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지금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천제현을 제외한 모두가 진령급 고수였다. 델로리스는 바로 공격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요괴신 제사장의 소환술을 시전하기도 전에 몽둥이로 얻어맞은 듯 다리에 힘이 풀려 옆에 있는 천제현 쪽으로 쓰러져 버렸다. 천제현은 급히 델로리스를 부축했다.

정면에서 흉측한 형체 하나가 달려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발톱이 번개처럼 그의 눈앞으로 날아왔다. 천제현과 델로리스를 한꺼번에 찢어놓을 생각인 듯했다.

“이런 젠장!”

천제현의 검날에서 투명하고 푸른 불꽃이 솟아올랐다. 눈부신 검기가 앞으로 쏘아져 나가자 괴물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곤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 버렸다. 검기에 몸이 잘리지는 않았다고 하나 이미 유명화에 사로잡힌 육체는 얼마 가지 못해 청백색 화염에 휩싸였고, 처참한 비명 소리와 함께 재가 되어 버렸다.

하프엘프 제사장들은 그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무렇게나 한 번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저런 위력을 보여주다니!’

방금 그건 혼성 술사가 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진령급 고수라 할지라도 저 괴물을 그렇게 쉽게 막아내진 못한다. 분명 저 젊은 인간, 보통이 아닌 게 분명했다.

“조심하시오!”

어지럼증을 느끼던 클라크가 다시 정신을 부여잡고 소리쳤다.

“박쥐괴물이오! 정신공격을 하는 놈들로, 쉬운 상대가 아니라오!”

천제현도 미약하게 정신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 정도의 정신 공격은 그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다. 조금 전의 접전 과정에서 본 상대는 원숭이나 사람 같은 몸에 박쥐처럼 거대한 날개가 달린 괴물이었다. 체형이 엄청난 걸로 봐서 한 마리당 최소 200킬로그램은 될 듯했다.

‘그보다도, 진령급 고수에게 영향을 줄 정도의 정신공격이라고?’

보통 괴물이 아닌 게 분명했다. 박쥐괴물의 정신공격을 관찰한 천제현은 그것이 초음파를 이용한 광범위 무차별 공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문득, 전장에서 그 괴물을 이용한다면 순식간에 적들을 싹쓸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절대로 과대망상이 아니었다. 델로리스 같은 진령 고수도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을 받고는 순간적으로 현기증을 느끼며 전투력을 잃지 않았던가. 일반 혼성술사라면 일곱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즉사했으리라.

‘훌륭하다, 훌륭해! 저 괴물들을 길들여 그린캐슬에서 사용한다면 적의 침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박쥐괴물들은 약탈단이 타고 다니던 박쥐마수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건 물론이고, 지능도 대여섯 살 된 인간 아이 정도는 되는 듯했다. 제대로 훈련만 시킨다면 충분히 명령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천제현이 여기 온 것도 그것을 위해서였다. 박쥐괴물을 어떻게 길들이느냐고? 새끼여우와 요괴신 교단의 제사장이라면 아무리 골치아픈 괴물이라고 해도 손쉽게 길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분명히 엄청난 돈이 될 것이다.

그린제사장들은 그들만의 비법으로 정신파를 막기 시작했다. 이윽고 클라크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덩굴이 촉수처럼 뻗어나가 빠르게 날아다니는 박쥐괴물을 순식간에 꽁꽁 묶었다. 박쥐괴물은 날카롭게 울부짖었고, 놈의 몸에서 생명력과 수분이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결국엔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져 동굴 천장에 매달렸다.

그렇게 모두가 박쥐괴물들을 해치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왼쪽 암벽이 갈라지더니 팔뚝 굵기의 빛줄기 몇 개가 일행을 향해 쏘아져 왔다.

그린제사장 한 명이 황급히 부적을 활성화해 빛의 방패를 만들었으나, 강력한 빛 줄기와 부딪힌 방패는 그대로 산산조각 나 버렸다. 간신히 한 번의 공격은 막은 것 같았다.

한편, 델로리스는 간신히 정신공격의 여파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이번에는 또 뭐야?”

그녀는 칠흑처럼 컴컴하던 동굴 곳곳이 전등이라도 켠 양 밝아져 있는 걸 발견했다. 처음에는 약하던 빛이 점점 세지더니 나중에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아졌다.

“이블아이에요. 숫자가 엄청나요!”

이블아이는 어둠 속에서 물체를 식별하는 능력이 뛰어난 마수로, 시야가 매보다도 넓다. 또한, 놈들의 눈은 환술과 각종 속임수를 꿰뚫어볼 수 있으며, 방사선을 쏠 수 있고, 벽 뒤에 있는 생명체를 눈앞에 있는 것처럼 또렷하게 파악하곤 한다. 이블아이의 입은 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이나 정신파로 서로 소통하며, 지능이 높진 않아도 뛰어난 협동성을 보여준다.

이렇게 많은 수의 이블아이가 한꺼번에 공격하면 진령급 고수 한두 명 정도는 쉽게 목숨을 잃고 말리라.

클라크가 잡고 있던 지팡이를 높이 들어 올리자 녹색 빛의 결계가 펼쳐졌다. 이블아이가 발사한 빛줄기들이 결계에 부딪혀 흡수되며 물결 같은 파문을 만들었다.

“위대한 숲의 신이시여, 당신의 힘을 보여주소서!”

클라크의 눈에서 녹색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몸이 폭발했다.

클라크의 육신은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고 거대한 나뭇잎 더미가 나타나 있었다. 그 나뭇잎들은 나비처럼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 조금의 틈도 없이 덮쳐오는 썰물처럼 삽시간에 시야를 뒤덮었다. 무력해 보이던 나뭇잎들은 신의 무기와 같은 위력으로 눈 깜빡할 새에 박쥐괴물들을 베어 버렸다. 나뭇잎에 얻어맞은 이블아이들은 일격을 견디지 못하고 암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델로리스는 깜짝 놀라 외쳤다.

“저 클라크라는 자의 실력은 샤먼의 마르스와도 견줄 수 있을 것 같네요!”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들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클라크의 작은 육신으로 변했다.

사방에는 형체가 멀쩡한 괴물이 없었다. 전부 몇 개로 조각나거나 곤죽이 된 사체들뿐이었다.

찬사를 보내려던 천제현은 갑자기 또 한 번의 이상한 마력 파동을 느끼고 급히 주변을 살폈다. 둘로 갈라진 이블아이 한 마리가 천천히 회복되더니 결국 다시 붙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거대한 머리로 좌우를 둘러보는 모습은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다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바닥에 깔린 동료들의 사체를 본 놈의 눈동자가 옅은 파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파지직!

성광과도 그 같은 빛이 다른 이블아이의 몸을 비추자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다. 몇 조각으로 찢긴 이블아이의 사체가 삽시간에 회복되더니 촉수로 몸을 지탱하고 일어난 것이다.

클라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다시 한 번 나뭇잎을 날려 그 괴상한 이블아이를 산산조각 내려 했다.

“잠깐만요,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천제현은 클라크를 말리며 말했다.

“이블아이는 먹이에서 마력을 얻지요. 불 속성의 수정석을 먹은 이블아이가 공격할 때 사용하는 빛줄기는 불 속성을 띠고, 번개 속성의 수정석을 먹은 놈의 빛줄기는 번개 속성을 띠는 식입니다. 그런데 저 이블아이의 마력은 아주 특이하네요. 그건 놈이 사는 곳에 특별한 광석이 많다는 뜻입니다. 일단 저놈을 놓아줘 봅시다. 그 특별한 광석이 있는 곳을 찾아내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사실 천제현은 이미 이블아이의 특성을 알아채고 있었다. 이블아이는 성광 마력과 같은 빛줄기를 발사할 수 있다. 성광의 힘은 회복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부상당한 동료를 치료할 수도 있었던 것이리라. 아주 특별한 광석을 먹고 자라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광석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천제현은 자신의 운을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뜻밖의 수확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불타는 검기가 지면을 한 번 쓸고 지나가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이블아이들이 전부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리의 이블아이만이 거대한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강렬한 위기감을 느낀 놈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따라가세요, 따라가요!”

지하세계는 몹시 복잡해서 하프엘프들도 지형을 정확히 알고 있진 못했다. 악마의 입 입구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었지만, 클라크 등도 안쪽에 뭐가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40여 분쯤 갔을 때, 이블아이가 한 동굴로 들어갔다.

‘저곳인 것 같군.’

천제현은 동굴로 들어가기 전부터 아주 순수한 별의 마력을 느끼고 있었다. 동굴에 발을 들이자 전방에 분지와도 같은 넓은 지면이 나타났다. 그 위에는 유성초 등의 식물들이 가득히 자라고 있었다.

최소한 3급 이상은 될 것 같은 유성초들이었다.

이 정도 품질의 유성초는 수만 년의 세월과 함께 매우 비옥한 환경이 제공되어야만 만들어진다.

천제현은 검을 휘둘러 길을 안내해 준 그 이블아이를 처리한 후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여기는 대체…….”

그의 뒤를 따라 동굴로 들어온 일행은 말문이 막혔다. 그곳의 지형은 자연적으로 형성됐다기보다는 고대의 신비하고 거대한 생명체가 암벽을 뚫어 만든 것 같았다. 바위며 지표면 도처에서 뭔가가 반짝거렸다.

“스타 스톤이에요!”

천제현은 별빛으로 반짝이는 철광석 하나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것도 순도가 아주 높은 스타 스톤 광산이군요. 이게 있으면 고급 마력진이나 고급 비행선 등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곳에 이렇게 많은 스타 스톤이 있다니. 제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 동굴은 운석 충돌로 생긴 것 같습니다.”

동굴 안에는 그 밖에도 스타 실버나 스타 골드 등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최고급 재료들이 가득했다.

“하하하, 이겁니다!”

수정석 몇 개를 집어 올린 천제현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외쳤다. 분지 가득 수정석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성진석이에요! 이렇게 많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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