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1
제431장 야만족 섬멸 작전(2)
야만족은 똑똑하진 않아도, 그렇다고 완전히 바보는 아니었다. 자신이 관할하는 지역에서 통제가 되지 않는 세력이 자생한다면, 누가 달가워하겠는가.
과거 사방후는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의 진국군은 저들을 뿌리째 뽑을 능력이 충분했다. 천제현이 움직이면 그때는 이미 늦은 거나 다름이 없다.
기적상회는 야만족의 신중한 행보와 철수 계획을 이미 간파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 반 년 동안 별 무리 없이 잘 지냈고, 공화련도 야만족을 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시기에 어떤 바보 같은 놈이 그새를 못 참고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일반 상인의 부대라면 상관없다.
야만족은 알게 모르게 모두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너무 심하지만 않으면 그러려니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바보 같은 놈이 기적상회의 통신 시설 기술자 부대를 습격했다. 그들의 것을 훔친 건 그렇다 쳐도 기적상회의 직원을 죽인 데다 고위층 인사 두 명까지 납치하다니.
이게 스스로 무덤을 판 게 아니고 뭐란 말인가.
‘끝났다, 이번에는 완전히 끝났어! 곧 저승길로 가겠구나!’
야만족 족장이 서둘러 부족 사람들과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몸 전체에 해골을 두른 야만족 노인 한 명이 일어났다.
“이건 도화선에 불과할 거요. 남하국은 우리 야만족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오. 오늘 무사히 잘 넘긴다고 해도 내일 또 다른 일이 생길 게 틀림이 없소. 인간들은 머지않아 우리의 씨를 말리려 할 거요. 저들이 별다른 공격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 역시 약탈을 하지 못하는 이상 굶어 죽게 될 것이오!”
“맞는 말씀이오!”
“남하국에서는 살 수 없소!”
“빨리 도망가야 하오!”
야만족은 농사의 개념을 몰랐다. 인간들은 이처럼 미개하고 우악스러운 야만인을 품어주기는커녕 멸시만 하였으니 야만족들은 약탈을 통해 연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재 남주에서의 상황이 더 악화되어 약탈할 수 없게 된다면, 앞으로 그들은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을 것이다.
야만족은 남주에서 오랫동안 생활해오면서 남주 사람들과 감정의 골이 더없이 깊어졌다. 인간이 자신과 자신의 이익에 위협을 가하는 이족 세력이 자신의 터전에서 오랜 시간 증식하는 걸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설령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야만족에게 칼을 들이댈 게 뻔했기에 남주 철수는 지금 야만족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노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축량은 얼마나 되는가?”
“지난 며칠간 어느 정도 준비를 해둔 상태입니다. 족장님이 명령하시면 저희 모두 숲으로 들어가 숨어 있겠습니다. 천하의 진국군이라도 숲속까지 쫓아와 우리를 공격하진 못할 것입니다.
족장은 체념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었다. 남하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면, 생활 여건은 좋지 않아도 종족의 명은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 남주에서 가만히 앉아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큰일났습니다!”
“큰일났어요!”
“천제현이 10만 대군을 풀어 사방을 포위했습니다. 마을 전체가 포위망에 갇혔어요! 천제현이 인질을 구출하기 전까지 어떤 부락이든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경거망동할 시 즉각 종족을 멸하겠다고요!”
족장은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남하국 군대가 야만족의 주거지를 이토록 빨리 포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한 것이다. 지금 도망갈 궁리를 해도 도저히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이를 어떡한단 말인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동이 일어났다.
“큰일 났습니다!”
“인간들이 죽이러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놈들과 싸웁시다!”
야만족 노인들이 외부에서 들려오는 괴성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황급히 뛰쳐나간 그들 앞에 붉은 머리카락의 한 여인이 그리핀을 타고 있었다. 그 뒤로는 수백 명의 그리핀 기사단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혈기왕성한 젊은 야만족들이 창을 들고 부대 쪽으로 달려들었다.
“멈춰!”
“멈춰라!”
족장은 눈이 다 튀어나올 뻔 했다.
‘이 어리석은 놈들 같으니! 지금 저 부대가 어떤 부댄지 알기나 하느냐? 이 부대는 남하국 왕궁부대인 그리핀 기사단이란 말이다!’
그리핀 기사단은 본래 왕족을 보호하기 위해 특화된 부대로, 병사든 탈것이든 모두 혼성급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의 규모가 많지 않아 보여도 그걸로 판단하면 안 되는 것이다.
수백 명 밖에 안 되는 그리핀 기사단은 혼자서 수천의 야만족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너무 늦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혈기왕성한 청년 야만족들은 그리핀 기사단에게 달려들고는 일제히 창을 던졌다. 이 정도의 공격으로는 그리핀 기사단의 털끝 하나도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그들이 던진 창은 그리핀 기사단에 의해 맥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좋아! 야만족이라 이거지! 감히 남하군을 공격해? 우리 부대를 약탈한 놈들이 너희로구나!”
남궁혜의 얼굴이 분노로 이글거리자 붉은 머리카락이 나부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마어마하게 생긴 폭풍소총을 꺼내 들고는 흉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본때를 보여주지 않고는 너희가 나 남궁혜의 무서움을 모르겠지!”
‘이건……그 유명한 마력무기?’
족장도 들어보기만 했을 뿐 실제로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남궁혜는 야만족에게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폭풍소총을 들었다. 순간 분노의 화염이 분출되기 시작하더니 대량의 마력탄알이 야만족 부족을 향해 비 오듯 쏟아졌다.
창 공격을 하던 청년 야만족이 언제 이런 무서운 무기를 본 적이 있었겠는가. 다들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도망치기에 바빴다.
‘무시무시하군! 악마의 무기야!’
남궁혜는 일 분도 채 안 되는 시간동안 수백 개의 마력탄알을 발사했고,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공격에 모든 야만인은 가슴이 다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남궁혜가 크게 소리쳤다.
“전체 발포 시작! 이 바퀴벌레 같은 놈들에게 기적상회의 힘을 보여줘라!”
수백 명의 그리핀 기사단은 장총을 내려놓은 후 마력 기관총을 꺼내들었다.
수백 개의 마력무기가 동시에 발포된다면 어떤 참상이 벌어졌겠는가.
야만족들은 과학기술의 힘을 절실히 실감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탄알의 향연이 이어지더니 야만족 부락의 석재 가옥이 눈 깜짝할 사이에 전부 가루가 되었다.
쏟아지는 폭탄에 장막은 구멍이 숭숭 뚫려 누더기가 되어 버렸고, 땅에는 수많은 웅덩이가 생겼다.
“감히 네놈들이 기적상회를 건드려? 감히 네놈들이 우리 사람을 납치해? 감히 네놈들이 남하군에 저항해?”
남궁혜는 야만족의 식량 창고에 수류탄을 던졌고, 엄청난 굉음과 함께 화염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모든 창고가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일부 그리핀 기사단들도 야만족 건물 곳곳에 수류탄을 투척했다.
마치 버섯이 순식간에 팽창한 것처럼 시뻘건 버섯구름이 연달아 떠올랐다.
족장과 야만족 노인들은 절망을 금치 못했다.
남궁혜는 5분 동안 그리핀 부대를 이끌고 마구잡이로 폭탄을 떨어뜨렸고, 이를 본 야만족들은 감히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마을 전체가 하루아침에 완전히 몰락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마을의 재산 피해는 막중했으나 인명 피해는 경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살려주십시오!”
족장이 야만족들을 이끌고 즉시 무릎을 꿇었다.
“정말 저희가 한 게 아닙니다!”
공습 과정에서 그리핀 기사단은 조금도 무력을 쓰지 않았다. 오로지 마력무기만으로 이런 무서운 위력을 보여준 것이다. 아무리 고집스럽고 사나운 야만족 전사라 하더라도 눈앞에서 벌어진 참상을 본 이상, 기적상회를 이길 수 있다는 망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거친 야만족들은 모두 겁에 질려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남궁혜는 뜨겁게 달궈진 폭풍소총을 들고 앞으로 나오더니 왼손을 들고 소리쳤다.
“수색해!”
그리핀 기병 몇몇이 나와 수색하기 시작했다. 마구잡이로 짓밟힌 마을은 폐허나 다름없었고, 그곳에서 인질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남궁혜가 미심쩍다는 듯 물었다.
“정말 네놈들의 짓이 아니야?”
야만족 사람들은 죽는 소리를 해대며 이 모든 건 오해라고 항변했다. 하긴 이놈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겠어?
“빌어먹을! 네놈들이 아니라면 아니라고 했어야지!”
남궁혜가 족장을 바닥에 패대기쳤고,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너희 때문에 시간을 얼마나 허비했는지 알아? 이 일로 인질을 구하지 못하면 다들 장례 치를 준비나 해! 가, 가자! 다음 마을로 가보자!”
남궁혜가 그리핀 기사단을 데리고 날아갔다.
족장이 일어나 넋이 나간 채 아수라장이 된 부락을 쳐다보았다.
“이…… 기적상회 놈들은 정말 인간이 아니군요. 악마에요!”
“맞아요! 악마니까 저런 무시무시한 무기를 가지고 있죠!”
“우리 병력이 저들의 100배가 되어도 이길 수 없을 거예요!”
“빨리 도망가죠!”
족장은 이들을 바라보며 고함쳤다.
“도망? 무슨 도망! 무기도 없고, 식량도 없고, 마을도 없어! 모두 없어졌다고! 게다가 남하군이 사방을 포위하고 있는데 어떻게 도망간단 말이냐!”
“그럼 어쩌죠? 저 악마들한테 죽기 전에 우리가 굶어 죽게 생겼어요!”
“맞다! 저들이 아직 인질을 구하지 못했잖아요. 인질이 죽었을 수도 있고요. 방금 그 무서운 여자도 그랬잖아요. 인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모든 야만족들을 묻어버리겠다고!”
야만족들은 다들 무서움에 치를 떨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재앙에 그들의 터전이 무너졌다. 그들은 무기도, 장비도, 식량도 없었다. 이런 상태로는 장기간 숲에서 버틸 수 없었다. 이렇게 있다간 죽음밖에 길이 없었다. 어쩌면 좋지?!
“아니면 우리 항복하죠!”
“항복?”
족장은 항복은 아예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었다. 도망도 못가는 상황이니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기적상회에 투항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들을 도와 이 모든 일의 주모자를 색출해 절단을 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천제현도 기분을 풀고 우리를 살려줄지 모른다.
야만족은 딱히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개개인 모두 힘이 센 장사였다. 동급의 사람 3~5명을 합쳐도 이 야만족 한 사람의 힘보다 못할 것이다. 육체노동이나 체력을 쓰는 일이라면 충분히 쓸모가 있었다.
“그래요!”
“우리 항복합니다!”
“천제현을 도와 그 머저리 같은 놈을 찾자고요!”
기적상회의 힘을 본 후 족장도 저항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항복하기로 결정했다. 마지막에 어떤 결과가 빚어지든 지금보다 더 최악이진 않을 것 같았다. 만약 운이 좋다면 목숨 정도는 부지할 수 있겠지. 분명 이 일은 그들이 벌인 일이 아니다. 기적상회도 목숨을 보전코자 자신에게 귀순한 부대에게 화풀이하진 않을 것이다.
기적상회의 공습은 한 마을에만 그치지 않았다. 야만족들은 겨우 하루 만에 자신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겨 집이 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들은 막무가내로 기적상회를 습격한 야만족들을 욕하면서, 무기를 버리고 눈물을 쏟아내며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저들에게는 다른 요구사항은 없었다. 그저 죽이지만 말아달라는 것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