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9
제419장 공간창고
대융국은 언제라도 쳐들어 올 수 있다. 그러니 중주는 발전을 멈춰선 안 되었다.
각 분야의 자료를 분석한 공화련은 전쟁이 문명의 발전을 촉진하는 최강의 촉진제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대융국의 위협 앞에서 중주성 백성들은 한마음 한뜻이 됐다. 천제현 일행은 보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놀라운 마력 향상을 이뤘으며, 중주 운문 역시 눈에 띄는 성과를 냈고, 중주성의 공업은 하루가 멀다 하고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전폭적인 자원 지원이 더해져 생산성은 3배 가까이 오른 상태였다.
‘훌륭하다. 정말 훌륭해.’
대융국이 그들에게 열흘 정도의 시간만 더 준다면 중주성은 철옹성으로 변모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융국 군단은 그들을 그리 쉽게 함락시키지 못하리라.
지금 공화련이 가장 골치를 앓는 문제는 북방의 대융국이 아니었다.
기적상회는 새로운 전략을 세웠고, 혼란의 숲을 도약의 땅으로 설정했다. 그 지역의 진입 문제야말로 현재 기적상회가 직면한 가장 큰 난제였다.
천제현의 방식은 지나치게 무모한 감이 있었다.
엘프는 경계심이 무척 강한 종족으로, 쉽게 외부인을 믿지 않아 폐쇄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했다. 공화련은 엘프들의 신뢰와 지원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오랫동안 천천히 그들의 의심을 없애고 기적상회를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천제현은 비비안 공주를 끌어들임으로써 단번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천제현이 비비안의 신분을 생각이나 해봤을까? 벽창호 같은 엘프 보수파의 입장은?’
자칫 잘못하면 엘프와 우호관계를 맺는 건 둘째 치고 적대적인 시선을 받게 될 수도 있었다.
‘지금 그들은 뭘 하고 있을까?’
통신기를 꺼내 공서련에게 연락한 공화련은 그녀가 지금 천제현, 비비안과 함께 운문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운문에서 대체 뭘 하는 거지?’
호기심이 생긴 공화련은 운문으로 발길을 향했다. 천제현은 비비안에게 전속 실험실을 만들어 주고 그 현대화된 실험실의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여긴 운문에서 공주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공간 연구실이에요. 오늘 밤부터 공주님에게 맡길게요!”
여기까지 말한 천제현은 화제를 전환하며 말을 이었다.
“공주님의 편의를 위해 큰아가씨와 서련 아가씨가 도울 거예요.”
비비안은 만면에 희색을 띤 채 실험실 곳곳을 구경했다. 그곳에는 엘프 마을에서 보지 못한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다. 천제현에게 이끌려 기적상회에 들어오자마자 전용 실험실을 갖게 되다니, 자신의 신분을 다시 한 번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앗, 뭐라고?”
비비안은 어안이 벙벙한 듯 말했다.
“그럼 안 되지! 공서련과 공화련 언니는 기적상회의 창시자잖아. 나는 이제 막 들어온 신입이고!”
비비안은 이미 공화련을 언니라 부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비록 실제 나이는 공화련이 그녀를 할머니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공화련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실력만 있으면 그만이죠. 공주님, 사양하실 필요 없어요!”
“하지만…… 하지만…….”
비비안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눈처럼 새하얀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내가 엘프 나이로 14살이나 되긴 했지만, 학문에 있어서는 공서련보다도 못한걸. 실험실을 담당하는 건 고사하고, 일반 연구원 역할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공화련의 천서 정령을 복제하면서 학습능력을 키운 덕에 지금의 공서련은 일반 운문학자에 결코 뒤지지 않는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비비안이 공서련보다 몇 배나 오래 살았다고는 해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엘프 마을에서만 살지 않았던가. 그녀의 무공 실력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지만, 지식 방면에서는 확실히 많이 부족했다.
공화련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문에 별 재주가 없는 비비안 공주를 위해 왜 실험실까지 만들어 줬을까? 대체 무슨 생각이지?’
비비안도 난감한 듯 말했다.
“아니면 이 실험실을…… 일단은 보류하는 게 어떨까? 내 무공 실력은 꽤 봐줄 만하니까 싸울 일이 생기면 도울 수도 있을 거야!”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요? 제가 보기엔 엘프 최고의 학자를 데려와도 공주님과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요? 공주님이 갖고 계신 특별한 잠재력이야말로 아무도 갖지 못한 거라고요.”
천제현은 비비안을 격려하며 말했다.
“공주님은 유일무이한 존재예요. 전 공주님이 다른 사람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거라고 믿어요.”
그 말을 들은 비비안은 감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엘프 마을에서 그녀는 문젯거리의 대명사 같은 존재로, 자기 자신도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런데 자기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 게다가 그 사람은 그녀가 가장 존경하는 우상 아닌가.
“나한테 무슨 잠재력이 있다는 건데?”
“공주님께는 공간 재능이 있어요!”
사실 천제현이 비비안에게 전수하려는 것은 공간에 대한 지식이었다.
그것은 향후 2만 년 안에는 확립할 수 없는 지식 체계였다. 그러므로 천하에 이름을 알린 대학자나 학문에 있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비비안이나 본질적인 차이는 없었다.
“공주님의 잠재력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일단 한 가지 임무를 드릴게요.”
천제현은 복잡해 보이는 설계도를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건 3급 공간 마력진 설계도예요. 공주님의 첫 번째 임무는 바로 이 마력진을 완성하는 거예요. 마력진을 완성하고 나면 제 뜻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공간 마력진이라니!’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불 속성 마력진, 바람 속성 마력진, 얼음 속성 마력진 등은 들어 봤어도 공간 마력진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건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일반적으로 ‘공간’은 가장 파악하기 어려운 속성으로 인식되곤 한다.
‘마력진의 형태로 공간의 힘을 얻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비비안은 복잡한 도안을 받아 들고 말했다.
“무슨 기능을 하는 마력진인데?”
그러나 천제현은 격려의 눈빛만을 보낼 뿐이었다.
“질문하지 말고 일단 한번 해보세요.”
학문 수준이 아무리 떨어져도 마력진을 그리는 능력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갖고 있다. 이미 상세한 설계도를 받았으니 이제 비비안이 할 일은 설계도에 적힌 방법대로 진법을 그리는 것뿐이었다. 진령 경지의 실력과 심등 수준의 신식을 갖고 있는 그녀로서는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 마력진은 보통 마력진이 아니었다.
그 마력진을 위해 천제현이 준비한 재료는 모두 진귀한 3급 재료였고, 거기에 네 개의 거대한 마력전지가 마력을 공급하고 있었다.
“그럼 시작해 볼게!”
비비안의 작은 얼굴에 긴장의 빛이 감돌았다.
‘처음으로 실력을 보여주는 자리야. 이 중요한 순간에 절대로 실수를 해선 안 돼!’
그녀는 신식을 시전했다. 그녀의 신식은 천제현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천제현보다 더 강력했다. 그 강력한 신식으로 설계도를 훑은 그녀는 미세하고 섬세한 부분까지 전부 뇌리에 저장해 두었다.
“일어나라!”
그녀의 명령에 따라 수정 붓이 꼿꼿이 세워졌다.
비비안은 신식으로 수정 붓을 조종하여 마력진 석판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복잡한 마력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완성된 마력진의 모습을 본 공화련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평범한 여인이 아니었다. 천제현의 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난 지식을 지니고 있는 공화련은 기적상회의 기술을 전부 꿰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엄청난 학습능력과 천서 기억력이 그녀로 하여금 짧은 시간 내에 고천추와 운문학 등 최고의 학자들을 뛰어넘게 해준 것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그 마력진은 그런 그녀로서도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
지난날 3급 마력진을 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복잡하고 모든 부분과 구조가 독특한 진법은 처음이었다. 운문의 노학자들이 이 마력진을 본다면 흥분을 주체 못 해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비비안은 얼굴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으며 경탄했다.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복잡한 마력진이야. 이건 무슨 용도로 사용하는 거지?”
“기다려 보세요!”
천제현은 옆에 있는 공서련에게 말했다.
“아가씨, 마력 기둥을 좀 가동해 주세요!”
“알았어!”
공서련이 잽싸게 마력전지의 가동하자 마력 기둥 네 개가 동시에 강력한 힘을 뿜으며 복잡한 공간 마력진이 활성화됐다. 그와 함께 불가사의한 파동이 생성되었다. 그 강력한 파동은 공간을 건드려 점점 큰 공간 왜곡을 만들어냈다.
이윽고…… 동굴 같이 시커먼 무의 공간이 생겨났다.
“이건…….”
공화련과 공서련은 느끼지 못했지만, 비비안은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 구조는 안정적인 아공간이잖아? 장비를 보관할 수 있는 보관 공간 같아. 맙소사, 이렇게 크다니. 높이가 적어도 10장은 될 것 같아!”
“뭐라고요?”
공화련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이게 보관 공간이라고요?”
비비안이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제 알겠어. 이 마력진의 용도는 안정적인 아공간을 만들어내는 거야. 이렇게 신비로운 마력진은 처음 봐. 안정적인 아공간을 만들 수 있다니, 저장장비와 다를 게 없잖아!”
저장장비의 가치가 얼마나 되던가. 성 하나쯤은 거뜬히 살 수 있을 정도다.
남하국 전체를 통틀어도 저장장비의 숫자는 몇 개 되지 않았다.
저장장비가 그렇게 귀한 이유는 공간의 힘을 지닌 재료들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 재료들은 대륙 전체를 뒤져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천제현은 아주 쉽게 아공간을 만들어냈다. 그것도 이렇게 큰 공간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 아닌가.
천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건 아공간 형성 진법이에요. 작은 아공간을 만드는 데 사용되죠. 공급받는 마력이 많을수록 아공간의 크기도 커지고요. 이 기술을 이용하면 공간 창고를 만들 수 있어요. 물론 저장장비와 비교하면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죠.”
“하지만 이 기술은 발전 가능성이 아주 커요.”
천제현은 간단히 소개했다.
“예를 들어 설명할게요. 아공간을 이용하면 손쉽게 물건을 대륙의 각지로 보낼 수 있어요. 즉, 이곳에서 보관한 물건을 대륙 끝에서 꺼낼 수 있다는 뜻이죠.”
발전 가능성이 큰 정도가 아니다.
천제현의 통신기술이 대륙의 정보 교류를 실현시켰다면, 이 공간 기술은 물질의 교류를 완벽하게 실현할 것이다.
대륙의 끝에서 끝까지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니, 이 사업은 엄청난 부와 함께, 거부할 수 없는 혁명을 가져오리라.
“저에겐 완벽한 기초 이론이 있어요. 다만 안정적인 기술이 없을 뿐이죠.”
천제현은 비비안 공주를 보며 말했다.
“저에겐 공주님의 재능과 능력이 필요해요. 저와 함께 이 위대한 기술을 구현하시겠어요? 이 공간실험실은 바로 이걸 위해 만든 거예요. 그러니 이 일을 맡아 주세요.”
비비안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기적상회에 들어온 지 이제 하루가 되었을 뿐인데, 이렇게 중요한 기술을 그녀에게 맡기다니.
그녀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비비안은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이것은 대륙을 바꿔놓을 기회임을!