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471화 (471/729)

# 471

제471장 성을 받다

천제현은 혼돈의 숲에서 성을 손에 넣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숲의 모든 성은 영기가 충만한 곳이나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풍부한 자원이 없다면 그 아무리 화려하게 지은 성이라도 가치를 창출해낼 수 없으며, 그 도시를 찾아올 사람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의 소유자는 반드시 강력한 힘을 지녀야 했다. 도시를 지킬 힘이 없다면 이 혼돈의 무법지대에서 누가 당신을 믿고 따르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혼돈의 숲의 성주들은 하나같이 어둠의 숲 법칙을 무시해도 무방할 정도의 세력가이자 실력자들이었다.

그리고 숲의 모든 성들은 거물들의 쟁탈전이 끊이지 않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자원 생산지, 생존기지였다.

숲의 성에 사는 대부분의 종족들은 원래부터 그 지역의 토착민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성들은 엘프성, 마수령성, 거인성, 해양종족성 등으로 불렸으며, 그들은 각자의 성에서 80% 이상, 혹은 100%의 인구 구조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 외에 특별한 존재가 있다면 용의 영주 정도였다.

희귀 종족인 용족은 그 수가 적은 편이나, 엄청난 부와 힘을 지닌 거룡을 중심으로 수많은 추종자들이 몰려들면서 대형 세력들에게 뒤지지 않는 힘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천제현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외부에서 흘러 들어온 그의 작은 세력은 혼돈의 숲에 어떤 기반도 없었다. 자신의 나라나 부족이 없을뿐더러 거룡처럼 무시무시한 힘이나 위세도 없었으니 성 하나를 점령한다 하더라도 아무 쓸모가 없을 터였다.

그러므로 그 성은 넝쿨째 굴러온 호박이 아니라 언제 터질 지 모를 시한폭탄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그렇다. 이번에 약탈자들을 섬멸한 일로 기적상회는 제 힘을 충분히 보여주었고, 그로 인해 많은 세력들이 천제현을 다시 본 게 사실이었다.

또한, 천벌호 비행선이 경천동지할 위력의 폭발을 만들어내면서 숲의 거물들조차 경계심을 갖게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그뿐이었다.

그들이 올드만 마을을 공격하지 않는 건 그럴 가치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얻는 것이 있어야 전쟁도 하지 않겠는가. 거물들은 숲 외곽 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 하나를 위해 불필요한 손해와 번거로움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그러나 기적상회가 당당히 숲의 성 하나를 차지한다면 그때부터는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영향력도, 기반도, 종족도 없는 그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성의 주인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그린캐슬이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영원의 숲에 속한다는 사실이었다.

영원의 숲은 엘프족 세력의 핵심지로, 엘프족의 왕성이 있는 곳이다. 엘프족들은 혼돈의 숲에서 만 년 넘게 살아온 자들이므로 영원의 숲이라는 간판은 꽤나 유용할 것이다.

이 성을 공격한다는 것은 영원의 숲에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테니까. 소탐대실이라고, 대형 세력들은 되도록 군사적인 충돌을 피하려고 할 것이고, 천제현은 그로 인해 어느 정도 외부의 공격에 마음을 놓아도 된다. 각종 계략과 음모만 조심하면 될 것이다.

천제현도 엘프왕의 고민을 알고 있었다.

그린캐슬의 지리적 위치는 매우 특수했다. 엘프의회에서는 이 민감한 성을 갖고 있다가 평화를 사랑하는 엘프들이 원하지 않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까 겁냈을 것이다. 그래서 엘프왕에게 이 성을 포기하라고 권했을 것이다.

엘프왕이 성을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의회에서 군사를 내주지 않는다면 영원의 숲은 정규부대를 수비군으로 파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속 빈 강정이나 다름이 없는 그 성을 얼마나 손에 쥐고 있을 수 있을까? 얼마 못 가 다른 세력들도 곧 엘프들이 그 성에 관여를 안 한다는 것을 알게 될 테고, 그럼 성을 빼앗기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건 엘프왕으로서도 도박이었다.

그는 그린캐슬이 영원의 숲에 속한다는 것을 알려 다른 세력의 침입을 막는 한편, 실질적인 지배는 하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그는 이 기회를 천제현과 자신의 딸, 비비안에게 준 것이다.

이것은 기회다.

몹시 위험한 기회.

현재 그린캐슬의 상황은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위험천만했다.

율리시스가 건네준 지도를 연구한 기적상회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 성은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엄청나게 좋은 곳이라고. 그린캐슬은 혼돈의 숲 중에서도 가장 핵심지역에 위치했으며, 각 세력들이 각축을 벌이는 화약고이기도 했다.

용의 고개, 영원의 숲, 타이탄산맥, 황야고원…… 이들은 모두 혼돈의 숲에서 손에 꼽히는 세력들로 그들 중 누구도 기적상회를 궤멸시킬 힘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린캐슬은 하필이면 그 세력들의 교차점에 위치해 이 거물들 외에도 수많은 세력들이 주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혼돈의 숲 한가운데 자리를 잡을 만한 세력이라면 최소한 인간들의 왕국 하나하나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을 테니까.

그 밖에도 혼돈의 숲은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 중 하나로, 재앙과도 같은 파멸을 가져올 수 있는 흉수들이 서식하고 있고, 오래된 비경과 미지의 지질환경 등이 산포해 있어 자체적으로도 몹시 위험한 곳이다. 이런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순 없었다.

그런데 기적상회는 어떤가? 남하국이라는 소국의 배후세력이 있을 뿐,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기적상회의 힘으로 숲의 한 귀퉁이에서 웅크리고 있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하거나 혼돈의 숲 깊은 곳에서 세력을 키운다는 건 천부당만부당한 얘기였다. 자기 실력을 과신하다가 자칫 잘못해서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기라도 하면 결코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천제현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어려운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기적상회 사람들은 모두 안색이 어두워져 있었다.

공화련은 모험을 좋아하는 유형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보다 더 현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지금 기적상회의 실력도 상당히 부풀려진 감이 없지 않았다.

이번에 약탈자들을 상대한 천벌호만 봐도 다시 전투에 사용한다는 게 불가능하지 않은가. 기적상회가 훈련시킨 광전사에 남주 훈련장의 병력까지 모은다 해도 최대 2만 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당장은 그렇게까지 병력을 동원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올드만 마을의 연합군은 마을을 지켜야 하므로 다른 일에 동원할 수 없었다.

즉, 천제현에게는 움직일 수 있는 군대가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이렇게 맨손으로 위험천만한 숲 깊숙이 들어가 성을 지키라니,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게 분명하다. 제대로 자리를 잡기도 전에 주변 세력들에게 골수까지 빼 먹힐 것이다.

혼돈의 숲은 군웅할거의 상태로 각 세력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지금 기적상회에 가장 안전한 전략은 올드만 마을을 잘 경영하면서 천천히 자원과 부를 쌓고 더 많은 토착부족과 마을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 후 외곽에서 중앙으로 조금씩 침투해가는 것뿐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상황을 봐서 성을 손에 넣은 후 기적상회의 중심지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보면 또 그렇지가 않았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기적상회의 발전 속도를 고려해 봤을 때 몇 년이 흘러도 숲 가운데로 나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훗날 세를 키우고 때가 무르익는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좋은 성을 또 얻을 수 있을까? 숲에 있는 모든 성의 배후에는 거대 세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기적상회가 자신의 성을 얻으려면 그 세력들과의 힘겨루기를 피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 성 하나가 제 발로 굴러들어왔다는 것은 둘도 없는 호재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그 성에 자리를 잡는 것이 기적상회의 조직 형태로 가능할까?

절대 불가능하다! 완벽한 한 국가 안에서라면 가능할지 몰라도 혼돈의 숲 같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에 상응하는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힘이 없다면 제 아무리 많은 부와 자원이 있더라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강물 위를 떠다니는 부초 신세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엘프왕의 선물을 받겠습니다!”

천제현은 오래 생각하지 않고 지도를 받으며 말했다.

“엘프왕께 안심하셔도 좋다 전해 주십시오. 이 성은 결코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온 힘을 다해 지키고 발전시킬 테니 지켜봐 주십시오!”

율리시스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가 가져온 선물이 누구나 군침 흘릴 만한 것이긴 했으나, 대단한 용기 없이는 쉽사리 받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율리시스는 천제현이 그 성을 거절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설령 받을지라도 그로 인한 이익과 손해를 며칠쯤 철저히 따져본 후 얘기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 자리에서 이렇게 바로, 깔끔하게 손을 내밀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것이다.

이런 인물은 용감하고 지모가 뛰어난 자이거나 경솔하고 탐욕스러운 필부 둘 중 하나다. 아니, 어쩌면 그 두 가지의 모습 모두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천제현이 성주라는 지위를 잘 지킬 수 있을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지만, 최소한 그린캐슬을 다른 세력의 손에 넘기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엘프족으로서는 이득이었다. 그 성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영원의 숲의 이름으로 그대를 그린캐슬의 성주로 임명하는 바요.”

율리시스는 엘프왕의 신물을 천제현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그대는 그린캐슬의 모든 권리를 갖게 되었소. 영원의 숲은 그린캐슬의 내정에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을 것이니 바로 성으로 들어가면 되오.”

공서련과 비비안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잘됐어!’

단순한 둘은 미처 멀리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눈앞의 선물에 기뻐할 뿐이었다.

그린캐슬은 아주 좋은 성이다. 비록 명목상 영원의 숲 소유로 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어떤 엘프도 살지 않으니 고루한 늙은이들이 이래라 저래라 할 일도 없었다. 기적상회는 그린캐슬 안에서 100%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이건 기적상회가 줄곧 바래왔던 일 아니던가?

율리시스는 영원의 숲과 엘프왕을 대신하여 천제현에게 성주 직위를, 공화련과 비비안에게는 부성주 직위를 수여했다. 천제현과 공화련은 그렇다 쳐도 비비안까지 부성주가 된 것은 엘프왕의 계산 때문이었다.

비비안은 엘프인데다 엘프왕의 딸이기도 하다. 그녀가 그린캐슬의 부성주가 된다면 그린캐슬의 보호막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율리시스는 천제현을 보며 말했다.

“그린캐슬은 지난날 현지 대형 세력의 성이었소. 그러나 100년 이상 지속된 압박으로 쇠퇴하여 엘프왕의 외교적 수단에 넘어오게 된 거요. 그러나 전 성주 세력들이 잔존하는데다가 다른 거물들도 호시탐탐 그곳을 노리고 있다오. 대내외적으로 큰 압박을 받고 있다고 봐야 할 거요.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폭동과 기아, 역병까지 발생했다고 하오. 현재 상황이 어떤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으니 일단 신분을 밝히지 말고 정세를 살핀 뒤 행동하는 게 좋을 거요.”

그린캐슬의 상황이 좋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엉망일 줄은 몰랐다.

어쩌면 생각보다 큰 도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제현은 겁먹지 않았다. 그에게는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갈 시간도, 심적 여유도 없었다. 하늘이 내려준 이 좋은 기회를 거절하는 건 그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방법만 제대로 찾는다면!

이 세상에서 그가 못 할 일은 없다고 믿는 그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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