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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446화 (446/729)

# 446

제446장 천제현 촌장

비비안은 연속으로 네다섯 번의 공간참을 시전했다.

알베스는 여전히 강력한 마력으로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그의 실력으로는 공간공격을 막을 수 없었지만, 비비안이 그의 마력을 없애 버리고 공간 조작을 하려면 꽤 많은 힘이 필요했다. 그로 인해 그녀의 공간참 속도는 점점 느려졌고 알베스는 그때마다 그녀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마력이 부족해.’

비비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알베스를 죽이려던 생각을 버리고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공간의 단검 정령이 그녀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이번에 그녀가 노리는 건 또 다른 거미백작이었다.

“공간난참!”

자신을 노리는 걸 알아챈 거미백작은 마력을 내뿜어 공간공격이 이뤄지지 못하게 막으려 했지만, 그의 실력은 알베스보다 한참 뒤떨어졌기에 비비안이 한발 먼저 공격을 완성할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일고여덟 개의 공간참이 발사되자 거미백작은 피하려야 피할 방도가 없었다.

“안 돼!”

알베스의 눈에 분노의 불길이 일었다. 마지막 남은 한 명의 형제까지 온몸이 찢겨 죽은 것이다.

비비안은 피로를 느꼈다. 마력도 거의 소진되어 가고 있었다. 허공둔의 효과가 사라지면 그녀는 엄청난 위험에 처할 것이다. 소기의 목적은 이뤘으니 나머지는 동료들에게 맡기는 게 낫다. 그녀는 공간을 열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가 거미군단을 습격하고 사라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2분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신비한 엘프는 유령처럼 수만 대군 한가운데 나타나 벌떼처럼 쏟아지는 미친 공격을 전부 무시하고 알베스의 팔 하나와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거미백작 둘을 죽인 뒤 오만방자하게 사라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녀 자신은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았다.

거미군단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였다.

콰과광!

올드만 마을 방향에서 귀를 찢어 놓는 듯한 굉음이 들리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같았다. 지뢰가 작동한 것이다. 지뢰는 땅을 파고 있는 거미들에게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충격을 주었고, 그들은 할 수 없이 다시 땅 위로 기어 나왔다. 이미 상당수가 부상을 당한 채였다.

“땅속에 함정이 있습니다! 더는 진군할 수 없습니다!”

“으아아아악!”

분노로 두 눈이 시뻘개진 알베스가 장창을 들어 올리며 소리 질렀다.

“죽여라! 모두 죽여 버려! 드워프들의 광산으로 진격해라! 저 망할 것들을 전부 갈기갈기 찢어 놓겠다!”

그러나 거미군단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으려 할 때.

협곡 양쪽에서 둥그런 무언가가 비오듯 쏟아져 내렸다. 그 둥근 것은 거미족 사이에 떨어져 어마어마한 폭발을 만들어냈다. 마력 수류탄이었다.

폭풍소총을 손에 든 남궁혜가 야만족 수천 명과 함께 협곡 양쪽에 서 있었다. 그녀는 협곡 아래에서 허둥지둥 대는 거미족들을 내려 보며 명령했다.

“저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그들은 폭풍소총 백여 개, 마력박격포 십여 개, 마력대포 4문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각자 최소 한 개씩 마력기관총을 들고 있었다.

남궁혜가 공격 개시를 알리는 순간.

경천동지할 위력을 지닌 폭탄과 총알들이 빛의 장막처럼 협곡을 뒤덮었다.

마력대포가 발사되자 삽시간에 수십 마리의 거미족들이 목숨을 잃었고, 마력박격포가 병력이 밀집된 곳만 골라 공격하면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거미군단은 이성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더 이상 전투가 아니었다.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공격에 피할 수도, 반격할 수도 없었다.

“광화 발동!”

폭탄 공격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 판단한 남궁혜는 즉시 확성기를 들어 명령을 내렸다.

“너희가 공을 세울 기회가 왔다. 저놈들에게 광전사의 위력을 보여 줘라!”

크르르릉!

3천 명의 야만족들은 도저히 사람이 내는 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그들은 뜨겁게 달아오른 총기를 내려놓았다. 이윽고 그들의 몸이 부풀어 오르며 시뻘겋게 변했고 핏줄은 피부 위를 뚫고 나올 듯 솟아오르며 지네처럼 불끈거렸다. 두 눈에는 눈동자가 사라진 채 광기 어린 핏빛 흰자위만 번들거렸다.

“죽여라!”

야만족들은 엄청난 무게의 현철무기를 들고 협곡 양쪽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진형도, 전술도 없는 공격이었다. 그들은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우 같았다. 광전사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적들을 죽이고 공을 세운다!’

야만족 광전사의 손에 들린 육중한 전투 도끼가 거미족 전사의 몸에 떨어지자, 무기와 갑옷이 산산조각 나며 바위에 가서 부딪혔다. 그 거미족 전사는 이미 뼈와 살, 내장, 갑옷 조각들이 섞인 채 곤죽이 되어 있었다.

그건 무공이랄 것도 없는 순수한 힘이었다. 그 어떤 멋도 부리지 않은 단순한 힘!

야만족 광전사들은 육체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렸고, 거미족들은 그들의 무기에 닿기만 해도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반대로 광전사들이 입고 있는 육중한 현철갑옷은 상대의 공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었다. 고통도, 공포심도 없이 오직 분노와 살기만 남은 광전사들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돌진하는 살아 있는 살육기계였다.

광전사들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압도적인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 왕국의 군대에 비해도 모자람이 없던 거미족 정예부대였지만, 그들 앞에서는 종이호랑이처럼 그 어떤 위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죽여라!”

그때 올드만 마을 입구가 열리며 5천 명의 무장한 드워프들이 뛰어나왔다. 그러나 마을 밖으로 나온 드워프들은 입을 떡 벌린 채 돌이 되어 버렸다. 핏물이 강을 이뤘고, 바닥에는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시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다. 멀쩡한 시신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거친 전사들이 천천히 물러나고 있었다.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마의 모습이 저럴까 싶을 정도로 끔찍한 장면이었다.

드워프들은 말문이 막혔다.

‘저 외부인들은 뭐지? 정말 악마라도 나타난 것인가?’

***

오드만 마을 입구 바깥쪽에 나란히 선 드워프들은 엄숙하고 경외심 어린 표정으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주역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쿵쿵쿵쿵!

육중한 발걸음에는 질서가 없었지만, 강인한 힘이 느껴졌다. 광전사들은 온몸에 피와 살점을 뒤집어쓴 채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었으며, 뻘겋고 허연 점액으로 뒤범벅이 된 무기에서는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살기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들이 데려간 망령들이 여전히 그 무기에 붙어 있는 것처럼.

드워프들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무섭다. 정말 무서워…….’

자신들의 두 눈으로 직접 모든 광경을 지켜보지 않았더라면 절대 믿지 못했을 것이다. 3천 명에 불과한 군대가 열 배도 넘는 적들을 생으로 도륙하는 모습을. 거미군단은 적들의 무시무시한 화력 앞에 그 어떤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대장! 보고할게!”

남궁혜가 다가와 말했다.

“우리는 주어진 사명대로 모든 적군을 섬멸했어. 아군 부대에서는 10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전사자는 30여 명 정도야!”

‘전사자가 서른 몇 명에 불과하다고?’

드워프들은 다시 한 번 어안이 벙벙해졌다.

“수고했어요!”

천제현은 선포했다.

“전사한 용사들의 가족들에게는 죽는 날까지 기적상회가 보조금을 지급하겠다. 또한, 왕국의 기준에 따라 열 배의 위로금을 지원할 것이다! 나머지 용사들도 멋지게 싸워주었으니 큰 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광전사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야만족은 원래 지위가 낮은 강도들로 구성된 종족이었다. 그런 자들이 기적상회의 명예로운 광전사가 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이렇게 큰 보상까지 해주다니.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그들을 광전사로 만들어준 것으로도 모자라 제대로 된 병사 대우에 가족들까지 챙겨주니 아무 걱정 없이 싸울 수 있었다.

“술과 고기를 가져와라!”

“우리 용사들이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도록 해주거라!”

그 말을 들은 광전사들은 흥분을 주체 못 하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마침 격전을 치르고 난 후라 배가 몹시 고팠던 차였다. 연회를 열어준다니 그야말로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셈이었다.

공화련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놓은 상태였다. 그녀는 공간창고를 통해 온갖 산해진미를 보냈고, 그걸 본 야만족 광전사들은 갑옷도 벗지 않은 채 달려들어 음식을 입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드워프들은 그 거칠고 야만스러운 모습에 혀를 끌끌 찼다.

광전사들은 격전을 치르고 진탕 먹는 과정에서 힘이 더 세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투 중에 입은 상처도 채 두 시간이 못 되어 아물었다. 그들은 힘이 솟구쳐 오르며 전의가 수직상승하는 것을 느꼈다. 당장에라도 더 싸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지고 용맹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광전사의 특징이었다.

광전사를 키울 때는 따로 진귀한 약재나 자원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잘 먹고 마시게만 해주면 된다. 고급 마수고기에서 생명력을 빨아들이고 전투를 통해 실력을 높이는 그들은 상처를 입어도 금방 회복이 되었고, 무궁무진한 힘을 자랑했다. 음식만 충분히 공급해 주면 쉬지 않고 열흘 밤낮을 싸우는 것도 문제없었다.

광화 상태에 들어간 광전사가 휘두르는 도끼나 망치에 부딪히면 혼성 술사라 하더라도 죽거나 다치기 십상이다. 그들이 기적상회에서 제작한 마력무기까지 갖춘다면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쓸어 버릴 수 있으리라.

그런 광전사들에게 딱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지나친 폭력성이었다. 그로 인해 그들이 싸운 전장은 토마토 축제장처럼 엉망이 되기 일쑤며, 그들이 죽인 시체는 형체를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곤죽이 되곤 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타깃이 전투 중에 죽었는지 확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살인기계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아랑곳할 천제현이 아니었다. 그는 동방호연에게 명령했다.

“전부 불태워 버리세요.”

광전사 군단의 위력을 목도한 동방호연은 천제현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천제현이 5년, 아니 2년, 최소한 1년이라도 더 일찍 남하국에 나타났더라면 남하국이 이 꼴이 되는 일은 없었으리라.

“알겠습니다!”

동방호연은 수하들을 데리고 전장을 정리했다. 곧 수많은 유해들이 작은 산을 이뤘다. 시체들로 이뤄진 산에 불을 지르자 유해들은 순식간에 불타올라 잿더미로 변했다.

죽음의 기운을 담은 시커먼 연기가 천천히 숲 전체를 뒤덮었다.

오드만 마을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주변 종족들은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전투가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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