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461화 (461/729)

# 461

제461장 무사귀환

율리시스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숲에 엘프족 도시는 열 곳이 채 안 됐다. 도시 다섯 곳을 내놓으라니? 이건 엘프족의 목숨을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천제현은 엘프들의 표정이 못마땅해서 도끼눈으로 째려봤다.

“엘프족은 정의와 공정을 추구하지 않습니까? 비비안은 공간 과학기술을 익혔어요. 나보다 한참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그 가치는 숲의 자그마한 도시 다섯 곳과는 비교도 안 되죠. 손해가 엄청나다고요! 챙길 거 챙겼으니 입 씻으려고요? 이게 엘프족의 정의입니까?”

엘프들이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율리시스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엘프족은 그런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소. 게다가 비비안에게 어떤 처분을 내릴지 아직 논의가 끝나지 않았으니…….”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수 없습니다! 엘프족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됐어요. 일이 지연됐으니 이 부분도 물어주셔야죠?”

천제현은 막무가내였다.

“이것도 많이 청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상품 마석 10만 개면 됩니다!”

율리시스의 이마에 핏발이 섰다.

엘프족은 사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했다. 상품 마석 10만 개가 대체 얼마인가?

‘이놈이 미쳤나? 안 되겠다. 이자를 데리고 갈 수 없어. 이놈을 의회에 데리고 간다면 난장판이 될 것이다!’

천제현은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엄포를 놓았다. 엘프는 엄숙하고 진지한 종족이라 천제현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정말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면 엘프의회는 안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천제현은 언변에 능하고 엘프는 너무 뻣뻣하고 고지식하다. 그렇게 많은 배상금을 지불할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엘프족은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하루 만에 꽃의 엘프의 지지를 얻어내고 세나리우스에게 중임을 위임받았다. 게다가 신분과 능력도 심상치 않으니 아무리 화가 나도 그를 건드릴 수 없게 되었다.

‘저자가 의회에서 소동을 일으키게 하면 절대 안 돼!’

늙은 엘프들의 성질을 건드리면 좋을 게 없다.

율리시스가 땀을 닦았다.

“엘프의회는 종족의 대소사를 처리하느라 매우 바쁘오. 천 선생이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너무 방대한 금액이라 수십 년 걸쳐 심의해도 결론이 안 날 것이오. 우리 엘프족에게야 긴 시간이 아니지만 인간에게는 너무 긴 시간이 아니오? 그러니 일단 먼저 돌아가고 배상에 관한 일은 나중에 다시 논의하는 게 어떻소?”

사실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것은 천제현의 본심이 아니었다.

혼돈의 숲의 엘프는 전국에 뒤지지 않는 힘을 지녔지만 경제력은 형편없었다. 대륙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서 엘프 사회에는 상품경제 모델이 존재하지 않았다.

엘프는 원시적이고 폐쇄된 소농경제로 자급자족하기에도 벅찼다. 간단히 말해 엘프족은 가난한 종족이다.

“원하시면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천제현이 조건을 제시했다.

“우선 제 직원인 비비안을 돌려주십시오. 그게 아니면 전 절대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비비안은 상회의 유일한 공간기술자이다. 지금은 공간창고가 필요한 때이다. 창고 하나로는 턱도 없다. 비비안이 이곳에 억류된다면 기적상회는 발목을 잡히게 된다. 천제현은 이점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건…….”

율리시스가 장로 몇 명과 상의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비비안을 억류시키는 것은 엘프족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천제현 곁에서 계속 공간 기술을 배우는 게 나았다. 그럼 골칫덩어리인 천제현이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을 것이며 엘프족도 대륙의 최신 공간 기술을 익힐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종족의 규율을 위반했으니 의회에서 설전이 벌어지겠지. 그러나 이해득실이 너무도 명확하기 때문에 모두 이해할 것이다.

율리시스는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좋소. 그럼 비비안을 올드만 마을에 계속 두겠소!”

천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엘프족 손아귀에서 벗어난 셈이었다. 사실 엘프족은 대륙에서 가장 상대하기 쉬운 종족 중 하나이다. 마수령족을 건드렸다면 이렇게 번거롭게 부족으로 소환하는 대신 그 자리에서 바로 천제현을 죽인 후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온갖 재물을 약탈했을 것이다. 천제현은 진즉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대륙의 최강 종족이었고 지금도 손가락에 꼽히는 강한 종족인 엘프족에는 본받을 구석이 있었다. 엘프는 인간과 달리 동맹을 맺고 난 후에는 경계할 필요가 없다.

“회장!”

비비안은 풀려나자마자 기뻐서 소리를 지르며 천제현을 덥석 껴안았다. 비비안은 엘프족이 천제현과 화해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올드만 마을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에 몹시 기뻐했다.

그녀는 천제현과 동족 사이에 풀지 못할 응어리가 생길까봐 몹시 걱정했다. 그렇게 되면 비비안의 입장이 매우 난처해진다. 그러나 엘프족이 천제현을 받아들이고 그와 동맹을 맺는다면 양측에 모두 큰 도움이 된다.

혼돈의 숲에 존재하는 강한 세력들 중에 엘프족은 절대적으로 우호적이며 믿을 수 있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우리 돌아가는 거야?”

비비안이 보챘다.

“여기에 더 있기 싫어.”

“서두를 것 없어요!”

천제현이 비비안을 달랬다.

“우선 이곳에 공간창고를 만들어요. 그럼 미로의 숲에서 구한 자원들을 옮기기 편하잖아요.”

생명수 부족의 엘프들, 특히 어린 엘프들은 천제현이 이곳에 공간창고를 짓는다는 사실을 듣고 몹시 들떴다.

천제현의 능력과 행동은 이미 부족 내부에 쫙 퍼져서 엘프족은 공간창고가 뭔지 다 알고 있었다.

생명수 부족에 공간창고가 생긴다면 기적상회의 신기한 제품들이 몇 분 안에 이곳으로 오지 않겠는가?

자음기와 상영기, 맛 좋은 통조림 등등 재미있는 것들이 모두!

엘프는 규율에 얽메여 부족을 떠날 수 없다. 부족을 떠나지 않고도 이런 재미난 것들을 즐길 수 있다면 그건 정말 근사한 일이다.

기적상회에서 사용하는 공간창고는 하나뿐이다.

이 공간창고는 기적상회 내부용이라 외부에 개방하지 않는다. 비비안이 엘프족에게 붙잡혀왔을 때는 두 번째 공간창고를 짓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두 번째 공간창고의 면적은 기존의 것과 비슷하다. 아직 개조를 거치지 않아 형태는 여전히 불규칙한 원형이지만 공간표기는 완료한 상태였다.

비비안이 곧바로 공간창고 소환진을 배치하고 예비용 마력기둥을 남겨두었다. 이로써 두 번째 공간창고를 가동할 수 있게 되었다. 창고 형태는 올드만 마을로 돌아간 후 실험실에서 천천히 개조해도 된다.

사흘 후 공간창고가 완성되었다.

이 공간창고는 이제 기적상회와 미로의 숲을 이어주는 전용 운송 통로이다. 이 창고는 기적상회를 위해 지어졌으나 엘프와 꽃의 엘프, 엔트족이 필요하다면 천제현은 이들이 원하는 것들을 운송해 줄 생각이었다.

엘프들이 공간창고를 둘러싸고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마력진이 있다면 엘프도 공간창고를 이용할 수 있다. 어린 엘프들은 비비안 공주를 에워싸고 선물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걱정 마. 절대 안 잊어!”

비비안이 호탕하게 손을 흔들었다.

“너희들을 위해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보내줄게!”

공주가 이렇게 약속하자 엘프들은 마음을 놓고 떠났다.

이때 미로의 숲에서 처음으로 채굴한 수정석이 공간창고로 한 자루씩 운송되었다. 뒤를 이어 꽃의 엘프들이 천제현에게 보낸 각종 진귀한 선물들이 창고에 쌓였다.

‘모든 게 해결되었다. 이제 출발해도 되겠어.’

딸린 물건이나 사람이 없다면 비비안의 공간능력으로 올드만 마을까지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천제현 외에도 꽃의 엘프 십여 명이 함께 가야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리고 공간이동을 할 수는 없었다.

비비안은 엘프족에게 비행 마수를 몇 마리 빌렸다. 비행 마수들은 꽃의 엘프들을 태우고 올드만 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모두 잘 있어! 너희들을 위해 재미있는 선물을 많이 가지고 올게!”

비비안이 웃으며 엘프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엘프족 장로들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다. 비비안 공주는 종족의 규율을 심각하게 위반했다. 더군다나 천제현이란 인간은 엘프족의 금기를 깨놓고도 처벌은커녕 오히려 원하는 것을 다 얻어 돌아가고 있었다.

이게 뭔가?

이 일이 숲에 알려지게 된다면 엘프족에게 악영향을 미칠 게 뻔했다. 반항심이나 호기심이 강한 엘프가 몰래 외부로 도망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엘프족은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율리시스는 이번 일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의회의 늙은이들을 어떻게 구워삶을지 대책을 세워야 했다.

***

비비안은 엘프족 마을을 벗어나자 몹시 홀가분했다. 온몸을 옥죄던 족쇄가 순식간에 끊어진 것처럼 그녀는 전에 없던 자유를 느꼈다.

‘기분 최고야!’

비비안은 골치 아픈 문제가 이렇게 쉽게 해결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엘프족은 이제 감히 천제현을 얕보지 못한다. 엔트족은 천제현에게 중임을 맡겼다. 꽃의 엘프는 엘프족과 동맹을 맺었다. 이제 기적상회는 엘프와 연합할 것이다. 이건 비비안이 가장 바라는 상황이었다. 천제현의 지혜를 흡수한다면 엘프족은 훨씬 강해질 것이다.

하루 만에 모두 올드만 마을이 위치한 협곡에 도착했다.

열흘 남짓한 시간동안 올드만 마을은 별 소동 없이 질서정연한 모습이었다. 올드만 마을에는 천 명이 넘는 엘프족 정예병이 주둔하고 있으니 그럴 만했다. 이들의 전투력은 보통 강한 게 아니다. 그러니 누가 함부로 이들을 건드리겠는가?

엘프 군대는 올드만 마을의 평화를 위해 장로가 배치한 것이다. 오래 주둔하다보니 마을에 진입하여 보급품을 구입해야 했다. 엘프들은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신기한 물건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며칠 후 엘프들은 자음기를 들고 다니며 매일 인간 방송을 들었다. 영화도 상영이 시작되었다. 영화는 엘프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엘프 군대는 협곡에 주둔하다가 점차 마을 쪽으로 이동하더니 결국 아예 마을에 주둔하게 되었다.

엘프 정예병 천여 명과 엔트족들은 대부분 수백 살로 한 번도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본 적이 없었다. 이러니 어떻게 기적상회의 유혹을 뿌리치겠는가?

인간이 방송하는 음악과 이야기, 흥미진진한 영화, 맛있는 마력 식품은 모두 엘프들을 강력히 매혹시켰다.

수백 년 동안 폐쇄적으로 살았던 엘프들은 처음으로 세상이 근사한 곳이라는 것을 느꼈다. 대대로 좁아터진 곳에서 사는 것은 너무 시시했다.

이 엘프들은 심지어 앞으로 계속 올드만 마을에 주둔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바로 이때 비비안 공주가 돌아왔다. 비비안은 부족 대장로가 건넨 영패를 꺼내 보이며 앞으로 엘프 군대는 자신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고 선포했다.

이 말은 이제부터 엘프 군대는 비비안 공주의 휘하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엘프들은 깜짝 놀랐다.

잡혀간 비비안 공주가 무사히 돌아온 데다 군대까지 거느리게 되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그러나 뭐가 어찌 되었건 올드만 마을에 남는다는 것은 무척 신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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