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5
제425장 중주 공방전
중주성 북쪽은 우뚝 솟은 봉우리와 기암괴석에 막혀 있었다. 직경 천 리에 달하는 이 산악지대는 지형이 복잡하고 야수가 들끓어 아직도 길 다운 길이 나지 않은 곳이었다. 노련한 용병 사냥꾼도 힘겨워하는 지대를 대규모 보병부대가 다 함께 타고 넘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중주와 그 이북은 이 천연의 장벽으로 막혀 있었기에 누구도 대융국이 북쪽에서부터 진격해 오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바로 이 시각, 중주에서 백 리도 떨어지지 않은 산줄기는 중턱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빽빽하게 들어찬 독응수로 우글거리는 상황이었다.
검게 휘날리는 대융국 깃발 아래 전사들의 날 선 무기가 섬뜩하게 번뜩였다.
견융족장 네 명이 왕에게 개전 명령을 독촉하고 있었다.
“때가 됐습니다, 이제 움직여야 합니다!”
중주군은 지금쯤 사주호로 간 부대를 상대하느라 바쁠 것이다. 중주군이 거기 발이 묶인 지금이야말로 중주성을 칠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송곳니 왕은 공격명령을 미룬 채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왕께서는 무엇을 더 기다리십니까!”
“중주만 함락하면 남하는 대융국의 것입니다. 이억 명이 노예로 들어온단 말입니다!”
송곳니 왕이 저 멀리 중주성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중주에서 사주호로 이동한 병력은 절반뿐이다. 상대편 지휘관이 이쪽 전략을 간파했다는 뜻, 중주성은 이미 기습에 대응할 태세를 갖췄을 것이야!”
“눈치챈 게 대수입니까? 상대는 동방건입니다! 그렇게 쉽게 당할 자였다면 수십 년간 남하 땅을 지켜내지도 못했겠지요! 병법으로 이길 수 없는 자에게는 압도적인 힘만이 답입니다!”
족장들은 송곳니 왕의 우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는커녕 당연하다는 투였다.
“놓칠 수 없는 기회입니다. 양쪽을 다 지키려다가 결국 전부를 잃고 말겠지요. 남하국 군대의 전투력은 형편없습니다. 독응수 기병 삼만에 그들이 태울 정예군이 사만. 도합 칠, 팔만 병력이 공중으로 침투할 겁니다. 대융국 전사 하나면 남하국 놈들 셋을 당해내고도 남습니다. 중주성 내의 사기가 꺾이고 나면 물길을 건너온 군단이 성을 완전히 접수하고 남하를 평정할 것입니다!”
족장들이 자신만만하게 나오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견융족과 남하국 인간의 전투력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견융족은 사납고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민족, 견융족 용사 하나를 상대로 남하군 셋이 덤비더라도 승산은 견융족에게 있었다.
하물며 이번 전쟁에는 견융족 중에서도 최정예 부대와 송곳니 왕을 필두로 한 진령급 족장들이 참전했다.
‘중주군 이십만이 어디 대수인가? 북방에서 차출해온 기병부대 따위로 무슨 대단한 방위군을 조직하겠다고!’
남하국 중심부에 자리 잡은 중주는 한 번도 외세의 위협을 겪어보지 못한 지역이었다. 수백 년간 견융족의 말발굽 아래에서 경계심을 곤두세우고 지냈던 왕성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전력을 다해 붙어볼 수밖에!’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심한 송곳니 왕이 독응수 우두머리를 타고 하늘 높이 비상했다.
전군에 왕의 명령이 하달되자 독응수 삼만 마리가 즉각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각기 정예 전사 두셋을 태운 독응수들이 차례로 산꼭대기의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다.
“진격하라!”
새카만 먹구름 같은 삼 만 독응수 떼가 중주성을 향해 돌진했다. 한편 중주성은 이미 만반의 대비를 마친 뒤였다. 성안 백성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집 안으로 대피했고, 굵직굵직한 길목마다 배치된 남하국 병사들은 작전 명령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땅땅!
위험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검을 든 동방건이 친히 지휘대에 올랐다.
“북쪽에서 적이 접근 중이다. 규모는 약 삼만, 궁수부대는 대기하라!”
적은 동방건이 예상했던 숫자의 두 배였다.
‘역시. 장응전국에서 지원병력을 더 보냈단 말인가? 그러나 이 정도면 아예 손을 못 쓸 수준까지는 아니다!’
동방건의 지휘하에 궁수부대의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화살로 뒤덮인 중주성 주변 상공은 마치 거대한 메뚜기 떼의 습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강력한 마력이 깃든 화살은 삼백 장 이상을 날아갈 수 있었고, 유효 살상거리만 해도 이백 장에 달했다.
송곳니 왕 역시 경험에서라면 밀리지 않는 지휘관이었기에 중주가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활시위가 진동하는 소리를 감지한 순간, 송곳니 왕이 한쪽 팔을 들었다.
그러자 신호를 받은 부대 전체가 즉시 방향을 틀었다. 촘촘한 화살 비를 훌쩍 피한 견융군은 다시금 중주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돌진했다.
첫 사격이 밀도와 강도 어느 측면에서든 최고였다면 두 번째는 위력이 훨씬 떨어졌다.
독응수 기병들은 빗발치는 화살을 뚫고 전속력으로 하강했다. 중주성 내 고층 건물의 지붕을 길게 훑고 지나가는 독응수의 비행 동선을 따라 견융족 정예병들이 연이어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흡사 그칠 줄 모르는 빗방울처럼, 섬뜩하게 굽어진 칼을 든 적군의 강림이 끝없이 이어졌다.
독응수 기병 삼 만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전력이었다. 남하국에는 이들을 견제할 비행부대가 없는 상황, 지금이라면 질풍철기병 십만쯤은 출병하자마자 속수무책으로 당할 게 확실했다.
게다가 3~4만 명 규모에 달하는 공수부대까지 독응수 기병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독응수의 등에서 뛰어내린 공수부대원들은 하나같이 견융족 군단 내에서도 엄격하게 선발된 고수 중의 고수였다.
“인간을 몰살하라!”
“죽여라!”
적군 비행부대가 없는 중주 상공은 독응수 기사들에게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궁수부대만으로 이들을 당해내기란 역부족이었다. 활이 가진 속도와 위력쯤은 독응수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했다.
민첩한 거미처럼 건물과 도로를 타고 넘어 이동하던 견융족 정예병들이 막 남하국 병사들을 덮치려던 그때였다.
적이 성 내부까지 깊숙이 침투했음을 확인한 동방건이 명령했다.
“전원 발포!”
남하국 군사들은 진작부터 이 말만 기다리던 중이었다.
양손으로 마력기관총을 받쳐 든 공서련이 골목 끝에서 튀어나오는 견융족 병사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빽빽하게 날아간 빛의 탄알에 견융족 십여 명이 순식간에 나자빠졌다.
“죽어 버려, 이 악질놈들!”
남궁혜가 들고 등장한 물건은 훨씬 더 묵직했다. 보통 마력기관총의 몇 배에 달하는 길이에 발사구는 무려 세 개였다. 총신에는 특대탄창 여덟 개를 이어 만든 장치가 붙어 있었다.
특대 마력탄창 하나에서 발사되는 마력총알이 최소 30~40발인 걸 생각하면 이 특제총기는 탄창 교체 없이 300발 이상을 발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됐다.
쿠구궁!
특제총기가 야수의 포효를 연상케 하는 굉음을 토했다. 세 개의 발사구가 폭풍 같은 기세로 마력탄알을 쏟아냈다.
한 차례 남궁혜의 사격이 휩쓸고 간 하늘에는 독응수 기병 몇몇이 남긴 잔해만이 재처럼 흩날렸다.
“하하하, 이거 작살나게 통쾌한걸. 완전히 날 위해 태어난 무기잖아!”
남궁혜가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는 동안에도 세 개의 총구는 계속해서 불을 뿜었다.
“기적상회의 무서움을 알려주마!”
천제현이 특별제작한 이 중형총기에는 마력대포를 만들고 남은 재료가 쓰였다. 덕분에 총기 자체의 내구력이 대단히 강해 고속 사격에도 총신이 폭발할 우려가 없었다.
기관총의 네다섯 배 화력을 자랑하는 이 중형총기의 명칭은 ‘폭풍소총’으로, 아직은 기적상회 전체를 통틀어 단 한 정만이 존재했다.
그 무기가 현재 남궁혜의 손에서 신나게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최고 화력!”
“견융족 벌레들을 다 쓸어 버리자고!”
공서련과 남궁혜의 등장은 작전의 서막에 불과했다.
대융국 병사들의 전면 공격을 신호탄으로 남하국도 더는 숨죽이고 적의 방심을 유도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마력총기에서 동시에 탄알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사거리 자체는 활보다 짧았으나 마력총기는 중근거리 전투에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발휘했다.
위력도, 사격속도도, 활과는 차원이 다른 무기였다.
왕성 전투에 동원된 기관총은 단 이천 정. 그것만으로도 독응수 기병 이만을 쩔쩔매며 내빼게 만들었던 전력이 있거늘, 지금 중주성 부대에 지급된 마력기관총은 만 정이 넘었다.
거기에 마력권총 수만 정까지, 설사 독응수를 제압할 비행부대가 없다 해도 현재 남하군의 화력은 왕성 때와는 감히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동방건의 병력 배치에는 빈틈이 없었다. 대융국의 독응수 기병들은 흡사 불구덩이에 뛰어든 꼴이 되어 어마어마한 숫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죽어 나갔다. 견융족장들을 얼어붙게 하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인간들의 손에 저런 괴상한 무기가 들려 있었다니, 대체 언제부터!’
반면 송곳니 왕의 눈동자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역시, 저건 단기간에 대량생산이 가능한 무기였던 것인가! 순식간에 저렇게 많은 양을 만들어낸 걸 보면 생산 단가마저 엄청나게 낮다는 것 아닌가!’
침공시기가 몇 달만 더 늦었다면 설사 장응전국이 직접 나섰다 해도 남하국을 함락하는 데는 어마어마한 희생이 뒤따랐으리라.
‘잘된 일이다! 저 기술을 장응국의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대융국 열 개를 내줘야 한대도 아깝지 않다!’
“돌격, 전력으로 진격한다!”
진령 경지의 견융족장 넷이 나섰다. 이들 각각은 천 명 규모의 기병부대를 압도하는 힘의 소유자였다.
네 명이 한꺼번에 출격하면 그 파괴력은 기병 만 명의 전력과 맞먹었다. 남하국 방어선이 무너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깐 사이에 사상자가 속출했다.
“흥, 마수령 놈들이 날뛰는구나. 이 몸이 상대해주지!”
비비안이 전투에 뛰어들려던 찰나.
“잠깐만요!”
공서련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아직 아니에요, 공주님은 송곳니 왕을 상대해야죠!”
비비안이 까드득 이를 갈았다.
“저 악랄한 놈들을 어떻게 그냥 두고 보라는 거야?”
“서두를 것 없어요, 우리가 지금부터 쓴맛을 보여줄 테니까!”
커다란 폭풍소총을 정리해 넣은 남궁혜가 이번에는 마력대포를 끌고 왔다. 공서련이 장전을 마치자 곧 대포의 포문이 공중을 누비고 있는 진령술사를 향해 조준됐다.
“발사!”
콰앙!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
태양보다도 눈부신 백색 섬광이 허공을 찢으며 쏘아져 나가 견융족장 한 명에게 명중했다.
족장의 몸뚱이 절반을 한순간에 날려 버린 섬광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은 기세로 허공을 가르며 직선상에 있던 독응수 기사 여럿을 한꺼번에 소멸시켰다.
‘이것이 바로 마력대포의 위력인가?’
동방건이 전율했다.
천제현은 마력대포를 일반 마력권총보다 수백 배 강한 무기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동방건도 마력대포의 위력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런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물론 조금 전 광경에 놀란 건 동방건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마력대포의 섬뜩한 파괴력은 현장에 있던 모두를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두려움에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무서우리만치나 강력한 물건이었다.
송곳니 왕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었다.
‘남하국의 인간을 너무 얕봤던 것인가? 그런데 저런 무기가 있었다면 왜 왕성에서는 쓰지 않았던 것인가! 남하국은 대체 저런 무기를 얼마나 보유한 거지? 만약 함대에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물량이 많다면 사주호의 견융군단이 위험하다는 뜻이거늘!’
물론 마력대포 제작에는 큰돈이 들었다. 기적상회 역시 국고를 털어 겨우 네 문을 만드는 게 고작이었으니, 전군에 지급한다는 건 불가능한 얘기였다. 하지만 전장 대치 상황에서는 한두 문만으로도 천군만마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무기였다.
“계속 쏴!”
남궁혜와 공서련의 바쁜 손길 하에 마력대포가 연이어 무시무시한 굉음을 뿜었다. 적군 진령급 고수들은 이미 잔뜩 경계심을 품은 탓에 다시 맞히기 어려웠지만, 독응수 기사 상당수를 해치워 적의 사기를 땅에 떨어뜨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송곳니 왕이 소리쳤다.
“당황하지 마라. 저런 무기는 두 대뿐이다. 저 계집들을 죽이는 자에게 무기 두 대를 모두 상으로 내리겠노라!”
견융족 용사들의 얼굴이 흥분으로 잔뜩 상기됐다.
진령급 고수를 한순간에 해치우는 무기를 어느 누가 탐내지 않겠는가.
후한 포상이 용감한 무장을 만드는 법, 견융족장 세 명이 몸소 독응수 기병들을 이끌고 공서련 일행을 향해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