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455화 (455/729)

# 455

제455장 숲의 수호자

기적상회의 기술이 대륙 전체로 퍼져나가면, 천제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대현자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천제현이 호언장담한 일이 정말로 발생할지도 모른다.

지금 천제현을 죽이면 엘프족은 모든 종족으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받게 되거나 향후 인간이 엘프족을 공격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었다.

이는 앞으로 100년 이내에 발생할 수 있으며, 이 100년이라는 시간은 엘프족에게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다.

오리디스는 이틀 전 천제현의 말을 떠올렸다. 당시 그녀는 인간의 허튼소리로 치부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분명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사실이었다.

엘프족이 이런 위험 부담을 안고, 굳이 천제현을 죽일 필요가 있는가?

생명의 나무 부족 제3장로인 아비숑은 남하국에 있을 때 각종 신기한 물건들을 본 터라 천제현의 말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두려움이 일었다.

“부의장님,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데 좋겠습니다. 본 사건에 관한 규명은 검토 및 증거 확보 후에 다시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알겠소!”

율리시스도 섣불리 결론짓지 못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요!”

그러나 천제현은 엔트와 꽃의 엘프가 와서 데려간 덕분에 다시 수감되지 않았다.

비비안은 천제현이 엔트에 앉아 꽃의 엘프들에게 둘러싸여 떠나는 모습을 보고는 좌절감이 엄습해 오는 걸 느꼈다.

기적상회에 가입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비비안은 그곳에서 난생처음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만약 엘프족의 방해로 못하게 된다면, 비비안에게 엄청난 충격이 될 것이다.

“비비안 공주님.”

오리디스가 비비안 앞으로 다가갔다.

“부의장님이 공주님을 부르십니다. 모든 사실을 정확하게 설명하라고요.”

비비안이 답답한 듯 소리쳤다.

“무슨 설명이요!”

엘프들은 어리둥절해 하며 서로 쳐다만 보았다.

***

엔트의 체형은 실력, 나이와 관련 있어 체형이 클수록 산 지 오래되었고, 실력도 강했다.

천제현은 엔트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30장이 훌쩍 넘는 엔트를 볼 수 있었다. 산마루도 보이지 않는 산이 걸려 있는 것처럼 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하고 비취색으로 빛났으며, 그 사이로 왕성하기 이를 데 없는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엔트의 다리는 땅속 깊이 뿌리 박혀 있어 수백 년 동안 조금도 움직인 것 같지 않았고, 주름 가득한 얼굴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숲의 수호자인 엔트족 족장, 세나리우스!’

세나리우스는 만년 넘게 산 엔트로 그냥 손 한번 내리치기만 해도 진령 강자를 손쉽게 가루로 만들 수 있었다.

엔트는 만력(蠻力)에 의지하지 않는 종족이라 만 살의 엔트 몸속에 얼마나 많은 힘이 축적되어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더욱이 세나리우스는 상상도 못 할 엄청난 지혜의 소유자라 엘프왕조차 그에게 예를 갖추었다.

“정말 용감해요!”

루루가 꽃의 엘프 자매들을 데리고 천제현 주변을 빙빙 맴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엘프한테 훈계하다니! 살다 보니 별의 별일을 다 보네요. 하지만 최근 엘프족 상황이 심상치 않은 건 사실이니 이번 일을 계기로 좀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천제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깨닫기는 무슨! 그리 쉽게 변할 수 있으면, 엘프가 아니지! 엘프족 천성이 원래 이러니 뭘 해도 소용없을걸!’

천제현이 세나리우스 앞으로 다가가 허리를 깊게 숙여 예를 갖추었다.

“존경하는 숲의 수호자 세나리우스님, 제게 무슨 분부라도 있으신가요?”

세나리우스는 숲의 전설이라 불리는 인물로 누구든 그 앞에 서면 긴장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천제현은 오랜 지기를 마주하는 것처럼 불편한 기색 없이 격식에 맞게 말했고, 이토록 차분한 그의 모습에 루루도 감탄했다.

“젊은이여!”

낮고 묵직한 노인의 음성이 대지에서 들려왔다.

“엘프족에게 한 자네의 충고는 지나치게 급진적이었네. 엘프족은 태생적으로 싸움과 분쟁을 기피하는 종족이라 자네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야.”

세나리우스는 엔트 강자로 그가 마음만 먹으면 수천 리 밖에서 나는 소리까지 모조리 잡아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엘프 법정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전부 잘 알고 있었다.

천제현은 침착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예부터 대륙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왜 발생했다고 보십니까? 자원 때문일까요? 아니면 영토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천하의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서 투쟁을 좋아하고 사리사욕을 위해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눈과 귀로 욕망을 채워나갔지요. 여색과 향락을 탐닉하는 데 급급한데다 잔인하고 흉포했기에 살육과 폭력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처럼 타락의 온상과도 같은 환경에서 엘프족이 어떻게 혼자만 고결함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엘프들이 진정으로 깨닫는 날이 온다 해도 그때 이미 늦었을지도 모릅니다! 제 말이 모질게 들리겠지만, 엘프족에게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나리우스는 천제현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자네의 견문과 지혜가 나이와 맞지 않는군.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품고 있는 것 같군.”

‘이 어르신이 알아차리기라도 한 건가?’

만 년 넘게 살아온 엔트와 그의 지혜 앞에서 제아무리 천제현이라도 잘난 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엔트족은 여태껏 엘프족의 내정에 간섭해 본 적이 없네.”

세나리우스는 이 일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은 없는 듯 했다.

“오늘 엔트 부족의 손님으로 부른 건 엘프에 대해 논하거나 잘잘못을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네. 단지 생명의 나무 씨앗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이야. 꽃의 엘프에게 듣기론, 자네가 씨앗을 깨울 방법을 알고 있다던데.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가?”

천제현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생명의 나무 씨앗은 선천성 신물입니다. 절대 쉽게 죽지 않지요. 하지만 그것을 깨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는 확신을 드릴 수 있으나 완전하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이번 일은 한 번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생명의 나무는 꽃의 엘프와 엔트, 엘프에게 의미가 크다.

생명의 나무를 다시 살릴 수 있다면, 이 세 종족의 생존능력은 크게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천제현도 결국은 인간인데 그를 믿을 수 있는가?’

세나리우스는 직접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생명의 나무는 외부 종족에게 발견된 적이 없는데, 자네가 어떻게 생명의 나무가 갖는 특징을 알고 있는가?”

“제가 우연한 기회에 고대 신의 기억 조각을 획득한 적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혼돈 시기에 관한 내용이 다수 적혀 있었고, 여기에는 생명의 나무에 관한 비밀도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이 결정체를 통해 생명의 나무가 갖는 특징을 이해했고, 공간 분야에 대한 연구를 결합하여 이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 여기게 된 것입니다.”

“고대 신의 기억 수정체라?”

엔트는 깜짝 놀랐다.

신령이 멸망한지 이미 무수히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일개 인간이 신령의 기억 결정체를 얻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기연이란 말인가.

천제현은 엔트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엔트는 막강한 동맹자로서 그들의 지지를 얻는다면, 기적상회도 숲 속을 마음 놓고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제현은 엔트족을 조금씩 꼬드기기 위해 각종 핑계와 구실을 생각해둔 참이었다.

물론 이는 쉽지 않다. 엔트가 지닌 ‘만년 묵은’ 지혜는 결코 장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적상회, 꽃의 엘프, 엔트족이 손을 잡으면 고대 생명의 나무를 다시 심을 수 있습니다!”

꽃의 엘프 루루 등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에겐 딱히 다른 방도가 없기에 천제현이 도와준다면 한 번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고대 생명수는 불가사의한 창조의 힘을 가지고 있다. 생명의 나무를 다시 키울 수 있다면 막대한 영향력이 생기는 것이며, 이는 엔트, 꽃의 엘프, 엘프 세 종족의 꿈을 이루는 것이기도 했다.

천제현은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고 확신했다.

엔트족이 고개만 끄덕인다면 기적상회는 그야말로 비빌 언덕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엘프족은?

‘저들이 날 무시하면, 나도 저들을 무시하면 되지, 뭐!’

“이 일은 좀 더 고려해 보겠네.”

세나리우스가 돌연 말을 아꼈다.

“루루, 손님을 모시고 근처를 둘러보고 오너라.”

천제현의 미간이 약간 찌푸려졌다.

세나리우스가 예상 밖의 행동을 하면서, 천제현도 딱히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세나리우스가 말하지 않겠다면, 천제현 역시 강요할 수 없는 법. 천제현은 어쩔 수 없이 인사하고 물러갔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루루는 천제현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말했다.

“천제현, 엔트의 숲은 하나도 재미없어요. 꽃의 엘프 화원을 보여줄게요. 그곳에 당신이 좋아하는 게 있을 거예요. 우린 여태껏 손님이 없었으니 모두 당신을 환영할 거예요.”

천제현은 마음이 살짝 동했다.

꽃의 엘프는 소문난 재배의 달인들이 아닌가.

그러니 꽃의 엘프 화원은 보물창고나 다름없을 것이다. 일반 사람은 아예 접촉할 기회조차 없는데, 이런 기회를 천제현이 포기하겠는가.

엔트를 꼬드기지 못한 답답함이 단박에 사라졌다.

“좋아!”

천제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꽃의 엘프가 사는 곳에 가볼까!”

루루는 웃음꽃이 활짝 핀 얼굴로 재빨리 두 바퀴를 돌더니 양 날개를 파닥거리며 앞장 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엘프 마을, 엔트의 숲, 꽃의 엘프 화원 등 세 지역은 삼각형 모양을 형성하고 있었고, 세 지역의 중앙은 제법 큰 면적으로 텅 비어 있었다.

천제현이 물었다.

“세 지역의 중앙은 어째서 아무도 살지 않은 숲으로 남겨둔 거야?”

루루는 속도를 살짝 줄인 채 천제현 옆으로 다가가 말했다.

“미로의 숲을 말하는 거죠?! 저곳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에요. 미로의 숲 자체는 크지 않지만, 환각현상들이 자주 나타나거든요. 어떤 동물이든 환각 상태에 빠지면, 길을 잃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해요.”

“정말?”

천제현이 갑자기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숲 속에 고대 유적이나 비경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건 아니에요!”

루루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미로의 숲에는 특수한 광석이 매장되어 있어요. 이 광석이 정신을 교란시키고 환각 상태에 빠뜨려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지요.”

‘지질의 영향이라고? 괜히 좋아했네.’

그렇지만 그 말인 즉슨, 정신을 직접적으로 교란시킬 수 있는 물질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 속성의 재료가 있다는 거고. 엘프처럼 강인한 생명체도 이 광석에 간섭을 받는다면, 그 안에 엄청난 마력이 내재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루루는 생각에 빠진 천제현을 보고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슨 생각해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학자잖아. 학자란 말이야. 학구열과 지적 욕구가 엄청 강하거든.”

천제현이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네가 미로의 숲에 관한 특이점을 말하니까 호기심이 생겨 참을 수가 있어야지. 대체 어떤 물질이길래 정신을 교란시킬 수 있는 걸까?”

“그랬군요!”

루루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저랑 같이 들어가 봐요.”

“여긴 금지구역 아니야?”

“상관없어요. 꽃의 엘프는 체질이 남달라 환각의 침투를 막아낼 수 있어요. 저는 자주 이곳에 들어가 벌꿀을 채집해요. 그러니까 안전상의 문제는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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