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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488화 (488/729)

# 488

제488장 독을 타다

천제현은 서슬 퍼런 기운을 뿜어내는 늑대족 인간을 쳐다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신전을 향해 걸어갔다. 클라크와 델로리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천제현의 뒤를 따랐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드루이드교 신도들이 하나씩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모두 살기등등한 표정을 지으며 몹시 못마땅해했다.

‘저 따위 놈이 감히 선지자님을 알현한단 말이야?’

드루이드교는 자연과 소박함을 추구했다. 그런 까닭에 드루이드교 신전은 원시적이고 오래된 건축물처럼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신전에는 거대한 신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드루이드교의 신인 자연의 여신 신상이었다. 여신의 거대한 날개가 앞쪽의 보좌를 감싸고 있었다. 이 소박한 보좌에 괴상한 자가 앉아 있었다.

천제현은 그런 종족을 본 적이 없었다. 키는 3장 정도고 고블린처럼 초록빛 피부에 엘프처럼 귀가 뾰족하고 땅의 엘프처럼 주름 투성이었다. 그 괴상한 자는 세 종족의 특징을 합친 듯한 모습이었다. 소박한 도포를 걸친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그의 앞에는 기다란 지팡이가 놓여 있었다. 그는 신비로운 기운에 휘감겨 있었다.

‘이 자가 그 유명한 드루이드교의 요더 선지자인가?’

델로리스는 요더를 본 적이 없었다. 풍문으로 그의 이름만 들어봤을 뿐이었다.

요더는 혼돈의 숲 드루이드교의 선지자이다. 드루이드교의 선지자는 다른 종교의 주교와 같은 급으로 대제사장보다 지위가 훨씬 높았다. 그린캐슬에서 요더가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본 자는 한 명도 없다. 그러나 풍문에 따르면 그린캐슬에 오기 전 요더는 비룡으로 변하여 고대의 흉수와 싸운 적이 있다고 한다.

비룡이 얼마나 가공할 만한 생명체인가?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린캐슬에 있는 여러 종파의 제사장을 모두 모아도 요더를 대적할 수 없다.

이게 다가 아니다. 드루이드교의 선지자는 평범한 사람과 다르다고 한다. 선지자들은 신령과 소통하고 미래를 볼 수 있다. 선지자가 마음만 먹으면 숲에서 일어나는 커다란 사건을 모두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클라크는 드루이드교를 매우 경계했다.

드루이드교는 움직임이 없는 편이지만 샤먼 주술사와 사령술사처럼 그린교와 그린캐슬에 큰 위협이 되었다. 게다가 이들은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런 세력이 있다면 영지는 안정을 유지할 수 없다.

요더 선지자는 아무나 만나주지 않는다. 클라크도 30년 동안 그를 딱 두 번 보았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클라크는 천제현이 드루이드교와 만나고자 했을 때 말리려고 했다. 공연히 허탕 칠 가능성이 크고 예민한 드루이드교를 건드렸다가 괜히 말썽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에 요더는 천제현의 요청을 곧바로 수락했다.

요더 선지자가 눈을 떴다. 그는 어린 동물처럼 머리는 작지만 눈이 매우 컸다. 그러나 천진난만한 동물의 눈빛과 다르게 그의 눈은 또렷하고 날카로웠다.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지혜가 서려 있었다.

“저는 천제현이라고 합니다. 드루이드교의 위대함을 익히 알고 있죠. 그 유명한 드루이드교의 선지자를 뵙게 되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천제현은 요더의 날카로운 눈빛을 조금도 피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뵙게 되었는데 제 운명을 봐주시면 안 될까요?”

“무엄하다!”

천제현의 무례한 말에 신도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드루이드교에서 선지자의 지위는 몹시 높다. 모든 신도들은 선지자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한다. 그런데 이 연약한 인간족이 선지자에게 이토록 무례하게 굴다니 이건 드루이드교를 무시하는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짓이었다.

클라크와 델로리스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들 역시 천제현이 드루이드교 신전에 와서 신도들을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 이런 요구를 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요더의 맑고 날카로운 눈동자는 평온한 호수처럼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가 가볍게 손을 흔들자 주위가 조용해졌다. 신도들은 여전히 분해하며 낮게 으르렁거렸지만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젊은 인간이여, 그대는 남들과 다른 기운을 가지고 있소.”

요더 선지자가 부드럽고 차분하게 말했다.

“드루이드교의 선지자는 운명을 볼 수 있소. 그러나 이 능력에는 한계가 있지. 강하고 복잡한 명일수록 정확히 보기 힘드오. 벌레의 일생은 훤히 들여다볼 수 있어도 용의 일생을 볼 수는 없지. 그런데 그대는…….”

요더의 커다란 눈에 곤혹스러운 빛이 스쳤다.

“솔직히 말하겠네. 그대가 내 앞에 서 있긴 하지만 그대의 운명은 보이지 않소. 그대는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 존재 같소. 이런 느낌은 처음이야.”

‘소문이 사실이었나? 드루이드교 선지자에게 정말 이런 신기한 능력이 있단 말이야?’

천제현은 이 세계의 일부 선지자들에게 다든 사람들에게는 안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적혀진 고서를 본 적이 있었다. 천제현은 그저 한 번 시도해 보려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요더의 말에 천제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저 자가 정말 뭔가를 볼 수 있는 건가?’

“운명은 강과 같소. 우리는 그저 먼지일 뿐이지.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는 전부 운명이 결정하오. 운명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야지 거슬러 갈 수 없소.”

여기까지 말을 마친 요더는 갑자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물고기 한 마리가 이 강에 뛰어들었지. 이 물고기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해. 이 물고기가 지나간 곳은 원래 정해진 궤도가 모두 바뀌어 버렸어.”

“그대와 만난 모든 사람들의 운명에 변화가 생겼소.”

요더는 델로리스와 클라크를 쳐다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린캐슬이 어떻게 될지 보이지가 않아. 모든 선이 다 뒤엉켜 버렸어.”

이 말은 사실이었다.

천제현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공화련과 공서련, 남궁혜 그리고 모든 사람은 원래 정해진 대로 살았을 것이다. 천제현의 출현으로 모든 역사가 바뀌었다. 요더의 말은 정확했다.

천제현은 뭔가 좀 의아했다.

‘세상에 운명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요더의 말에 천제현은 중주성 시련탑에 봉인되어 있던 고대신을 떠올렸다. 고대신도 운명을 강에 비유했다. 그는 강한 생명체일수록 자신의 방향과 위치를 결정할 수 있지만 아무리 강해도 운명의 강이 흐르는 방향을 바꿀 수는 없다고 했다.

클라크와 델로리스는 내심 크게 놀랐다.

드루이드교 선지자는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대단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천제현에게 의미심장한 평가를 내렸다는 점이다. 요더는 거룡의 운명을 정확히 점칠 수 없다고 해도 운명이 강하고 약한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천제현의 운명을 조금도 엿볼 수 없다고 했다. 이 세상의 생명체는 사실 서로 연결된 실과 같다. 예측할 수 없는 힘이 끼어들면 선들은 전부 엉키게 된다. 이런 까닭에 요더는 예언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젊은 인간은 확실히 특별했다.

요더가 천제현을 만나준 것도 아마 그가 특별해서일 것이다.

천제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 운명이 안 보인다면 어쩔 수 없지요. 사실 운명을 알면 재미없잖아요. 예상치 못한 일들이 터져줘야 사는 맛이 나지 않겠어요?”

요더 선지자가 웃었다.

“선생은 생각이 트인 분이시구려. 드루이드 신전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천제현은 더 이상 뜸을 들이지 않고 준비한 패를 던졌다.

“선지자께서는 신도들을 데리고 그린캐슬로 오기 전에 아주 무시무시한 흉수와 대결을 벌이다가 부상을 당하셨고, 아직 그 부상이 다 회복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요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천제현의 말은 사실이었다.

드루이드교는 별다른 목적이 있어서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하프엘프가 드루이드교에 선입견을 품고 고깝게 생각한 것이다. 요더는 전성기 시절 혼돈의 숲을 주름잡는 일류급 고수였다. 그러나 흉수와 전투를 벌인 후 그의 실력은 적잖게 줄었다.

물론 예전보다 못하지만 요더 선지자의 실력은 여전히 여러 커다란 교파의 대제사장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천제현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는 그린캐슬에 새로 부임한 성주입니다. 오래전부터 드루이드교의 문화를 존경해왔습니다. 전 선지자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드루이드교가 그린캐슬과 연맹을 맺는다는 전제 하에 말이죠.”

신도들이 안색이 급변했다.

‘저 자가 선지자님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단 말이야? 정말 그렇다면 이건 엄청난 일이야!’

그러나 요더 선지자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눈빛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시종일관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침착했다.

“우리 신자들은 모두 동등한 자유를 누리고 있지. 내게는 신도들을 대신하여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소.”

천제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좋은 조건을 마다하다니!’

천제현은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선지자께 치료 방법을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그린캐슬과 샤먼교의 전쟁에 개입하지 말아 주십시오.”

요더가 차분히 말했다.

“드루이드교는 평화를 바라오. 아무 이유 없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소. 우리를 적대시하지 않는 세력이라면 우리도 적으로 보지 않소.”

“좋습니다! 그 말씀 꼭 지켜주십시오!”

천제현에게는 선지자와 협상을 벌일 시간이 없었다. 드루이드교가 이번 전쟁에 개입하지만 않는다면 다른 조건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드루이드교는 못 믿을 세력이 아니었다. 이 교파는 순수한 편이며 자연의 신과 드루이드신을 믿었다. 이들은 가식을 떨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고 공연한 권력 투쟁에 가담하지 않았다.

천제현은 이 약속을 얻어내기 위해 선지자를 만나러 드루이드교 신전에 온 것이다.

드루이드교는 선지자가 친히 한 약속을 지킬 것이다.

천제현이 하프엘프와 여우족 여인을 데리고 떠나자 요더는 감았던 큰 눈을 떴다. 그는 주름진 얼굴로 인상을 쓰며 깊은 침묵에 잠겼다. 신도들은 서로를 쳐다봤다. 이들은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선지자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요더가 별안간 한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순식간에 정령이 방출되었다. 요더의 정령은 아주 괴이했다. 그의 정령은 제사를 지내거나 점을 칠 때 사용하는 거북이 등껍질이었다.

신도들이 모두 땅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선지자께서 또 예언을 하실 모양이군!’

신전 제단에서 거북이 등껍질을 향해 힘을 주입하면 거북이 등껍질 표면에 글자가 떠오른다. 이게 바로 드루이드교 선지자의 예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글자가 떠오르기도 전에 거북이 등껍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거북이 등껍질은 빠르게 갈라지다가 폭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윽!”

요더가 피를 토했다.

“아!”

“선지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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