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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472화 (472/729)

# 472

제472장 그린캐슬로

몸을 일으킨 율리시스의 눈이 천제현을 바라본 후 다시 한 번 비비안에게로 향했다. 그의 눈빛이 복잡한 그의 심정을 반영하고 있었다.

“엘프왕께서 당부하신 일은 모두 전했소. 그럼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길 바라면서, 나는 이만 가보겠소.”

비비안은 급히 말했다.

“올드만 마을에 며칠 더 머무르지 않으시고요? 신기한 것들이 많을 거예요. 그것들이 의회 사람들을 설득시켜 줄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나 율리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엘프들이 그렇게 쉽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종족이었다면 수만 년 동안 이 숲에 갇혀 지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난 영원의 숲 쪽에도 할 일이 남아 있어 더 지체할 수가 없구나.”

말을 마친 그는 그대로 떠나 버렸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엘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의아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천제현이 율리시스가 주고 간 지도를 탁자 위에 쫙 펼쳐 놓자 공서련이 다가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와, 정말 자세한 지도네!”

그랬다. 그건 현재까지 본 모든 지도 중에서 가장 자세하고 세밀한 혼돈의 숲 지도였다. 혼돈의 숲에서 만 년 넘게 살아온 엘프족만이 이런 지도를 만들 수 있으리라. 지도에는 각각의 특수 구역이며 지형, 호수, 산맥, 성까지 일목요연하게 그려져 있었다.

엘프족에게는 복사 기술이 없으니 이 모두를 직접 손으로 그려냈을 터였다.

그런데도 선 하나, 지형 하나까지 완벽했다. 게다가 이렇게 큰 지도라니,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까. 이 지도는 그 자체가 엄청난 가치를 지닌 예술품과 같았다. 그것이 지닌 함의와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을 정도의 가치를 지닌 예술품.

“사진기로 복사본을 만들어야…….”

그 지도가 지닌 가치를 알아본 천제현은 공서련을 시켜 복사본을 몇 장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말을 끝맺기도 전에 무언가 발견한 듯 지도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움직임을 멈췄다.

“왜 그래?”

모두들 그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여길 때였다. 공서련이 급히 입을 열었다.

“지도에 이상한 점이라도 있는 거야?”

천제현은 가타부타 대답은 않고 자세히 지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형이 눈에 익었다. 그는 머릿속으로 대륙의 지도를 떠올렸다. 그중 한 구역을 눈앞에 있는 지도와 겹쳐본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최소 70~80%는 비슷한 것 같았다.

3만 년 후, 이 숲은 거의 다 개발되었고 부국 하나가 한가운데 당당하게 자리잡게 된다.

그 나라는 수많은 종족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공화국으로, 대륙 전체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살기 좋은 곳이었다. 그곳이 그렇게까지 부유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지역에서 혼돈시대의 숨겨진 보물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보물 중의 보물이라 할 만한 것으로, 천제현이 그전까지 가봤던 그 어떤 곳과도 달랐다.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그 보물은 혼돈시대서부터 내려온 매우 희귀한 시공 단층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관계로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 있을 뿐, 정확한 좌표는 알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그것이 혼돈의 숲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대체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 말에 정신이 돌아온 천제현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보물을 찾고 싶다고 한들 그게 그렇게 쉽겠는가?

대륙에 숨겨진 보물은 적지 않지만, 그 보물을 손에 넣으려면 특정한 계기가 필요했다. 발아래 보물이 숨겨져 있는 걸 알면서도 늙어 죽을 때까지 손 한 번 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혼돈시대의 보물에는 신마시대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것은 천제현에게 엄청난 유혹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았다. 뇌리 한 편에 저장해 두었다가 뭔가 단서가 발견되면 그때 가서 찾아봐도 늦지 않으리라.

천제현은 다시 한 번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일단 그린캐슬을 어떻게 손에 넣을지부터 생각을 해야겠죠?”

그건 위험부담이 꽤 큰 결정이었지만, 공화련은 어떤 반론도 제시하지 않았다. 훌륭한 조력자이자 총명한 여인인 그녀는 자신의 임무가 최선을 다해 천제현을 돕는 데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위험이 클수록 얻는 것도 크다.

그러니 모험을 할 가치가 있다.

단, 그전에 완벽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

공화련은 율리시스가 준 지도와 정보를 몇 번이고 되짚어가며 연구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몇 가지의 결정을 내렸다.

첫째, 식량 비축을 대대적으로 늘린다.

이를 위해 기적상회가 사들이는 각종 마수고기의 구매가를 20% 올렸다. 토착민들로부터 더 많은 식량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그 식량들은 남하국으로 보내 가공을 거친 뒤 통조림이나 다른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저장할 계획이었다.

올드만 마을에는 식량이 부족하지 않았지만, 입수한 정보를 보면 그린캐슬에 식량난이 발생했다고 하니 이 기회에 식량 비축분을 늘려 두는 게 좋으리라는 판단이었다.

둘째, 무기 비축을 늘리고 무기를 강화한다.

올드만 마을 부근의 실버오일 광산은 이미 채굴이 시작된 상태였다. 실버오일이란 일반적인 수정의 눈물보다 더 큰 위력과 마력을 지닌 은빛 수정의 눈물로, 그것을 이용하면 더 강력한 마력무기를 생산할 수 있다.

고품질의 마력무기를 생산하면 기적상회의 힘을 더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판매를 통해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유도할 수도 있다.

예컨대 잠재적인 적 둘이 있다고 치자. 그들을 가장 빨리 없애는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간단하다. 먼저 둘 사이를 부추겨 싸움을 붙인 다음 약세를 보이는 쪽에 무기를 판매하면 된다. 전투가 격렬해질수록 둘의 힘은 빠르게 소진될 것이고, 기적상회는 가운데에서 주머니를 채울 수 있을 테니까.

천제현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세계에서 가장 돈이 되는 장사는 무기와 마력 장사라고. 공화련은 그 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마력무기는 생산 초기부터 지금까지 기적상회 자체적으로만 이용해 왔다. 그러나 기적상회의 무기고는 날로 풍족해졌으며, 무기 품질도 시간이 갈수록 높아져 이제 판매가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것은 장차 기적상회의 외교와 안보에 중요한 패가 되어줄 것이다.

셋째, 초기 준비로 기본적인 통신망을 구축한다.

현재 그린캐슬의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우며 불확실 요소도 너무 많았다. 엘프족이 제공한 정보는 지나치게 편면적인 감이 없지 않았다.

올드만 마을의 연합군은 움직일 수 없고 남하국의 지원도 한동안은 불가능하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먼저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는 소규모 부대를 파견해 정보를 입수하고 정세를 파악한 뒤 그린캐슬을 손에 넣을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뿐이었다.

공화련은 통신비행선을 보냈다. 그 비행선은 최저 비용과 최고 속도로 제작 가능한 것으로, 남하국에서 이미 십여 대를 생산한 바 있다. 통신비행선 한 대의 통신 사정범위가 만 리에 달하므로 현재 있는 비행선이면 혼돈의 숲 깊은 곳까지 통신망을 구축하는 게 가능하다.

이 밖에도 공화련은 최신 정찰비행선을 그린캐슬로 보냈다.

이 두 종류의 비행선이 있으면 기적상회는 이 혼란스럽고 폐쇄적인 숲 속에서 원하는 정보를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후의 며칠 밤낮 동안 천제현은 각종 단약을 대량으로 조제하고 기적상회의 주요 인물들 각각에 대한 수련 계획을 세우는 데에 집중했다. 나머지 시간은 정신 분야의 자료와 꽃의 엘프 연구에 쏟아 부었다.

이번 여정은 혼자서도 충분했다. 천제현은 아직 진령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스스로를 보호할 힘은 충분했다. 쓸데없는 곳에 인력을 낭비하느니 수련에 집중하게 해 그린캐슬에 입성할 준비를 해두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올드만 마을에서 100리 떨어진 상공에 기적상회의 비행선, 천망호(天網號)가 도착했다. 표면이 전부 반사경으로 이뤄진 그 비행선은 주변환경을 그대로 비춰 첨단과학기술 특유의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공서련이 물었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오래 있다가 올 거야?”

“적어도 열흘에서 보름은 걸리겠죠.”

천제현으로서도 확답은 할 수 없었다.

“제가 당부한 일은 잘 기억하고 있죠?”

공서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 마. 열심히 수련하고, 꽃의 엘프도 잘 돕고 있을게.”

혼자 여정을 떠나는 천제현이 걱정되긴 했지만, 예전처럼 안절부절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 공서련도 천제현에게 믿음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이미 통신망을 깔아놨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할 수 있지 않은가? 정말 급할 땐 전영경으로 얼굴을 보면서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공화련이 보낸 천망호 비행선이 천제현의 여정을 함께할 예정이었다. 위험한 숲의 환경을 고려해 봤을 때, 육로로 숲을 뚫고 지나가면 며칠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비행마수를 타고 가는 것도 그리 안전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기적상회의 비행선은 다르다.

3, 4000미터 상공에서 비행선을 타고 이동하면 마수를 만날 확률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비행선 자체가 은폐에 최적화되어 있어 뒤탈이 날 가능성도 없었다.

이번에 천제현이 챙긴 건 저장조롱박과 검 한 자루, 그리고 여우 한 마리가 전부였다.

그가 지닌 조롱박은 보물 중의 보물로, 영기를 흡수하여 성장하는 생명체였다. 천제현은 중주탑에서 조롱박을 손에 넣은 이후 조금씩 그것을 키웠고, 이제 저장공간은 50㎥에 달했다.

그 정도의 저장공간은 휴대용 저장물품으로는 결코 흔하지 않은 것이었다.

천제현은 공간창고를 만드는 데 필요한 십여 가지의 재료들을 그 안에 넣었다. 나중에 정말 필요한 게 있으면 공간창고를 통해 마을에서 편리하고 빠르게 공급받을 수 있으리라.

“나중에 봐요!”

천제현은 공서련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천천히 기항한 기적비행선은 기류를 타고 조금씩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천제현은 발아래에서 점점 커지는 숲을 내려다보며 감개무량해졌다.

사실 비행선은 그가 불현듯 흥미가 생겨 만든 것으로, 제작 당시에는 이렇게 다양한 용도로 쓰일 줄 몰랐었다. 공화련과 운문의 부단한 연구와 개량으로 인해 한때의 흥미에 불과했던 비행선이 점점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천제현은 그것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운문과 공서련, 그리고 수많은 조력자들을 키운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이제 천제현은 그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기적상회가 현재의 기술과 기반시설을 통해 발전을 거듭할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기적상회는 이제 대륙의 운명을 바꿀 위대한 상회가 된 것이다.

한 사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현재 기적상회의 수준은 아직 그의 이상과 큰 격차가 있었다. 기적상회는 돈을 벌고 자원을 모으며 세력을 키우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으니까.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도 험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린캐슬을 손에 넣어야 한다. 기적상회에는 성장해나갈 터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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