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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479화 (479/729)

# 479

제479장 매수

“고용이라면?”

“아무래도 외지 사람이다 보니 이곳에서는 마음처럼 안 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군요. 미노타우로스 정예 전사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사업 확장이 한결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천제현이 옆에 놓인 대형 통조림 용기를 가리켰다.

“미노타우로스 정예 한 명당 하루 두 통, 어떻습니까?”

통조림 한 통에 든 고깃덩이만 해도 수십 근, 미노타우로스 한 명이 며칠은 먹을 양이었다.

두당 통조림 두 통이면 기근 중에는 결코 적은 일당이 아니었다. 가족 중 한 명만 일해도 식구 전체가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르놀트는 마음 한구석이 영 찜찜했다. 정체도 알 수 없는 인간이 미노타우로스 전사들을 사지로 밀어 넣기라도 하면 그때는 부족원들 얼굴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너무 걱정할 것 없습니다.”

천제현이 덧붙였다.

“근무 중에 크게 다치면 치료를 책임지는 건 물론 보상으로 통조림 열 통을 지급해 회복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겠습니다. 혹시 목숨을 잃는 전사가 나온다면 기적상회에서 통조림 백 통을 지급하고요!”

아르놀트의 콧김이 거칠어졌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아르놀트 족장이 천제현을 떠보려는 심산으로 슬쩍 물었다.

“미노타우로스 정예군은 혼돈의 숲에서도 제일가는 전사들입니다. 하루에 최소 통조림 네 통은 받아야지요!”

천제현은 오래 뜸 들일 것 없이 아르놀트의 조건을 받아주기로 했다.

더 달라는 양이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고기 몇백 근. 죽은 만우 한 마리만 사들여도 살코기가 족히 1톤은 나올 텐데 그깟 양이 대수겠는가.

지금 기적상회에 부족한 건 자원이 아니라 동맹군이었다. 특히 그린캐슬 주변의 동맹군. 식량 거래를 통해 동맹을 결성하는 건 꽤나 쏠쏠한 방법이었다.

“좋습니다!”

이로써 여우족에 이어 새로운 조력자를 얻게 됐다.

미노타우로스는 단순한 조력자만이 아니었다. 고용이라는 형식을 통해 필요할 때면 언제든 미노타우로스 정예 수천을 전쟁터로 불러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미노타우로스와 여우족, 천제현은 배경이 두둑해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아직 부족했다.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토착세력을 포섭할 필요가 있었다.

천제현은 아르놀트와 협력 내용을 논의했다.

주로 식품 공급 수량과 미노타우로스의 외상 처리 기간, 이자 등에 대한 것이었다. 미노타우로스 골짜기의 모든 미노타우로스는 천제현에게 감사함을 느꼈고, 그를 하늘에서 내려온 구세주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그가 가져온 식량은 품질이 대단히 좋았다.

천제현이 말한 것처럼 기적상회의 음식을 먹어본 미노타우로스들은 더는 다른 음식을 입에 댈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천제현은 여우족을 기적상회의 현지 대행인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를 테면, 여우족이 미노타우로스 골짜기에 식량을 운송하는 일을 전담하여 향후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천제현이 전면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노타우로스의 전투력은 식인마에 밀리지 않아요. 미노타우로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면, 성주님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거에요.”

델로리스가 아름다운 눈동자를 반짝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내심 흐뭇했다. 여우족은 오랫동안 이 얼간이 같은 미노타우로스의 괴롭힘을 참아왔는데, 이제는 그들이 여우족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러니 십 년 묵은 체증이 풀리는 것 같지 않겠는가.

“하지만 미노타우로스는 그저 기근 때문에 당신과 협력하는 것뿐이에요. 완전히 충성을 맹세한 게 아니란 거죠. 기근만 해결된다면, 그들에 대한 당신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떨어질 거예요.”

델로리스가 말을 이었다.

“지금 당신의 행동은 도박과도 같아요. 미노타우로스가 빚을 갚을지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어요? 성주가 되어 그들에게 채무 사실을 상기시키지 않으면, 이 모든 노력은 수포가 될 거예요.”

천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저희가 암암리에 미노타우로스 협곡을 밀렵하거나 요괴신 님의 능력으로 마수를 모두 쫓아내는 방법이 있어요. 그렇게 하면 미노타우로스가 얻을 수 있는 식량은 갈수록 적어져 기적상회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죠. 하지만…….”

델로리스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이렇게 하는 건 굉장히 힘들겠죠. 발각되기라도 하면 사이가 멀어지는 건 물론이고, 일을 그르칠 수도 있고요. 그리고 사실 미노타우로스 부족 하나만으로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거예요.”

이 아름다운 여우족 여인은 이미 천제현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제현은 여우족이 자신의 이익을 기적상회와 함께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에 흐뭇함을 느꼈다.

“맞아요. 미노타우로스 부족 하나만으로는 부족해요. 더 많은 부족의 지지를 얻어야 해요.”

천제현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열 개, 스무 개 부족이 절 지지한다면, 성주 자리에 앉는 게 그리 어렵지 않겠죠.”

델로리스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현지 부족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면, 어려울 거야 없겠죠. 문제는 어떻게 지지를 얻어내느냐 하는 거예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어렵지 않아요. 좋은 방법을 한 번 더 사용하는 거예요.”

이는 미노타우로스 부족에게서 영감을 얻어 한 말이다.

생존은 토착민의 제 1원칙이다. 현재 그린캐슬 부근에서 대규모 기근이 발생하여 수많은 토착부족이 미노타우로스처럼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설령 사정이 좀 더 나은 부족이 있다고 해도 살기가 빠듯하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식량 공급을 통제한다면, 토착부족을 충분히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천제현은 도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토착세력의 지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일시적이라 해도 성주의 지위를 안정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토착부족도 어쩔 수 없이 신하로서 승복할 수밖에 없고 그들이 진 빚도 상환하게 될 것이다.

“이번 일에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성주님의 일은 곧 저희의 일이기도 합니다. 성주님께 힘이 될 수 있다면 저희에게도 영광스러운 일이지요.”

델로리스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풍만한 몸이 떨리자 천제현의 시선이 저절로 그녀에게 꽂혔다. 그러나 델로리스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 살짝 윙크까지 했다.

“다만, 저희 요괴신교는 규모가 작아 생활이 어렵습니다. 성주님께서…….”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이 여우족 절세미인은 남자를 완전히 녹여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를 통해 이익을 취하려는 거겠지!’

여우족은 태생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종족이기 때문에 허투루 행동하는 법이 없었다.

“뭐가 그리 급해요? 당신들과 함께 돈을 벌겠다고 말한 이상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겁니다. 이 천제현이 언제 푸대접한 적이 있습니까?”

천제현이 듬직한 모습으로 여우족 여인의 어깨를 토닥였다.

“안심하세요. 숲 속에서 얻은 매출 총액에서 십분의 일을 요괴신 교단에 헌납하지요! 물론 미노타우로스 부족이 진 외상을 포함해서요. 그러니까 앞으로 상환될 채무도 당신들과 나누겠다는 말입니다!”

“십분의 일이라고요?”

델로리스는 기쁜 마음에 가슴이 벅차올랐고, 그녀의 눈망울은 물결이 넘실거리는 거리듯 반짝였다.

천제현은 착취를 통해 이 토착부족들이 가진 밑천을 전부 긁어내 여우족에게 나누어 줄 것이고, 이 역시 상당한 규모일 게 분명했다. 여우족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중개와 대행만으로 이러한 이득을 거저 얻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이 채무는 고리대금이기 때문에 기근이 길어질수록 토착민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여우족은 가만히 앉아 엄청난 돈을 쥐게 될 것이다.

천제현을 대하는 델로리스의 태도도 완전히 바뀌었다.

“성주님, 그럼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정보가 필요해요. 그린캐슬이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토착세력에 관한 정보를요. 그리고 토착세력의 사냥구역에 손을 좀 써야겠어요.”

천제현은 소름이 돋을 만큼 달콤한 목소리로 여우족 여인에게 말했다.

“당신은 모든 제사장을 동원하여 물건을 좀 만들어주세요.”

사냥구역은 토착부족의 생존 기반인 자원 생산장을 가리킨다.

숲의 토착부족은 대부분 수렵 생활을 하므로 농사를 짓거나 물고기를 잡는 데는 젬병이었다. 이 사냥구역은 부족이 식량을 구하는 유일한 곳이 되기도 하는데, 대규모 사냥구역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200리 정도에 불과하다.

천제현은 토착민의 빈약한 식량 공급처마저 완전히 끊어 버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는 여우족의 정보력과 천제현의 전략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천제현은 마수퇴치진을 사용하기로 했다. 향후 군대 혹은 용병이 야영할 때 마수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으로, 이 마수퇴치진 마력은 미끼용 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끼용 진은 가상의 기운, 페로몬, 음성, 냄새로 특정 마수를 유인하는 데 반해, 마수퇴치진은 마수를 쫓아내기 위해 발명된 것이다.

천제현은 델로리스를 필두로 한 여우족 제사장 10여 명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 여우족은 전투력이 높다고 볼 순 없지만, 명실상부한 진령급 술사였다. 게다가 마력진에 대하여 조예가 깊어 이틀 정도면 3급 지룡수 마수퇴치부적을 200장 이상 만들어낼 수 있다.

지룡수 마수퇴치부적은 지룡수 기운을 방출한다.

지룡수는 매우 강력한 마수로 3급 이하의 모든 마수를 사냥할 수 있으며, 동급 중에서는 천적이 없다.

이 부적은 일반 사람이 알아챌 수 없을 만큼 평범하지만, 야생 마수는 이런 옅은 기운마저 감지할 수 있다. 따라서 토착부족의 사냥구역에 이 마수퇴치부적을 붙이면 부적 1장당 반경 수십 리 내에 있는 모든 마수는 지룡수의 기운 때문에 줄행랑을 치고 말 것이다.

천제현은 3~5일 이내에 토착부족들이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 단언했다.

기근은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고, 설사 기근이 오래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들은 혼란과 공황에 빠질 것이다.

이때, 여우족을 통해 인간이 운영하는 상회에 대한 소문을 숲 속에 퍼뜨려, 상회를 통해 저렴한 가격에 식량을 대량으로 살 수 있다고 하면, 토착민들의 반응이 어떨지 불 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천제현은 가장 상투적인 수법인 식량 공급을 조건으로 저들을 장악하려는 것이다.

천제현 혼자에다 여우족은 고작 대리인에 불과하니, 토착부족들이 이 조건을 수긍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천제현이 식량 공급을 끊으면 그들도 어쩔 수 없으니 생존을 위해서 십중팔구 타협하려 할 것이다.

단순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계획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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