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494화 (494/729)

# 494

제494장 연구 기지

“뭘 의미하는데요?”

“영원의 숲과 그린캐슬 간에 약속이 있어요. 하프엘프가 영원의 숲에 도시를 넘겨도 하프엘프가 최근 쌓아온 부와 자원은 여전히 하프엘프의 소유고, 영원의 숲은 지금까지의 하프엘프들의 지출과 소비를 계속 감당해야 해요. 다시 말해서, 성주가 된 순간부터 당신은 자동으로 하프엘프의 적자와 부채를 넘겨받은 거죠. 지금 수지 차이를 간단하게 계산해 보니까, 적게 잡아도 매달 약 2만 6천개의 하품마석을 보충해야 해요.”

여우족은 돈에 있어서 아주 민감하다.

이 부분은 델로리스에게서도 충분히 드러났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재무상황을 아주 명확하게 파악한 것이다.

풉!

천제현은 찻물을 그녀의 몸에 뿜을 뻔 했다.

“매달 몇 만 개의 마석을 내놓으라니, 영원의 숲은 어떻게 이런 밑 빠진 독을 받은 거죠? 농담하는 거죠!”

“누구의 손 안에 있냐에 달렸죠. 엘프족이 아주 부유하지는 않다 해도 이 정도 손실은 감당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그린캐슬에 강력한 엘프족이 들어서면 인기도 빨리 회복될 테고, 자연스럽게 흑자로 돌아설 테니 뭔가를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 엘프족에게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거죠.”

델로리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천제현을 흘끔 보며 말했다.

“하지만 당신의 손에 넘어간 이상…… 충격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당신이 성주가 됐다는 소식이 공포되자 그린캐슬의 상인 절반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요. 나머지 절반은 이미 떠나고 있는 중이고요. 이 달 세수도 크게 줄어들 테고, 재정 수입은 마비 상태에요. 당신이 행운아이기를 빌어야 할 것 같군요.”

매달 몇 만 개의 마석을 보충해야 한다니. 어느 집단이라 해도 그 정도의 마석이면 적은 수치는 아닐 것이다.

천제현의 기적상회도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설립역사가 오래되지 않다 보니 이곳 숲 속 거대한 부족들에 비해서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성급하게 이런 곳을 인수했으니, 감당이 안 된다.

“이 마석들은 다 어디에 쓰이나요? 좀 줄일 수는 없나요?”

델로리스는 재무 명세서를 신속하게 들추어봤다.

“주로 물자 재료 구매, 그린캐슬 군사, 양식장, 하프엘프 생활복지, 이런 곳에 거의 절반이 사용돼요.”

“나머지는요?”

“당연히 연구 개발이죠!”

델로리스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프엘프는 지식욕과 탐구욕이 가장 강한 종족이에요. 하프엘프의 연구 수준은 혼돈의 숲 전체에서 매우 높은 수준이에요. 각종 실험과 연구에 엄청난 규모의 재료와 자원이 소모되죠.”

천제현이 그린캐슬을 인수하게 된다면 일반 자원 재료나 군비 예산의 지출은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그래봤자 사분의 일 정도이다. 하프엘프가 영원의 숲에 의탁하며 내놓은 기본 조건, 하프엘프의 생활복지와 연구 작업이 가장 주요 지출이다. 엘프왕도 이 부분을 보장해주기로 약속했다.

천제현이 그린캐슬의 영원한 성주로 임명받은 이상, 그와 기적상회 역시 이 부분을 감당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천제현은 생각도 못했다. 겨우 성주 권한대행 자리에 앉았건만, 좋은 것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하프엘프 몇 십만 명을 먹여 살려야 하다니, 거대한 압박에 짓눌려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클라크는 어려움에 부딪친 내가 도망치기를 바라는 거겠지! 이 하프엘프들이 날 아주 과소평가했군!’

천제현은 잠시 생각해 본 후 말했다.

“지금 가서 제 첫 명령을 공포하세요. 본 성주의 재임 기간 동안 도시 전체의 거래세, 영업세는 모두 면제라고요.”

“미쳤군요!”

델로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스로 팔을 잘라내는 건가요, 재정 적자가 매우 심각하다니까요, 지금 빚이 적다고 생각해서 이러는 거예요?”

“방금 말대로 상인들 절반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고, 다른 절반은 이미 떠나는 길이라면, 굳이 이 세수를 받아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우선 사람들을 붙잡아 두면, 그들에게서 돈을 벌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요. 재정 적자라면,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줄여 보고 나머지는 내가 메우도록 하죠.”

천제현은 별것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마석 만 개 정도 아닌가요? 그 정도 못 낼 나도 아니고!”

“당신…….”

델로리스는 천제현의 배경이 심상치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금액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걸 모습을 보고 그를 더욱 높게 평가하게 되었다.

“좋아요, 문제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죠.”

천제현은 그린캐슬과 혼돈의 숲에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는 상관하지 않고 첫 명령을 그대로 공포하게 했다.

“난 하프엘프 연구실이 아주 흥미롭군요. 우리 그곳으로 가보죠.”

그 다음으로 천제현은 하프엘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나섰다. 어쨌든 하프엘프는 숲속에서도 보기 드문 높은 수준의 지식인들이다. 기적상회와 오히려 아주 잘 맞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린캐슬은 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하프엘프의 실험실 역시 500년의 역사를 지녔다. 게다가 남하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환경이다. 얼마나 특별한 곳일 지 천제현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첫 번째 명령이 발표됐다.

그린캐슬이 또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앞장서서 기초 수입을 절반으로 삭감하는 이런 방법은 어떤 도시라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게다가 원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그린캐슬이 상인들에게 받는 부가세 수입마저 끊었으니 이제 이 도시는 무엇으로 유지하려는 걸까.

클라크는 서둘러 천제현을 찾아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천제현은 자신의 행동을 해명하기는커녕 오히려 버럭 화를 냈다.

“좀 멀리 보세요. 사람도 적은 그린캐슬에서 얼마 안 되는 부가세를 거둬서 어디에 쓰겠어요? 우선 이곳을 혼돈의 숲의 첫 번째 면세 도시로 만들어 인기를 끌어올린 뒤에 다시 생각해요. 걱정 마세요. 하프엘프의 복지와 정규 지출은 내 돈을 털어서라도 절대 마석이 부족할 일이 없게 할 테니까요.”

수중의 돈만 믿고 거만하게 나오는 모습에 하프엘프들은 당황스러웠다.

설마 이 인간 뒤에 다른 세력이 버티고 있단 말인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토록 많은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을까? 이 정도로 많은 자금을 보충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단순히 보통 세력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천제현은 아주 확신에 차서 약속을 하고 있다. 하프엘프들은 여전히 의심을 떨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도리도 없었다.

“그나저나 마침 잘 왔어요.”

천제현이 먼저 말을 꺼냈다.

“하프엘프 연구 기지와 도시 건축 상황을 돌아보려고 하는데, 도와줄 수 있나요?”

원래는 외부인에게 보여줄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천제현은 성주 권한대행이다. 이 자리에 있으면서 도시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도시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클라크와 몇몇 하프엘프 장로들은 몇 분 간 상의를 마친 후 답했다.

“물론 문제없습니다. 저희와 함께 가시죠.”

하프엘프의 연구 기지는 늘 극비에 부쳐졌고, 이 지역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곳이었다. 이번에 천제현을 따라 들어가게 되었으니 델로리스에게도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하프엘프는 걸어가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하프엘프 연구 기지와 그린캐슬은 같은 시기에 건축되어 아주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숲에서 가장 완벽한 연구기지죠.”

산 가까이 지어진 한 그린신전이 바로 하프엘프 연구기지의 입구였다. 안쪽에서부터 산중턱까지 이어지는 복도를 걸어가다 보니 승강기 네 대가 나란히 눈앞에 나타났다. 천제현과 델로리스가 승강기 안에 들어서자 승강기는 즉각 아래로 깊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방이 수정석으로 만들어진 투명한 창문으로 이루어진 덕분에 승강기에 앉아 내려가는 모든 이가 다른 암층들을 오가고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승강기는 깊이, 깊이 내려갔다. 대략 500미터 정도 내려갔을까. 눈앞에 거대한 지하세계가 펼쳐졌다.

순간 델로리스의 입은 떡하니 벌어지고 눈은 휘둥그레졌다. 몸의 반응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그린캐슬 아래쪽에 이렇게 거대한 지하굴이 있었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로웠다.

하프엘프의 설명이 이어졌다.

“혼돈의 숲은 아주 특수한 지질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숲의 각 지역 지질을 연구한 끝에, 당시 아주 놀라운 발견을 하셨죠. 혼돈의 숲 지하에는 굴이 매우 많았던 겁니다. 그중 가장 깊은 지하세계에는 악마, 다크엘프 같은 암흑생물들이 대규모로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곳도 있었어요. 아마도 먼 옛날 혼돈시대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겠죠.”

“그린캐슬 아래쪽에 악마 같은 것들은 없겠죠?”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는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승강기가 목적지에 도달할 때쯤, 아래쪽을 내려다 본 천제현의 눈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하프엘프의 창고들이 보였다. 곧게 늘어서 있는 철로 위에는 열차가 정차해 있었는데, 열차 끝마다 유선형의 기관차가 달려 있었고, 중앙에는 10~30개가 넘는 각종 직사각형 컨테이너가 연결되어 있었다. 바로 지하정거장이었다.

눈앞에 빽빽이 늘어선 궁전들이 등장했다. 지하궁전은 몇 십만 명이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모두 금속으로 만들어진 초현대적인 기풍의 건물이었다.

이곳에는 수많은 금속파이프가 깔려 있었다. 큰 것은 몇 미터 굵기로 여러 사람이 함께 손을 벌려야 겨우 안을 수 있을 정도였고, 작은 것은 몇 센티미터, 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크기였다. 모두 한데 밀집해서 뒤얽힌 복잡한 구조였는데, 연구기지 전체가 이런 크고 작은 파이프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지하궁전은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멀리서 바라보니 저 끝에 또 여러 개의 지하궁전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지하궁전 간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둡고 깊은 심연이 존재했고, 지하궁전은 암흑세계를 밝히는 등대 같았다. 궁전은 공중에 세운 철도통로나 케이블카로 연결되었다.

깊고 깊은 지하세계지만 생각만큼 어둡거나 고요하지는 않았다. 지하궁전 위의 등대 외에 사방팔방으로 놓인 안벽마다 빛나는 수정석이 가득했고, 각양각색의 기이한 빛을 뿜어내는 식물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델로리스는 빛나는 버섯도 발견했다. 버섯갓 직경은 최소 30미터 정도로 거대한 전구처럼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다. 암석 틈 사이로 물이 졸졸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맑고 깨끗한 폭포는 끝을 알 수 없는 지하심연으로 떨어졌다.

기이한 도마뱀과 박쥐같은 생물들이 암벽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늘의 태양을 영원히 볼 수 없는 이런 공간에 형성된 기이한 생태계를 보자니 조물주의 오묘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지하공간은 깊이를 알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탐측해 본 적이 없어요. 지하세계는 자원이 아주 풍부한데, 깊은 곳일수록 더 많은 자원이 매장되어 있어요. 물론 더 깊은 심연일수록 위험생물의 습격을 받을 가능성은 높지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