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456화 (456/729)

# 456

제456장 미로의 숲

꽃의 엘프에게는 최대 수명이라는 것이 딱히 없어 외부적인 힘에 위협 받지 않고, 삶의 터전이 파괴되지 않는 한 계속 살 수 있으며, 늙지도 병에 걸리지도 않는다.

자신의 주변에서 날아다니는 이 꽃의 엘프들도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은 아이처럼 순수했다.

루루를 포함한 열댓 명의 꽃의 엘프 자매들은 이미 천제현을 친구로 생각하여 그의 어깨, 머리, 옷 속 등에 앉아 그를 완전히 점령해 버렸다.

이 작은 생명체는 경계심이라곤 거의 없어 엘프보다 더 속이기 쉬웠다.

천제현이 나쁜 마음이라도 품는다면, 이 꽃의 엘프들은 조금도 대비하지 못한 채 당하고 말 것이다.

“이 앞이 미로의 숲이에요.”

천제현이 무성히 자란 관목을 넘어 자욱하게 낀 숲 속 안개를 보았다. 천제현은 이 안개에 섞여 있는 강력한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새끼 여우가 먹이 냄새를 맡은 개처럼 천제현 옷 속에서 머리를 삐죽 내밀었다. 두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보다가 순간 반짝였고, 그 즉시 천제현에게서 벗어나 숲 속으로 달음질쳤다.

루루가 곧장 소리쳤다.

“아! 위험해!”

미로의 숲에 낀 안개는 대단히 위험하다. 바닥부터 방출되는 정신 마력은 수천 년 동안 이 안개 속에 축적되어 강력한 파괴력을 지녔다. 엘프, 엔트를 비롯하여 마수, 곤충할 것 없이 생각할 수 있는 생명체라면, 미세한 신경 파동만으로도 정신 마력의 영향을 받게 되어 이곳에 영원히 갇히게 된다.

루루가 새끼 여우를 구하고자 곧장 뒤쫓았으나 여우는 이미 연기가 되어 숲 속으로 순간 이동한 상태였다. 안개 가운데 선 새끼 여우는 어떤 이상 징후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입을 크게 벌리더니 안개를 맹렬하게 흡입하기 시작했다. 주변 수십 장을 감싸고 있던 안개가 여우의 뱃속으로 끊임없이 빨려 들어갔다.

“어?”

루루는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새끼 여우를 바라보았다.

“이 작은 동물한테 이런 능력도 있었어요?”

“얜 평범한 여우가 아니거든. 걱정하지 마. 이제 들어가 보자.”

천제현이 미로의 숲으로 성큼성큼 들어갔고, 꽃의 엘프는 천제현 주위를 휘감으며 반짝이는 꽃가루를 대량 방출했다. 천제현은 청량한 향을 맡자마자 마치 얼음물로 목욕한 것처럼 머리가 또렷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꽃의 엘프에겐 밝혀지지 않은 능력이 있군.’

천제현이 꽃의 엘프에게서 떨어지는 꽃가루를 흡입하자 환각의 영향도 받지 않았고 마력도 높아진 것 같았다. 역시 영약이라 불릴 만했다.

사실 천제현이든 새끼 여우든 본래 가진 특수한 능력으로도 정신 마력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꽃의 엘프의 특별한 대접에 천제현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고, 그는 그 기분을 만끽하면서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이곳은 고대의 생명수가 자랐던 지대로 대륙의 기운이 교차하는 지점이며, 대지의 영기가 충만하여 엔트, 엘프, 꽃의 엘프가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주변 숲에서는 각종 희귀 약초와 재료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엘프가 다른 지역을 다 채집했다면, 미로의 숲은 미개척지나 다름이 없었다.

수천 년간 어떤 엘프도 이곳에 쉽게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꽃의 엘프는 기껏해야 이슬과 벌꿀 정도만 수집하러 들어왔을 뿐 어떤 재료도 채집한 적이 없었다. 천제현이 미로의 숲에 들어갔을 때 여기저기 약초들 천지였다. 2급 약재는 드물었고, 대부분 3급 영약, 심지어는 4급 영약도 보였다.

천제현이 풀밭에서 아무 잡초나 하나 뽑았다. 그 잡초들은 평범하여 전혀 특별한 구석이 없었으나 뿌리줄기가 비정상적으로 무성하고 얇고 길었다. 그 약초에는 농후한 정신 마력이 내재되어 있었다.

“극락초?”

천제현은 단번에 약초를 알아보았다.

극락초는 환각제를 만드는 재료로, 담뱃잎에 넣어서 복용하거나 직접 복용할 수 있다. 정신을 강하게 자극하여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기쁨을 선사하기에 굉장히 귀한 향락제로 사용된다.

‘이거 참 좋은 물건인데!’

천제현은 대륙을 유랑했을 때 제국 황실에서 본 적이 있었다. 고급 극락초 한 자루 가격이 수백만 명의 인구를 가진 소국의 도시 하나와 맞먹었다.

지금 천제현이 밟고 서 있는 풀밭에는 수백 년 된 최상품 극락초가 천지에 널려 있었는데, 이걸 전부 베어간다면 남하국과 같은 국가 몇 개는 능히 살 수 있을 것이다.

극락초는 미로의 숲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약초로 새끼 여우조차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여우가 관목 안으로 들어가 인삼처럼 생긴 식물을 잡아당겼다. 그 식물의 뿌리줄기는 사람의 외관을 띠고 있었고 살아 있는 생물처럼 사지를 끊임없이 휘저으며, 파괴력을 지닌 정신 음파를 입으로 내뿜었다.

“2급 반선약, 애명삼이잖아!”

천제현이 미처 막을 새도 없이 새끼 여우가 이를 단숨에 삼켜 버렸다. 여우가 좋은 약재를 찾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니 천제현은 머리에 김이 날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놈은 지가 애완동물이란 걸 자각하지 못하는군.’

천제현은 여우를 제재할 방도가 없어 화를 참고 숲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여우 뱃속에서 영약을 꺼낼 방법을 생각하는 게 고작이었다.

“곧 광산이 나올 거야.”

루루가 앞으로 날아가 천제현에게 길을 안내했고, 루루가 지나가는 곳에는 반짝이는 꽃가루가 떨어졌다. 이곳에서는 신식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에 순전히 꽃의 엘프의 안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천제현이 최상급 약초가 깔린 곳을 지나 최종 목적지에 이르자 저도 모르게 멍해지고 말았다.

눈앞에 보이는 광산이 수정 광산이었기 때문이다. 매장량도 굉장히 풍부하여 수정체가 대량으로 바닥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 수정체들은 모두 죽순 모양을 한 죽순 수정이었다.

제련을 거치지 않고도 이렇게 순도가 높은 수정석이 있다니, 이는 자연계에서 극히 드문 일이었다. 매장량이 엄청나고 순도가 높아서 채굴하기만 하면 정제 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루루가 천제현에게 말했다.

“이곳은 사방에 광석이 널려 있어요. 이런 광석은 정신 마력을 담고 있는데, 꽃의 엘프와 엔트족 모두 사용방법을 몰라요. 엘프족도 마찬가지라 수천 년간 버려진 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죠.”

천제현이 죽순 수정 앞으로 다가갔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죽순 수정은 규칙적인 형태는 아니었으나 크고 순도가 높아 천제현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것은 정신 속성의 재료가 아닌가.

정신 속성은 희귀 속성 가운데 하나다. 정신 재료는 모두 매우 귀했으나, 과학기술이 낙후된 이 시대에서는 사용 방법을 몰라 귀하게 여겨지고 있지 않았다.

천제현은 정신 재료에 손을 뻗었다.

루루가 서둘러 말했다.

“조심해요! 이곳 정신의 힘은 굉장히 강해요. 일단 체내에 침투하면 아주 위험해질 거예요!”

“걱정하지 마. 해결할 방법이 있어!”

천제현이 손을 죽순 수정에 놓는 순간 몸이 살짝 떨리는가 싶더니, 순간 주변에서 대량의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찰나의 시간, 세상에 적막함만 남았다.

꽃의 엘프도 없고, 숲도 없고, 하늘도 없고, 땅도 없었다.

오로지 새하얗고 뽀얀 안개로 뒤덮인 이 세계는 죽순 수정에 내재된 정신의 힘이 만든 정신세계였다. 다만, 죽순 수정의 정신적 성질이 중성에 가까웠으므로 그다지 나쁘지도 그렇다고 아름답지도 않았다.

그 새하얗고 뽀얀 안개가 가진 강력한 정신력으로 사람을 영원히 타락시켜 정신이 고갈되어 죽게 만든다.

미로의 숲에 있는 죽순 수정은 고압 전기보다도 위험했다. 평범한 사람은 건드리기만 해도 정신의 힘이 체내에 대량으로 빨려 들어가 정신을 갉아먹고 일체의 감지능력과 생각을 차단하여 죽지 않는다고 해도 영원히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한다.

“대단해! 대단하군! 이렇게 우수한 정신 수정석이 있을 거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천제현이 생각에 잠기자 구안마신의 힘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짙게 깔린 뽀얀 안개가 순식간에 증발해 버리고 말았고, 천제현은 미로의 숲으로 되돌아와 수정석에서 손을 뗐다.

루루는 놀라워하며 천제현을 쳐다보았다.

‘어째서 천제현은 무사한 걸까?’

“이거 채굴해서 연구해도 돼?”

“상관없어요. 딱히 원하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필요하면 얼마든 가져가세요. 꽃의 엘프는 아무 망설임 없이 당신께 줄 거예요.”

천제현이 살짝 미소를 지은 채 더는 말하지 않고 정신 수정석 10근 정도를 채굴했다. 그는 나뭇잎 한 줌을 쥐어 수정석을 잘 감싼 다음 덩굴을 이용해 몇 번 돌돌 말았다. 이는 수정석에 직접 접촉하지 않도록 하여 정신에 가하는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좋아, 이곳은 다 둘러 봤으니 이제 꽃의 엘프 화원을 보러 가자!”

“좋아요!”

꽃의 엘프들은 천제현 주위를 몇 바퀴 빠르게 돌더니 천제현과 함께 순식간에 미로의 숲을 빠져 나왔다.

천제현은 꽃의 엘프 화원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는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꽃의 엘프는 꽃의 바다에서 생활했다. 광활한 들판에 산골짜기마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건물 크기만큼 큰 꽃도 있었고, 쌀알처럼 작은 꽃도 있었다. 어떤 것은 수정처럼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고, 어떤 것은 비취처럼 청록색으로 반짝였다.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화려한 데다 꽃들이 함께 모여 만들어낸 짙은 향기는 꿈속 세계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수많은 꽃의 엘프들이 꽃들 사이로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꽃의 엘프가 사는 곳은 건물이 아닌 활짝 핀 꽃잎 속이었다. 꽃의 엘프들은 어린 소녀와 같은 모습이었고, 영롱하고 투명한 나비 모양의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었다. 마치 아름다운 나비처럼 꽃 덤불 사이를 춤추듯 날아다녔고, 꽃의 엘프가 지나간 자리에 반짝이는 꽃가루가 떨어졌다.

천제현은 탄성을 질렀다.

“정말 아름답구나!”

꽃의 엘프는 대단히 단순하여 천제현의 칭찬을 듣자 다들 좋아하였고, 천제현을 곧장 화원으로 안내했다.

다른 꽃의 엘프들도 천제현이 온 것을 알고는 모두 모여들었다. 마치 수백, 수천 마리의 아름다운 나비가 천제현을 빽빽하게 둘러싼 것 같았다. 그들은 천제현을 손님이라 생각하고는 꽃의 엘프가 사는 곳으로 끌어당겼다.

이 시대 사람들 대부분은 꽃의 요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고, 따라서 그녀들은 인간에 대하여 어떠한 적개심도 품고 있지 않았다.

엘프도 선량하긴 했으나, 천제현은 꽃의 엘프가 훨씬 좋았다. 꽃의 엘프가 더 단순하고 어떠한 허례허식도 차리지 않았으며, 수정처럼 순결하고 깨끗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엘프족처럼 복잡한 생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종족은 머지않아 인간의 박해를 받게 될 것이다.

꽃의 엘프들이 종족 차원에서 힘을 모아 세계의 나무 묘목을 심었을 때 인간에게 속아 묘목을 빼앗기고, 수많은 꽃의 엘프가 인간에게 붙잡혀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게다가 일부의 꽃의 엘프는 제약사에 의해 단약 재료로 쓰이기도 하여 결국 멸종 위기에 이른다.

이 모든 일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천제현은 이 세계에 온 이상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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