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460화 (460/729)

# 460

제460장 배상 청구

오리디스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동족들에게 사실을 알렸다.

“뭐라고?”

“안 온다고?”

엘프들은 초조해하며 화를 냈다.

‘이 인간이 정말 엘프족을 곤란하게 만들 작정인가?’

‘엘프족 어린아이 하나 이기지 못할 정도로 약한 주제에 무슨 힘이 있다고 우리를 무시해?’

정말 어이가 없었다.

고귀하고 도도한 엘프족이 이런 취급을 받아본 적이 있겠는가?

별다른 힘은 없지만 꽃의 엘프는 그래도 엘프족의 친구였다. 엘프족을 위해 대량의 최상급 보약과 여러 자원을 제공하여 엘프족의 실력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니 꽃의 엘프의 체면을 봐주어야만 했다.

“꽃의 엘프와 쌓은 천 년 우정을 이번 일로 깨뜨릴 순 없어.”

율리시스가 얼굴을 찡그렸다.

“엘프화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겠어. 꽃의 엘프를 데리고 와.”

엘프가 곧바로 꽃의 엘프 하나를 데리고 왔다.

꽃의 엘프 역시 천제현과 엘프족의 갈등을 풀기 위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상황은 대략 이래요.”

꽃의 엘프가 사정을 간단히 설명했다.

“우리는 정신공간을 만드는 일 외에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려고 해요. 동족 몇 명이 이미 준비를 마쳤어요. 며칠 후면 천제현과 함께 작은 마을로 갈 거예요.”

영화 제작은 정신 영역과 관련이 있다. 꽃의 엘프가 돕는다면 앞으로 영화는 더욱 훌륭해지고 재미있어질 것이다. 게다가 꽃의 엘프는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천제현은 이 작업을 꽃의 엘프에게 맡겼다.

엘프들이 크게 놀랐다.

꽃의 엘프들은 천 년 동안 화원을 떠난 적이 없다.

‘그런데 잘 알지도 못하는 인간 때문에 화원을 떠난다고?’

꽃의 엘프는 매우 약하다. 화원을 떠나면 위험하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율리시스 역시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나 그가 놀란 것은 꽃의 엘프가 내린 결정 때문이 아니라 다른 중요한 사항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천제현이 미로의 숲에 있는 수정석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고 시간 차가 공존하는 세상을 만든다는 겁니까?”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천제현은 바로 몇 시간 전에 엘프족 마을을 떠났다. 그전에는 미로의 숲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순전히 즉흥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생각해낸 것이다.

‘그 녀석 정말 인간 맞아?’

‘대체 얼마나 더 무시무시한 기적을 만들 셈이야?’

오리디스는 이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후회가 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며칠 전 천제현의 요구를 들어줬을 것이다. 그를 도와주는 대가로 그녀는 엘프족에게 유익한 것을 받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비비안의 말은 옳았다. 천제현은 엘프족보다 최소 10만 년은 앞선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마음껏 활개 치게 놔둔다면 천제현은 대륙을 완전히 바꿀 것이다. 엘프족이 계속 제자리만 고집한다면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될 것이다.

꽃의 엘프는 엘프족의 복잡한 심경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천제현이 그러더군요. 이 기술은 반드시 발전할 거라고요. 앞으로 초대형 정신세계를 만들 거예요. 세계의 각 종족이 모두 이곳에서 교류할 수 있어요. 그럼 인간끼리 거리가 가까워지고 현실 세상에서 마력과 자원 고갈도 줄어들게 될 거예요. 전쟁과 살육도 줄겠지요. 그러면 숲과 환경을 보호할 수 있어요. 이렇게 고상하고 원대한 이상을 지닌 자가 악인일리 없어요. 그러니 엘프족은 반드시 고소를 취하해야 해요.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우리는 엘프족이 그에게 접근하는 것을 결단코 막겠어요!”

꽃의 엘프는 매우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눈에 천제현은 천재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구할 성인이었다.

천제현으로 인해 세상은 더 아름다워지고 전쟁과 죽음도 줄어들 것이다. 그를 죽인다면 엘프족은 만고에 죄인이 되는 것이다.

천제현을 위해서도 엘프족을 위해서도 꽃의 엘프는 이런 비극이 벌어지게 둘 수 없었다.

“그리고 세나리우스도 말했어요.”

꽃의 엘프는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

“세나리우스는 우리에게 고대 생명수의 씨앗을 가지고 가라고 했어요.”

율리시스는 다시 한 번 크게 놀랐다.

“뭐라고요? 생명의 나무 씨앗이라니! 그걸 함부로 가지고 나간단 말이에요? 혼돈의 숲에 있는 엘프족을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씨앗이라고요.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요? 세나리우스라고 해도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을 거예요!”

대륙에는 고대 생명수가 여러 그루 있다.

따라서 엘프족 무리도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혼돈의 숲에는 고대 생명수가 모든 엘프족을 통틀어 오직 한 그루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남겨진 씨앗도 단 하나뿐이었다. 아직 싹을 틔울 방법을 찾지 못했지만 이 씨앗은 엘프족의 성물이었다.

이 씨앗은 지금까지 줄곧 세나리우스가 보관했다. 꽃의 엘프는 씨앗을 발아시킬 방법을 찾고 있었고, 엘프족도 이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이 씨앗을 가지고 숲 밖으로 나간다니 만일 누군가에게 빼앗기게 된다면 그 책임을 누가 진단 말인가?

꽃의 엘프가 해명했다.

“꽃의 엘프와 엔트족은 싹을 틔울 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그런데 천제현이 싹을 틔울 자신이 있다고 했죠. 세나리우스는 이 일을 천제현에게 맡겨보기로 결정한 거예요.”

이 말에 엘프족은 쓰러질 뻔했다.

천제현은 대체 얼마나 세상을 놀라게 해야 만족한단 말인가.

공간과학과 정신과학은 모두 수천 년을 연구할 가치가 있는 심오한 마력과학이다. 그런데다 이제 고대 생명수의 씨앗을 살릴 방법까지 내놓겠다고 한 것이다. 천제현이 정말 해낸다면 그의 머릿속에 든 지혜는 고대 신도 능가할 수준인 것이다.

“엘프족이 이번에 너무 속 좁게 굴었어요!”

꽃의 엘프가 질책하듯이 말했다.

“천제현은 엘프족의 선약을 하나 쓴 것뿐이잖아요! 훔친 것도 아니고 100배로 갚기까지 했어요. 이 일을 더 물고 늘어지는 건 엘프족 답지 않은 처사예요! 정 못마땅하시면 우리 꽃의 엘프족이 더 좋은 선약 열 알을 배상할게요!”

이건 약을 배상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엘프족 장로에게 2급 선약 한 알 따위는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인간과 비비안 공주의 신분에 있었다. 둘이 함께한다는 사실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인간은 비열하고 가식적인 종족이다. 엘프족의 규율은 엘프, 특히 여성 엘프와 인간의 접촉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비비안은 이번에 가장 중요한 금기를 어긴데다 인간과 마수령의 전쟁에 개입했다. 규율을 최소 열 개나 어겼기 때문이 이 사달이 난 것이다.

꽃의 엘프는 세상이 얼마나 험악한지 몰라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

“부의장님, 이번 일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잘못 판단했어요. 비비안은 정말로 엘프족에 도움이 될 만한 인간을 찾은 겁니다.”

율리시스가 고개를 저었다.

“전하께서는 줄곧 개혁을 원하셨지만 보수파가 너무 강했지요. 이번 일은 어쩌면 엘프족에 엄청난 기회가 될지도 몰라요. 바로 눈앞에 있으니 그자를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이렇게 대대적으로 엘프법정을 열었으니 모두 이 일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를 용서한다면 엘프의회 쪽은 어떻게 하죠?”

“물론 예를 갖춰야지요. 체면이 조금 깎이는 것은 별일 아니죠. 나와 엘프왕께서 직접 의회의 불만을 잠재울 겁니다.”

천제현은 믿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엘프족은 오래전부터 개혁파와 보수파로 나뉘어져 있었다.

비비안의 아버지인 현임 엘프왕은 사실 줄곧 개혁을 주장한 우두머리이다. 엘프왕의 통솔 하에 엘프족이 관리하는 도시는 세 개나 늘었고 세력 범위도 2할이나 넓어졌다.

보수파 세력은 엘프족 중에 줄곧 가장 강했다. 보수파의 대표적인 엘프는 바로 엘프의회의 의회장이다. 그의 영향력은 엘프왕 못지않았다.

보수파는 정말 고지식하여 매사에 예의와 규칙을 따지고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엘프왕이 딸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리 만무했다. 다만 왕이라는 신분 때문에 직접 나서기 힘들 뿐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일을 처리하고자 신임하는 율리시스를 보냈다. 비비안은 최종 판결에서 고작 수십 년 연금을 당할 뿐 중벌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율리시스는 별도의 행동을 취해야만 했다. 그는 엘프 장로들을 이끌고 다시 한 번 꽃의 엘프의 화원으로 갔다. 이번에 천제현은 먹고 마시며 즐기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엘프들을 보자 천제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절 잡으러 오셨나요?”

“천 선생,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는 것 같소.”

율리시스가 주름진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인간의 비위를 맞추는 게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조사를 끝냈소. 우리는 천 선생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소. 그래야 오해를 풀 수 있지 않겠소?”

엘프는 꽃의 엘프의 친구이다.

천제현 역시 꽃의 엘프의 친구이다.

친구와 친구 사이에 갈등을 풀 수 있다면 그건 물론 좋은 일이다.

루루가 기뻐서 펄쩍 뛰기 시작했다.

“엘프족이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니까.”

천제현은 스스로 고귀하다고 여기는 엘프족에게 본때를 보여줄 작정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천제현도 서둘러 돌아가고 싶었다. 엘프들은 일 처리가 너무 늦었다. 조금만 지체돼도 며칠이 훌쩍 지났다. 이렇게 되면 기적상회가 혼란의 숲에서 처리할 일들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할까요?”

율리시스는 상황이 호전될 조짐이 보이자 즉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엘프의회에서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오. 그러나 모든 게 오해였으니 천 선생에게 난처한 일은 없을 것이오. 그러니 우리와 함께 가주실 수 있겠소?”

‘또 회의를 연다고? 환장하겠군! 엘프들은 일 처리가 너무 느려. 시간이 몇 달 더 지체되면 우리 상회의 십여 만 명은 굶어 죽을 거라고! 빌어먹을 엘프의회!’

천제현은 눈을 몇 번 반짝거리다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엘프의회에 가자고요? 좋습니다. 저도 엘프의회에 가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던 참이었어요!”

“손해배상을 청구한다고?”

엘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손해배상?”

“모르는 척하는 겁니까? 비비안은 기적상회에서 키우는 직원이에요. 우리와 계약을 맺었지요. 우리 상회에서 최고급 비밀 기술을 익히고 있었는데 당신들이 억류시켰잖아요. 게다가 200년 동안 감금할 거라면서요.”

천제현이 대놓고 말했다.

“200년이라니! 이건 인간에게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라고요! 기적상회는 이 일로 큰 손해를 입었어요. 설마 나한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도 없다는 겁니까?”

“그건…… 얼마나 청구할 생각이오?”

“공간 과학기술의 가치를 얼추 계산해 보셨지요? 많이 청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엘프 도시 다섯 개를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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