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483화 (483/729)

# 483

제483장 샤먼교의 주술

클라크가 도통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하프엘프족 대부분은 현재 돌아가는 사태를 알지 못했다. 다들 영원의 숲 부대가 언제든 그린캐슬에 당도하리라 여겼다. 오로지 클라크 등 소수의 하프엘프족만이 엘프왕이 인간 성주를 보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일을 대대적으로 알리기 꺼려지는 건 사실이었다.

대륙에서 인간을 좋아하는 종족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고, 하프엘프족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곳에서 인간은 곧 외지인으로 통했다. 외지인은 현지에서 세력 기반이 없는 존재로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해도 토착세력을 누를 수 없었다.

클라크는 주변 사람들을 물리고 천제현과 델로리스를 들어오게 했다.

델로리스는 예를 갖춰 하프엘프족에게 인사했다.

“요괴신 제사장 델로리스가 클라크 님을 뵈옵니다.”

클라크의 시선은 델로리스가 아닌 천제현에게 가 있었고, 눈빛에는 경멸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인간 수명은 짧은 편이라지만, 앞에 있는 사람은 특히나 더 어려 보였다.

‘20살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냥 어린아이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엘프왕이 제아무리 사리분별을 못한다 할지라도 이런 사람 혼자 그린캐슬을 관할토록 했단 말인가?’

클라크의 태도가 호의적일 리가 없었다.

“지금 그린캐슬은 인간족 여행자를 맞이할 여력이 없소. 귀하께서 델로리스 제사장과 날 찾아오신 이유는 무엇이오?”

“실례지만, 전 여행자가 아닙니다.”

천제현은 조금도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는 품 안에서 엘프왕의 징표와 밀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저는 천제현이라고 합니다. 엘프왕 전하가 지정한 그린캐슬 성주지요.”

“당신이…….”

클라크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무슨 자격으로 그린캐슬 성주가 될 수 있다고 보시오? 엘프왕이 사리분별을 못하나 보구려. 차라리 마수령에 투항하는 게 낫겠소!”

이는 단순한 으름장이 아니었다.

‘우리가 진심으로 영원의 숲에 투항하였거늘, 영원의 숲이 하프엘프족을 이리 대하다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인간을 데려다가 성주로 앉히겠다고?’

이는 그린캐슬의 치욕이자 하프엘프족에 대한 모독이었다.

그린캐슬의 정국이 이리도 복잡하거늘 인간 혼자서 무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천제현은 하프엘프족이 언짢아하는 모습을 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는 원래 토착부족을 항복시켜 그들의 지지를 받아낸 후 그린캐슬의 성주가 되어 기적상회 전체를 이곳으로 옮길 계획이었다.

그러나 계획 중간에 토착부족들이 그린캐슬을 공격하기로 공모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순서를 바꿔 그린캐슬에 먼저 오게 된 것이다.

“클라크 님, 무슨 근거로 제가 성주가 될 수 없다고 여기는 거죠?”

“그럼 당신은 무슨 근거로 자신이 성주가 될 수 있다고 여기는 거요?”

“제 지식과 능력, 그리고 머리로요. 하프엘프족이 하지 못한 일을 제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제현은 뻔뻔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클라크 대인이 믿지 못하겠다면, 저랑 간단한 내기 하나 할까요?”

클라크가 황당한 듯 되물었다.

“무슨 내기 말이오?”

“한 달 안에 그린캐슬 내부에 있는 모든 골칫덩이들을 제거해 드리지요. 물론 샤먼교, 사령교, 드루이드 할 것 없이 모조리 다요.”

천제현은 혈혈단신으로 온 자신을 믿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큰소리치며 호언장담했다.

“제가 이기면, 하프엘프족은 제 능력을 인정해주세요. 제가 실패하면, 제가 직접 엘프왕한테 성주를 맡지 않겠다고 말하겠습니다.”

클라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오? 저 주술사와 사령술사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고 하는 소리요?”

“고작 황야고원이나 용의 고개일 뿐일 텐데, 무엇이 걱정이란 말입니까?”

클라크는 눈앞에 있는 이 젊은이를 다시 찬찬히 뜯어보았다. 물론 천제현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의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니 생각보다 조금 더 듬직해 보이기는 했다.

“좋소. 내기합시다!”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프엘프족이 쇠퇴의 길을 걷다가 어쩔 수 없이 영원의 숲에 귀순을 결심한 이유는 바로 이 외부 세력의 침투와 압박 때문이었다. 그린캐슬이 당면한 이 커다란 골칫거리를 천제현이 해결할 수 있다면, 성주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물론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바로 이때, 회의장 밖에서 요란한 아우성이 들려왔다.

천제현이 깜짝 놀라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클라크가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가 부족들과 협상할 사신을 보냈는데 시체가 되어 돌아왔소. 이에 다들 격분하여 전장에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오. 이번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소.”

천제현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제가 사신의 주검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무엇할 셈이오?”

클라크가 경계하며 물었다.

“이 하프엘프족 사신은 그린캐슬을 위해 죽임을 당했으니 숲의 신전에 안장하여 신의 품안으로 돌려보내야겠지요.”

천제현이 말을 이었다.

“다만 전 그린캐슬을 위해 희생당한 사람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 혹여 그의 몸에서 어떤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클라크의 인상이 살짝 펴졌다. 그는 이 외지인이 그린교와 전통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알겠소. 하지만 제사장이 곧 장례식을 거행할 테니 10분 이내로 끝내시오.”

“그거면 충분합니다.”

델로리스가 의아해하며 천제현을 쳐다보았다.

‘그가 왜 시신을 보려는 거지?’

클라크는 천제현을 데리고 숲의 신전에 들어갔다. 이곳은 자연적으로 생겨난 거대 동굴로 모든 공간이 각종 나무뿌리로 칭칭 감겨 있었다. 정중앙에 제단 같은 것이 보였고, 그 위에 깨끗하게 염을 한 시신 한 구가 누워 있었다.

천제현은 시신의 목에서 봉합한 흔적을 발견했는데, 아마도 머리가 잘려 나간 것 같았다. 그는 더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자를 보내 무엇을 협상하려 하셨습니까?”

“당연히 기근을 타개할 방법이지요!”

클라크는 사신의 주검을 보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프엘프족은 그린캐슬 창고를 개방하여 식량 일부를 나누어 주려고 했다오. 그런데 이 악독한 놈들이 이토록 탐욕스러울 줄 알았겠소! 설마 그놈들이 진짜로 그린캐슬을 함락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천제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 사신은 아마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자는 토착부족 앞에서 고압적인 태도로, 심지어 그들을 모욕하고 위협하면서 화를 돋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살해당한 거지요.”

“무슨 헛소리요!”

클라크 성주 권한대행은 방금까지만 해도 천제현에게 약간의 호감을 느꼈지만, 바로 지금 이 일말의 호감마저도 사라지고 말았다.

“당신이 감히 하프엘프족의 존엄과 신앙을 의심하는 것이오?”

천제현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그의 오른손에서 빛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그가 시신의 이마에 주문을 그려 넣자 그의 몸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클라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게 무슨 짓이오!”

천제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직접 보시지요.”

돌연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면서 하프엘프족 귀에서 징그럽게 생긴 벌레 하나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천제현이 그것을 집어 손바닥 안에 쥐었다.

델로리스가 깜짝 놀라 말했다.

“이건 샤먼교 주술사의 독충이에요! 정신과 사고를 지배하는 벌레로 모종의 주술로 만든 것입니다.”

천제현이 손안에서 허우적대는 벌레를 보며 말했다.

“제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이 사신은 그린캐슬을 떠나자마자 습격을 당했고, 습격한 자가 그의 머리에 이 벌레를 심어 놓은 것 같습니다. 이성을 지배당한 상태에서 협상하도록 했고, 결국 토착부족을 화를 돋우어 살해당한 거지요. 물론 하프엘프족에 대한 분노도 야기했고요.”

델로리스가 알겠다는 듯 말했다.

“그러니까 이번 일의 배후에 샤먼교가 있다는 거네요?”

“틀림없을 겁니다. 이 배후 세력을 잡으면 일은 좀 더 쉬워질 거예요.”

천제현의 손가락 끝에서 푸른 불꽃이 일자 벌레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럼 전 이제부터 샤먼교를 상대하면 되겠군요!”

클라크 성주 권한대행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 젊은 인간……, 평범한 인물은 아닌 듯하구나!’

델로리스는 또 한 번 천제현에게 감탄했다. 샤먼교단은 황야고원의 마수령족에서 기원한 베일에 싸인 종교로 주술사는 요괴신교의 소환술, 조련술과는 다른 저주, 영혼공격, 독살 등과 같은 것에 능했다. 이런 기괴한 독충으로 생각을 조종하는 솜씨를 보니 샤먼교단의 주술 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 같았다.

이 주술에 조종당하는 사람은 정상인과 별반 차이가 없어 알아챌 방법이 없었다. 정신, 영혼, 생각에 어떤 상태를 주입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생리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에서 사고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천제현이 그려 넣은 주문이 사라지지 않자 클라크는 순간 천제현이 의심스러웠다.

“샤먼교 주술사를 제거하려면 비슷한 주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소. 방금 당신이 한 것도 샤먼교 주술과 비슷한 것을 보니, 설마…….”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이라 보잘것없습니다.”

천제현이 살던 시대에 샤먼교단은 역사적 기록만으로 존재할 뿐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천제현은 과거 고서에서 주술과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었고, 이런 주술은 특수한 무공이 필요 없는 비술에 불과했다.

당시 천제현은 이를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정통한 것까지는 아니어도 이런 하찮은 독충을 제거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상대가 누군지 알았으니 해결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지금 그린캐슬 주변에서 발생하는 기근 현상은 어딘지 모르게 좀 이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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