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5
제495장 연구 기지(2)
천제현은 끝없이 펼쳐진 심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물론 천제현은 혼돈의 숲 지하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주 복잡한 곳이다. 특히 이 시대에 이곳에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또 얼마나 많은 보물들이 숨겨져 있을지 알 수 없다.
‘앞으로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잘 탐색해 봐야겠다.’
물론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만한 실력도 갖추지 못했다.
클라크는 아주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프엘프는 자그마치 200년 동안 이렇게 완벽한 교통 운송망을 만들어냈죠!”
하프엘프의 교통체계는 열차와 케이블카로 구성된다. 일행이 승강기에서 나오자 눈앞에 정거장이 등장했다. 십여 칸으로 이루어진 열차는 아주 안정적이고 긴밀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것이 바로 하프엘프의 지하열차다.
“하프엘프는 지하에 7개의 연구기지를 두고 있으며, 희귀광물이 있는 곳을 100여 곳 이상 발견했죠.”
클라크는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 지하철도는 마치 혈관과 같아서, 하프엘프의 각종 연구기지, 광산, 양식장, 생산지를 모두 연결해줍니다. 효율적인 생산망이 구축되는 거죠.”
“정말 복잡하고 방대한 공정이네요. 일반인이었다면 절대 완성할 수 없는 수준이에요!”
델로리스가 클라크에게 말했다.
“이 열차들은 어떻게 움직이죠?”
“동력실에 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클라크는 한 열차의 동력실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벌집모양의 마력창고가 있었는데, 창고마다 붉은색 가루가 가득했다. 마력창고 표면에는 마력진이 새겨져 있었고, 그 가운데 끼워진 대량의 마석이 마력진을 움직였다.
“열차의 동력원은 안정적인 불속성의 혼합 수정석 가루입니다. 이 가루가 강력한 화염과 마력을 분출하고, 마력진을 거쳐 흡수되면서 완전한 동력체계를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손쉽게 몇 백 톤에 달하는 열차를 나아가게 할 수 있죠. 최고속도는 시속 300킬로미터까지 가능합니다.”
이 부분에는 천제현도 놀랐다.
하프엘프의 기술은 마음에 찰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시대를 감안한다면, 아주 선진화된 기술이다.
화염 수정석은 그리 비싸지 않다. 수정석 마력을 활용해 열차를 움직이면 열차운행 비용은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마력진 운행은 마력이 소모된다. 여기에 쓰이는 마석 양은 절대 적지 않다.
클라크가 또 소개했다.
“전체 운송망을 운행하기 위해서 매달 최소 천개의 하품마석이 필요합니다.”
쓸데없는 낭비다. 완전히 불필요한 소비 아닌가. 기적상회 마력전지는 비용도 저렴하고 공업마력에도 사용될 수 있다. 천제현이 간단하게 개조만 하면 마석 소비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성주 권한대행님, 이제 하프엘프의 연구기지를 살펴보시죠!”
하프엘프 열차가 거대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움직였다. 처음에는 앞에 봤던 지하궁전이다. 전체 지하궁전 내부에 철로가 다 깔려 있어 수많은 건물 사이를 누비며 지하궁전 전체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이곳은 불 마력 연구실입니다.”
“이곳은 물 마력 연구실입니다.”
“이곳은 생명의 물 합성실입니다.”
“이곳은…….”
천제현은 열차를 타고 하프엘프 연구기지를 지나면서 기지의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을 느끼고 있었다.
하프엘프는 천성적으로 탐구를 좋아한다. 어쩐지 쉽게 그린캐슬을 넘겨주더라니, 하프엘프들은 이 지하연구실과 함께 적합한 비용만 손에 주어진다면 충분했던 것이다.
“이곳은 왜 이렇게 크죠?”
델로리스는 앞에 거대한 원형공간을 보며 물었다.
“이 안에는 뭐가 있나요?”
“이곳은 지하 생물 연구실입니다.”
“지하 생물이요?”
클라크가 연구실 문을 열자 거대한 감옥 같은 방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각 감옥 안에는 괴상망측한 생물들이 갇혀 있었다.
델로리스는 첫 번째 감옥 안에 생물을 자세히 쳐다봤다. 정말 괴이하게 생긴 생물이었다. 몸은 심각하게 가늘어서 몇 가닥 촉수로 버티고 있는데 머리는 엄청나게 컸다. 그 커다란 눈동자 안에 눈부신 빛을 한데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델로리스는 기겁했다. 이 생물의 눈에서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프엘프 감옥이 결계로 보호되지 않았다면, 강철도 녹일 수 있는 빛줄기에 델로리스는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델로리스가 물었다.
“이건 무슨 괴물인가요?”
“정말 아는 게 없군요”
천제현은 하프엘프의 소개를 기다리지도 않고 말했다.
“이 놈은 ‘이블아이(死眼)’이라고 불리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지하 암흑 생물이에요. 주로 눈으로 광선을 발사해요.”
클라크와 하프엘프들은 다시금 천제현에게 탄복한 표정이었다.
“이런 생물은 지상 세계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것인데, 성주 권한대행께서는 과연 박학다식하시군요!”
“흠, 이게 뭐 별거라고요?”
천제현은 별것 아니라는 듯 입을 비쭉거리며 다른 생물들을 보러 갔다. 이렇게 많은 암흑 생물들을 이곳에서 기르고 있었다니, 박물관처럼 진열해놓은 하프엘프들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프엘프의 연구소에 왜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가는 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이 연구 기지들의 규모, 설비, 수준들을 보면 분명 이 시대에서 최고 수준이다. 매달 겨우 몇 만 개의 하품마석만 사용하고 있다는 건, 이미 충분히 아끼고 있는 것이다.
클라크가 물었다.
“하프엘프들은 다른 취미는 없습니다. 오직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좋아하죠. 대부분의 하프엘프 연구소가 돈 되는 이익을 내놓지는 못하지만, 이곳은 하프엘프 생활의 기쁨이에요. 그래서 정말 성주가 되시고 싶다면, 이 연구 기지를…….”
“별 걱정을 다 하시는군요, 저도 학자라는 것을 아셔야죠.”
천제현은 하프엘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 연구 기지야말로 그린캐슬의 진정한 자산입니다. 지상의 성 건물들과는 사실 비교도 안 돼요. 이 연구 기지의 문을 닫을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곳에 자원, 인재, 기술을 열배, 백배는 더 지원해서 이 연구 기지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어요.”
델로리스는 옆에서 입만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클라크를 비롯한 하프엘프들은 감격과 경탄의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천제현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하프엘프들이 수백 년에 걸쳐 이렇게 튼실한 기초를 닦아 놓았으니 수많은 정력과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됐다.
집을 한 채 구매했는데 최고급 승용차와 하인들, 심지어 따뜻한 침대와 미녀 시종들까지 따라온 셈 아닌가. 그야말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것이다.
하프엘프들의 연구 기지는 최첨단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훌륭한 기반에 천제현의 기술과 인력이 더해지면 향후 상상을 뛰어넘는 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리라.
천제현은 이 연구 기지를 활용할 생각에 마음이 잔뜩 부풀었다. 하프엘프들의 사고방식은 인간들처럼 복잡하지 않았지만, 그들 중 몇몇은 방금 천제현의 말이 그냥 던져본 게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들의 눈앞에 있는 인간은 과학기술 연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인간이 성주 자리에 오른다는 건 하프엘프들에게 행운이었다.
엘프족들이 확실히 강하긴 했지만, 과학이나 기술 등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만약 천제현이 연구 기지를 적극 지원한다면 더 많은 하프엘프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암흑 생물 연구소 안에는 이블아이, 지하 거미 등 수십 종, 수백 마리의 하급 암흑 생명체들이 갇혀 있었고 매일 들어가는 사육비만도 만만치 않았다.
천제현은 의아해졌다.
“이 생명체로 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 합성 생명체라도 만들려는 겁니까?”
합성 생명체 연구는 첨단기술이다. 하프엘프들도 거기까진 할 수 없을 것이다.
클라크가 그의 의문에 대답했다.
“지하 세계에는 이런 생명체들이 셀 수도 없이 많소. 하루가 멀다 하고 출몰해 우리를 괴롭히는 놈들이지. 우리의 연구 목적은 그들의 약점을 찾아 더 효율적인 대응 방법을 세우는 것이라오.”
천제현은 거대한 지하 거미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중얼거렸다.
“그 말은, 이런 생명체들이 이 주변에 아주 많다는 건가요?”
“지하 생명체들은 지상의 생명체와 많이 다르다오. 그놈들은 생명력이 아주 질기고, 대부분 지하의 암흑 식물이나 수정석을 먹고 살아가지. 이블아이나 눈깔마귀 등의 괴물들도 모두 수정 광산에서 수정석을 먹고 마력을 흡수한다오. 번식력이 엄청나서 바퀴벌레나 생쥐처럼 죽여도 죽여도 다시 튀어나오고. 우리가 파악한 구역 안에서만 최소 수만 마리가 살고 있는 걸로 의심되오. 그것 때문에 이만저만 머리가 아픈 게 아니라오.”
“그렇게 많다고요?”
천제현의 두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그 말을 들은 하프엘프들은 영문을 몰라 멀뚱멀뚱 서로의 얼굴만 바라봤다.
‘대체 뭐가 좋다는 걸까. 설마 지하에 괴물들이 들끓는다는 말을 듣고 좋다고 한 건가?’
“혹시 지도가 있습니까?”
“지도? 아, 물론이오!”
그들이 가져온 지도는 지하 연구 기지의 지도로, 지하궁전의 위치와 철로를 아주 세밀하게 그려놓은 것이었다. 이미 개발된 광산과 지하 동굴까지 표시되어 있었다. 암흑 생명체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대에는 하프엘프 부대가 주둔하여 괴물들이 연구소와 그린캐슬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지하 세계는 너무나 복잡하여 거대한 미궁과도 같았다.
세상의 구조에 대한 천제현의 이해에 따르면 빛의 순수 마력은 하늘에, 탁하고 어두운 암흑 마력은 지하에 모여 있다. 그러므로 지하 깊이 내려갈수록 부정적 마력은 더욱 강력해진다.
혼돈의 숲의 지하세계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땅속 깊은 곳에 사악한 어둠의 생물들이 활개치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하프엘프들이 더 깊고 먼 지하로 파고 들어갈 수 없었던 이유도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을 만날까 두려워서였다. 지금까지 그들이 확인한 깊이에서만도 수많은 괴물들이 살고 있었으니까.
“함께 가시죠. 이 구역을 좀 보여주십시오.”
천제현이 말한 구역은 산속에 있는 한 동굴이었다.
동굴의 입구는 마치 쩍 벌린 악마의 입 같았고 동굴을 구성하고 있는 바위들도 보는 이를 섬뜩하게 만드는 핏빛이었다. 그래서 악마의 입이라 불리는 동굴이었다.
하프엘프들이 만난 지하괴물 중 대부분이 바로 이 악마의 입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악마의 입은 더 깊고 무서운 지하공간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여겨지곤 했다. 건드려서는 안 될 존재를 건드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악마의 입은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게 통제되고 있었다.
“장로님!”
악마의 입 정거장에 멈춰선 열차를 발견한 하프엘프 부대원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성주 대행님이시다.”
클라크는 천제현을 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정말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오? 이 안쪽은 하프엘프들도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오. 한때의 흥미로 그러는 거라면 이건 너무…….”
“괜찮습니다. 저도 바보는 아니니까요. 아니다 싶으면 바로 철수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알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