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466화 (466/729)

# 466

제466장 숲 속 협상

공서련은 남하국에서 해독제 생산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천제현이 연구한 해독제는 비용도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남하국에 있는 기적상회의 자원만으로도 쉽게 제작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량의 해독제가 전달될 것이다.

“이제 뭘 준비해야 하지?”

“해독제가 오기 전까지는 전투에 나설 여건이 안 돼요. 요 며칠 간 약탈자의 습격을 피하고 그들의 은신처를 찾아내야 해요…….”

천제현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아예 날을 잡아서 트롤들과 이야기를 해보죠!”

“뭐라고?”

공서련이 아름다운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그들과 무슨 할 얘기가 있다고 그래? 그리고 그들이 올 거라고 생각해?”

“분명 올 겁니다.”

천제현이 확신하며 말했다.

“그들이 바라던 결과 아니겠어요?”

“천제현 말이 맞아.”

단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약탈자의 지금 행동을 보면, 공포를 조성해서 전쟁을 하지 않고 항복을 받아내려는 속셈이야. 협상을 제시하는 건 그들이 바라던 행동일 테지. 그러면 며칠 시간을 벌 수 있고, 이 기회에 그들을 유인해 약탈자의 은신처도 파악할 수 있어. 일석이조인 셈이지.”

“그렇군요.”

공서련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연락하죠?”

“약탈자는 분명 우리 반응을 살피려고 숲에 자기 세력을 남겨뒀을 거야. 우리가 만날 시간과 장소를 숲에 붙여 놓으면, 그에 맞춰서 나올 거야.”

“큰아가씨는 정말 똑똑해요, 정말 어떤 미련한 사람이랑은 달라요!”

“누가 미련해!”

공서련이 화낼 것처럼 으르렁거리자, 천제현이 웃으며 답했다.

“이 일은 큰아가씨께 맡길게요.”

일 처리가 빠른 공화련은 바로 글을 써내려갔다. 틀로 약탈자에게 살육을 멈추고 사흘 후 올드만 협곡 주변의 분지에서 만나자며 간절하게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공화련은 혹 트롤들이 글을 못 알아볼까 염려되어 숲에서 자주 사용하는 세 가지 문자로 초대장을 작성한 후, 사람을 시켜 100장정도 되는 초청장을 숲 속 눈에 띄는 위치에 비밀리에 붙여 놓았다.

과연 효과가 있었다.

올드만 마을은 더 이상 공격받지 않았다.

생각대로라면, 약탈자는 이 초청장을 발견하고 아주 기뻐 날뛰었을 것이다. 또 손쉽게 한몫 벌게 된 것을 경축하는 잔치를 벌이며, 삼일 후에 있을 협상을 대비해 체력을 비축하고 있을 것이다.

그 며칠 동안, 대량의 해독제가 공간창고를 통해 마을로 옮겨졌다.

천제현도 가만히 놀고 있지 않고 특수한 마력진에 사용될 군기를 만들었다. 초음파를 약화시키거나 방해하는 단순 기능을 가진 마력진이었다.

트롤족은 박쥐마수를 길들이는 데 능했다. 박쥐마수는 약탈자의 탈것이자 동시에 눈의 역할도 했다. 강력한 초음파로 탐색을 하기 때문에 트롤의 눈에서 벗어나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바로 이때문에 트롤들은 박쥐마수를 지나치게 의지했다. 만약 박쥐마수의 정찰능력이 잘못되면, 예상외로 손쉽게 트롤을 무찌를 수 있을 것이다.

삼일은 매우 빠르게 지나갔다.

공화련은 지휘실의 감시화면을 통해 수상한 무리의 모습을 발견했다. 화면을 확대해서 본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바로 천여 명의 약탈자 무리였다.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산굴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올드만 마을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바로 저곳이 약탈자의 근거지가 틀림없다.

공화련은 바로 비행선 배치에 들어갔다.

“천벌 1호, 목표구역을 향해 이동 후 공격을 준비하며 대기하라!”

“천벌 1호 수신완료!”

커다란 기적비행선이 몇 만 미터의 고공에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큰일 났습니다, 큰일 났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늑대족 하나가 황급히 마을로 달려왔다.

“약탈자 무리가 오고 있어요!”

이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

‘설마 약탈자가 총공격을 시작한 건가?’

그때 천제현은 모두를 안심시켰다.

“여러분, 당황하지 마세요. 우리가 파 놓은 함정입니다. 지금 약탈자들의 임시거처를 파악해서 올드만 마을 연합군을 동원하는 중이에요. 단번에 이들을 해치우고 숲에 이름을 날립시다!”

“그…….”

토착인들은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기적상회가 정말 약탈자의 거점을 알아냈다고?’

‘요 며칠 별 다른 일을 하지 않은 것 같던데, 혹시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올드만 마을 연합군이 모두 소집되었다. 기적상회 광전사 6천 명이 총출동했다. 폭풍소총만 800개, 개인용 마력대포는 200여개가 준비됐고, 나머지도 최소한 마력기관총 하나씩은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병사에게는 마력수류탄이 주어졌다.

결전에 나서는 모습이다.

비비안은 엘프족 유니콘 기병사수 천 명을 이끌고 전투에 참여했다.

엘프까지 나서는 마당에 믿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이들은 바로 각자 부족으로 돌아가 부족 용사들에게 전투 준비를 하게 했다. 사실 기적상회는 마을 연합군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번에 토착인들을 끌어들인 것은 그들에게 기적상회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몇 만 명의 연합군이 집결하였다.

하지만 천제현은 트롤과 약속한 협상 장소에 고작 몇 백 명만 데리고 갔다. 천제현이 도착했을 때는 몇 백 명의 약탈자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린 후였다.

천안호 정찰비행선이 파악하기로는 트롤 기병이 천여 명에 달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건 고작 몇 백 명 정도다. 그렇다면 나머지 약탈자들은 아마 흩어져서 정찰 중일 터였다. 사실 약탈자들도 바보가 아니기에, 올드만 마을이 협상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주변에 매복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했다.

약탈자 가운데 아주 건장한 체격의 트롤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키는 7척 정도에 상반신을 드러내고 있었고, 온몸은 돌로 조각한 것 같은 근육질에 피부는 이상한 토템으로 가득했다.

양 손에 든 검고 긴 창을 바닥에 내리꽂자 강력한 기운이 퍼져나가면서 자리한 모든 이들에게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

천제현은 비비안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그래서 천제현 쪽에는 진령술사가 없는 상황이었다.

트롤 약탈자들은 이토록 초라한 올드만 마을이 우스웠다.

‘고작 숲 바깥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 주제에 무슨 고수가 있을라고? 이런 진영에 이런 반응이 정상이지!’

트롤 수령은 음산한 웃음소리를 냈다.

“흐흐흐! 감히 올 엄두를 못 낼 줄 알았는데!”

천제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약탈자들 앞에 나섰다.

“저는 늘 신의를 지켜왔습니다. 여러분을 초대했는데, 약속장소에 안 나올 리 있겠습니까?”

“배짱 하나는 두둑한 놈이군.”

트롤 수령은 새카만 창을 뽑아 들고 녹색 눈으로 몇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쓸데없는 말은 마라. 우리는 멋모르고 날뛰는 놈들만 죽인다. 말귀만 잘 알아들으면 목숨은 살려주지. 물론 우리의 요구를 들어준다는 전제 하에서지만 말이야!”

천제현은 담담하게 물었다.

“이야기해 보시죠.”

“첫째, 갖고 있는 모든 마석과 자원을 내놔라.”

“둘째, 이제부터 우리에게 조공을 바치고 신하로 우리를 섬겨라. 벌어들인 자원과 마석 중 9할을 우리에게 바쳐라!”

“그리고 셋째…….”

트롤 수령이 음탕한 눈길로 천제현 뒤에 있는 남궁혜와 공서련을 쳐다봤다.

“여기 인간 여인들이 꽤 마음에 드는군, 앞으로 우리 시중을 들어라!”

트롤 수령은 아주 높은 자리에 군림하기라도 한 것 같은 말투로 말했다. 마치 이게 다 천제현에게는 영광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천제현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다인가요?”

인간의 냉정한 반응에 약탈자들은 오히려 의아했다.

‘무슨 뜻이지, 이걸로도 부족하다는 건가?’

트롤 수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석, 자원, 여인. 원하는 건 이게 다다. 너희들 목숨에는 흥미 없다. 우리의 이런 인자함을 다행으로 여기고, 지금 당장 고분고분하게 다 상납해라!”

“삼두령, 난 아직 인간 여인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저 빨간 머리 여인은 내가 먼저다. 순서를 기다려!”

트롤은 마치 이미 모든 것이 제 손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순서를 다퉜다. 트롤족은 폭력적이고 음탕한데다가 미에 대한 가치관도 대륙 세력들과 비슷해서, 미녀 인간은 그들에게 매력적인 존재였다.

“이렇게 많은 요구를 하셨으니, 소인도 청이 하나 있습니다.”

“청이라고?”

천제현이 등 뒤에 있는 칼자루를 움켜쥐고 얼음장 같은 유명검을 천천히 꺼내들었다. 가볍게 휘둘린 검 끝은 트롤 수령에게로 향했다.

“간단합니다. 당신 머리를 한 이틀 정도만 갖고 놀고 싶은데, 이 정도 작은 청은 거절하지 말았으면 합니다만?”

약탈자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있다가 바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 인간들이 장난하나?”

“혼성 경지의 마력으로 감히 이런 말을 하다니!”

약탈자 무리의 삼두령은 진혼급 강자다.

약탈자 무리가 오랫동안 숲에서 멋대로 굴 수 있었던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이 거대한 강도 조직 안에는 고수가 무수히 많았다.

‘그런데 털 하나 없는 연약한 인간 주제에 감히 약탈자 수령에게 싸움을 걸어?’

트롤 수령의 눈썹이 찌그러졌다. 희롱당한 느낌에 분노한 그 눈빛이 사방으로 튈 것 같았다.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알고 하는 말인가?”

“대가는 무슨!”

남궁혜는 트롤을 보자마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소리쳤다.

“내가 먼저 네놈을 해치울 테니, 얘기는 죽은 다음에 하시지!”

남궁혜의 양팔이 화염 날개로 변했다. 거센 날갯짓 한 번에 거대한 새처럼 하늘로 날아올라 공중에서 한 바퀴 돈 후 속도를 최고로 끌어올려 불나방처럼 뒤도 안돌아보고 상대방에게 날아들었다.

“죽어라!”

트롤이 검은색 긴 창을 새카만 날벼락처럼 던졌다.

검은 마력이 남궁혜의 화염을 순식간에 찢고 몸을 뚫고 지나갔다. 성광불멸체라해도 이런 맹렬한 공격을 막기는 힘들었다.

공서련이 놀라 외쳤다.

“남궁혜 언니!”

남궁혜는 나무들에 부딪쳐 가다가 거대한 바위틈에 끼였다. 몸에 타오르던 화염이 흩어져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면서 암석들을 녹여 나갔다.

일행의 얼굴빛이 확 바뀌었다.

이런 강력한 공격은 방어가 주력무공인 혼성 9성의 정점 술사도 감당하기 힘들다.

그리고 남궁혜는 혼성 8성 정점에 도달했을 뿐이다.

쿵!

산이 갈라지면서 화염이 솟구쳐 올라왔다. 남궁혜가 디디고 있던 모든 곳에 용암이 흘러 내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다.

트롤은 어리둥절해졌다.

분명 몸을 통과해 버리는 공격이다.

‘저 녀석은 불사신이란 말인가?’

남궁혜의 안색이 조금 창백했다. 마력을 적잖이 소진했기 때문이다.

‘과연 이것이 혼성과 진령의 차이인가? 신공을 수련해도 그 간격을 메우기 힘들구나!’

그때.

“남궁 아가씨, 비켜요.”

천제현이 검을 들고 나섰다.

“이 놈은 제가 맡겠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