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473화 (473/729)

# 473

제473장 원숭이 떼

기적비행선에 탄 천제현은 4천 미터 상공에서 안정적인 속도로 이동했다. 비행은 아주 순조로워서 이틀 밤낮 동안 흔들림조차 없을 정도였다. 그는 풍경을 보면서 주전부리를 하거나 전영경으로 공서련, 공화련과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기적비행선의 설계는 완벽했다.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딱 한 가지 단점만 빼면.

물론 속도의 정의는 상대적인 것이다. 기적비행선이 이틀 동안 이동한 거리를 빠른 말을 타고 이동했다면 적어도 열흘은 걸렸으리라. 게다가 혼돈의 숲의 지형은 매우 험준해 평지가 거의 없었고,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평범한 말은 고사하고 늑대나 표범 같은 마수들조차 통과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2급 비행 탈것을 타더라도 이 정도의 거리를 이동하려면 일주일 이상은 걸렸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기적비행선을 느리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기적비행선의 장점은 그 어떤 탈것도 갖고 있지 않은 뛰어난 안전성에 있었다.

그건 3~4천 미터 상공에서 이동하기 때문에 갖게 된 장점이었다. 그 정도 고도의 상공에는 공기가 희박하므로 날갯짓으로 움직이는 마수들은 열 배의 힘을 들여도 평소의 절반 정도 속도밖에 낼 수 없다. 아니, 대부분의 마수들은 아예 비행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이 비행선에는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다. 공기가 희박하기 때문에 저항력이나 기류의 영향을 적게 받을 수 있고, 그로 인해 더 안정적이고 빠른 이동이 가능한 것이다.

이 고도에서 이동할 수 있는 건 마력이나 특수한 능력을 지닌 거룡, 교룡 등의 고등생명체뿐이었다. 그러나 전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그 생명체들은 대륙을 통틀어도 몇 마리 되지 않았으므로 비행선이 수십 년 동안 수십만 리를 이동해도 한 마리 만날까 말까 했다.

“회장님, 거의 도착했습니다!”

“현재 우리는 그린캐슬 부근 상공에 있습니다. 아래쪽 지형을 잘 모르니 안전을 위해 비행선 착륙은 피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니 불편하시더라도 회장님께서 직접 내려가셔야 할 듯합니다.”

비행선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그리핀기사들 몇 명이 선실 문을 열었다. 그곳은 그리핀의 우리로, 정면에 비상구가 보였다. 투명한 수정을 통해 푸른 하늘과 흰 구름들이 보였다.

그것은 지면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색과는 또 달랐다.

3차원 구조는 원형, 또는 타원형에 가까운 시공 영역이므로 조물주의 시각으로 본다면 독립적인 시간 마력과 공간 마력으로 뒤덮인 거대한 기포 같은 형태일 것이다. 물론, 그 기포 안에는 수많은 물질들이 들어 있겠지만.

그 혼합물 중 무거운 부분은 아래로 가라앉아 광활한 대륙이 되었고, 가볍고 거대한 마력들은 상단에 모여 순서대로 태양과 공기 등을 형성했다. 현재까지 아무도 대지의 두께를 측량해낸 사람이 없듯, 하늘의 최고 높이를 정확하게 측정해낸 사람도 없었다.

시공 개념은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3차원 환경에 사는 생명체들에게는 추상적이기 그지없는 개념이기에 인간들의 사고로는 시공의 구조를 인식할 수 없다. 그림 속에 사는 인물들이 3차원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듯이.

빛과 번개와 같은 순수한 마력은 하늘로 올라갔고 어둠, 죽음과 같은 부정적 마력은 대지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바람과 불, 흙 등의 일반적 원소들이 그 사이의 공간을 채웠다. 이것이 바로 천제현이 이해하고 있는 세상의 기본 형태였다. 이 세상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광활했지만, 근본을 따져보면 동일한 하나의 법칙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탈것은 필요 없어! 그냥 내려가지!”

그리핀 탑승을 거절한 천제현은 비상구를 열고 발아래 펼쳐진 아득한 대지를 내려다본 후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리핀기사들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천제현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그는 두 팔과 다리를 쫙 펴고 유성처럼 빠르게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탈것 따위 필요 없다.

그는 엄청난 속도로 구름 사이를 뚫고 떨어졌다. 형태는 있으나 느낌은 없는 구름들이 그의 몸을 스쳐 지나가자 부드러운 실크가 몸을 휘감는 것 같았다. 그의 눈에 비치는 대지의 모습이 점점 더 커졌다.

‘거의 다 왔군!’

천제현이 부적을 꺼내 몸에 붙이자 그의 체중이 급속도로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나뭇잎처럼 하늘거리며 무성한 숲 속으로 떨어졌다.

그 통에 여기저기서 나뭇가지들이 우지끈 부러졌으나 그는 다친 데 없이 무사히 땅에 착지했다. 날개부적으로 체중을 줄였지만, 너무 높은 곳에서 떨어진 관계로 유성이라도 떨어진 양 바닥에 큰 구덩이가 생겼다.

“어쨌든 무사히 착륙했네.”

천제현은 옷을 털며 구덩이에서 걸어 나왔다.

혼돈의 숲은 80% 이상이 나무로 뒤덮여 있었지만, 이곳은 숲 외곽과 달리 나무들의 간격이 크고 나무 하나하나가 우뚝하니 멋진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굵기도 굵기려니와 강철처럼 단단해 보였다.

역시 영기가 충만한 곳이라서 그런지 평범한 식물들조차도 남다른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본 천제현은 지금 그가 있는 곳이 그린캐슬 서북쪽 방향이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린캐슬까지는 100~200km 이상 떨어져 있는 것 같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바로 그린캐슬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으니까. 이번에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도 다 정보 수집을 위해서 아니던가.

그런데 그가 막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새끼여우가 갑자기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끽끽!

천제현은 즉시 움직임을 멈췄다. 새끼여우는 감각이 뛰어나 위험이 다가오는 것도 그보다 먼저 알아채곤 했다.

그와 동시에 강렬한 위기감이 그를 덮쳤다.

사실 현재 천제현의 실력으로는 일반적인 1, 2급 마수나 혼성술사들은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 말은 그에게 이런 위기감을 줄 상대라면 보통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는 번개처럼 몸을 돌리며 검을 뽑았다. 순간 검광이 번쩍였다.

쾅!

날카로운 검기가 채찍처럼 습격자의 몸을 휘감았다.

그 맹렬한 힘에 주변 나무 몇 그루가 부러졌다. 그러나 기습을 한 자는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피하며 순식간에 기운을 감췄다.

“누구냐?”

상대의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천제현은 그의 모습조차 포착하지 못했다.

새끼여우는 꼬리를 들어 올려 머리를 긁적거리며 점프했다. 익살스러운 동작이었다. 그 모습을 본 천제현은 의아한 듯 물었다.

“원숭이라고?”

새끼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검을 막을 정도의 원숭이라면 보통은 아닐 것이다.

새끼여우는 눈알을 꺼내더니 그것을 들고 주변을 한 번 훑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떨면서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도망가라는 신호가 분명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사방에서 분노에 찬 울음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천제현의 눈썹이 활처럼 위로 올라갔다.

“설마 원숭이 소굴에 떨어진 건가?”

수없이 많은 흰 그림자가 휙휙 스쳐 지나갔다. 원숭이들의 이동속도는 음속에 달하는 것 같았다. 놈들의 소리가 귓가에 몇 번 울리는가 싶더니 잔영 수십 개가 번개처럼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 짐승들이 그를 죽이러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유백색 발톱이 공기를 가르며 그를 찔러왔다.

천제현은 황급히 몸을 뒤로 빼며 검을 가로로 들어 공격을 막았다. 강력한 4~5개의 발톱이 검과 부딪히자 천제현은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는 그 와중에도 빠르게 몸을 놀려 반격하는 걸 잊지 않았다.

이번에 유명검에서 폭발해 나온 검기는 방금 전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천제현을 공격한 원숭이는 검기를 맞고 날아가 나무에 부딪혔다. 그러나 온몸이 넝마가 되고 유명화에 털가죽이 타들어 가는 와중에도 명줄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 원숭이는 울부짖으며 데굴데굴 굴러 어떻게든 몸에 붙은 불을 끄려고 했다.

천제현의 검기는 강철조차 녹이는 힘을 지녔거늘, 그 원숭이는 정면으로 검을 받고서도 두 동강이 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펄쩍 펄쩍 뛰며 살아남겠다고 발악을 하고 있었다. 그 엄청난 방어력과 생명력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게다가 그 원숭이들은 음속에 달하는 이동속도를 지니고서도 이동 과정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마치 고강한 운신법이라도 익힌 듯했다. 놈들이 휘두르는 발톱에서도 무공 절기와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한두 마리라면 원숭이가 아무리 강해 봤자 별거냐고 생각했겠지만, 숫자가 많다 보니 고급 진령 고수라도 혼이 나갈 것 같았다. 숲 여기저기에서 잔영이 움직이는 걸 보니 적어도 수십 마리의 원숭이들에게 포위된 듯했다.

그나마 방금 전의 일격으로 겁을 먹은 듯 다들 주변 나무들 사이에 몸을 숨긴 채 으르렁거리고 있을 뿐 다가오지는 않고 있었다. 그로 인해 천제현은 원숭이들의 형체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온몸이 회백색인 그 원숭이들은 3척 정도의 크기로, 체구가 크진 않았지만 몹시 민첩했고 몸 전체가 흰색 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때 일부 원숭이들이 입에서 흰색 정기를 내뿜었다. 그 정기가 유명화에 불타오르는 원숭이를 뒤덮자 점점 거세지던 불길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그 원숭이는 곧 다시 몸을 일으켰다. 털가죽이 전부 불에 타 벌거숭이 같은 모습이었지만, 이를 드러내고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은 더없이 멀쩡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천제현은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서로 치료까지 할 수 있는 건가?’

이런 마수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원숭이들이 겉으로 보이는 능력을 봤을 때, 진령급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혼성 8~9성은 될 것 같았다. 놀라운 속도와 강철 같은 육체, 군집생활을 하는 마수의 특징까지 더해져 상대하기가 몹시 까다로워 보였다.

‘역시 혼돈의 숲 깊은 곳에 들어온 건 맞는 모양이군.’

우연히 만난 원숭이들조차 이 정도로 상대하기가 어렵다니, 희귀한 마수라도 만난다면 순식간에 황천길을 구경하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전력을 다하는 수밖에!’

신마검 원혼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천제현이 낮게 중얼거리자 화염이 그의 몸을 휘감으며 순식간에 염마변 상태로 진입했다. 혼성 9성 정점에 불과했던 그의 마력이 단번에 진령술사와 맞먹는 경지까지 높아졌다. 원숭이들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염마변에 유명검결까지 더해진 천제현의 위력을 감당해낼 수는 없으리라.

위험한 기운을 느낀 원숭이들은 털을 세우고 이빨을 드러낸 채 날카롭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천제현과 끝장을 볼 생각인 것 같았다.

“그만 둬!”

그때, 숲 깊은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원숭이들은 순식간에 살기를 거두고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천제현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설마 여기가 마수소굴이 아니라 사육장이었던 건가?’

이윽고 숲 속에서 사람 몇 명이 걸어 나왔다. 천제현을 발견한 그들의 눈빛에 경계심이 떠올라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