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469화 (469/729)

# 469

제469장 영원의 숲

곰족, 늑대족, 오크족, 식인마족과 올드만 마을의 다른 토착민들이 급히 전쟁터로 달려왔을 때, 전투는 이미 끝나 있었다.

전장을 본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거진 수풀로 뒤덮인 웅장한 산맥이 폭발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나무들이 날아가고 중앙의 폭발로 바위가 녹으면서 용암이 되어 거미줄처럼 주변을 뒤덮고 있었다.

반경 10리 안은 모두 먼지와 잿더미로 엉망이 되었으며, 폭발과 화염 때문에 공기까지 이글거리는 것 같았다.

이 폐허를 보고 누가 숲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이건 그야말로 종말의 날, 화산이 폭발한 모습과 같았다.

8만 명의 약탈자들 중 생존자는 한 명도 없었고, 온전한 시체를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야만족들은 두 조각이 난 약탈자 우두머리의 시체를 가져와 올드만 마을의 깃발 위에 묶은 뒤 토착민들 눈앞에 꽂아 놓았다. 악명이 자자했던 숲의 부랑배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숯덩이가 되어 깃발 높이 매달려 있었다. 그 부릅뜬 두 눈에는 경악과 분노, 불신의 빛이 서려 있었다. 죽으면서도 이 모든 걸 믿을 수 없었다는 듯이.

지난 날, 숲에 사는 거물들의 물건에도 손을 댄 적이 있던 약탈자들이다. 그들의 추격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었는데.

영악하고 교활한 숲의 강도 조직이 한 조그만 마을에게 전멸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들 대부분은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어리둥절한 상태로 죽음을 맞았다. 요행히 살아남은 자들도 기적상회의 뒤처리 과정에서 일말의 여지없이 목숨을 잃었다.

반항이란 걸 해볼 여지조차 없었고, 저항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깔끔하고 잔인하게 소탕된 것이다.

일행과 함께 토착민들의 앞으로 다가간 천제현이 입을 열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전투는 끝났으니 화재 진압과 뒤처리를 부탁합니다.”

토착민들은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공포스러운 것은 약탈자들이 섬멸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기적상회가 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렇게 빠르게 그들을 찾아 쓸어 버렸는지 알 방도가 없다는 점이었다.

순간적으로 산 하나를 평지로 만들어 버릴 정도의 파괴력이라니, 그건 최고 경지의 진령급 고수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기적상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 저 처참한 몰골이 된 것은 자신들이었을 테니까.

두려움에 사로잡힌 토착민들은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허리를 굽신거리며 경의를 표했다.

천제현은 그런 그들을 훑어보았다.

‘이제 기적상회의 힘을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했으니 앞으로는 뭘 시키든 거절하지 않겠지!’

“그럼 뒤처리를 부탁하겠습니다. 아, 바닥에 떨어진 전리품이 없는지도 확인해 주시고요.”

대형 조직 하나를 전멸시키고도 짚단 하나 벤 것처럼 담담한 천제현이었다.

“철수하라!”

“네!”

마을 연합군이 전열을 정비한 뒤 철수하자, 경악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 토착민들만 남았다.

“다들 뭐 하는 거요?”

“빨리 전장이나 정리합시다!”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자 토착민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전투를 돕겠답시고 느릿느릿 전장까지 걸어온 그들이다. 뒤처리마저 꾸물거리다가 기적상회의 심기라도 건드리면 큰일 아닌가.

어린아이 손목을 비틀 듯 쉽게 약탈자들을 전멸시킨 기적상회다.

그들 부족을 전멸시키는 건 그보다도 더 쉬우리라.

이제 그들의 눈에 기적상회는 더 이상 단순한 숲 외곽 세력이 아니었다. 숲의 거물들을 순식간에 깔아뭉갤 능력을 지닌 초특급 거물이었다.

물론 이건 그들의 착각이었다.

천벌호가 중형폭탄 천 개를 사용하는 바람에 기적상회의 폭탄 비축량은 0이 되어 버렸다. 중형폭탄 천 개는 기적상회가 한 달 넘게 시간을 들여야 제작할 수 있는 물량이므로 한동안은 유사한 공격을 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효과는 이번 한 번으로 충분하다.

누구든 천벌호의 위력을 본 사람은 감히 기적상회에 반기를 들 생각조차 할 수 없을 테니까. 숲의 대형 세력들도 그들을 건들기 전에는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한편, 연합군은 사상자가 거의 없었다.

놀라운 승리가 아닐 수 없었다.

씩씩하게 개선하고 돌아온 연합군을 본 올드만 마을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믿음이 더욱 굳건해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그 약탈자들도 앞뒤 안 가리고 불 속에 뛰어드는 어리석은 불나방에 불과했구나!’

사람들은 새로운 숲의 도시가 떠오르는 것을 체감했다. 향후 얼마간 올드만 마을의 인구는 빠르게 증가할 것이다.

거미족과의 전투가 기적상회의 능력을 보여준 데 그쳤다면, 이번 약탈자 학살은 올드만 마을의 이름을 숲 전체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러니 얼마 안 가 수많은 토착민들이 찾아올 것이다.

이를 예상한 공화련은 협곡 생활구역의 증축을 계획했다.

그때, 마을 한쪽에서 강력한 기운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심빙우가 폐관을 마친 것이다. 그녀는 진령 경지의 술사로 변모해 있었다.

이로써 심빙우는 기적상회의 첫 번째 진령 술사가 되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동방호연도 진령 경지에 오르며 폐관을 마쳤다. 기적상회에 생긴 두 명의 진령 고수는 부족했던 전투력을 든든하게 메워주게 되었다.

겹경사라 아니할 수 없었다.

천제현은 축하연을 열기로 결정했다.

또 한 번의 눈부신 발전을 거둔 기적상회를 자축하는 자리였다.

***

한편, 약탈자들이 전멸했다는 소식이 혼돈의 숲에 퍼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었다.

숲의 핵심지역에 자리 잡은 대형 토착 세력들도 기적상회에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약탈자들이 공공의 적이라고는 하지만, 기적상회의 조치에 불만을 갖는 자가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혼돈의 숲 깊은 곳에는 전설의 협곡, 루이파시스가 있었다.

루이파시스는 엘프어로 ‘태양’, 그리고 ‘영원’이라는 뜻을 지닌 단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협곡을 ‘영원의 골짜기’라고 부르곤 했다. 그리고 영원의 골짜기에 우뚝 선 엘프도시는 ‘영원의 숲’으로 불렸다.

그 깊은 산골짜기 빽빽한 나무와 계곡들 사이에는 형광이끼로 뒤덮인 흰색의 돌길이 있었다. 그 길은 고대 결계로 통하는 유일한 입구였고, 결계를 푸는 법을 아는 자만이 영원의 골짜기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영원의 골짜기 깊은 곳에 위치한 영원의 숲은 넘치는 생명력과 강력한 고대의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영원의 숲 안에 있는 태양우물에서 나오는 따뜻하면서도 눈부신 빛은 숲 전체를 뒤덮었고 수백만의 엘프들은 숲 속의 예술작품 같은 오두막집과 돌집에서 살고 있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엘프의 노랫소리가 영원의 숲 곳곳에서 흘러 나왔다.

엘프왕의 궁전은 폭포로 둘러싸인 절벽 위에 있었다. 눈처럼 새하얀 옥을 정교하게 조각해 만든 그 궁전은 예술과 문화적 정수의 극치를 보여주는 하나의 작품이었다.

그렇다.

이곳이 바로 영원의 숲이었다.

혼돈의 숲 안에 있는 나무 엘프족의 왕성.

엘프들은 원래부터 수명이 길기로 유명하지만, 강력한 힘을 지닌 태양우물의 성스러운 빛을 받고 생활하는 그들은 모든 질병에서 자유로웠으며 더 강한 힘과 긴 수명을 자랑한다.

그리고 이 순간, 엘프의회장에 수십 명의 엘프족 족장들이 모여 있었다.

의장 자리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엘프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지난 수십만 년 동안 수많은 나라와 종족들이 나타났다 멸망했소. 그들의 멸망은 힘과 진보, 발전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으로 인한 것이었지. 감당할 수 없는 힘은 이성을 잃게 하고, 지나치게 빠른 진보는 눈을 흐리게 하며, 발전에 대한 집착은 전쟁을 부르는 법이오. 그건 모든 재앙의 근원이었소. 그래서 우리 엘프들은 길고 긴 지난 세월 동안 일관된 원칙을 유지해 왔소. 폐쇄와 보수만이 우리의 고귀하고 위대한 문명을 유지하는 길이라 믿었던 거요. 엘프족은 절대 그 어떤 전쟁에도 먼저 발을 들이지 않았소. 지금 우리가 지닌 것들은 후손들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충분하니…….”

엘프의장, 오거스트의 침착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의회장에 울려 퍼졌다.

그는 벌써 몇 번째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엘프들은 여전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엘프족은 고귀하고 정의로우며 보수적이고 전통을 고집하는 종족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대륙 최강의 종족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호전적인 마수령들과 천박한 인간들 따위가 어찌 감히 엘프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는가?

수없이 반복되어온 역사가 말해주고 있었다. 전쟁의 결말은 곧 파멸이라고. 그래서 엘프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먼저 전쟁을 일으키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수만 년간 내려온 전통을 계승하면서 폐쇄적이고 타종족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해왔다. 그렇게 해야만 이 살육으로 얼룩진 대륙에서 속세의 티끌에 때 묻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오거스트의 옆에는 엘프왕이 앉아 있었다. 언뜻 보면 40대 인간 남자로 보이는 그에게서는 엘프족 특유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날카로움과 섬세함, 우수를 동시에 지닌 그는 거장이 만든 조각품 같았다. 그의 피부는 옥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웠으며, 모공 하나하나가 빛을 내는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 그 자체였다. 그 자체가 세상에 둘도 없는 예술품이었다.

그는 오거스트가 자신을 에둘러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최근 그는 의회를 속이고 숲의 성 하나를 점령한 바 있다. 이 일로 보수파 인사들의 불만을 산 터였다.

고귀하고 우아한 엘프가 어찌 침략 행위를 한단 말인가?

보수적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엘프족이 어떻게 먼저 공격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의회의 의결을 통하지 않고 엘프왕 독단으로 이뤄진 이 침략행위는 엘프족의 전통을 심각하게 훼손한 행위로 받아들여졌고, 그로 인해 그 성의 처리를 놓고 엘프족 내부의 의견 또한 여러 개로 갈라졌다.

엘프족의 관례에 따르면, 어떤 일에 여러 가지 의견이 존재하는 경우 토론과 변론을 반복해야 한다. 그 과정은 짧으면 1~2년, 길면 수십 년에 달하는데, 최종적으로 더 이상 이견이 없을 때까지 토론을 진행한 후에야 결정이 나곤 했다.

그러나 그 긴 시간 동안 성을 내버려둔다면 어찌어찌 황무지가 되는 것은 피한다 쳐도 얼마 못 가 다른 종족에게 뺏기고 말 것이다.

엘프왕은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성은 엘프족에게 매우 큰 전략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숲에서 엘프족들의 지위를 더 공고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외부세계와의 통로가 되어줄 것이다.

‘엘프족들은 너무 보수적이다!’

규칙이 구속으로 변한 지 오래거늘 엘프족들은 여전히 그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도가 없었다. 엘프왕이라고 절대적인 권력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최근 사건이 하나 있었소.”

의장은 분개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이 놓친 그 인간이 숲에서 소란을 일으켰더이다. 약탈자들을 소탕한다는 이유로 수십 리에 이르는 숲을 파괴했소!”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무고한 꽃과 나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어찌 감히 그따위 이유로 이 숲과 대자연을 파괴한단 말입니까? 천박하고 부도덕한 일입니다!”

앞다투어 입을 여는 엘프들의 얼굴엔 천제현에 대한 못마땅함이 드러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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