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 믿고 막 간다-421화 (417/729)

# 421

제421장 천제현의 출정

사실 비비안이 마수령들을 싫어하는 것도 당연했다.

원래 마수령족과 엘프는 철천지원수로 여겨지곤 한다.

엘프는 꽤 오랜 기간 대륙의 지배자 역할을 했다. 다만, 인구 증가 속도가 느리고 천성적으로 진취심이 없었기에 폭발적으로 인구를 늘리며 호전적인 성격을 가진 마수령들에게 따라잡힐 수밖에 없었다. 결국 두 종족 간에는 격렬한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 초반에는 엘프들이 절대적인 우위를 보이며 마수령들을 거의 멸족 직전까지 몰고 갔다. 하지만 생명력이 강하고 번식능력도 뛰어난 마수령은 세대교체가 아주 빨랐고, 참패한 후 수십 년 정도가 지나면 다시 예전의 세력을 회복하곤 했다.

두 종족은 그렇게 수천 년을 싸웠다. 그리고 엘프의 수가 점점 줄면서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결국 마수령들은 광세결전 때 엘프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오랜 기간 대륙을 지배하던 엘프들이 드디어 그 신성한 자리에서 내려온 것이다. 그런데 마수령들이 그들을 대신해 지배자의 지위에 오르려 할 때, 갑자기 등장한 종족 하나가 그 각축전에 끼어들었다.

바로 인간이었다.

인간들의 번식능력은 마수령 다음갔으며, 지혜와 문명, 교활함, 임기응변 능력은 그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마수령족은 인간과 겨루기 시작했지만, 승부는 쉽게 나지 않았다.

한편, 한때의 대륙의 지배자였던 엘프는 여전히 큰 세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길게 보면 더 이상 대륙을 제패할 저력도, 능력도 없었다.

역사적으로 마수령족이 얼마나 많은 엘프들을 죽였던가.

이러한 이유로 인해 엘프는 마수령족만 보면 치를 떨었다. 어려서부터 그런 얘기를 듣고 자란 비비안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혼란의 숲의 마수령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침략이며 약탈을 일삼았기 때문에 비비안의 눈에 비친 마수령들은 모두 악의 화신이자 대륙의 해충, 잔인하고 천박한 짐승들이었다. 반드시 없애 버려야 할.

인간들 중 탐욕스럽고 변태 같은 놈들이 엘프 여자아이를 납치하는 일이 가끔 있었기 때문에 인간에게도 딱히 좋은 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마수령과 비교하면 선량한 종족으로 구분되었다.

***

중주의 임시 왕성에 기적상회 사람들이 모였다.

비비안 공주는 화관을 쓰고 나뭇잎으로 된 옷에 맨발 차림이었다. 그 독특한 이종족 차림새는 눈에 확 띄었고, 동방건도 그녀에게 시선이 향했다. 그녀를 알아본 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지만, 동방건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대융국 군대가 출정했다고 하니 우리도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오.”

“폐하, 안심하십시오.”

공화련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현재 아군이 보유한 마력무기는 10만 개가 넘으며, 마력폭탄은 만여 개, 마력대포는 4문이나 됩니다. 중주 함대를 무장시켜 수상에서 적을 막는다면 최후의 승자는 아군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운몽후의 말에는 허점이 있소. 견융족의 병력은 60만에 달하오. 그 병력이 총출동했다 하니 어떤 마음으로 오고 있겠소? 아군의 북방군단은 30만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전부 지상 기병 위주요. 그들을 수상전에서 사용한다면 전투력은 크게 떨어질 것이오. 남하국의 주력병이 아닌 중주 10만 주둔군은 더욱 말할 것도 없고. 적과 아군을 비교해 보면 아군의 약세가 더욱 두드러지니 어떤 우세도 갖고 있다고 할 수 없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군대의 전투력만 논한다면 남하국은 절대 대융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견융족 군사들이 수상전에 미숙하다고는 하지만 남하국 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아무리 용맹스러운 기병도 물 위에서 싸우게 되면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다반사였으니까.

중주군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주력군이 아닌 그들은 입에 올릴 가치도 없었다. 적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순간 순식간에 무너질 게 분명하니 제대로 부리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한, 뛰어난 총사령관은 적군과 아군의 상황을 충분히 분석해야 하는 거요.”

동방건은 벽에 걸린 남방 6군의 지도를 보며 말했다.

“만약 내가 송곳니 왕이라면 수상전에 승부를 걸지 않을 거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육지에 올라 자신들이 더 익숙한 지상전으로 남하군을 섬멸하려 하겠지. 내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대융국 함대는 중간에 몇 개로 나뉘어 서로 다른 항로로 중주성을 향할 것이오. 어떻게든 육지에 올라 결전을 치르겠다는 생각일 테지.”

그 말에 모두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정말 동반건의 말처럼 된다면 상황은 더없이 악화될 것이다.

대융국 함대가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을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중주의 병력은 수적 열세까지 갖고 있었다. 소수 병력으로 다수를 포위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자리에 있던 한 장군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되도록 빨리 출병하여 하나씩 쳐부숴야 합니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세. 사주호는 매우 넓은 데다 항로도 수시로 변하지. 각기 다른 항로로 다가오는 60만 적군을 무슨 수로 막겠나?”

동방건은 말을 이었다.

“사주호의 주력군으로 중주를 친다는 건 눈속임일 가능성이 크네. 지금까지의 송곳니 왕을 보면, 그는 매복과 흉계에 매우 능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아군이 사주호에서 대융군과 싸우고 있을 때 공군부대를 이끌고 북방 산맥을 넘어 중주성을 기습할 게 분명해. 우리의 심장에 칼을 꽂을 생각이겠지!”

사람들은 깜짝 놀라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이 자리에 있는 남하 장군들은 수많은 세월 동안 동방건과 함께한 인물들이다.

동방건은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적군의 행동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걸로 유명했다.

이것은 그가 수많은 전투를 겪으면서 백전불패의 장군으로 불린 이유이기도 했다. 일행은 이전 두 번의 전투를 떠올리며 송곳니 왕이 동방건의 예상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남하국의 힘은 너무나 약했다.

공중부대든 지상부대든 막아낼 능력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천제현이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그가 말하기를 기다리던 동방건은 그 모습을 보며 물었다.

“진국군은 어찌 하여 웃는 것이오?”

“폐하, 정말 잊으신 겁니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시는 겁니까? 우리의 공군과 육군은 적에게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에겐 수군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대융국에게 없는 것입니다. 사주호 전장은 남하국의 앞마당과 같죠. 제게 10만 병사를 주시면 기적상회의 무기로 무장시킨 후 대융국의 60만 병력 그 누구도 육지에 오르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나머지 30만 병력은 중주성을 지키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대융국은 절대로 중주를 함락하지 못할 것입니다!”

‘십만 병력이라고?’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운몽후, 허세도 적당히 쳐야하오!”

그러나 천제현은 자신만만했다.

“저는 허세라는 걸 모르는 사람입니다. 입으로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지요. 병사 십만 명이면 충분합니다. 절 못 믿으시는 건가요?”

몇 초간 생각에 잠겨 있던 동방건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20만 군사를 주겠소. 공을 세우는 데 연연하지 말고 적의 발목을 잡아 시간을 끌고 혼란을 조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시오. 중주성은 20만 병사로 지키면 충분할 것이니!”

그는 계속 말했다.

“또한, 그리핀 기사단의 지휘를 맡기겠소. 중주 함대를 위해 공중에서 엄호하시오. 중주성은 걱정할 필요 없소!”

‘정말 나를 못 믿나 보네!’

천제현이 말했다.

“기적상회 사람들에게 중주성 방어를 도우라 하겠습니다. 남궁혜 아가씨, 서련 아가씨, 비비안 공주님은 중주성에서 폐하를 도와주세요!”

동방건의 시선이 비비안에게 향했다. 그는 천제현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분명 기적상회 사람들이라 했겠다?’

비비안은 그 말에도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을 뿐더러 태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천제현이 이렇게 빨리 이 엘프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단 말인가? 그나저나, 이 엘프는 대체 누구인 건가? 이렇게 전투에 끌어들여도 문제 없을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동방건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결국 동방건은 의문을 추후에 해소하기로 마음먹었다.

‘관두자. 지금은 비상시기다. 이 엘프는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이니 큰 역할을 할 수 있겠지.’

동방건은 바로 교지를 내렸다.

“중주의 신풍후, 천제현, 공화련은 중주함대를 이끌고 사주호로 가서 거만한 대융국 군대를 맞이하도록 하라!”

3백 척의 대형군함은 이미 준비를 마치고 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남하군 20만 명이 항구에 집결했다.

남하왕 동방건은 직접 출정군을 배웅 나왔다. 동방건은 동방호와는 성향이 전혀 달랐다. 그는 입만 놀리고 뒤에서 수작질이나 하는 짓을 제일 싫어했다.

그는 짧은 말 몇 마디로 군사들의 사기를 고무시킨 뒤 물자와 장비 운반을 돕기 시작했다.

십만 질풍기병이 전투마에서 내려와 수군으로 변신했다. 남하왕은 군대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은 사람이므로 십만 병력 대부분을 활을 잘 쏘는 사람으로 구성했다. 수상전에서 사수는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니까.

20만 대군 중 3분의 1의 병력은 마력권총으로 무장했고, 마력권총을 갖지 못한 군사들은 활을 갖고 있었다. 그때.

덜컹덜컹.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적상회에서 막 개발한 마력노포의 소리였다. 천제현은 전함마다 마력노포를 배치할 생각이었다. 이 마력노포는 기존의 노포를 개조한 것으로,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했다.

사정거리 또한 천여 장에 달하는 마력노포가 백여 대, 중형 고강도 연노는 3천 개 이상 준비되었다.

이 무기들은 군함이 교전할 때 가장 큰 파괴력을 발휘할 무기 중 하나였다. 넓은 범위의 적을 섬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군의 전함까지 파괴할 수 있으니까.

마력노포 외에도 기적상회에서 제작한 발사기 몇 대가 있었다. 그 발사기들은 폭탄을 날려보내는 데 사용되는데, 기존의 투척기보다 더 높은 정확성을 자랑했다. 발사기 안에 넣을 폭탄 또한 특수 제작한 것으로,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번쩍거리는 마력대포 2문이 천제현이 탄 기함 위에 실렸다. 이 두 개의 마력대포는 기적상회가 지금까지 생산한 모든 무기 중에 가장 강력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여러 공장에서 쉴 새 없이 만들었음에도 4문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그중 두 개는 중주에, 두 개는 군함에 싣기로 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대량살상무기였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출항하라!”

청량한 호각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주 함대는 수많은 남하국 백성들의 희망을 품고 중주항구에서 사주호로 천천히 뱃머리를 향했다.

천제현은 갑판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바람을 맞고 있었다.

“제가 병사들을 이끌고 출정을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큰아가씨는 긴장 안 돼요?”

공화련은 그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긴장할 거 뭐 있어? 지난번 그 위험 속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이번에는 준비도 철저히 했잖아. 이번에는 그놈들도 어쩔 수 없을걸.”

“하하, 긴장 안 된다니 다행이네요!”

천제현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의 두 눈에 빛이 번쩍이는 것 같았다.

“복수할 때가 된 거예요! 대방주 쪽에는 연락해뒀죠?”

“걱정 마. 벌써 통신기로 상어해적단 본부에 연락해놨으니까. 대방주가 선봉대를 조직해서 우리보다 한 발 먼저 대융군을 향해 출발했을 거야.”

천제현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일 처리를 잘 해줘야 그가 힘을 아낄 수 있었다.

송곳니 왕이 아무리 신중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중주의 군사들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진 못했을 것이다. 분명 상어해적단이야말로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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