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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믿고 막 간다-426화 (422/729)

# 426

제426장 비비안 참전

견융족장이 기적상회를 습격하는데 동방건이 보고만 있을 수야 없는 일. 그의 정령이 홀연 붉은 무늬에 뒤덮인 활로 변했다.

곧이어 동방건이 흘려 넣은 마력이 세 개의 화살 형태가 되어 활시위에 맺혔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시위가 손을 떠나자 화살이 창공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구름을 뚫고 올라갔던 세 개의 화살은 커다란 장창으로 화해 마치 운석이 낙하하는 듯한 기세로 족장들의 머리 위로 들이닥쳤다.

‘이 힘은…… 동방건이 틀림없으리렷다!’

오랜 세월 견융초원을 견제해온 숙적, 견융족장 중 누구도 감히 동방건을 얕잡아볼 사람은 없었다.

동방건의 기습을 눈치챈 족장들이 재빨리 힘을 합쳐 거대한 마력 장막을 형성했다.

-와장창!

세 개의 장창으로 화한 화살이 방어막을 강타하자 유리가 박살 나는 듯한 파열음이 울렸다.

이때 동방건의 위치를 확인한 송곳니 왕이 흥 코웃음을 치며 철추를 빼 들었다. 두 발을 거세게 굴러 공중으로 솟구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장엄하게 솟아오른 태산 같았다.

“위험합니다!”

친위대 두 명이 미처 정령을 소환하기도 전, 송곳니왕의 자금뇌신당에서 발산된 번개가 두 사람을 후려쳤다. 두 친위대는 너무도 간단하게 숯덩이가 되어 버렸다.

송곳니 왕은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벼락의 힘이 담긴 철추가 한층 더 찬란한 빛을 발하며 동방건을 덮쳤다. 번개 줄기가 빽빽하게 사방으로 퍼져나가 거대한 번개의 거미줄을 만들고 있었다.

송곳니 왕과의 대결은 처음이었지만, 동방건은 이 순간 느껴지는 위압감만으로도 상대의 마력이 자신보다 한 수 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붉은 활이 조각조각 흩어지더니 갑옷으로 형태를 바꿨다. 동시에 동방건이 위엄 넘치는 보검을 뽑아 들었다.

진국왕검, 이 검은 단순히 남하국 국왕의 상징이기 이전에 절륜한 위력의 신급 무기이기도 했다. 동방건이 체내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내 송곳니 왕의 무시무시한 일격을 막아냈다.

까앙!

철추가 검과 맞부딪치는 순간 두 왕이 딛고 있던 지면이 1장가량 푹 꺼지면서 그들을 중심으로 10장 크기의 얕은 구덩이가 파였다.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주변 건물에서 떨어져 나온 크고 작은 돌덩이가 근처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십여 장 밖까지 밀려났다.

둘의 주위로 강력한 마력 자기장이 형성된 듯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막강한 자기장이었다.

격동하는 마력이 충돌하고 마찰하면서 생겨난 불꽃과 번개의 폭풍이 그 안의 모든 물질을 휘감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송곳니 왕의 맹렬한 공격에 비하면 동방건은 기세에서 한참 밀렸지만, 그나마 정령을 방어 태세로 전환한 덕에 충격의 상당량을 흡수할 수 있었다.

이번 합에서는 막상막하로 승부가 나지 않은 듯했다. 그러나 두 왕은 아직 무기를 거두지 않고 한층 본격적인 힘겨루기에 돌입하는 중이었다.

“하하하! 남하국 동방건도 겨우 이 정도였군!”

무슨 비술을 썼는지 송곳니 왕의 온몸에 힘줄이 불끈 솟아오르더니 방출되는 마력이 점점 더 강력해졌다. 동방건의 발이 계속해서 땅속을 비집고 들어갔다. 주변 구덩이 전체가 조금씩 깊어지면서 크기 역시 커지고 있었다.

“뇌신이여! 나에게 힘을!”

하늘에서 친 벼락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철추 위에 떨어졌다. 벼락을 흡수한 철추는 순식간에 위력이 대폭 강화됐다.

이제는 동방건으로서도 철추의 힘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마력 번개가 쉼 없이 동방건을 타격했다. 무장 정령이 변해서 만들어진 갑옷 역시 이곳저곳이 움푹움푹 파여 버렸다.

그러나 이대로 당할 동방건이 아니었다. 검 표면의 주문이 차례로 활성화되면서 안에 봉인되어 있던 힘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더니 감히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검기로 화했다. 송곳니 왕은 따로 방어무공을 쓰고 있지 않았다. 예리한 검기에 찔린 송곳니 왕의 전신에서 선혈이 안개처럼 솟구쳤다. 얼기설기 교차된 상처가 십여 군데 이상이었다.

“이쯤이야 긁힌 수준 아닌가?”

송곳니 왕이 오른손에 철추를 든 채 왼손에 막대한 마력을 모으더니 그대로 동방건의 가슴팍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방건 역시 거의 동시에 송곳니 왕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두 주먹의 충돌.

자기장에 구멍이 뚫리면서 터져 나온 마력이 주변 폐허를 단숨에 날려 버렸다.

정령 갑옷이 가루가 되어 버린 동방건은 포탄처럼 백여 장을 튕겨 나가 지면에 커다란 구덩이를 남기며 내리꽂혔다. 충격으로 이미 오장육부가 심하게 상한 상태였다.

역시 송곳니 왕은 막강했다. 동방건조차도 그의 앞에서는 한 수 아래였다. 남하국 내에는 일대일로 송곳니 왕을 제압할 고수가 없을 것이다. 여럿이 죽음을 각오하고 한꺼번에 달려들어 마력을 소진하게 만든 뒤 치명타를 날리는 게 유일한 방법이리라.

“남하왕을 죽여라!”

“남하왕을 죽여라!”

송곳니 왕의 활약상을 본 대융국 군대는 한껏 사기가 올랐다. 남하국의 막강한 화력 탓에 이번에는 어려운 싸움이 되리라 생각했건만, 남하왕 동방건이 송곳니 왕의 손에 죽는다면 중주는 혼란에 빠질 것이고, 그때는 기회가 올 수도 있었다.

공성전이 패배로 끝난다 쳐도 성 내의 혼란만은 피할 수 없을 테니 본진이 상륙했을 때는 전투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송곳니 왕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철추가 다시금 눈부신 번갯불을 뿜으며 동방건에게 내리꽂히려던 찰나, 눈앞의 공간이 불쑥 일그러지더니 가녀린 인영이 나타났다.

“누구냐!”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등장은 송곳니 왕에게 미처 방비할 틈을 주지 않았다. 백옥처럼 희고 고운 손이 번개로 번쩍거리는 송곳니 왕의 철추를 감아쥐었다.

다음 순간, 철추를 통해 전해지는 고강한 마력에 송곳니 왕은 부르르 떨며 뒤로 몇 미터나 물러나고 말았다. 소리 없이 사라졌던 인영이 이번에는 그의 등 뒤에 나타나더니 투명하게 빛나는 단검으로 스윽 허공을 그었다. 그러자 공간이 마치 천 조각처럼 길게 찢어졌다.

‘제길!’

마침 그 위치에 서 있던 송곳니 왕은 순식간에 공간 마력에 휩쓸리고 말았다. 몸부림쳐보려 해도 늦은 상황,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성에서 백 리 이상 떨어진 숲의 상공에 있었다.

‘빌어먹을!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남하국에 이런 은둔고수가 있었다고?’

제아무리 숨겨진 고수가 있었다 해도 이렇게까지 강하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송곳니 왕은 이제껏 마력만으로 자신을 뒷걸음질 치게 만들 수 있는 상대를 본 적이 없었다.

그 정도 고수는 장응전국에도 몇 안 될 것이다. 하물며 상대의 마력은 속성마저 아주 특별했다. 극히 보기 드물다는 공간 속성, 이를 미처 예상치 못했기에 엉겁결에 중주성 밖으로 끌려 나온 것이다.

“정체가 뭐냐!”

갑자기 튀어나온 고수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송곳니 왕은 멈칫하고 말았다. 상대는 5척이 조금 넘을 키에 심지어 맨발이었다. 하얗고 매끈한 복사뼈는 티 한 점 묻지 않은 백옥 같았다. 머리에는 화관을 썼고, 그 아래 얼굴에는 앳된 티가 완연했다.

“엘프가 왜 진흙탕 싸움에 끼어드는 거지?”

송곳니 왕으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남하국이 엘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니었다면 장응국이 몰랐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엘프가 아무런 이유 없이 인간 국가를 도울 리도 없었다. 그건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엘프들의 일관된 행보와 어울리지 않았다.

비비안은 이미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던 참이었다.

천제현은 떠나기에 앞서 공공연히 능력이나 정체를 드러내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그러면 젊은 엘프가 마수령 퇴치를 돕고 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나라 전체에 퍼질 테고, 그 소문이 엘프의 숲에까지 들어가면 기적상회에 좋을 게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니 최선은 송곳니 왕과 남하왕이 싸우는 틈을 노리는 것이었다. 다들 눈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비비안은 이미 송곳니 왕을 전장 밖으로 빼돌렸다.

이로써 대융국은 우두머리를 잃었고, 비비안은 마음 편히 싸울 공간을 얻은 것이다.

“엘프가 마수령을 죽이는 데 이유가 필요해?”

숲에서 여러 마수령 강자를 상대해 봤지만, 송곳니 왕은 확실히 까다로운 적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과 대등한 실력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죽고 싶은 게로구나!”

송곳니 왕이 엄청난 속도로 철추를 휘둘렀다.

“공간의 균열!”

비비안은 동방건을 상대하는 데 썼던 방법을 송곳니 왕에게도 쓰기로 했다.

우선 첫 번째 공간의 균열로 송곳니 왕의 공격을 막은 뒤 곧바로 송곳니 왕이 선 위치에 두 번째 공간의 균열을 만들었다.

이제 송곳니 왕의 무기가 균열에 닿는 순간, 공간의 접힌 주름을 통과한 무기는 다른 사람이 아닌 송곳니 왕 자신을 찌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민감한 감각으로 공간 마력의 움직임을 감지한 송곳니 왕이 균열 바로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무기를 멈췄다. 동시에 철추 끄트머리에서 폭발한 번개가 공간의 균열을 빙 돌아 비비안을 향해 쇄도했다.

‘이 마수령 자식, 역시 좀 하는군!’

혼돈의 숲에서 꽤 많은 고수들을 상대해 봤지만, 비비안의 공간 조작을 간파한 상대는 극히 적었다. 이 점만으로도 송곳니 왕이 얼마나 대단한 실력자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비비안의 정령은 공간의 단검. 공간을 찢어 균열을 만드는 게 그녀의 주된 능력이었다. 모든 공격, 방어, 이동이 이 능력을 토대로 이뤄졌다.

공간을 자르는 비비안은 순간이동만이 아니라 남들은 상상도 못 할 온갖 일들을 행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 어떤 비경이나 감옥도 비비안을 잡아두기란 불가능했다. 비비안의 공격방식은 실로 비범했다. 공간을 찢는 능력을 이용해 어떤 사물이든 공간 채로 벨 수 있기 때문이었다.

“참(斬)!”

비비안이 오른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찢겨나간 공간이 마치 커다랗게 벌어진 입처럼 번개를 모조리 삼켜 버렸다.

송곳니 왕의 안색이 변했다.

“이런 능력을 왜 남하국의 비천한 벌레들을 위해 쓰는 거지? 너도 기적상회와 천제현의 지식을 탐내는 것이냐? 그렇다면 얼마든지 공유할 용의가 있다. 너와 나는 싸울 이유가 없어!”

송곳니 왕은 다소 위축된 상태였다. 이 엘프는 마력으로도 그보다 한 수 위일뿐더러 대륙에서는 구경하기도 힘들다는 공간 재능까지 갖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련한 고수라 한들 상대를 처치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비비안이 가소롭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마수령 따위와 어울릴 생각 없어. 오늘 넌 죽고 난 사는 거야.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이번에는 송곳니 왕도 격분했다.

‘천지 분간 못 하는 엘프 계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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