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7
제437장 여관
사르도 마을은 매우 이상했다. 행인들은 모두 몸을 꽁꽁 싸맸다. 챙이 넓은 모자에 기괴하게 생긴 가면을 쓰고 바쁘게 움직이며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이곳은 마을 간의 물물교환을 위해 세워졌다. 대부분 인근 마을에서 이곳을 찾았다. 이 마을들은 서로를 호시탐탐 넘봤다.
그렇다면 어떤 자들이 이곳에 상주할까? 대주국에서 도망친 제약사는 물론이고 무기점포의 주인은 대부분 각지에서 탈주하여 이곳에 숨어든 중죄인이었다. 모두 속을 알 수 없는 위험한 인물들이었다.
누가 이런 자들과 친분을 쌓으려 하겠는가.
마을에는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숨어 있었다.
이들은 사냥꾼과 강도, 인신매매꾼이었다. 이들은 전문적으로 먹잇감이 될 마을을 물색하여 약탈과 살육으로 이익을 챙겼다.
토끼족과 여우족, 엘프 여인들은 비싼 값을 받고 팔아넘길 수 있었다. 드워프나 곰족, 호랑이족은 노예로 삼기 적당했다.
혼돈의 숲에는 자원이 풍부해서 아무리 작은 부족이라 해도 상당한 보물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까닭에 약탈과 살육은 가장 빨리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법도 규칙도 없는 이곳에서 누가 이런 유혹을 이겨내겠는가.
이렇게 위험한 환경에 놓여 있는 혼돈의 숲 사르도 마을은 문명이 발달한 국가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곳은 언제나 위험하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거나 종족이 전부 몰살될 수도 있다.
이렇게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천제현 일행은 너무 눈에 띄었다. 다섯 명은 조금도 몸을 가리지 않은 채 대놓고 마을로 들어섰다.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엘프 하나를 빼놓고 나머지 넷은 모두 젊고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았다. 이러니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탐나는 먹잇감이었다.
다섯 명은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불순한 의도로 쳐다보는 눈길을 느꼈다.
“왕자님, 가서 알아보십시오.”
천제현은 자신들을 호시탐탐 쳐다보는 사람들을 아예 본체만체했다.
“여기에 우리가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말이에요.”
“알겠습니다.”
동방호연이 몸을 돌려 곧장 떠났다.
동방호연은 선대 남하왕의 장자로 남하국의 새로운 국왕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그가 기적상회의 일원이 되다니 운명은 정말 얄궂었다. 그러나 동방호연은 왕위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기적상회의 일원이 되는 게 그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되었다.
동방호연은 훌륭한 원석이니 잘만 다듬으면 무안군 이상으로 성장할 것이다.
천제현은 동방호연을 기적상회의 대장으로 키우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기적상회의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전부 그의 몫이다. 그러나 동방호연은 너무 어렸다. 계속 데리고 다니며 훈련을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적당한 곳을 찾아 좀 쉬죠. 분명히 여관이 있을 겁니다!”
네 사람이 얼마 가기도 전이었다.
“멈춰!”
체구가 우람한 자들이 손에 무기를 들고 가로막았다.
이들은 흉측하게 생긴 이족이었다. 쥐족과 야만족에 두목은 온몸이 녹색 비늘로 덮인 리저드였다.
거리가 지척인지라 천제현은 이들의 몸에서 풍기는 강렬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천제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러시오?”
이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탐욕스러운 눈빛을 드러냈다.
“물건이 꽤 괜찮군!”
두목인 리저드가 하품 원석 세 개를 던지더니 천제현 뒤를 가리켰다.
“이 세 여자를 사겠어! 돈 가지고 꺼져!”
천제현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하품 원석 세 개?’
흉측한 리저드가 천제현을 노려봤다.
“귀 먹었나? 값을 치렀으니 이제 여자들은 내 것이다. 썩 꺼지지 않으면 가만 안 두겠다. 이 마을에서 내 말을 거역하는 사람은 없어!”
공서련과 비비안, 심빙우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혼돈의 숲이 무질서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대낮에 이렇게 행패를 부리니 분노가 솟구쳤다.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대부분 구경을 하러 왔을 뿐이었다.
천제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잘 모르는 것 같군!”
“좋은 말로 할 때 들어야지!”
리저드가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 칼에서 비취색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죽여 버리겠어!”
‘제법이군! 현혼급 실력이잖아! 보잘것없는 마을에서 튀어나온 하찮은 놈조차 혼성 4성의 실력이라니, 이러니 겁 없이 날뛰지. 혼돈의 숲은 역시 남하국보다 훨씬 강하군. 그렇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
쨍그랑!
아무도 어찌 된 일인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리저드가 휘두른 긴 칼이 차가운 검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두부처럼 동강났다. 리저드는 깜짝 놀랐다. 그가 지닌 칼은 그래도 상품 혼기인데 한 번 맞부딪쳤다고 부러지다니 말이 되는가.
“그 검도 내가 가져야겠다!”
리저드가 검을 빼앗으려고 손을 매의 발톱처럼 휘저었다. 천제현이 손목을 꺾어 유명검을 완전히 칼집에서 뽑았다.
리저드는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르게 팔이 잘렸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팔을 감싸 쥐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푸른빛의 유명화염이 팔이 잘린 부위를 집어삼켰다. 화염은 급속히 번져나가며 근육을 태웠다.
화염은 단 몇 초 만에 온몸으로 번졌다. 건장한 리저드는 순식간에 장작처럼 타들어가 결국 한줌의 재가 되었다.
이 모습에 다른 리저드들이 모두 겁먹은 기색을 보였다.
리저드들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마을은 근처의 자그마한 부족들만 알고 있다. 이렇게 대단한 실력자들이 왜 이런 작은 마을에 왔을까.
그러나 도망치기에는 너무 늦었다.
심빙우가 손을 뻗자 투명한 눈꽃이 순식간에 리저드의 몸을 뚫고 들어갔다. 송곳처럼 예리한 눈꽃은 순식간에 거대한 고드름처럼 변했다. 리저드들은 힘을 써볼 틈도 없이 죽어 버렸다.
공서련이 바닥의 시체를 보며 사납게 말했다.
“이런 실력으로 우릴 넘본 거야?”
제아무리 착한 공서련이라 해도 이런 악당들은 동정하지 않았다.
주위의 구경꾼들은 겁을 먹고 네 사람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졌다. 누구도 네 사람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다. 이 소동으로 불필요한 성가신 일들을 피해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일이 그렇게 생각처럼 순조롭게 돌아갈 수 있을까.
주위의 행인 몇몇이 화를 당한 리저드들을 꼴좋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이들은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천제현은 이번 일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혼돈의 숲 외곽의 작은 마을에 위협이 될 만한 존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도 여관인가?”
공서련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돌집 앞에 섰다. 돌집은 땅에 박혀 있는 돌멩이처럼 표면에 이끼와 덩굴로 가득했다. 이끼와 덩굴 틈에는 지네와 거미 같은 독충이 기어 다녔다.
작은 돌집 안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돌집들은 창문과 조명도 없이 거의 완전히 폐쇄된 형태였다.
이곳은 반딧불에서 추출한 발광물질을 조명으로 사용했다.
돌집들은 8척도 안 되는 높이에 면적은 세 평이 채 안 되어 개집처럼 비좁았다.
공서련은 이런 곳에서 묵느니 차라리 숲에 천막을 치고 자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혼돈의 숲에서는 안전이 제일 중요했다. 돌집은 초라했지만 그래도 튼튼한 편이었다.
공서련과 비비안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있었다.
여관의 주인이 오크였던 것이다.
오크는 마수령과는 다른 종족이다. 혼돈의 숲에는 오크가 아주 많았다. 오크는 녹색 피부와 우람한 체구, 거대한 송곳니를 지니고 있으며 야만족과 맞먹게 야만스럽고 거칠었다.
오크인 여관 주인은 앞치마 같이 생긴 바지를 입고 흉터투성이인 상반신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짧은 도끼 두 개를 등에 매고 긴 머리카락을 수십 갈래로 땋아 등 뒤로 늘어뜨렸다. 입에서는 썩은 내가 진동하여 한참 떨어진 곳에서도 악취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의 뒤쪽 벽에는 절인 마수고기가 가득 걸려 있었다. 어떤 마수고기에는 구더기가 가득했다. 또 뭔지 알 수 없는 술이 담긴 병들이 늘어져 있었다.
“투숙하시려고?”
오크는 유창하게 마수령 언어를 구사했다.
“숙박료는 매일 일인당 하품 마석 하나여!”
“뭐가 이렇게 비싸?”
공서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품 마석 하나는 금화 백만 냥이다. 금화 4~5백 냥이면 남하국에서 괜찮은 여관을 인수할 수 있었다.
“우리가 외지인이라고 바가지 씌우는 거잖아!”
오크 주인장은 거대한 콧구멍을 후비적거렸다. 비비안과 공서련이 역겨워 해도 오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끈적거리는 코딱지를 판 손을 바지에 닦았다.
“그럼 뭐 어쩔 건데? 마음에 안 들면 딴 데 알아보슈!”
“이봐요…….”
“서련 아가씨, 그만 하세요!”
천제현은 말썽이 일어날까봐 하품 마석 세 개를 꺼냈다.
“방값은 마석 세 개로 합시다!”
오크는 눈을 반짝이며 마석을 냉큼 챙기더니 친절한 미소를 보였다.
“좋습니다. 절 따라오십시오!”
녹색 피부의 오크가 천제현 일행을 방으로 안내했다.
공서련은 꼬질꼬질한 오크를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오크는 평판이 가장 나쁜 종족이잖아. 야만족보다 더하면 더했지 뒤지지 않는다고. 이런 곳에 묵는 게 안전할까?’
오크 주인장은 돈을 받고 나서 많이 친절해졌다.
이때 동방호연이 돌아왔다.
“시장에서 광석 판매상을 찾지 못했어. 여기에서 거래되는 것은 전부 토산품이야.”
그렇다면 헛걸음한 게 아닌가.
‘게다가 이런 형편없는 곳에 묵다니!’
“그럴만해요. 이곳의 제기 수준은 무척 낮아요. 고급 광석을 발견해도 채굴할 능력이 없죠. 채굴한다고 해도 제련할 능력이 없고요.”
천제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헛걸음했다고 볼 수는 없어요. 최소한 여기서 많은 정보를 캘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여기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도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이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오크 주인장이 아주 상냥한 모습으로 더러운 쟁반을 들고 왔다. 쟁반에는 술과 거무죽죽한 마수고기 몇 점이 놓여 있었다.
주인장은 더럽고 기름때 묻은 손을 꼬질꼬질한 바지에 몇 번 닦으며 흉측하게 입을 벌렸다. 누렇고 커다란 송곳니가 섬뜩했다.
“손님, 맛 좀 보시죠. 이건 우리 오크족의 술입니다. 공짜로 드리는 거예요. 맛있을 겁니다!”
그가 직접 술을 한 잔 따라 천제현에게 건넸다.
잔속에 담긴 혼탁한 액체를 바라보던 천제현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주인장이 화를 냈다.
“친구가 주는 술을 거절하는 것은 오크족 예의에 어긋납니다!”
“이 술은 아무리 봐도 너무하잖아? 이런 똥물 같은 걸 누가 마시겠어! 이걸로 우리를 독살하려는 거야?”
오크 주인장이 크게 놀랐다.
실제로 술 안에는 독이 들어가 있었다. 게다가 그 독은 마을의 제약사에게 구입했다. 제약사는 약이 무색무취라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오크 주인장은 여관에 묵는 외지인을 가볍게 독살하고 이들이 지닌 재물을 전부 가로채왔다.
‘이놈이 독이 들어간 걸 어떻게 알아차렸지?’
사실 천제현은 독이 들어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계략이 들켰다고 착각한 오크 주인장은 잔을 내던지고 등에서 쌍도끼를 뽑더니 살벌하게 말했다.
“내 성의를 무시하다니! 오크족의 성의를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지!”
‘계략이 안 먹히니 이제 힘으로 해보겠다는 거야?’
동방호연이 발차기를 날리자 오크 주인장이 문 밖으로 날아갔다.
‘왜 이렇게 강해?’
오크 주인장이 허둥지둥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돌담을 뚫고 날아온 화살이 그의 가슴팍에 꽂혔다.
‘비…… 빌어먹을!’
오크 주인장은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른 채 죽었다.
사방에서 화살이 계속 담을 넘어 여관 안쪽을 향해 들이쳤다. 밖에서 활을 쏘는 자들은 여관에 있는 사람을 전부 죽일 작정이었다. 천제현 일행은 어리둥절했다.
‘대체 누가 화살을 쏘는 거야? 이러면 상황이 더 복잡해지잖아!’
“내가 처리할게!”
비비안이 황급히 공간에 입구를 만들어 모두를 데리고 여관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