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8
제468장 천벌
약탈자들을 처리한 천제현은 남궁혜, 공서련과 함께 바로 큰아가씨가 있는 곳으로 합류했다.
약탈자 임시 거처와 50리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공화련은 총 3만여 명의 마을 연합군을 이끌고 출동했다. 그녀는 숲이 우거진 곳에 잠복하여 공격준비를 하고 있었다.
“언니, 우리가 해냈어!”
공화련을 바라보는 공서련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천제현이 두목을 단번에 해치웠어요. 그래도 약탈자 중 몇 놈이 도망쳐서 소식을 알렸을 지도 모르니, 어서 빨리 공격해서 도망치지 못하게 해야 해요.”
“우리 쪽 지원군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
남궁혜는 숲 속에 매복한 군사들이 모두 마을 연합군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아니 토착부족들이 정예 군사를 보내 도와준다 하지 않았던가.
“약탈자는 7~8만 명 규모에 모두 강한 전투력을 보유한 정예 군사들이에요. 게다가 대형 박쥐같은 비행 탈것들도 있는데, 이 정도 인원가지고 될까요?”
“기다릴 시간이 없어.”
공화련은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토착인들은 기적상회를 의심하고 있었다. 말로는 용사 몇 만을 뽑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실은 아주 느려터진 군사들이었다. 앞장서기는 싫고 멀찍이 떨어져 관망하겠다는 속셈이다.
이쪽이 질 것 같은 낌새가 보이면 바로 뒤돌아서 도망치면 쳤지, 절대 약탈자들에게 미운털 박힐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적상회를 돕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공격이 유리하게 이어지면 좀 도와줄 지도 모른다.
‘어쨌든 상관없다.’
천제현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기댈 필요도 없었다.
이번 작전은 기적상회에게 있어 숲속 강도들을 몰아내는 수준의 단순한 전투가 아니다. 기적상회의 실력을 만천하에 드러낼,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다.
숲 속에 약탈자 같은 이런 강도 무리는 수도 없이 많다. 하나를 처리해도 그 뒤에 제2, 제3의 무리들이 끊임없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아예 상대를 박살 내버려야 토착인과 숲 속 강도들 모두에게 큰 위협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슷한 악행들을 근절해 버릴 수 있다.
단순히 기적상회의 적군이나 잠재적인 강적들에게 보여주려는 게 아니다. 현 연맹과 잠재적 연맹 세력에게 힘을 자랑한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혼돈의 숲에서는 힘이 곧 모든 것이다. 힘이 센 세력이 발언권도 더 강하다.
천하를 뒤흔들 힘을 가진 기적상회에 누가 감히 거역하겠는가?
기적상회는 아직 숲 속 변두리의 작은 지역에만 위치하다 보니, 주요 세력들과 부딪칠 일도 없었고, 숲 속 대형 세력들도 굳이 기적상회를 건드릴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감히 기적상회를 건드리려는 세력도 없어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발전해왔다.
“그 목적이 보여주기 식이든 뭐든 간에, 이번 전투는 무조건 화려해야 합니다.”
천제현이 공격 전에 다시 한 번 확인을 했다.
“준비는 어떤가요?”
“지금 적군이 전방에 있는 동굴에 숨어 있는 게 확실해. 천벌호가 오천 미터 상공의 최적의 공격위치에서 명령 대기 중이야!”
공화련이 한 마디 덧붙였다.
“네가 배치해 둔 방해 진법도 벌써 효과를 내기 시작했어. 숲에 잘 안 보이는 곳에 숨겨놨어.”
“그럼 시작하죠.”
천제현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 부대가 후방을 맡고, 나머지 부대는 바로 전투에 투입됩니다.”
어쨌든 엘프족은 마을에 가입한 종족이 아니었다.
천제현은 전투 과정에서 엘프가 목숨을 잃어 엘프족들이 또 성가시게 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연합군 몇만 명이 원시림을 헤치며 전진하다가 은신처 산봉우리로부터 십여 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 머리 위로 약탈자들이 박쥐를 타고 빠르게 오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경계영역까지 들어선 게 분명했다.
약탈자들은 기적상회가 박쥐마수의 초음파 정찰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수만 명 규모라는 적지 않은 숫자에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만약 너무 가까이 다가간다면, 들킬 위험이 있다.
“여기는 이제 다 준비됐어요!”
천제현이 공화련에게 손짓했다.
“시작하세요! 광전사 부대가 먼저 가고, 나머지는 엎드립니다.”
야만족 광전사 육천 명이 마력무기를 들고 숲 속으로 전진했다.
공화련은 통신기를 들고 위에 있는 기적 비행선에 연결했다.
“천벌호, 여기는 공화련이다. 목표 확인 후 공격 개시하라. 다시 말한다, 공격 개시하라!”
“천벌호, 수신완료!”
통신기 속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숲 속 연합군들은 이상하기만 했다. 천제현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왜 숲에 엎드려 있으라고 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천제현의 명령을 거역할 엄두가 나지 않아 그저 얌전히 땅에 엎드려 있었다.
천벌호는 매우 거대한 비행선으로, 표면 전체가 전반사 거울로 덮여 있었다. 이 거울은 보통 거울이 아니었다. 바로 전영경 거울로 갖가지 화면을 재생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거울 하나가 수신한 화면을 다른 거울에서 재생할 수 있어 마치 앞뒤로 완전히 투명한 상태처럼 보이게 할 수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 있어도 거의 투명한 어떤 윤곽이 이동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니, 멀리 떨어져 있으면 육안으로는 분간하기 어렵다. 지금 기술 수준으로 만들어낸 기적비행선은 마치 하늘에 떠도는 유령처럼 보인다.
“목표 확정!”
“고도 5천 미터!”
“풍속 정상, 환경 정상.”
“가중고공폭탄 100개 활성화!”
기적비행선 하부에 폭탄투하 선창이 드러났다. 1m 길이의 대형 폭탄이 검은 보검처럼 나란히 장착되어 있었다. 새까만 몸체의 폭탄 표면에는 희미하게 보이는 주문이 가득 그려져 있었다. 모두 벌집수정의 눈물을 고농도로 압축한 폭탄이었다.
이 폭탄 한 개는 마력수류탄 100개와 맞먹는 위력을 갖고 있다.
이 폭탄들이 떨어지면 마력수류탄 만여 개가 동시에 폭발하는 셈이다.
“활성화!”
긴 검 같은 중형 폭탄들이 활성화되자 겉에 그려진 주문들이 밝게 빛나면서 어떤 동력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기적비행선 폭탄투하실을 떠나 유성처럼 땅으로 쏟아졌다.
정말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이런 속도로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폭탄 표면마다 중력을 가중시키는 주문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주문이 활성화되면 폭탄은 중력의 힘을 몇십 배는 더 받는다. 그래서 모든 폭탄의 무게는 더 무거워지고, 공기 저항은 더 낮아지며, 가속도는 더 상승한다. 덕분에 바람 때문에 방향이 흔들리는 일 없이 그대로 쭉 낙하한다.
100여 개의 폭탄이 드넓은 창공에서 떨어지는 건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그저 돌멩이 100여 개가 산에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별것 아니어 보이는 검은 점들이 산봉우리에 닿는 순간.
펑-! 퍼펑-!
숲 전체가 흔들리면서 빛과 열기가 대량 분출되었다. 어마어마한 마력 구름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고, 산 전체가 흔들리며 갈라졌다. 용솟음치며 올라오는 기류에 주변 숲이 요동치며 흐트러졌다.
“1차 폭격 완료.”
“편차율 5퍼센트 미만!”
“위치 조정, 2차 투하 500개!”
1차 공격은 그저 실험에 불과했다. 2차 폭탄 수량은 500여개로 폭탄의 위력은 1차의 몇 배에 달했다. 산봉우리에 떨어지면서 폭발할 때 쏟아내는 그 빛은 하늘의 태양을 가릴 정도였다.
마을연합군과 먼 곳에서 바라보던 토착인들은 모두 이 장관을 보고 두려움에 얼어붙었다.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일어난 일인지 알 수 없다는 데 더욱 소름이 끼쳤다. 영문도 알 수 없는, 너무나 공포스러운 폭발공격이다.
3차 폭격이다.
이번에는 천 개다.
세 차례 이어진 폭격에 웅장하던 산봉우리도 거의 절반이 날아갔다. 불길이 주변 숲으로 번져 지면을 새까맣게 태웠다. 십리 밖까지 충격파가 퍼지고 나무들이 뿌리 채 뽑혀나갔다.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듯, 공기마저 초조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숯과 날리는 재들로 뒤덮여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천벌호 임무 완수!”
“현재 고도에서 퇴각 중!”
천벌호가 갖고 온 무기가 모조리 투하됐다.
바로 퇴각에 나선 비행선은 안전한 고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펼쳐진 빠르고 강력한 공격이었다. 만약 폭발의 한가운데 있었다면 고급 진령술사라도 제대로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약탈자들은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맹렬한 포탄공격을 받았다. 아무리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해도, 사상자는 전체의 절반을 넘을 것이다.
이 거대한 숲 속 강도조직이 전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기적상회에게 처절하게 당한 셈이다.
“전체 돌격! 약탈자를 죽여라!”
천제현이 나팔을 들고 크게 외쳤다
“우리 기적상회를 건드린 놈들은 이렇게 된다!”
기적상회의 기적 같은 수법들을 직접 목도한 연합군 전사들의 사기는 크게 진작되었다. 수만 명의 군사들이 일어나 무기를 들고 불바다가 된 곳을 향해 돌진했다.
목숨을 건진 약탈자들이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뜨거운 바위를 밀어내며 안쪽에서 힘겹게 기어 나왔다. 하지만 그런 그들 앞에는 중장갑으로 무장한 광전사들의 돌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력무기의 공격이 사납게 휘몰아쳤다.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광전사 6천 명과 마력무기 수천 개가 어우러져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으니, 중상을 입고 목숨만 건진 약탈자들이 어찌 다시 요행을 바라겠는가? 완전한 학살의 현장이었다.
“회장님의 명령이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연합군은 약탈자들을 찾아내는 대로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 버렸다. 포로로 삼거나 봐주는 일도 없었다. 약탈자들에게는 유례없는 악몽이었다. 지옥이 어떤 곳인지 처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약탈자 8만.
약탈자 무리가 총 8만 명이다.
높은 기동성과 뛰어난 정찰력을 가진 부대다. 어디 제대로 된 땅 하나 차지하지는 못했어도, 한 번도 소멸된 적 없이 다년간 숲에서 날뛰던 조직이다.
그런 이들이 단 몇 분 만에 처절히 붕괴되었다.
약탈자 무리의 대두령이 폐허 속에서 기어 나왔다. 불바다와 용암 천지인 주변을 바라보는 순간, 이 엄청난 상황을 마주한 그의 얼굴은 두려움과 분노로 일그러졌다.
“대체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바로 그 순간 그의 눈앞에서 미세한 파동이 일면서 공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엘프족 여자아이가 그 균열 속에서 나타났다.
약탈자 대두령의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바로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비비안의 몸을 스쳐 지나갔을 뿐 공격이 제대로 맞지는 않았다. 약탈자 대두령의 마력은 비비안과 비슷했다.
만약 전력을 다해 공격했다면 허공둔을 깨뜨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상처를 입은 데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제대로 힘을 모을 틈이 없었다.
약탈자 대두령이 얼떨떨해하고 있을 때였다.
비비안의 손이 움직였다.
그러자 육안으로 분간하기 힘든 미세한 공간 균열이 약탈자 대두령의 몸에 일어났다. 대두령의 동공이 살짝 수축되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바라보았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자신의 몸이 가운데서부터 잘려 천천히 분리되고 있었다. 너무나도 매끄럽고 가지런하게 잘려나가 소름이 끼쳤다.
‘아니야! 이건 진짜가 아니다! 분명 꿈이다, 악몽이야!’
약탈자 대두령은 죽어가면서도 이 모든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수하 형제들이 산굴 안에서 술을 마시며 축하하고 있었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천지가 개벽할 변화가 일어나다니, 누구라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대두령이 죽었다!”
“끝장났어, 약탈자도 끝이야!”
약탈자 조직 대두령이 비비안에게 죽음을 맞이했다. 이두령은 기적상회 비행선의 폭격으로 죽었고, 삼두령은 숲에서 천제현이 죽였다. 우두머리 급이 모두 죽어 버리자 요행히 목숨을 건진 약탈자들은 더는 버틸 힘이 없었다.
어찌 감히 전투를 계속 이어가겠는가? 이는 전투라기보다는 학살에 가까웠다.
숲 속 유명한 강도조직의 이름이 이렇게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